KORUS FTA 10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영문 명칭인 ‘코러스(KORUS) FTA’는 코리아와 USA의 첫음절을 조합한 것이다. 우리는 한국이 앞에 오는 이 명칭을 반겼지만 미국은 썩 내켜하지 않았다. 협상 초반인 2006년 3월, 미국이 처음 아이디어로 내놓은 것은 아메리카를 앞에, 코리아를 뒤에 둔 ‘암코(AmKo) FTA’였다. 논의 끝에 어감이 좋은 코러스가 채택됐지만 당시 로버트 포트먼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미국이 뒤로 밀린 명칭을 찜찜해했다.
▷코러스는 ‘조화(Chorus)’를 뜻하지만 실제 협상 과정은 불협화음의 연속이었다. 양국은 협상 내내 자동차 교역 기준, 쇠고기 검역 조건 등으로 부딪치며 수차례 결렬 위기를 겪었다. 특히 협상 타결 이후 한 달 만에 미국 측은 자국의 ‘신통상정책’을 협정에 반영해야 한다며 추가 협의를 요구해 관철시켰다. 한국은 미국 측에 “앞으로 절대 재협상은 없다”며 약속까지 받아냈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 이 약속은 휴지조각이 됐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무역협정의 특성상 한미 FTA가 예측 불가의 돌밭길이 되리라는 건 애초 예고된 것이었다. 한미 FTA 타결 이틀 전인 2007년 3월 말, 미국이 중국의 코팅지 업체에 정부 보조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최고 21%의 상계관세를 부과한 것이 상징적인 예다. 이때 한국도 같이 관세폭탄을 맞는 국가 리스트에 묶여 있었다. 한쪽에서는 자유무역을 위해 장벽을 낮추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장벽을 쌓는 ‘미국의 두 얼굴’이 드러났다.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한미 FTA는 협정 타결로부터 5년이 흐른 2012년 3월 15일에야 발효됐다. 이후 10년 동안 양국의 ‘경제 영토’는 크게 확장됐다. 예상대로 한국은 자동차 반도체를 미국에 많이 수출했고, 미국은 에너지와 육류 부문에서 한국보다 우위를 보였다. 다만 미국산 자동차 교역 실적은 예상과 달랐다. 연비가 낮아 한국에서 별로 인기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지만 FTA 이후 미국차 수입 규모는 5배로 늘었다. 급변하는 무역전쟁터에서 10년 전의 손익계산서가 꼭 들어맞긴 어렵다.
▷경제적 성과가 크다고 한미 FTA가 영원불변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지금은 미중 갈등이 심화하고 지정학적 이슈로 글로벌 공급망이 깨지고 재편되는 격변기다. 이미 바이든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복원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조업의 쇠락을 상징하는 ‘러스트벨트’의 비중이 커질수록 미국의 자유무역주의는 힘을 잃게 된다. 당장의 성적표에 안주하다가는 또다시 트럼프식 청구서를 받게 될 수 있다.
홍수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