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칼럼입니다.
이쯤이면 이건희 회장의 삼성경영에 관한 평가가 나오고도 남을 법하다. 세계1류의 반열에 우뚝 선 삼성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3년 삼성이 신경영 정책을 선언한 지 이제 1년이 모자란 20년이 되었고 그 사이 삼성은 세계1류가 된 것이다. 분야별로 간략하게 이건희의 경영전략을 살펴 보기로 한다.
천재경영론
2003년 6월, 이건희 회장은 이른바 신경영 선언 10주년을 기념하여, 천재경영 -삼성이 초일류로 거듭나기 위해서 천재를 모셔오든지 아니면 길러내든지 하여, 그들로 하여금 세계 초일류 제품을 만들도록 하겠다는 것과 디자인에서도 세계 초일류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것- 을 선언했다.
그는 21세기는 두뇌전쟁의 시대이므로, 모든 지식과 정보가 1등에게만 모이게 되어, 어느 분야에서든 1등만이 살아남고, 나머지 기업이나 국가는 1등 국가와 1등 기업의 하청 공장으로 전락하여 근근이 먹고 살게 되며, 앞으로는 천재 급 인재 한 사람이 새로운 발명을 통해 수백, 수천 명의 일을 대신 해줄 것이라 확신하면서, 그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빌 게이츠를 꼽았다. 결국 이건희 회장의 천재경영론은 일본이나 미국보다 땅도 좁고 시장도 작으며 자본도 적은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천재 키우기’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핵심인재론
이건희 회장의 선친인 이병철 회장은 ‘인재제일’이라는 단어를 사훈으로 정할 정도로 인재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으나, 인재를 모두 국내에서 뽑아 가르쳤다.
반면에 이건희 회장은 인재가 있다면, 국내, 국외를 가리지 않고 초빙해오고 있다. 이런 삼성가의 ‘인재제일’ 철학은 그의 아들인 이재용 상무에게도 그대로 전수되고 있다.
참고로 이건희 회장은 1987년부터 인재의 중요성을 CEO들에게 역설해왔으며, 그 결과 삼성전자는 인재 스카우트 전담팀인 IRO(International Recruit Office) 등을 조직하고, 핵심인재 확보를 위해 전 세계를 날아다니고 있다.
아울러 고급 인력을 확보하는 것 못지않게 기업 내에 정착시키는 것도 중요하기에 삼성전자는 콜센터라는 기구를 두고,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한국인이나 외국인 출신 고급 인력들이 국내에 조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핵심인재 확보 전쟁
삼성전자 인사팀은 핵심직원들을 S(Super)급과 H(High Potential)급으로 분류, 관리하고 있는데, S급 인원은 400여 명에 이르며, 그들의 연봉은 같은 직급 내 임직원보다 세 배가 많다. 그리고 삼성전자의 해외 채용 팀은 미국, 유럽 등지를 돌며 고급 인력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대상자들을 물색하고 있는데, 삼성이 찾으려고 하는 우수인력은 해외의 우수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 유학생들과 해외의 상위급 대학에서 강의를 하거나 연구를 하고 있는 우수한 인력이 그 대상이다.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인재 찾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일본, 호주, 러시아, 인도, 동유럽 등으로 그 대상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T자형 인재를 찾아라
I자형 인재는 한 가지 분야에만 정통하고 다른 분야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반면에, T자형 인재는 자기 분야에 정통한 것은 물론이고 다른 분야까지 폭넓게 알고 있는 종합적인 사고능력을 갖춘 인재를 말하는데, 이건희 회장은 T자형 인재를 좋아한다.
삼성전자의 황창규 사장은, ‘T자형 인재란 전문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희생/봉사 정신을 겸비한 사람이며, 뛰어난 기술과 실력을 바탕으로 조직과 조화를 이루는 팀플레이를 소화해냄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인재’라고 정의하고 있다.
천재 스카우트의 조건
삼성이 생각하는 핵심인재란, 21세기 새로운 수종 사업을 주도할 수 있는 인재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만들고, 그 아이템으로 수요를 창출하며, 산업 전체를 이끌어갈 수 있는 인재이자, 더불어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인재다.
이런 인재의 범위는 학교에서 1등만 해온 모범생보다는, 시대의 기존질서나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뛰어넘고자 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델 컴퓨터의 델 같은 사람이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삼성 경영을 배우자
최근 삼성의 경영을 배우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는데, 이로써 이제 삼성전자는 한국의 기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의 초일류기업으로 인정받는 셈이라 할 수 있다. 비단 기업뿐만이 아니라 정부도 삼성의 경영을 배우고 있다.
참고로 삼성의 경영방식은 미국식 첨단경영과 일본의 전통적인 경영방식을 융합 -실적이나 성과 면에서는 GE 방식이고, 조직에 대한 충성도와 철저한 관리경영은 도요타 스타일- 한 것에 이건희 회장만의 독특한 경영 스타일이 합쳐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삼성 MBA 제도
삼성그룹은 직원들 중에서 차세대 핵심인력을 발굴, 육성하기 위하여, 삼성 MBA 제도 -과장, 차장급 등 중간간부 중에서 지원자를 대상으로 선발하여, 회사 차원에서 MBA를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음- 를 도입하고 있으며, MBA를 취득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룹 차원에서 차세대 리더 혹은 CEO로 키워 나가고 있다. 삼성은 MBA 제도 외에도 지역 전문가 과정이나 21세기 리더 과정, 21세기 CEO 과정 등 다양한 핵심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참고로 지역 전문가 육성 과정은 문화적인 차이를 뛰어넘어, 완전히 현지화된 -현지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삼성인을 양성하는 제도인데, 해당국가의 파견자로 선발된 사원은 모든 업무로부터 해방되어, 아무런 조건 없이 6개월 내지 1년간 자신이 선택한 나라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현지인과 생활하게 되며, 또 본인이 선택한 어학연수와 체험연수를 통해 현지 국가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대한 여러 가지 경험을 쌓도록 배려하고 있다.
한편 최근 사이버 교육 프로그램 -인터넷 비즈니스 성공전략, 글로벌 경영, 비즈니스 매너, 알기 쉬운 시사경제, 퍼포먼스 영어 등- 도 약 40여 가지나 실시되고 있다.
삼성인력개발원
삼성그룹의 사원이나 간부를 교육시키는 곳은 삼성인력개발원이다. 신입사원은 누구나 삼성에 입사하면 최소한 6개월 정도의 교육을 이 곳에서 받게 된다.
이른바 SVP(Samsung Shared Value Program) 과정으로, 기본적으로 25박 26일의 합숙과정을 거친다. 이 기간 동안 삼성인으로서의 기본자질을 배우고 느끼며, 삼성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머릿속에 넣게 된다.
교육 내용 중에는 ‘한계능력 배양훈련’과 ‘판매능력 개발훈련’이라는 것도 있는데, 한계능력 배양훈련이란 20여 명을 한 팀으로 구성하여 20km를 행군하는 것으로 조직의 단합이 훈련 목적이고, ‘판매능력 개발훈련’은 판매의 중요성과 사회생활의 적응력 배양을 위한 훈련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삼성맨들은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탄생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근무하고 있는 동안에도 교육은 계속되는데, 신입사원 입문 교육이 SVP라면, 고위경영자 양성 및 임원 양성 프로그램은 SLP(Samsung Business Leader Program)이다.
SLP는 삼성 내의 우수한 인재를 조기에 발굴하여 삼성의 미래 지도자로 키우는 과정인데, 이 과정에서 삼성의 중간간부들은 새로운 우수인재로 거듭나게 되며, 그들 중에 일부는 삼성 MBA 제도를 통해 외국의 명문 비즈니스 스쿨이나 국내의 경영대학원에서 2년간 경영, 기술, 국제화 등의 교육을 받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들은 단순한 삼성맨에서, 문제를 복합적으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지식 역량을 갖춘 삼성맨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삼성의 중간간부들 중에서 다시 걸러진 인재들은 SGP(Samsung Global Expert Program)라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SGP란 글로벌 전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말하는데, 지역 전문가를 양성하거나, 해외에 파견될 주재원을 양성하거나, 해외의 법인장 등을 양성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핵심은 외국어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삼성은 이처럼 교육에 철저한 회사인데, 바로 이것이 오늘날 삼성을 발전시킨 원동력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반도체 기술, 그들 손에 달려 있다
삼성전자를 메모리 반도체 1위로 이끈 황창규 사장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대학과 기업에서 활동하다가 삼성에 합류했다.
그런데 그가 해외 명문대 박사로서 학계로 진출하지 않고 기업으로 진로를 택한 이유는, 반도체에서 한국을 일본보다 우월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결국 그는 책임의식과 오기로 개발에 매진하여 세계 최초로 256MD램을 개발하여, 일본을 본격적으로 추월하게 된다. 황 사장은, 주인공이 학창시절 은사를 만나 혁신에 대해 터득하고 경영에 접목해나간다는 경제소설 『더 골(The Goal)』을 특히 좋아하며, 개인적으로는 역사소설, 위인전 등 역사 속 인물의 모습에서 경영의 지혜를 얻고 있다고 한다. 또 그는 과학고와 공과대를 연계한 범국가적 이공계 육성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우수인력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삼성전자 기술총괄 임형규 사장은 삼성전자가 키워낸 내부 육성 박사 경영인인데, 그가 기업에 투신한 것은 새로운 일에 호기심이 많고,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성향을 가진 기업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라 한다.
그가 삼성에서의 생활을 통해 가장 보람이 있었던 것은, 자신이 전공한 반도체 기술로 반도체 사업의 세계 최고를 달성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한 일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그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존경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너무 인간적인 조화를 우선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일시적으로는 친하게 지내고 생활하는 게 편하긴 하겠지만, 결국은 조직에서 일의 성과가 나오고 성장이 이루어져야만 조직에 속한 개인들도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임형규 사장은,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가 쓴 『The Next Society』를 IT 혁명의 유사성, 향후 예견되는 IT 혁명의 발전 방향에 관한 통찰력 있는 분석을 보여주고 있어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한다.
삼성 펠로우 제도
‘삼성 펠로우’ 제도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삼성을 대표할 수 있는 인재를 선정해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제도로서, 2002년부터 시작해 1년에 2명씩 현재까지 모두 6명 -MPEG 핵심기술 개발의 주역 서양석 전무, 강유전체(强誘電體)를 응용한 차세대 반도체 분야의 세계적인 기술 보유자 및 국제적 리더로 통하는 유인경 연구위원, 특허왕으로 통하는 김종민 상무, 반도체 연구에 빠진 김기남 연구위원, ‘삼성 기술전 2004’ 개막식 행사에서 ‘2004 삼성 펠로우’로 임명된 서강덕 연구위원과 김창현 연구위원- 을 배출했다.
펠로우에 뽑히면 자신의 이름이 붙은 연구실을 갖게 되고, 독자적인 연구 프로젝트를 맡을 팀을 구성해서, 연구 및 대외활동에도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삼성은 펠로우 제도를 통해 세계 최고 기술 개발에 도전해 원천특허를 획득하고, 핵심기술 분야에서 국제기술표준에 대한 삼성의 선도력을 강화하는 등, 세계적 수준의 기술 경쟁력을 더욱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삼성의 여성 파워
이건희 회장이 지난 1993년 신경영 당시부터 ‘성차별 철폐’를 강력히 지시한 이후, 삼성은 줄곧 여성인력을 중시하는 경영철학을 실천해오고 있는데, 참고로 이 회장은 여성은 배려 차원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며, 장래를 볼 때 여성인력을 안 쓰면 망하게 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 같은 삼성의 여성 인력 중용 경영은 지난 10년간 인력 구조에도 큰 변화를 가져와, 1993년 3%에 불과했던 대졸 이상 여성 직원의 비율이, 2004년 그룹 전체 대졸 이상 직원의 11%인 6,900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삼성인사팀 관계자는 이러한 결과가 있기까지는 기혼여성을 위한 사내 탁아소 및 모성보호실 확대, 여성 간부 리더십 교육, 육아휴직 활용지원, 여성 전문 컨설턴트 제도 등 여성들의 근무여건 지원을 강화한 것과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시스템을 꾸준히 도입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여성들이 모든 분야에서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여성 인력 중용책을 펴나갈 방침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여성 인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삼성 여성박사 출신의 대표주자인 윤심(삼성SDS 웹서비스 추진사업단장)은 중앙대 전산학과를 거쳐 LG 소프트웨어에서 5년 동안 근무한 후, 사표를 내고 공부를 하기 위해 1990년 프랑스로 떠났고, 프랑스 제6대학에서 전산학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치던 해인 1996년 삼성 SDS에 채용되었다.
좋아하는 키워드가 ‘이노베이션(Innovation)’이라는 그녀는 회사의 숨통을 틔워주고 끊임없이 샘물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녀를 설득의 달인이라고 부르는데, 그녀가 말하는 설득의 첫 단추는 먼저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계열의 수재
삼성화재는 일본 도쿄해상에서 근무하던 가와시타 도시키를 해외업무 담당 상무로 영입했는데, 그는 삼성화재에서 S급 임원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그가 담당하는 것은 이머징(Emerging) 마케팅 분야 -이머징 마켓이란 떠오르는 시장을 말하는데, 기존의 미국이나 일본 등의 시장이 정체되어 있는 것에 반해 신흥공업국들은 새로운 산업개발을 위하여 사회 간접자본 등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는 등 자본수요가 많기 때문에 이 곳을 떠오르는 시장이라 칭함- 인데, 삼성생명이나 삼성화재 등 금융권의 경우, 이머징 마케팅이 큰 관심 분야로 떠오르고 있어서 그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가와시타 도시키 상무 외에 제일기획의 마이클 문과 스티브 쇼룸 등도 삼성에 근무하고 있는 수재들이라 할 수 있겠다.
삼성을 떠난 천재
미국 하버드 대학 경영대학원 MBA 출신인 김병국(미국명 에릭 김) 전 삼성전자 부사장은 글로벌 마케팅 실장으로 스카우트되어온 S급 인재였는데, 그는 2003년 블록버스터 영화 <매트릭스 2>에 애니콜을 등장시켜 전 세계적인 프로모션에 애니콜을 성공적으로 선보이기도 했고, 그의 재임 기간 중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52억 달러에서 126억 달러로 무려 2배 이상 상승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전 부사장은 2004년 9월 10일 삼성과 맺은 5년 계약이 만료되면서 삼성을 떠났다.
그가 삼성을 떠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업계에서는 해외에서 영입된 인재들이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떠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고, 또 한편으로 그들은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옮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미국의 자유로운 직장 문화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분석의 시각도 있다.
김병국 외에 디지털 미디어 연구소장으로 있던 오영환, 디지털 솔루션 센터장으로 있던 전명표 등도 삼성을 떠나고 말았는데, 이는 스타급 핵심인재는 모셔오기도 어렵지만, 조직 내에 정착시키기 또한 쉬운 과제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핵심인재의 육성과 확보는 이제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당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첫째, 최고경영자의 인재개발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몰입이 필요하고, 둘째, 인재개발도 전문화되어야 하며, 셋째, 인재육성은 회사의 가치관에 따른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하고, 넷째,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교육은 사라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유능한 천재가 가진 뛰어난 발상이 조직의 벽에 가로막힌다면 아무리 유능한 인재를 데려온다 해도 회사는 발전하지 못한다. 따라서 유능한 인재 발굴도 필요하지만, 조직과 조직 간의 벽, 부서와 부서 간의 벽, 상사와 부하 간의 벽을 없애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삼성의 별동대, 외국인 싱크탱크
삼성이 추구하는 인재경영의 대표적인 부서가 바로 ‘미래전략그룹’인데, 이 조직은 해외의 S급 인재를 영입해 모아놓은 싱크탱크로, 외부에 의뢰하기 곤란한 내부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면서 그룹의 미래 전략과 사업 방향을 수립하고 있다. 참고로 삼성은 미래전략그룹의 출범 의미를 국제 경영자의 양성, 그룹 국제화의 확산, 미래 경영성의 극대화라는 3가지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세계 엘리트 군단이 모였다
미래전략그룹 멤버를 뽑기 위해, 삼성은 1년에 6,000명이 넘는 세계 10대 MBA 졸업자 중 200여 명을 엄선해 설명회에 초대하는데, 이 중 60% 이상이 실제 설명회 현장에 나타난다고 한다. 참고로 현지에서 이뤄지는 1차 면접은 오로지 인성만을 따지는데, 이는 한국과 삼성, 그 중에서도 미래전략그룹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단 1차 면접이 끝나면 50명으로 대상자가 추려진다. 본격적인 실력 테스트는 이때부터라 할 수 있는데, ‘삼성전자 휴대폰의 미국 시장 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안은 무엇인가’라는 식의 구체적인 질문을 준 뒤 얼마나 논리적으로 이를 해결하는지 검증한다고 한다. 삼성은 2차 면접을 통과한 20여 명에게 입사를 제안하고, 이들 중 12~13명 정도가 최종 입사한다고 한다.
親 삼성화를 위한 프로젝트
삼성은 미래전략그룹에 소속된 외국인 직원들에 대해 특급 인재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고 있는데, 연봉은 대략 10만 달러 이상으로 보고 있다. 이와 별도로 실적에 따라 성과급도 연봉의 20% 범위 내에서 지급하고, 급여 외 복지혜택도 상당하다. 하지만 삼성이 베푸는 가장 큰 배려는 이들 초특급 인재들이 업무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인데, 각 계열사 경영진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는 기회를 자주 제공함으로써 개개인의 실력 향상을 이끌 뿐만 아니라, ‘삼성이 이렇게 중요한 일을 나에게 맡겼구나’라는 자부심까지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룹의 싱크탱크가 되어
미래전략그룹의 역할은 그룹의 미래사업과 전략을 총괄적으로 기획, 수립하는 것이며, 그룹 전체 차원에서 중복사업에 대한 교통정리도 담당한다.
미래전략그룹의 멤버들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씩 삼성에 근무하면서 한국에 대한 기업문화, 삼성문화를 연구하는데, 그들은 특히 개인보다는 조직 중심, 회사에 대한 충성도나 귀속의식, 강한 리더십 등에 대해 놀라워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삼성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지적을 보내기도 하지만, 삼성에 대한 친밀도나 애정이 남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삼성 본사에 남지 않는다 해도, 세계 각국에서 뛰면서 ‘친親 삼성화’가 되는데, 이것 역시 그룹 입장에서는 큰 성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미래전략그룹의 대표적 엘리트
미래전략그룹의 대표적 엘리트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네트워크 총괄 상무인 데이비드 스틸(미국)은 1997년 삼성의 ‘미래전략그룹’ 초창기 멤버로 삼성에 입사하여, 3년 후부터는 삼성전자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다비드 앙리(프랑스)는 2003년 삼성전자에 입사하여 디지털미디어․통신 등의 프로젝트를 수립하였는데, 방카슈랑스 도입을 앞두고 해외 선진국의 사례를 분석해 삼성그룹 금융부문의 대책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캐나다 온타리오 출신의 로만 세페다(미국)는 미국 MIT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와튼스쿨에서 MBA를 마치고, 2005년 2월부터는 삼성전자의 디지털 미디어 비즈니스 마케팅팀에서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그는 북아메리카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디지털 미디어 마케팅부서의 대미 전략 수립을 책임지고 있다.
삼성의 외국인 주재원 1호인 넬슨 앨런(미국)은 미국 튤란(Tulane) 대학에서 영문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했으며, 이후 영국 런던 비즈니스 스쿨 MBA과정을 밟았고, 또 뉴욕과 런던에서 경영컨설팅 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미래전략그룹 멤버로 참여한 이후 무역과 소매 그룹의 벤처사업과 인터넷 전략을 포함하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된 사람 외에 삼성SDS 중국 테스크포스팀을 이끌고 있는 하오 인(중국), 첫 중국인 임원으로서 삼성전자 중국통신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왕퉁(중국), 금융 분석 벤처 창업 분야 전문가인 안토니오 솔레(영국), 삼성전자 인적자원(HR, Human Resources) 팀 차장으로 있는 에밀리 밀러(미국), 크리스티나 크랙홀름(미국), 신 짜오(중국), 요한 데쁘레데레(벨기에), 비즈나 임나제(그루지야) 등도 미래전략그룹의 대표적 엘리트들이라 할 수 있겠다.
삼성의 디자인 혁명 선언
2005년 4월 13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가구박람회가 열렸는데, 삼성그룹에서는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핵심사업 부분의 장들이 대거 참석했다. 참고로 이건희 회장은 박람회장을 돌아보기 전에 사장단들에게 “가구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제품입니다. 세계적 명품 가구업체들이 어떻게 유럽의 고급취향을 디자인에 반영하는지 연구해주십시오.”라고 주문했고, 박람회 현장을 무려 6시간이나 직접 걸어 다니면서 제품 하나하나를 눈 여겨 돌아본 직후 “소비자 한 사람이 진열대를 돌아다니면서 3만 개의 상품을 둘러본다. 이제 철저히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고객의 마음을 끌지 못하면 상품을 팔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상품 진열대의 특정 제품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간은 평균 0.6초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고객의 발길을 붙잡지 못하면 마케팅 싸움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같은 날 저녁 5시, 밀라노의 포시즌 호텔 지하 회의장 앞에 삼성제품과 세계적인 명품의 차이를 알기 위한 비교 품평회 -소니, 샤프, 파나소닉, 밀레 등 세계 일류의 선진제품과 삼성의 주요제품 100여 개가 전시- 를 현장에서 열고, 이건희 회장은 “내가 굳이 왜 밀라노에서 이런 회의를 하는지 생각해보시오. 최고경영진에서부터 현장 사원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의 의미와 중요성을 새롭게 재인식하여 삼성제품을 명품 수준으로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날 회의는 밤 11시까지 무려 6시간이나 이어졌는데, 이건희 회장은 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삼성전자의 가전제품과 글로벌 외국 기업의 제품을 비교하면서, 삼성이 만든 제품의 디자인이 갖는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고 한다.
“삼성의 디자인 기술은 아직 부족하다. 애니콜만 빼면 나머지는 모두 1.5류이다. 이제부터 경영의 핵심은 품질이 아니라 디자인이다.”
참고로 포시즌 호텔의 6시간 마라톤 회의가 끝나고 삼성그룹은 이른바 ‘월드 프리미엄 브랜드 육성 계획’을 확정하고 디자인 역량 강화를 위한 밀라노 4대 디자인 전략 -독창적 디자인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우수인력을 확보하며,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조성하고, 금형기술 인프라 강화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을 것- 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제2의 디자인 혁명 선언이다.
디자인 혁명 선언, 그 후
지난 10년간 삼성전자는 세계 대도시에 디자인 센터를 설립하고 디자인 부문을 통합 개편하는 등 계열사별로 디자인 경쟁력을 꾸준히 강화해왔는데, 그 결과로 휴대폰과 TV 등을 중심으로 삼성전자의 제품들은 미국에서 주는 ‘IDEA상’, ‘CES혁신상’, ‘Cebit if 디자인상’, ‘레드닷 디자인상’ 등 세계적인 디자인 평가기관에서 줄곧 상위를 차지하는 등 나름대로의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이 정도의 성과에 만족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멋진 외관만 갖추는 게 아니라 삼성만의 혼을 담고 있는 디자인이어야 함을 재차 강조했는데,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혼을 담자고 발언한 배경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즉 소니의 제품이나 벤츠 자동차 등은 멀리서 봐도 소니나 벤츠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지만, 삼성은 남의 상품을 모방만 하다 보니 한눈에 삼성의 제품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 하겠다.
영국, 디자인은 국가적 아젠다
오늘날 영국에서는 디자인 산업을 ‘창조산업’이라 부르는데, 영국은 이미 1980년대 대처 수상 때부터 창조산업의 육성에 큰 관심을 가져 국가의 주요 정책 과제로 정하고, 대대적인 규제 완화와 함께 시장개방정책을 추진해왔다.
그 이후 토니 블레어 정부에서도 창조 산업을 좀더 투자가치가 높은 고부가가치 창출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지방자치 단체를 중심으로 창조산업 클러스터 구축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리고 또한 세계적인 디자인 교육기관인 ‘왕립미술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을 운영하면서 런던을 디자인의 메카로 만들었다. 참고로 영국이 창조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육성해오고 있는 것은 이 산업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세계 경제성장률이 최근 4년 동안 연평균 3%대 수준인 데 비해 세계 창조산업은 연평균 5% 안팎의 성장을 보이고 있다.
제스퍼 모리슨과 손잡다
2005년 4월 25일, 삼성전자는 영국 출신 세계적인 디자이너 제스퍼 모리슨과 계약을 체결했는데, 삼성전자의 차세대 휴대폰 디자인을 의뢰하기 위해서였다. 모리슨은 1959년생으로 영국의 킹스턴 대학과 세계 최고의 디자인 학교인 영국 왕립미술학교(Royal College of Art)를 졸업한 후, 지난 1986년부터 ‘오피스 포 디자인’을 열어 주로 가구와 주방가전제품의 디자인을 해왔다.
그는 1995년 독일의 ‘하노버 엑스포 2000 전차 디자인 공모전’에 당선된 바 있고, 최근에는 이탈리아의 알레시, 마지스, 스위스의 비트라, 독일의 로젠탈 등에 디자인을 제공하고 있다. 그의 삼성전자 영입은 세계적인 천재 디자이너를 잡으라는 이건희 회장의 구상과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앞으로 그는 1년 동안 삼성의 휴대폰을 디자인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은 앞으로도 국적이나 성별을 가리지 않고 세계 디자인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천재 급 인력을 계속 확보할 예정이다. 왜냐하면 세계적인 천재 디자이너 한 사람이 세계의 디자인을 주도하며, 이어서 새로 발매된 신제품을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국 왕립미술학교
1837년에 설립된 영국 왕립미술학교는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인 교육기관인데, 세계 유일의 아트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전문대학원 -학사 과정은 없으며, 석박사학위만을 수여하는 대학원- 으로, 미술, 패션, 직물, 그래픽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영화,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도자기, 유리공예, 금속공예, 보석, 건축 디자인, 컴퓨터 디자인, 자동차 디자인, 산업 디자인 등의 분야와 관련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영국 왕립미술학교 교육의 특징은 자유로움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인데, 영국 왕립미술학교의 교수 중에 가장 유명한 교수를 한 사람 꼽으라면 단연 론 아라드(Ron Arad)를 지목할 수 있다.
론 아라드는 1951년 생으로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태어났고, 이후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여 연출가, 디자이너, 건축가, 무대미술가로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는데, 그의 디자인은 2가지 -스튜디오에서 만든 한정 생산품과 기업의 대량 생산품- 로 나눌 수 있다. 론 아라드의 제자이자 영국 왕립미술학교의 졸업생으로 한국인 이주희가 있는데, 이주희는 홍익대 목조형 가구학과를 졸업한 후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영국 왕립미술학교에 들어가 론 아라드의 지도를 받았다. 그 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이주희는 삼성 디자인 유럽센터 소속의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삼성 디자인 경영센터
삼성은 디자인의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짐에 따라 2001년, ‘삼성 디자인 경영센터’를 설립하였다. 현재 약 500여 명의 디자인 인력이 이곳에 근무하고 있는데, 최지성 디지털 미디어 총괄사장이 대표이다.
참고로 정국현 전무가 센터장으로 있는 산하에는 ‘디자인 전략팀’과 ‘디자인 연구소’ 2개 팀이 있는데, 디자인 전략팀 내에는 글로벌 디자인 그룹이 소속되어 있고, 여기서는 삼성그룹의 전체적인 디자인 전략기획과 홍보를 맡고 있으며, 디자인 연구소는 각 부문별 디자인 개발그룹과 CNB 그룹으로 다시 나뉜다.
그리고 디자인 경영센터에서는 자신들이 직접 디자인을 개발하기도 하지만 외국의 저명한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의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2005년 3월 3일 이른바 ‘벳시 존슨 폰’이라는 것을 출시했는데, 벳시 존슨 폰(10~20대 신세대 여성을 주고객으로 출시한 휴대폰으로, 핑크빛 휴대폰 표면에 장미꽃이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고, 키패드의 아랫부분에 벳시 존슨의 자필 사인이 새겨진 것이 특징)은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 벳시 존슨이 디자인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미국 시장 판매를 위한 특수 제품이다. 그 외 다이앤 본 포스텐버그 폰, 안나 수이 폰 등도 삼성전자가 외국 디자이너에게 의뢰해서 만든 패션 폰이다.
글을 맺으면서...
1993년 이후 삼성은 세계 일류에 자리 잡았고, 이제 초일류로 가기 위한 행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초일류는 명품을 말하는데, 근래에 이건희 회장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할 수 있는 천재 모셔오기에 주력하는 것과 디자인 혁명을 사장단에게 강력하게 주문하는 것 등도, 명품과 초일류 기업으로 가기 위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삼성이 뛰는 모습을 보면 치열하다는 표현이 맞다. 그래서 삼성의 내일이 궁금해지고 기대가 된다.(장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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