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탄성이 나올 뿐이었다.
군인들이 사는 곳이니 대충 어떨 것이라고 미리 해둔
상상과는 달리 미군부대 영내는 너무나 깨끗했고,
길 아닌 곳은 대부분 잘 가꾸어진 잔디밭으로 녹색의
바다처럼 보였다.
이곳도 가보자~ 저곳도 가보자~
처음 미군부대 영내에 들어와 본 골목친구들과 나는
서로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둘러보기 바빴었다.
연병장에는 꼬마 손님들을 위해 탱크 한 대가 굴러다녔고,
가끔 멈추어 서서는 탄성을 지르는 꼬마들을 태워주기도
하였었다.
내 곁에 와서 멈추기도 했었는데, 나는 꼬부랑말을
하는 그 미군병사의 웃음이 낯설어서 타지 않았었다.
넉살 좋아 얼른 땡큐~하고 타본 친구는 두고두고
골목에서 그 탱크 타본 이야기로 어깨에 힘을 주곤 했었다.
영내 영화관.
내가 용돈을 아껴가며 가던 3류 영화관과는 천장부터
의자까지 모두 달랐다.
뻔질뻔질한, 귀퉁이 한 두 군데는 꼭 찢어져 질 나쁜
속솜이 삐죽이 머리를 내민 빨간 비닐의자가 아닌,
앉으면 몸이 절로 푹 파묻히는 푹신한 의자였고,
천장은 비 샌 자국이 얼룩덜룩 남은 다다미형이 아니라
천장과 벽이 코르크 같은 재질 일색으로 마감된
고급스러운 영화관이었다. 영화 시작까지 기대를 품고
기다렸더니 꼬부랑말이 나오는 바람에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나는 꼬부랑말이라도 그냥 계속 보고 싶었지만...
“저건 뭐지? “
도로 한쪽, 구루마 위에 붉은빛 도는 짧은 몽둥이 같은
것들이 잔뜩 쌓여 있었고, 둘러선 아이들이 손에 그것들을
하나씩 들고는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었다.
개중에는 씹던 것을 퉤퉤~ 뱉어내는 아이들도 있었고...
우리들도 그곳으로 달려가 붉은 몽둥이를 하나씩
손에 들었다.
오래전에 유엔의 날이 우리의 공휴일이었던 적이 있었다.
대구에 있는 미 8군에서는 그 유엔의 날과 미국 독립기념일에
미군부대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곤 했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을 때 친구들과 그곳에 함께 갔던
날의 기억 중에 가장 생생했던 기억들이다.
그 붉은 몽둥이 맛이 어지간만하면 배부를 때까지
먹으리라... 다짐을 하고, 우리들 각자 한 입씩 베어 물고
씹었는데, 찝찌름 번들번들 닝클 메슥거리던 그 맛.
친구 중 누구도 그것을 삼키지 못하고 다 퉤퉤 내뱉고 말았다.
“맛이 뭐 이래?? “
“미국 놈들은 맛 좋은 거만 먹고사는 줄 알았는데 아니네. “
“미제라고 다 좋은 건 아닌가 봐... “
“입 개운해지게 껌이라도 하나 얻어 씹었으면 좋겠네. “
입맛만 버린 우리들은 그 길로 8군을 벗어났는데,
그 이름 모를 맛없었던 음식이 소세지란 걸 안 것은
한참의 세월이 흐르고 난 후였다.
내 아이들은 나와 친구들이 입맛만 버렸다고 타박했던
그 음식을 즐겨 먹는다.
“그게 맛있냐? 찝찌름 닝클거리지 않냐? “
“그런 복잡한 맛은 모르고요... 그냥 맛있어요. “
미국에서 산지 17년, 이곳에 흔한 간편 음식들
중에
길쭉한 빵 가운데 소세지 하나 넣고 케첩이나 마요
듬뿍 뿌려 먹는 것이 있다.
그동안 굳이 그런 음식을 먹지 않아도 집에서 입에 맞는
한국 음식들 잘 먹고살았는데...
길 위에서 살다 보니 트럭들 주유소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날도 더러 생긴다.
주로 피자나 햄버거, 서브웨이가 있으면 채소 많이 넣어
먹는데 여전히 소세지빵에는 영 손이 안 간다.
어릴 때 한번 박힌 기억이 영 빠지지 않아서 그런가 본데,
이상한 것은 그런 내가 소세지를 주원료로 하는 부대찌개는
아주 좋아하고 잘 먹는다는 것이다.
라면사리까지 듬뿍 넣어서. ㅎ
역시 세상 음식은 한국 사람들의 손맛이 더해져야
맛있어지나 보다.
첫댓글 나이먹어 가장 먹어서는 안된다는 음식이 소세지입니다.. 그럼에도 맛이 있는게 소세지입니다만 하두 주변서 가공식품의 폐해를 말하는 바람에 멀리하고 있습니다. 엣날 추억 잘 들었습니다.
소세지뿐만 아니라 이쪽 음식들이
저에겐 안 맞아 주로 집에서 준비한 음식과 한국식 여행 음식들을 주로 준비해서 길 떠납니다. 군것질용으로는 오이, 당근, 사과, 귤 가지고 다니고요.
그래서, 요즘
K- food 가 온 세상 곳곳에서 인기가 있지요.
맛도 좋고 건강과 영양면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지요.
우리가 가난했기 땜에,
우리 것이 좋은 줄도 모르고
그저 외제를 찾았던 시절도 있었지요.
요즘은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시절 그때가 너무 가난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너무 잘 이겨냈지요.
미 8군 부대에서 나오는 것을 구하기 위해
단속을 피해, 설쳐 대는 보따리 아줌마들이 생각 나네요.
다 그러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그런 억척 같은 부모들 밑에서 자라,
검사도 되고 유학도 가고...
지금에 와서, 편가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면 좋겠습니다.
요즘 여기 한인마트에 가면 한국인들보다 다양한 인종들의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ㅎ
그 시절 미국 원조 옥수수로 만든 빵도 기억납니다. 그렇게 힘든 세월 이겨내고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는데... 나라 생각하지 않는 이념들이 난무를 하네요. 그 소식 듣는 마음이 많이 아프답니다.
읽으면서 도대체 무얼 드신 거야? 했는데.
소세지 였군요
제가 초딩.마음자리님과 앞 골목, 뒷 골목 살때 동네 친구 아버님께서 미군 부대 근무하셔서,
그 친구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께 이것 저것 물건을 많이 주문 받고 파시기도 했었어요.
그 중
우리나라 메주 콩 같은 콩이 걸쭉한 소스에 담겨 캔으로
나온 게 있었어요.
즐겨 먹었던 건데 아이 가져 입덧으로 잠시 먹고 싶어 찾아 봤지만 못 찾았지요.
지금은 마트에도 있더라구요.
동아 백화점에서 어느 길로 나오다 보면 중앙 국민학교,
그 근처 어딘가에 미8군 부대가 있었죠?
제가 살던 맨션 앞 좌측으로 대구 은행 이었나? 은행 지나
그 길로 쭈욱 가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마음자리님의 기억속에 저도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많았던
대구에서의 추억 속으로 잠시 젖어봅니다.
그땐 군용 보급품으로 나온 것들을
개인적으로 팔기도 했고, 대구역 가까이
양키시장에서 팔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ㅎ
그 당시 미군부대에 근무하던 한국 군무원들 가족은 생활도 제법 유족했었고요.
제 기억 속의 미8군은 이천동과 대봉동 봉덕동이 만나는 중간 쯤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 있을 겁니다. ㅎ
대구에도 미8군부대가 있었군요?
어린시절 해병대사령부와 마주보던 자리에 용산 미8군 부대가 있었는데
수시로 그 곳 솔밭에서 놀다가 미군 찦차가 지나가면
손흔들며 "헤이~어쩌구~" 하곤 했었죠.
덕분에 돌이켜 그시절을 추억해봅니다.
아주 남루한 복장의 아이들~~
그 때 가끔 차에서 던져주어 먹던 맛없는 강냉이~
훗날보니 '팝콘' 이더군요~^^
미8군 기지가 여러 도시에 흩어져 있었던가 봅니다. 제가 다닌 국민학교와 중학교가 미8군 후문 가까이여서 미군들이 익숙했었습니다. 그 안을 볼 기회는 별로 없었지만요.
전남 순천에도 미군이 있었고
제 옆집에 한국인 여성과 미군이
살았습니다.
기억은 없는데 가끔
간식을 주었던 같고
미군이 떠나던 날
그 여성이 많이 울기도 했었어요.
저는 지금도 쏘세지는 안먹습니다.
학교에서 배급 받았던
옥수수 가루로 누룽지를
가마 솥에 만들어 먹으면
구수하고 간식으로 좋았었네요.
우유가루로 만드는 간식도
어린 시절 자주 먹었고
모든것 귀했어도
행복했던 어린 시절
그리워요.
아, 저는 구운 옥수수빵을 받았는데
조윤정님 때는 옥수수 가루를 받았었군요.
그렇게 배급이라도 받으며 살아남아
경제 기적을 만들고 선진국에
진입하는 것도 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제 첫 영어회화 선생이 한국여성과 결혼한 미국인 불법체류자였습니다. ㅎ
ㅎㅎㅎ
붉은 몽둥이 추억.
어쩜 이리도 옛날 일을 잘 기억하시는지요.
저는 언제 소시지를 처음 먹었는지
기억도 없어요.
시골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녀서
소시지를 잘 몰랐어요.
그런데 대구에는 콩국이 있었지요.
그 콩국만 생각납니다ㅎ
소시지는 정말 맛 없었어요. ㅎ
대구 콩국에 우뭇가사리(대구에선 우묵이라 불렀는데..) 넣어서 먹으면 정말 시원하고 고소하고... 맛있었어요. ㅎ
그당시 소세지 엄청 맛있었어요
우리집에서 세사는 가구의 식모를 살살 꼬셔서 쏘세지를 얻어먹은 기억이 납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서울에서 사셨던 분이라 맛이 시골입맛과는
달랐던가 봅니다. ㅎ
앉으면 저절로 푹 빠져드는
폭신한 의자 ㅎㅎㅎ
제가 스타벅스를 즐겨 찾지 않는
이유가 있는데
앉으면 저절로 푹 묻힌 의자가
눈 씻고 봐도 없기 때문입니다 ㅎ
좋은 글에
한 소절만 빼내서 코멘트함을
이해해 주실거죠
마음자리님 표현이 잼났거든요
옛 영화관 빨간 비닐 의자는 배가
뽈록해서 앉으면 위로 자꾸 퉁겨냈어요. ㅎㅎ
속에 스프링이 있었던가 봐요.
그러다가 미군부대 영화관 의자에
앉았더니 푹 가라앉는 느낌, 영화 보다가 자도 되겠다는 그런 느낌이 들더라구요. 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제가 유독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많네요. ㅎ
부대찌게 맛나게 만드셔서 꼭 드셔보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간도 안 맞고 씹히는 감도 이상하고...
ㅎㅎ 저도 여전히 입에 안 맞습니다.
후문쪽 지나다가 얼핏 보이는 풍경 은
붉은 벽돌 담장들로 각져보였는데
속에 들어가보니 굴러다녀도 될 정도로
잔디밭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집들 모양도 참 예뻤어요. 군부대 맞나... 싶었지요.
한국에 가면 유명한 부대찌게 꼭 먹어 보겠습니다. ㅎ
한국음식은 참으로 응용을 잘 하는 음식인 것 같습니다.
어린시절 동경하였던 미국에 가서 사시니 시절인연인듯 합니다.
그땐 동경하지 않았는데 중학교 때 미국영화를 많이 보다 보니 꼭 한번 가보고 싶긴 했었어요.
물론 이렇게 와서 살 줄은 꿈에도 몰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