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의 영혼(Anima Christi), 예수회 구정모 신부님
‘미안하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
큰 형님인 베드로 신부가 오한을 동반한 고열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셔서 다시 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
소식을 듣고 급히 대전에 내려갔을 때
형님은 급성 폐렴으로 무척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폐에 물이 차서 산소 수치는 급격히 떨어지고
피가 섞인 가래가 계속 나오는 상태여서 밤새 비상 상태로 보내야 했습니다.
후두부 깊은 곳에서 힘겹게 터져 나오는 기침 소리와
몸을 힘겹게 비틀고 계시는 형님 모습이
마치 십자가에서 마지막을 견디며 기도하시는 예수님 같았습니다.
그렇게 약 한 달간 사투를 벌이시던 형님은 기적처럼 의식을 다시 회복하셨고
어제는 아주 오랜만에 휠체어를 타고 바람도 쐬셨습니다.
형님은 다발성 골수증이라는 혈액암 판정을 받고 3년 정도 투병을 해오셨습니다.
처음에는 치료 효과가 좋다고 모두들 안심하였는데
작년 여름부터 조금씩 악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작용인 설사가 심해져 요즘은 무엇인가를 목에 넘기기라도 하면 즉시 설사를 합니다.
먹은 것이 몸을 지탱하는 영양분이 되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낭패감이 겹치면서 형님의 몸은 급격히 마르고 마음도 황망해지셨습니다.
작년 늦봄의 일입니다.
형님은 저를 문병하기 위해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형제는 팔을 벌려서 힘차게 포옹을 했습니다.
그런데 서품식 때 보았던 아름답고 화사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왜소하고 초라해진 몸의 등뼈만이 제 손에 잡혔습니다.
“형님, 오늘은 제가 한턱 쏘겠습니다. 먹고 싶은 것 말씀하시죠.”
저는 한껏 폼을 잡는 목소리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여, 그것 참 고맙구먼.
나는 파스타하고 소고기 스테이크 같은 게 먹고 싶구먼.”
‘아니, 시골 할아버지가 무슨 서양 음식을 드신다고 그러시나.’
저는 속으로 놀라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레스토랑으로 향했습니다.
쇼팽의 에튀드가 조용하고 애잔하게 흐르는 가운데 형제는
토마토 소스로 만든 스파게티와 안심 스테이크를 시켜서 나누어 먹었습니다.
식사 후에 우리는 명동성당에 가서 성체 조배를 했습니다.
명동성당은 형님이 부제품을 받은 곳입니다.
또 민주화 시절에는 학생들을 대신해서 경찰에 연행되어 갔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형제가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습관입니다.
제가 철이 들면서 새기게 된 최초의 기억 중의 하나가
큰형과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고향 본당의 순교자이신 페렝Perrin 신부님의
가묘 앞에서 자주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형님의 모습은 제 뇌리에 깊이 새겨졌고
그것은 저의 수도 성소로 이어졌습니다.
오후 늦게 우리는 명동성당을 나와서 다시 서울역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형님이 타실 KTX 플랫폼까지 바래다드렸습니다.
열차 번호를 확인하고 천천히 계단을 오르시는 형님을 향해
간단히 인사를 드렸습니다.
“형 조심해서 내려가셔요. 건강 잘 살피시고요.”
제 목소리에 형이 뒤를 돌아 저를 쳐다보셨습니다.
말없이 한참을 바라보시던 형님은 시선을 약간 먼 곳으로 돌리시더니
아주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동생, 참 미안허구먼. 동생이 아픈데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네.
마음 같아서는 대신이라도 앓아주고 싶은데… 할 수만 있다면 말이여.”
대신 앓아주고 싶다니.
자신도 중병을 앓으면서 자신의 병은 아랑곳 않고 동생의 병을 대신 앓고 싶다니.
그러나 저는 그 말이 형님의 진실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몸은 아주 작고 초라해져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더 깊은 사랑(요한 13,1 참조)으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형님은 어느새 자신이 평생 축성하고 나누어주셨던
주님의 성체聖體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저의 가족과 지인들은 큰형 베드로 신부와
이승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모님을 비롯해
소중한 이들을 수차례 먼저 하느님께 보내드렸지만
저 개인적으로 이번만큼 마음이 힘든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저와 저의 큰형과의 관계가 특별했다는 의미겠지요.
저는 형님의 병상 가까이로 다가가서 형님의 팔을 잡았습니다.
피멍이 들고 가느다래진 형님의 팔을 제 가슴에 포개고 조용히
‘그리스도의 영혼(Anima Christi)’을 불렀습니다.
제가 수도 생활을 시작한 이래 하루도 빼먹지 않고 부른 노래이고
형님도 좋아하시는 노래였습니다.
저는 중간중간에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삼키며 끝 구절 ‘아멘’까지 불렀습니다.
어쩌면 형님은 이 노랫소리와 함께 지금까지는 간절하지만 희미하게밖에 볼 수 없었던 것을
조금씩 더 선명히 보고 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1코린 13,12 참조).
구정모 신부
예수회 일본관구 소속 사제로 일본 조치(上智) 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