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두신 기쁨 629 | 나은혜 | 나귀의 영광
성경에는 대표적인 세 마리의 나귀가 나온다.
민수기 22장에는 말하는 발람의 나귀가 나온다. 모압의 발락 왕이 이스라엘의 침공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발람에게 많은 재물을 주고 자기 나라에 와서 예루살렘을 저주하라고 하였는데 세 번까지 거절하였지만 물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 마음을 아신 하나님의 허락 아래 가다가 좁은 골목에서 나귀가 벽에 발람의 다리를 부딪치고 다치게 한다. 발람이 화를 내고 채찍으로 나귀를 때리자 나귀가 말을 한다.
“왜 나를 세 번이나 때리느냐? 내가 언제 불순종한 적이 있느냐?” 그리고는 발람의 눈이 열려 작은 골목에서 칼을 빼고 무섭게 서 있는 하나님의 천사를 보게 되고 하나님께서 이 길을 원하지 않으면 안 가겠다고 하였으나 “내가 너에게 하라는 말만 꼭 해야 할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발람은 모압 땅으로 가서 세 번씩이나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원한 발락의 뜻을 거스르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축복의 말씀을 전했고 발락은 화를 내고 쫓아보낸다.
그런데 발람이 너무 미안해서인지 모압 여자들로 이스라엘 군사들을 유혹하여 음란죄를 짓게 하라는 꾀를 가르쳐주고 이스라엘이 죄를 짓고 많은 군사들이 멸망을 당하게 만든다. 발람의 나귀는 칼을 빼든 하나님의 천사를 보았고 주인을 구원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라도 물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둘째는 사울의 아비 기스가 암나귀를 잃어버리자 사울과 사환이 나귀를 찾으려고 사흘이나 헤매고 다니다가 사무엘 선지자가 있는 곳까지 오게 되어 그를 만나 물어보게 되고, 전날 하나님으로부터 사울이 찾아올 것을 들은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았다.
셋째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에 타고 가신 나귀 새끼다. 사람들이 호산나 찬양을 하면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위에 깔고 또 나귀가 걸어가는 길에도 깔아 예수님을 태우고 가는 나귀를 대환영하였다. 예수님은 왜 말이나 낙타, 코끼리, 소처럼 우람하고 멋진 짐승이 아닌 초라한 나귀를 타셨을까? 그것은 겸손하셔서 나귀 새끼를 타고 가신다는 구약(슥 9:9)에 예언된 것이었다.
그러면 나귀란 어떤 특징이 있는 짐승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1. 귀가 크다. 나귀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짐승으로 당나라에서 가지고 왔다고 해서 당나귀라고 불렀는데 귀가 큰 특징이 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은 적게 하라고 하신다. 사람들 모두 말을 많이 하여 실수를 한다. 우리가 말한 대로 주님께서 들으시고 이루어주신다고 하셨으니 말을 극히 조심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 속의 짐승들은 모두 사람들의 비유이다. 양은 예수님의 제자들이고 이리는 세상의 사나운 사람들이고, 개나 돼지나 여우와 독사, 뱀들은 다 악인들을 지칭한다고 말씀하셨다. 개 같은 인간에게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 소용이 없고 돼지는 진주를 주면 물어뜯고 헤롯은 여우라고 하셨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독사, 뱀이라고 하셨으니 오늘날 목사들이나 주의 종은 특별히 자신을 살펴야 한다.
귀가 크다는 것은 많은 말을 듣는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잘 들어야 한다.
2. 고집이 세다.
3. 정욕도 아주 세다고 한다(겔 23:20).
4. 체력도 아주 강하다.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의 이용도 목사님은 “나는 예수님을 등에 태운 한 마리의 나귀다.”라고 하셨다. 나귀란 초라한 놈이 자기를 대접하고 환영하는 줄 알고 교만하면 큰 오산이다. 예수님께서 내리시면 나는 어린이라도 돌을 던지고 조롱하는 초라한 한 마리의 나귀, 무거운 세상 짐을 잔뜩 싣고 가는 보잘것없는 나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라고 하셨다. 블레셋에서 송아지를 갓 해산한 암소 두 마리가 이스라엘 지경으로 하나님의 궤를 싣고 가면서 울면서 새끼에게 가지 않고 곧바로 벧세메스로 가서 싣고 간 수레는 장작이 되고 암소는 제물이 되어 바쳐졌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셔서 모진 고통을 다 당하시고 우리를, 특히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돌아가셨다.
우리도 주님을 싣고 천국을 향해서 가며 충성을 하다가 제물이 될 각오를 하고 살아야 하리라.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나로 인해 죽으신 예수님,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시신을 우리의 등에 짊어지고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기를,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사람인 것을 만민이 알고 주님의 사자가 되기를 소원하자.
마지막 때에 믿는 나라, 미국과 온 세계가 타락하여 전쟁과 음란과 전염병이 창궐하고 불 심판만 남았는데 탄식하며 이마에 인을 맞은 의인이 있으면 주님께서 그 땅을 지켜주신다.
우리 등에 우리의 대속제물인 예수님을 태우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한 마리의 나귀가 되자. 나귀인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타시면, 함께하시면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리라. 그 예수님은 우리의 대속제물로 돌아가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천국의 생명을 주시며 마귀와의 전쟁에서 날마다 승리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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