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연천지역 육군 28사단 의무대에서 복무중인 사병이 한 달 이상 매일 폭행과 욕설, 인격모독과 집단구타에 시달리다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은 초기에 일부 언론을 통해 음식물을 먹은 상태에서 폭행에 의한 기도폐쇄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피해 사병이 살아날 것 같다”는 헌병조사관의 발언 이후 구타 사병들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군의문사로 묻힐 뻔했던 사건의 본질이 드러나게 됐다.
윤 일병의 시신 전반에 남은 검붉은 피멍과 뾰족한 물건에 의한 자상 자국 등을 보면 어떻게 자식을 군대로 보내겠나 싶은 생각에 전율이 일 정도다. 더욱이 이런 참혹한 집단폭행과 인격모독이 장기간, 쉼 없이, 매일 이루어졌다는 점과 함께 군대라는 특성에 의해 사인이 철저히 은폐, 조작될 뻔했다는 점에서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31일 군 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사건 브리핑을 통해 다음과 같이 사건의 위중함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살인죄로 공소장을 변경할 것을 주장했다.
첫째, 의무대라는 공적 공유공간에서 24시간 집단적 괴롭힘과 폭행이 발생했다.
둘째, 폭행이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다.
셋째, 살해의 의도성이 명백하다. 사건 당일, 폭행 후 1차로 윤 일병이 쓰러지자 가해자들은 맥박과 산소포화도 측정을 한 이후 정상으로 나오자 꾀병을 부린다며 재차 폭행했다고 한다. 임 소장은 28사단 검찰관의 상해치사 기소에 대해서는 가해자들의 지속적 집단폭행을 간과하고 사망 당일만을 조명하여 우발적 사망사고로만 판단함으로써 지속적인 집단 폭력의 고의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넷째,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가해주범인 이 병장 등은 윤 일병의 예배 참배 등을 막았고 가족초청운동회에 윤 일병의 가족들이 면회 오는 것도 방해했다고 한다. 사망사건 당일에는 폭행 전 과정을 목격한 입실 병사에게 입을 다물라고 압박했고, 가해자들끼리 윤 일병이 음식을 먹고 TV를 보다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말을 맞췄다. 사건 다음날인 4월 7일 오전 9시에는 윤 일병의 관물대를 뒤져 수첩 2권을 찢어 버리기도 했다.
윤 일병 사건은 외부의 감시와 견제가 부재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군대 폭력의 심각성과 군대내 폭력의 메커니즘, 즉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면서 폭력의 악습이 대물림되고 지속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경악스럽게도 2명의 사상자를 낳은 최전방 일반전초(GOP) 총기 난사 사고와 ‘관심병사’ 2명의 영내 자살사건 등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군대내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5개월이라는 긴 시간 내내 아무런 제지 없이 집단폭행이 방치되어 온 점이다.
의무징병제로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입대한 20대 젊은이들이 자살이든 집단폭행이든 혹은 의문사로 남든 이런 사회적 현상이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일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인명사고를 동반하며 신체적 부상, 정신적 트라우마 등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내놓은 대안이 임기응변식이거나 솜방망이 처벌이었던 것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손보아야 한다.
의무징병제는 정보전과 정예화가 대세인 현대전에서 점차 폐지 추세이며 실제 전시상태가 아닌 상황에서 상시적인 의무징병제도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극소수이다. 또한 의무징병제는 가혹행위, 인권문제 등 군 내부 사고율이 모병제에 비해 월등히 높아 사회적 총비용은 다르지 않다. 징병제든 모병제든 노동력과 시간의 기회비용, 그리고 자격미달이나 복무의지가 없는 병역인력이 군 조직에 피해를 끼칠 수 있는 등 사회적 손실비용을 감안해볼 때 사회가 치르는 비용의 총합이 비슷하다는 것은 이미 세계적 정설이다. 우리나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군 입대 기피현상이 지속되고 있으며 산술적으로 추산된 적은 없지만 재력과 권력을 활용한 병역비리 등이 빚어내는 사회적 갈등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제 보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에 사회가 나서야 하지 않는가. 분단체제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병력 모집과 가용비용이 적고 일정한 병력 규모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로 채택되어 온 의무 징병제에 대한 재검토 및 사회적 합의 도출 등 점차적인 군제도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군대내 가혹행위와 그치지 않는 조직적 은폐행위에 대해서는 의무징병제가 시행중인 국가에 걸맞게 대통령 직속의 기구 설치를 통해 철저한 예방과 사후 대책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