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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흥미로운 정치 문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지난해 10월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를 둘러싼 '사나카츠' 열풍인데요. 지금 일본은 그야말로 '사나카츠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순탄치 않았던 총리 당선
먼저 다카이치가 어떻게 총리가 됐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이번 당선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2025년 9월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잇따른 선거 부진을 이유로 사임을 선언하면서 자민당 총재 선거가 시작됐죠.
다카이치는 고이즈미 신지로를 누르고 자민당 총재로 선출됐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1999년부터 26년간 자민당과 손잡아온 공명당이 연정을 탈퇴한 겁니다.
공명당은 정치자금 문제 해결을 강하게 요구했는데, 다카이치가 오히려 후원금 논란이 있던 하기우다 고이치 의원을 간사장 대행으로 임명하는 등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게 결정타가 됐습니다. 공명당과 불편한 관계였던 아소 다로를 부총재로 앉힌 것도 악재였죠.
야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를 총리 후보로 추대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는데요. 한때 다카이치의 총리 취임이 불투명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카이치는 정치력을 발휘합니다. 중의원 35석을 가진 일본유신회를 새로운 파트너로 선택한 겁니다. 유신회는 우익 성향이 강한 정당인데, 다카이치가 유신회의 핵심 정책인 '도쿄 중심이 아닌 지방 부수도 지정'에 깊은 공감을 표하면서 협상이 급물살을 탔죠.
결국 10월 21일, 다카이치는 중의원에서 과반을 4석 넘는 237표를 얻어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하게 됩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정치력이 돋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나카츠 열풍, 무엇이든 따라한다
그런데 일본에서 지금 더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사나카츠 전성시대'의 시작이죠. 다카이치 총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거든요.
총리가 첫 출근길에 들고 간 가방, 일본 황실이 애용하는 브랜드 하마노 피혁공예의 '그레이스 딜라이트 토트'는 '사나에 백'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즉시 완판됐습니다. SNS에는 "세련되지만 과하지 않은 스타일", "메이드 인 재팬 브랜드의 품질이 느껴진다"는 반응이 폭발했죠.
'사나카츠'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습니다. '다카이치 따라하기'라는 뜻인데요. 한국의 '최애' 문화와 비슷합니다. 다카이치가 사용하는 가방, 옷, 구두는 물론이고 심지어 기자회견에서 사용한 미쓰비시연필의 '제트스트림' 펜까지 '사나카츠 볼펜'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량이 급증했습니다.
다카이치가 착용한 시계가 스위스 명품 브랜드 브레게의 '클래식' 컬렉션으로 알려지자 "화려하지 않지만 품격이 있다"는 평가가 이어졌고, 다카이치의 고향 나라시의 한 호텔은 아예 '사나카츠 런치'를 출시했습니다. 총리가 좋아하는 명란젓, 고로케, 돼지고기 만두 등이 포함된 메뉴인데, 가격은 3,700엔. '사(3)나(7)에'의 발음을 따서 책정했다고 하네요.
정치인이 아이돌처럼 소비되는 새로운 팬덤 문화, 바로 사나카츠 전성시대입니다.
쇼와 시대, 그 황금기의 기억
그런데 이 현상이 단순한 인기인 따라하기일까요? 여기엔 더 깊은 배경이 있습니다. 바로 '쇼와 노스탤지어'입니다.
다카이치 총리의 2026년 신년사를 들어보시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과 희망을 지금의 레이와 시대에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
올해가 1926년 쇼와 원년 이후 100년째 되는 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다카이치는 특히 1960~70년대 쇼와 시대를 희망의 모델로 제시했습니다. 경제성장률이 10%를 넘는 게 당연하던 시절,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며 국토 개조에 나섰던 그 시절 말이죠.
쇼와 시대의 살아있는 상징
다카이치 총리는 1961년생입니다. 세 살 때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경험했고, 신칸센이 개통되고 6년 만에 국민소득이 2배가 되는 걸 지켜봤죠. 1968년, 일본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대국에 오르는 순간의 주인공 세대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엔 초고속 오토바이로 등교했다고 합니다. 학칙 위반이었죠. 중학교 동급생의 증언에 따르면 "공부는 잘했지만 범생이는 아니었고, 아슬아슬하게 교칙에 안 걸릴 만큼 꾸미고 다니는 세련된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이건 단순한 불량이 아니라 급속한 경제성장과 미국 문화가 밀려들던 '풍요의 시대'를 상징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중형 오토바이, 자동차 경주, 헤비메탈 음악... 이 모든 게 '풍요+미국 문화'의 상징으로 쇼와 세대에게 확산됐고, 다카이치는 그 흐름을 정면으로 받아들인 세대의 대표주자였던 겁니다.
실제로 다카이치는 젊은 시절 드럼과 피아노를 연주했고, 헤비메탈과 일본 록 음악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데몬 각하, B'z, X JAPAN의 팬이라고 알려져 있죠. 바로 이런 점이 다카이치를 총리 직후 '쇼와 대변인'으로 각인시킨 가장 큰 이유입니다.
관서 전통 문화의 결정체
다카이치의 매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녀는 나라 출신으로 관서 지방 정치인이죠. 일본에서 관서 지방은 특별합니다. 도쿄가 현대 일본의 중심이라면, 교토, 오사카, 고베를 아우르는 관서는 전통과 품격의 원형으로 여겨지거든요.
일본 문화계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교토의 옷, 오사카의 음식, 고베의 신발" - 관서 지방 3대 명물이죠. 최고급 풍류를 의미하는 '이끼 문화'의 핵심입니다.
다카이치의 패션은 이 관서 이끼 문화를 하나로 압축한 종합 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롤모델로 삼은 마거릿 대처의 이미지에서 시작해, 총리 취임 후 주로 착용하는 푸른색 계열 정장까지 모든 것이 쇼와 시대의 우아함을 불러일으킵니다.
일본 언론들은 다카이치의 색채 선택에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요미우리신문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도 푸른색 옷을 즐겨 입었다"며 "'일본의 대처'를 표방하는 것"이라고 분석했죠. 산케이신문은 "청결감과 품격을 강조한 레이와 시대의 리더상을 의식한 스타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국회 답변 중에도 관서 사투리를 살짝 섞어 쓴다고 합니다. 관서 지방 여성 사투리는 '현대 도쿄말'을 압도하는 천황의 언어이자 이끼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언론의 왜곡을 넘어서
재미있는 건, 총리 취임 전까지 다카이치는 블랙리스트 정치인 1순위였다는 사실입니다. 언론은 그녀를 우익 광신도로 묘사했고, 사진기자들은 의도적으로 괴상하고 천박해 보이는 순간을 포착해 보도했죠.
지난해 10월, 우연히 녹음된 지지통신 기자의 대화가 공개됐습니다. "내가 지지율을 떨어뜨려 주겠다... 지지율이 떨어질 만한 사진만 내보내겠다"
총리 취임 전후 다카이치의 외모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사진 조작과 편견이 사라지면서 다카이치 본래의 '착한 미소'가 드러난 것뿐이죠.
정치 지지로 이어지는 사나카츠
전문가들은 사나카츠 현상을 정치 팬덤의 변화로 해석합니다. 아이치슈토쿠대 쿠보 나미코 심리학과 교수는 "정치인도 아이돌처럼 '응원하고 싶다'는 구조가 비슷하다"며 "정치 사상에 동조하기보다는 멋있는 여성에 대한 동경에 가깝다"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사나카츠가 실제 정치 지지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10월 다카이치 총리의 18~39세 지지율은 약 80%로, 전임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15%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최근 일본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총리 내각의 지지율은 70% 안팎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출범 이후 3개월 연속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죠. NHK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 66%로 고이즈미,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에 이어 높았고, JNN 조사에서는 무려 82%를 기록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가방이나 펜을 사는 분들이 많다고 해서 압박감을 느낀다"면서도 "사나카츠가 젊은 세대가 정치에 흥미를 갖는 계기가 된다면 매우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과의 관계
한편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 역사 문제에서 강경 발언을 해온 인물입니다. 일제 침략 전쟁을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를 비판했고,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을 부정해왔죠. 야스쿠니 신사도 여러 차례 참배했습니다.
하지만 총리 취임 후에는 다소 온건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취임 직후 "한국 김을 좋아하고, 한국 화장품을 쓰며, 한국 드라마도 본다"면서 한국에 대한 우호적 태도를 드러냈죠.
지난해 10월 이재명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는 "나라현의 '나라'라는 단어가 한국어로 '나라(국가)'를 의미한다는 것을 나라현 주민들이 잘 알고 있다"고 발언해 일본 현지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주 정상회담에서 다카이치 총리에게 한국산 화장품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독도 영유권 주장 등 강경한 입장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어, 실용적 외교와 보수 원칙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사나카츠 전성시대, 그 의미는?
그렇다면 사나카츠 전성시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단순한 인기인 따라하기가 아닙니다. 이건 최고급 일본 전통문화에 대한 국민적 반응이자 호기심의 표현입니다.
더 나아가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고 믿었던 쇼와 시대에 대한 집단적 향수이기도 하죠. 한국으로 치면 나훈아, 남진의 노래를 들으며 만원 버스에 치이고 공장 굴뚝 매연을 마시면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내일을 꿈꾸던 그 시절의 희망을 떠올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수십 년간 언론의 왜곡과 위선 속에서도 다카이치가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집단 기억과 향수, 그리고 희망을 구현하는 상징이 됐기 때문일 겁니다.
다카이치는 "저 자신도 '워라밸'이라는 말을 버릴 겁니다.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해 갈 겁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발언에서도 쇼와 시대 '열심히 일하면 내일은 더 나아진다'는 믿음이 묻어나오죠.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유신회와의 연정으로 우익 성향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점, 중국과의 갈등 격화, 아베노믹스 계승으로 인한 경제적 부작용 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일본에서 다카이치는 단순한 정치 지도자를 넘어,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하고 다시 희망을 꿈꾸고 싶어하는 일본 국민들의 염원을 담은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나카츠 전성시대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첫댓글 1961년 생이면 나이도 적지 않은데 일본 젊은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 고무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