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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와 관련된 글들을 공유하거나 핵심 내용에 대해 강의하는 사역들을 진행하다보면 그것을 접하는 분들에 있어 내심 많이 안타까운 부분들이 있곤 합니다..
특히 삼위일체와 관련된 사실과 실제들, 이치와 원리들이 적극적으로 적용된 글은 결코 길이나 속도적인 측면이 주 문제이거나 관건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아예 생각이나 짐작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 제일 어렵게 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안목과 관점은 2000년 교회사 전체를 통틀어 거의 다루지 못해 왔던 것임은 물론 아직도 크고 작은 교회들에서 대다수 여전히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영역인 삼위일체에 대해 자만, 또는 무지일 정도로 쉽게 본 것입니다..
사실 삼위일체를 대하는 자세가 안 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상태에서는 삼위일체 관련 글들이나 강의들을 아무리 관심을 가지고 접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실상 그러한 이들은 삼위일체에 대해 아예 제쳐둘 가능성이 큽니다..
그에 있어 그나마 점잖고 보편적인 예를 들면 글들에 있어 문단을 짧게 해 달라고, 또는 강의 속도를 느리게 해 달라고 요청하거나 뒤에서 불평하는 경우들입니다..
물론 전혀 관련이 없거나 고려 대상이 아닌 의견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측면들은 생각보다는 주 관련인 것일 수가 없고, 결과적으로도 영향이 결코 클 수가 없는 사안인 것으로 삼위일체라는 주제의 어려움과 복합성, 난해함과 입체성, 희소함과 접근성 등을 고려할 때 한 1프로 정도의 관련이나 영향 정도라도 될 수 있을까 싶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일반 글들이나 신앙적 내용들과 같이 삼위일체 관련 글들은 문단을 가장 잘게 쪼갠다고 해도 그 자체로 결코 이해가 쉬울 수 있는 것이 아닌 사안과 주제인 반면 오히려 그로 인해 앞뒤 문장의 연결이 혼란스럽게 되거나 잘못 끼어 맞추게 되거나 오해나 착오에 빠질 위험이 더욱 커지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같은 이유와 이치로 속도도 다섯 배, 열 배를 더 느리게 한다고 해서 생각대로 쉬울 수가 없다고 볼 수 있고,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속도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전하는 자나 듣는 자에 있어 오히려 성령님의 인도와 역동성을 방해하면서 계속해서 인간적인 면으로 제한시키려는 시도들에 빠지게 만드는 나쁜 지지대나 함정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진정 삼위일체 관련 글들은, 특히 말씀과 함께 풀어내는 삼위일체를 주로 다룬 글들은 가장 겸비하고 낮아진 마음, 감사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중요하고 또 중요하며, 특별히 하나하나, 순간순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지혜를 구하는 몸부림이 마치 전부와 같은 영향력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글들이나 강의들마다 주로 삼위일체와 관련되어서 같은 이치와 원리들이 언제나 주축이 되어 강조되고 또 강조되며,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것이기에 같은 내용의 글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 보거나 또는 다른 본문의 말씀들이 적용된 글들을 30개, 50개, 100개 정도라도 계속해서 이해가 덜 되더라도 읽어 나가는 것이 그나마 제일로 보입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저부터 아직은 초기 단계라 할 수 있기에 삼위일체 관련 사역의 진도에 있어 100인의 대상들이 있다면 단 몇 사람 정도에서부터 기대를 가지고 있고, 결코 급하지 않게 진행하되 어떤 면에서는 길게는 50년, 100년까지 내다보면서 진행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끝으로 조금이라도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접근과 접촉점에 대한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언급하면 어쨌든 그간 삼위일체에 대해 5가지의 공통적인 이치와 원리에 대해 특강 등에서 제시한 이는 오늘날의 교계 뿐 아니라 교회사 전체에 있어서 없었고, 게다가 그것으로 성경 본문 중심의 글을 2500개 이상 적어서 공유한 개인이나 기관이나 교회는 더더욱 없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부디 삼위일체 관련 글들 및 설교들이 당장에는 필요 없어 보이거나 현실에 와 닿지 않아 보인다고 하더라도, 또는 많이 어렵거나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우리의 신앙 세계에서의 모든 사안과 전 영역, 전체 분야에 있어서, 심지어는 오늘 나의 모든 사역들, 순간순간들에 있어서도 생각 이상으로 절대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다고 확신하기에 부디 인고하는 마음으로, 훈련하는 마음으로 꼭 접해 보실 것을 권합니다
삼위일체 센터 대표이사&대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행복카페교회
담임목사 양범주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의 '21세기 두란노 서원 1부, 2부 통합/20260904>
*1부/마태복음 4장 QT/20260902/21세기두란노서원/'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4:1~2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아래의 본문 말씀은 구주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있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성령님께서 결코 별개이실 수 없는 것임을 잘 알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그러한 성령님께서 어느 정도로까지 직결되시어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게 합니다..
우선 넓게 보면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모든 중심과 근본과 실체이심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삼위일체라는 존재와 개념 자체부터가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일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인 것이고,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며 완전히 하나되어 한 뜻을 이루는 의미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주권과 통치, 섭리와 인도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시고, 구주 예수님께서는 모든 대속과 대신, 길과 통로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시며, 성령님께서는 모든 실제와 나타남들, 누림과 경험들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십니다..
그렇기에 아래 본문 말씀 등에서도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구주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시작과 준비와 진행에 있어서도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성령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시면서 구주 예수님께서 광야를 감당하실 수 있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실 수 있으며, 금식하시면서 간구하실 수 있는 실질적인 하늘의 힘과 실제와 누림이 되신 것이고..
그에 있어 당연히 모든 주권과 통치, 섭리와 인도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분리나 변개이실 수 없는 것으로 바로 그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준비하신 일인 것이고,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손 안에서, 그의 시간에만 가능할 수 있는 것이며, 애초에 그와 같은 하나님 아버지로 인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상 조금만 따지고 보고 통찰해 봐도 그러한 이치와 실제는 구주 예수님의 모든 공생애 사역의 현장에서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 전체에 있어서도 동일하고 마찬가지인 것으로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심부터도 진정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 전부터의 계획과 약속과 준비와 진행 가운데 그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에 실제로 가능했던 것이고, 직접적, 실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모든 실제와 나타남들, 누림과 경험들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구주 예수님께서 처녀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오시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2장 28절에서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귀신을 쫓아내시는 공생애 사역의 현장에서의 일종의 구원의 사건에 있어서도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직접적, 실질적인 측면에서는 성령님으로 인한 역사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시고, 오병이어의 역사를 일으키시며, 광풍을 잠잠케 하시고, 중풍병을 고치시며,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리심 등과 같은 말 그대로 구원자 예수님으로 인한 여러 모양의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도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에 직접적, 실질적인 측면에서는 성령님으로 인한 역사들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복음의 말씀을 전하시고, 온갖 사탄의 세력들을 물리치시며, 바리새인들 등과 같은 대적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땀이 핏빛이 되기까지 기도하시며, 십자가에서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흘리심과 함께 죽음 이상의 고통을 견디시고, 로마서 8장 11절에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그 예수님께서 죽으신 지 사흘 째 부활케 되심에 있어서도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직접적, 실질적인 측면에서는 성령님으로 인한 역사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치와 원리와 실제는 오늘 이 시간 우리들에 있어서도 조금도 다를 수 없는 것으로 우리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모든 중심과 근본과 실체이시고..
당연히 오늘날에 있어서도, 우리들의 모든 상황과 순간들에 있어서도, 참으로 기도의 응답 한 번에 있어서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주권과 통치, 십리와 인도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신 분인 것이고, 구주 예수님께서는 모든 대속과 대신, 길과 통로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신 분인 것이며, 성령님께서는 모든 실제와 나타남들, 누림과 경험들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신 분인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 광야와 같은 시간들을 감당할 수 있는 방법에 있어서도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모든 주권과 통치, 섭리와 인도의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순간순간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는 것이 최선인 것이자 원론적인 면에서 볼 때는 유일인 것입니다..
게다가 마귀들의 시험과 유혹들에 있어서도, 제대로 된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으로 기도함에 있어서도, 특히 금식과 철야와 새벽 기도와 작정 등 특별한 마음과 모양들의 기도에 있어서야 말로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죄악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움에 있어서도, 범한 죄악들에서 최대한 빨리 돌이킴에 있어서도,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말씀의 신앙, 곧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말씀을 정말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함에 있어서도, 더 나아가 온전히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모든 주권과 통치, 섭리와 인도의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 곧 모든 대속과 대신, 길과 통로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순간순간 붙잡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나의 크고 작은 문제와 질고들에 대한 기도에 있어서도, 소중한 이들의 문제와 질고들에 대한 중보적 기도에 있어서도,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에서의 수시로 생기는 고민과 어려움과 위기들에 있어서도, 사실상 모든 종류의 염려들, 두려움들, 미움들, 원망들, 낙심들, 정욕들, 중독들, 세속들, 우상들, 불신앙들, 자기 소견들, 대적과 원수들로 인한 어려움들, 그 어떤 모양의 기도와 그로 인한 응답 한 번에 있어서도, 따지고 보면 영과 진리의 예배를 더욱 온전히 가능하게 함에 있어서도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바로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로 인해 응답을 생생하게 맛보고 강렬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는 이신칭의의 구원에서와 같은 거듭남, 곧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가 아닌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백성으로의 거듭남 및 세상 끝 날의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도 같은 이치와 실제인 것인데..
사실은 그 전에 그렇게 기도할 수 있는 힘, 말씀대로의 믿음으로 제대로,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열납하시고 응답하시며 예비하시는 기도를 할 수 있는 믿음이 되는 것부터 인간적인 힘이나 세상적인 능력으로는 불가능인 것으로 순간순간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그 이름을 의지하는 가운데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야 조금이라도 더 온전히 가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백성들은 날마다 순간마다 크고 작은 모든 일들, 사안들, 순간들에 있어 하늘의 힘과 은혜가 없이는 안 되는 것이고, 바로 그러한 하늘의 힘과 은혜는 하나님의 세계에서 오직 성령님으로 인해 직접적, 실질적으로 가능할 수 있는 것이며, 현실적으로 볼 때 그러한 성령님이 아니시고서는 결코 조금인들 실제와 누림들이 불가인 것인데..
바로 그러한 성령님께서는 단 하나, 단 한 번, 단 한 순간에 있어서도 결코 단독이신 것은 아닌 것으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반드시 모든 주권과 통치, 섭리의 인도의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모든 대속과 대신, 길과 통로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붙잡고 그 이름으로 기도함과 함께 가능할 수 있는 것이며, 생각 이상으로 직결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세계, 구원의 세계, 복음의 세계, 믿음의 세계에 있어서 구약과 신약 시대, 2000년 교회사, 오늘날 우리들, 우리 후세들,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권과 통치, 섭리와 인도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시고, 모든 대속과 대신, 길과 통로는 오직 구주 예수님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시며, 모든 실제와 나타남들, 누림과 경험들은 오직 성령님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시라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마태복음4:1~2)
♡가급적 삼위일체 센터에서 한 번이라도 삼위일체에 대해 컨설팅(joyij7@hanmail.net/성함,직분,교회,교단,연락처,희망일시 기재)을 받으시며, 삼위일체 센터 홈페이지에서 더 많은 삼위일체 관련 글들이 추가로 계속 이어지니 아래 링크 눌러 확인해 주시고 관심 가져 주시며 기도해 주세요☆삼위일체 관련 글들은 여러 특성과 원리 상 기도하면서 반복해서 읽거나 들으실 필요가 있고 그때 더욱 도움이 될 수 있으며, 게다가 삼위일체 센터에서 삼위일체 관련 다른 글들을 다양하게 접하시면 더더욱 빠른 이해나 통찰, 습득, 적용 등이 가능할 수 있게 되는데 하실 수 있으면 대략 2500개의 글들 중에서 어떤 글이든 10개~100개 정도라도 권합니다
http://xn--cg4b6i31mznap9s38g.com/bbs/board.php?bo_table=0201&wr_id=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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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페북두란노서원66' 중 스가랴 파트/20260902/21세기두란노서원/'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우리 인생들은 악한 세력들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 많은 어려움과 시련과 한계들을 경험하곤 합니다..
진정 믿음의 백성들이라도, 게다가 앞에 서 있는 목회자들이나 항존 직분자들일지라도 늘 은혜가 충만하거나 승리하는 신앙이기는 힘든 것이고, 오히려 남모를 인간적인 고충들이나 세상적인 버거움들을 상대적으로 많이 경험하곤 하는 현실인 것입니다..
실상 아래 본문에서처럼 바벨론 땅의 포로에서 돌아와 직면케 된 여러 모양의 어렵고 무거운 여건과 현실들 속에서, 게다가 집요한 방해와 대적들로 인해 마치 세상적으로는 완전히 막히고 닫혀 버린 듯한 상황과 실정들 가운데에서 다른 그 무엇보다 우선으로 파괴된 성전을 다시 짓는 일은 결코 쉬울 수 없고, 현실적으로는 반대로 더더욱 부담일 수밖에 없는 과업일 것입니다..
사실은 따지고 보면 모든 하나님의 일들이 크고 작은 십자가일 수가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살아 있는 믿음의 경주들마다 좁은 길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실상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오늘날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자리와 모든 영역들에 있어서도 진정 거룩한 몸부림들일수록 더욱 더 그러하다고 할 수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하나하나, 순간순간마다 각 시대들에 따라 결코 다르지 않은 것이고, 조금만 따지고 봐도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한 대체로 모두 다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들에서도, 아니 그 어떠한 일들에 있어서도, 참으로 그 어떤 하나님의 백성들이라 하더라도, 특별히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에 있어서는 더욱 더, 게다가 여러 모양의 하나님의 일들, 실상 믿음으로 하는 모든 일들에 있어서야 말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진정 하늘의 힘과 은혜가 함께 하면 되는 것이고,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어떠한 문제와 현실들 속에서도 얼마든지 이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래 본문에서의 말씀대로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어떻게든 부족함이 없게 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차고 넘치게 될 수 있는 것이며, 게다가 뜻밖의 예비와 역전들도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사실 생각지도 못한 일들, 상상도 못한 일들도 실제와 경험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성령님의 역사와 실체에 있어서는 꼭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나 오늘날 이 시대 우리들에 있어서 뿐 아니라 구약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이고, 비록 구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있어서도 다양한 예표와 모형들, 약속과 상징들 등을 통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던 구약의 때와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에 있어서 차이들이 없을 수 없는 것이듯이 성령님의 역사들에 있어서도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과 시간과 인도 등에 따라 모양과 강도와 방식 등에 있어서는 적지 않은 차이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이지만 성령님의 존재와 역할과 역사에 있어서, 또한 그로 인한 힘과 갈망과 누림에 있어서는 불가나 부재나 다름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치와 실상들을 통찰해 볼 때 하나님 아버지로 인해 준비된 의로운 연단과 예비하심들, 특별한 계획과 더욱 큰 영광을 위한 의도와 섭리들이 아닌 한 참 많은 경우들에 있어 우리의 삶의 자리들, 사역의 현장들에 있어서의 정말 힘들고 문제인 상황들은 따지고 보면 원론적, 근본적으로는 어떤 현실들이나 어려움들 그 자체라기보다는 실상 깨어 있지 못한 불신앙,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 아닌 신앙, 무엇보다 직접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 성령님의 힘을 망각하고 잃어 버렸을 뿐 아니라 그러한 성령님께서 기뻐하시고 충만하게 일하시기에 합당하지 못한 나 자신이 가장 우선적인 원인이요, 원초적인 이유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그러한 성령님의 존재와 실제들, 그로 인한 역사와 누림들에 대해 많은 성도들이 아주 쉽게 잊어버리거나 이상할 정도로 소흘히 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은 실정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이러한 현실은 사실상 신앙 세계에 있어서 가장 큰 미련이요 애석함이며, 삶의 자리와 모든 실상들에 있어서의 가장 큰 실수이자 계산도 다 못할 손해가 아닐 수 없는 것으로 무엇보다 그러한 성령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에 있어 제 삼 위격으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우리의 믿음에 있어서, 또한 삶의 자리와 실제들에 있어서 가장 직접적이고 실질적이며 현실적이고 경험적이며 신령하고 절대적인 하늘의 힘과 누림들이 되게 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그로 인한 권능과 역사들의 크기와 정도, 모양과 분량은 원론적으로 그러한 성령님 자체가 하나님이신 분이고 하나님 만큼이신 분인 것이기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약속과 섭리들, 또한 시간과 계획과 통치들 안에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만큼인 것이자 모든 시공을 뛰어 넘는 만큼인 것이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고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 만큼인 것일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실제가 되고 경험이 되게 하며, 게다가 우리들이 상상도 못하는 일들까지도 뒤바꾸며 초월하는 만큼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성령님을 모르고 망각하며 의지하지 못하고 도움을 입지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심히 불쌍한 자들인 것일 뿐 아니라 질그릇 같은 나약함과 세상적 한계들에 함몰되어 있을 가능성이 큰 자들인 것이며, 그렇기에 그 어떤 사명들도 제대로 감당하거나 승리하는 신앙이 되기 힘든 자들인 것이고, 실상은 아예 살아 있는 믿음으로 사는 것 자체가 어려운 자들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참으로 그러한 성령님께서는 오늘 본문 스가랴 선지자의 시대, 곧 바벨론 땅에서 포로되었다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때에도 함께 하시면서 하늘의 신령하고 강렬하며 상상도 다 못하면서도 실제적인 힘과 역사과 누림들이 되게 하시고, 불타버린 성전도, 또한 그 후에는 무너져 내린 성벽도 정말 재건케 될 수 있도록 하신 생생하고 강력하며 절대적인 힘과 실제가 되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아예 이 스가랴서가 기록될 수 있었던 직접적, 경험적인 힘 자체부터가 현실적, 실질적으로는 성령님으로 인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사실상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자체가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그 어떠한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에 있어서도 잠시라도 나눠지시거나 떨어지실 수 없는 분인 것이기에 성령님께서도 그 가운데에서 당연히 언제나 함께 이시고 단 한 순간이라도 별개이실 수 없는 분인 것으로, 다시 말해 신약 시대나 오늘날의 우리들, 이 시대 뿐 아니라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구약의 모든 시대에 있어서도 단 한 순간이라도 분리되시거나 별개이시거나 부재하실 수 없는 존재이신 것이고, 심지어는 창세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온갖 창조가 실제가 되고 현실이 되게 하신 모든 일들에 있어서야 말로 성령님께서 직접적, 실질적인 역할을 하셨고, 창세 전에도 당연히 함께 하신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무엇보다 구주 예수님의 공생애 시기 모든 구원의 일들과 하나님 나라 사역의 현장들에서야 말로 함께 하시면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예수님 구원의 일들이 모두에게 보여 지고 나타나며 누리고 경험되어 질 수 있게 하신 직접적, 실제적 힘이시자 역할이 되신 분인 것이고..
뿐만 아니라 2000년 교회사에서의 모든 역사와 결실들에 있어서도, 또한 오늘날 이 시간 우리들에 있어서도, 사실상 우리들의 기도 응답 한 번에 있어서까지도 근본적으로는 동일하게 함께 하시면서 온갖 하늘의 힘과 은혜와 역사들 등에 있어 직접적으로 역사하시고 실제로 경험이 될 수 있게 하시는 분인 것이며, 심지어는 세상 끝 날에도 말씀대로 신령한 몸으로 실제로 부활케 되고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을 생생히 누릴 수 있게 하시는 직접적인, 경험적인 힘이시자 역할이신 분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다시 한 번 강조하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 사건 이후에야 비로소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과 약속대로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님께서 불길 같이 임하시고 생생히 내주하시며 상상도 못할 하늘의 권능을 가장 뜨겁고 강렬하게 나타내신 것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이 성령님께서는 신약의 시대를 위시해 오늘에 이르기까지와..
또한 그 전에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에게서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표와 모형과 약속과 상징들 등으로 계시하시고 안내하심으로 인해 오실 메시야를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었던 구약의 시대에 있어서 와는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그 역사하심들에 있어서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들, 특히 성령님의 누림과 충만과 방식들 등에 있어 얼마든지 차이들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성령님의 존재와 임재와 역사들이 어떤 모양과 방식과 실제와 경험들로든 우리 인생들 가운데, 인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우리들이 생각하는 그 이전부터, 실상은 창세 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고, 실제로 구약과 신약 시대에 있어서도 당연히 순간순간 역사하신 것임은 물론 오늘날의 우리 믿음의 백성들에 있어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상상 이상의 하늘의 힘과 권능들이자 실제와 누림들, 생생함과 강렬함들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사라질 수 있는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와 함께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그러한 성령님 자체가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시기에 그러한 성령님의 온전하신 역사와 충만하심들에 있어서의 모든 우선은 구약 시대에서든 신약 시대에서든 결코 다를 수 없는 것으로 진정 모든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던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지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며 하나님의 것이 되고,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곧 본질적으로 말씀의 백성으로 거듭난 자들이어야 함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인 것이며, 그러한 부분과 전제가 모든 시작과 근본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에서의 실제적인 누림과 경험과 성취의 온전함과 생생함과 강렬함들에 있어서의 모든 기준과 관건도 죄와 세속과 소견들 등의 불신앙의 사람들,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 아닌 신앙들이 아닌 말씀의 사람들, 곧 말씀으로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믿음의 사람들인 것임이 아닐 수 없다는 실제인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과 은혜와 능력의 이치, 원리와 마찬가지로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모든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을 일차적, 직접적으로 얻어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며 읽고 들으며 실천하고 증거하는 것이 중요하고 다른 그 무엇보다 우선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실상 그로 인해 굳이 표현하자면 이차적, 연계적으로는 갈수록 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해 짐과 함께 더욱 강인하고 견고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들, 곧 깊은 경건과 영성과 거룩의 백성들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와 함께 근원적으로는 말씀 그 자체이시자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이 삶의 자리와 온 지경에 더욱 더 강렬하고 풍성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오늘 바로 우리들도, 나부터도, 더 나아가 우리 모든 교회들, 게다가 교계 전체에 있어서도 인간적인 힘과 세상의 능이 아닌 하나님의 영으로 인한 하늘의 힘을 얻는 방법, 더 나아가 충만하고 불길과 같이 더욱 더 생생하고 강렬하게 누리는데 있어서의 방법도 결코 다르거나 멀리 있지 않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에 따라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일차적, 직접적, 우선적으로 덧입어 더 죄악들과 싸우며 더욱 말씀을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의 말씀의 몸부림과 결단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야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원론적, 실질적, 현상적으로는 생명 다하듯 하는 말씀의 열정과 뜨거움들이 클수록 그러한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모든 역사들에 있어서 더욱 좋고 풍성하며 충만하고 강렬하게 누리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사실상 오늘날 우리 모든 하나님의 백성과 가정들, 교회들과 교계, 이 땅과 세대에 있어서의 성령님의 충만하신 역사와 부흥의 불길들에 있어서도 다른 그 무엇보다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과 결단들, 말씀 앞에서의 각성과 자복들이야 말로 그 무엇보다, 진정 생각 이상, 상상 이상으로 아주 직결되고 절실하며 긴급하고 절대적인 사안이자 과제가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인 것이고..
실상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들에 있어서 다름 아닌 바로 그러한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야 말로 날마다 순간마다의 기도 제목과 갈망과 몸부림들 그 자체가 되어야 함이 아닐 수 없다는 실제인 것입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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