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 마태오 9,9-13
“나를 따라라.”
<죄 중에 있을 때의 느낌>
후배 수사님들의 여름 세미나 겸 회의 차 바닷가에 위치한 캠프장에 다녀왔습니다. 어디 가나 염불은 뒷전이고 잿밥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지요. 저 역시 틈틈이 ‘손맛’ 좀 보러 갯바위로 나갔었는데, 오랜만에 풍성한 수확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낚싯대 끝이 휘청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강력한 어신이 왔었는데, 겨우 끌어올려보니 족히 2kg는 나갈 정도의 시커먼 돌 우럭 한 마리가 걸려있었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솥뚜껑만한 ‘눈먼’ 광어까지 4마리나 협조를 해줘서 정말 신바람이 났습니다.
열심히 낚시를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넓은 바다로 힘차게 릴낚시를 던지는 그 활기찬 얼굴로, 그 설레는 마음으로, 그런 큰 기대를 안고 주님께로, 성체 앞으로 나아가야 할 텐데, 하는 생각 말입니다.
이번에도 돌아오면서 어김없이 이런 반성이 되더군요. 흥미진진한 빅 매치 축구시합이라면 꼭두새벽에라도 일어나면서, ‘손맛’ 좀 보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주님과의 만남, 그분 현존 체험을 위해서는 얼마나 투자하는가, 하는 반성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짜릿한 손맛, 갯바위 위에서 맛본 그 쫀득쫀득한 우럭 회 맛이 아직도 생생하니 참으로 큰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죄인 중의 죄인이었던 세리 마태오를 부르십니다.
심각한 죄 중에 있을 때, 아무리 기를 써도 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때, 그래서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의 느낌은 어떠합니까?
맑고 따뜻한 온탕 속에 온 몸을 담그고 있는 포근한 느낌이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투명하고 시원한 냉탕 속에 들어가 있는 서늘한 느낌도 아니겠지요. 아마도 시궁창 냄새가 나는 미지근한 구정물 속에 쳐 박혀 있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맞이하는 하루 역시 팍팍할 것입니다. 피곤할 것입니다. 짜증날 것입니다. 아무리 날씨가 청명해도 하늘은 회색빛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발걸음도 무겁겠지요. 매일이 기쁨과 보람으로 다가오기보다는 그저 부담스럽기만 할 것입니다. 매사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심각한 영혼의 질병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리 마태오가 그랬습니다. 그가 택한 직업상 어쩔 수 없이 그의 일거수일투족 전체, 그의 삶 자체가 죄였습니다. 그는 눈만 뜨면 하느님께, 동족들에게, 가족들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밥 먹듯이 습관처럼 죄를 지으며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루 빨리 이런 죄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간절한 열망이 있었지만 마음뿐이었습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생각으로는 수백 번도 더 죄의 수렁에서 빠져나와야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생각과는 달리 몸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런 마태오에게 한 줄기 강렬한 구원의 빛이 다가옵니다. 생명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바로 예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나를 따라라.”
오늘도 세관 앞에 하릴없이 앉아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던 마태오,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되나, 돌파구는 없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마태오에게 예수님의 음성이 전달됩니다.
“나를 따라라.”
다행히 자신의 영적 상황을 제대로 진단하고 있었던 마태오였습니다. 죄로 인해 비참해진 오늘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마태오였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마태오였습니다.
그런 연유로 인해 마태오는 주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필설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비관적이었지만, 주님의 따뜻한 음성에 힘을 얻습니다. 마침내 그 오랜 죄의 사슬을 끊고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부족하고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오늘 다시금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보시다시피 너무도 연약하니 주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멀고도 험한 우리 각자의 성소여정, 다시금 힘차게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주시길 청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