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 ‧ 출가 ‧ 수행 ‧ 각성이 찰나 찰나에 우리는 있어야 합니다.
송담 큰스님
당시 인도에는 온갖 고행외도들이 수행을 한답시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행을 헐라면 고행을 해야 한다. 고행도 가지가지 이 육체를 달달볶아 견딜 수 없는 무서운 고통을 이겨내야만 깨달음에 이른다’고 허는 그런 생각들이 모다 널리 퍼져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부처님께서도 그러헌 고행을 육 년간이나 허셨지만, 워낙 참 지혜가 있으신 분이라 ‘이러한 고행만이 깨달음에 이르는 거룩한 길이 아니라’고 허는 것을 스스로 깨달으시고 결국은 고행을 버리고서 유미죽을 받아 잡숫고 정신, 육, 건강한 정신과 건전한...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으로써 참 정진’을 허셔가지고 납월 팔일에 결국은, 삼십오 세(35세) 되는 납월 팔일에 새벽에 명성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허셔서 견성성불허셨다. 이렇게 경전에 전해내려 옵니다.
부처님 출세허셔서 성도허셔가지고 열반하신 뒤로 오늘날 까지 삼철년 . 많은 불제자들이 그래도 출가수행을 헐라며는 고행이 자연히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먹는 거, 입는 거, 거처허는 것이 세속에 호의호식 헌 것과는 달라서, 걸식을 하고, 그래서 먹는 것도 제한이 되고 입는 것도 제한이 되고 주처도 제한이 되아서 그 모두가 다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서 허는 일이라 이것을 다 감내허고 살지,
오욕락을 버리고서 독신생활을 하면서 먹을 거 입을 거 모든 것이 마음대로 허들 못하니까 자연히 그것이 구속된 생활이고 고행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고행을 위한 고행은 허지 말아라. 그렇다고 해서 호의호식하고 지나친 사치도 훌륭한 수행인의 생활이 아니다”고 허는 것을 말씀을 허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왕궁에 부귀를 버리고 출가하셔서 그런 고행을 다 겪으시고 결국은 그 깨달음을 얻으셨는데, 우리도 부처님처럼 어떠헌 계기, 계기를 통해서 발심을 해야 하고 또 출가를 해야 하고 또 수행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면 출가라고 허는 것은 반드시 세속을 버리고 산중사찰에 들어가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된 것 만을 의미헌 것이 아닙니다. 그러헌 것은 스님네들이고, 세속에 몸 담아 사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도 세속에 몸이, 몸담아 생활허면서도 출가를 허셔야 합니다.
몸만 출가하고 마음은 출가하지 못한 그런 스님네도 있습니다. 비록 몸은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 정신은 출가한 그런 청신사 청신녀도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다 출가한 그런 스님도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출가하지 않고 완전히 세속에 있는 그런 분도 있습니다.
이 출가에도 두 가지가 있고 재가에도 두 가지가 있는데, 비록 몸은 세속에 있으되 그 정신은 출가한 그런 분이야 말로 참으로 훌륭한 것이고, 몸도 마음도 다 출가한 그러헌 스님도 훌륭한 것입니다.
그래서 발심(發心) ‧ 출가(出家) ‧ 수행(修行)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멀리 보며는 무량겁 중에, 이것이 무량겁 중에서도 볼 수가 있고 일생 동안에도 볼 수가 있고 일 년 사이에도 볼 수가 있고 하루 사이에도 볼 수가 있고 한 생각 가운데에도 발심해서 출가해서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발심 ‧ 출가 ‧ 수행 ‧ 각성이 찰나 찰나에 우리는 있어야 합니다. 한 시간 전이나 한 시간 후나 하루 전이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마냥 그냥 고대로, 아무런 발심도 없고 아무런 출가도 없고 아무런...
그리고 타성, 타성에 빠져서 그냥 그런대로 밥 먹고 이렇게 똥 누고 입선허고 방선허고, 어제도 그러고 오늘도 그러고, 그렇게 그럭저럭 일 년이 지내가고 이 년이 지내가고 삼 년이 지나가고 십 년이 지내가고.
이걸 고인은 금일야임마(今日也恁麽) 명일야임마(明日也恁麽)’ 이런 표현을 허셨습니다마는, 그래가지고서는 우리는 확철대오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항상 발심을 하고, 찰나 찰나에 출가를 하고, 찰나찰나에 화두를 거각하고, 이렇게 해서 구경의 깨달음, 구경각을 얻을 때까지 그렇게 항상 새롭게, 항상 발심한 초학자의 그러헌 마음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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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뭣고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