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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1)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사심 없는 자선의 실천과 깊이 있는 골방 기도와 보다 진정성 있는 단식!
전례력이 돌고 돌아 또다시 재의 수요일입니다. 오늘 미사 중에 사제는 축복한 재를 교우들의 머리에 얹으며 이렇게 외칩니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은 생각하여라.”
재를 머리에 얹은 교우들은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주님, 저의 죄악을 없애소서.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머리에 재를 얹는 이유는 사제의 외침 안에 잘 들어 있습니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우리 인간 존재는 참으로 특별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상반되고 모순된 존재입니다. 극단의 양면성을 지닙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이 세상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존재입니다.
인간이 지닌 품위나 능력, 지혜와 지식, 이를 바탕으로 쌓아 올린 찬란한 문화나 예술, 최첨단 과학, 창출한 제반 결과물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얼마나 인간 존재는 얼마나 나약하고 유한한 존재인지 또 한번 놀랍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난다 긴다 하던 대단한 인물들도 숨 한번 끊어지면 그걸로 끝입니다. 그의 초라한 육신은 불더미 속으로 직행하며, 순식간에 한 줌 재로 변합니다.
오늘 다시 머리에 재를 얹으며 대체 무엇을 참회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성찰해봐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마태오 복음은 세 가지 측면에서의 참회로 초대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크나큰 자비와 사랑, 끝도 없는 용서에 우리는 응답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는 사심 없는 자선의 실천입니다.
세파에 시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님과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분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서먹서먹해집니다.
다시 한번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진실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위선자들의 길거리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과 나 둘 사이에 사랑의 밀어를 주고받는 골방 기도가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혹독한 고통을 겪고 있고 사무친 슬픔에 대성통곡하고 있는데 옆에서 희희낙락하고 있다면, 아니면 태연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게 어찌 감정을 지닌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순 시기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파스카 신비 안으로 깊이 몰입하는 순간입니다. 이 시기 우리는 수난 복음을 자주 읽으면서, 인류 구원을 위한 속죄양으로서 그분께서 겪으셨던 고통과 희생, 수모와 치욕을 깊이 묵상하면서, 작게나마 동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 가장 구체적인 표현이 단식인 것입니다.
또다시 맞이한 사순 시기, 사심 없는 자선의 실천과 깊이 있는 골방 기도와 보다 진정성 있는 단식으로 보다 의미 있게 이 기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전삼용 요셉 신부님
마태오 6,1-6.16-18
불교와 가톨릭에서 말하는 고행의 차이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순절에 우리가 실천해야 할 ‘자선-기도-단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이것을 실천할 때 남들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매번 강조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기도-자선-단식은 일종의 도구요 무기입니다. 도구로 사용되려면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망치라면 못을 찾아야 합니다.
또 무기라면 적이 확실해야 합니다.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지 못하는 군인에게 총을 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일단 총을 줬다면, 누구에게 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자기에게도 이웃에게도 해가 됩니다.
일단 기도-자선-단식이 도구라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 도구일까요?
기도하면 순종하게 됩니다.
자선을 하면 청빈한 삶을 살게 됩니다.
단식하면 절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정결해집니다.
곧 청빈-정결-순명의 덕을 얻게 됩니다.
이 덕을 꽃피우면 무엇이 좋을까요? 사랑이라는 하느님께서 그 정원에 살게 됩니다.
기도-자선-단식은 복음삼덕을 자라나게 하는데, 기도-자선-단식이 없다면 복음삼덕과 그로 인한 사랑이 실천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사랑과 반대는 이기주의입니다.
자기 행복만 바라는 이들은 내가 존재 이유입니다.
그러니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기주의자는 자기만 가지려 합니다.
또한 절제가 없습니다.
자기가 먼저 먹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기도-자선-단식이 삼구(三仇),
곧 세속(소유욕)-육신(성욕)-마귀(교만)을 쏴서 죽이기 위한 총과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불교의 교리와 차이를 보입니다.
불교도 인간의 욕구가 고통의 원인이라 보았습니다.
그 욕망을 이기기 위해 고행을 하고 자신과 싸웁니다.
그러나 욕망이 사라지면 행복이 올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점점 고행의 방향을 찾으려는 방향으로 불교도 발전하게 됩니다.
영화 ‘삼사라’는 “어떻게 하면 한 방울의 물이 영원히 마르지 않을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합니다.
타쉬라는 수도승은 3년 동안 동굴에서 나오지 않고 고행합니다.
그렇게 육체를 이기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믿었지만, 한 방울의 물은 다시 육체가 힘을 얻고 아기에게 젖을 물린 여자를 보았을 때 사라지게 됩니다.
타쉬는 욕망을 이기기 전에 욕망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겠다며 환속합니다.
여자와 결혼도 하고 아기도 얻게 됩니다.
농사도 짓고 돈도 어느 정도 법니다.
그러나 돈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점점 탐욕에 물들어갑니다.
심지어 처제와 사랑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처제가 언니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것을 보고는 다시 세상에 환멸을 느낍니다.
역시 모든 고통은 욕망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때 스승이 죽으며 타쉬에게 보낸 편지를 받습니다.
“수천 가지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과 한가지 욕망을 정복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를 알게 되기를!”
타쉬는 한 가지 욕망을 정복하기 위해 다시 삭발하고 집을 떠납니다.
아내가 뒤쫓아오며 말합니다.
“한밤중에 자식을 버리는 어머니는 없어요. 남자만이 그럴 수 있죠.
싯다르타는 병자들을 가엾다고 여겼어요.
그가 깨우침을 얻기 훨씬 이전부터요.”
아내는 알고 있었습니다.
참다운 고행의 의미는 사랑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타쉬는 윤회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방향을 모르기 때문에 원만 빙빙 돌기 때문입니다.
그때 물 한 방울이 마르지 않는 이유를 발견합니다.
“바다에 던지면 되느니!”
타쉬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고행의 방향이 사랑이라는
방향성을 잃으면 아무리 고행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삼구는 사랑에 반대되는 욕망입니다.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물을 빼내야 합니다.
그 작업이 우리가 말하는 고행입니다.
하느님과 이웃과의 사랑이 증가하지 않는 사순절은 더는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3)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복음: 마태 6,1-6.16-18: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오늘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이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리키는 숫자이다. 하느님께서는 노아 홍수 때 40주야 동안 폭우가 내리게 하여 심판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400년을 종살이하였으며,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전에 40 주야를 단식과 기도로 지냈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에 도착하기까지 40년이나 걸렸다. 예수께서도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40 주야를 광야에서 기도와 단식으로 준비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시작되는 사순절도 오늘부터 시작하여 부활 때까지 주일을 제하고 세어보면 40일이 된다. 교회가 이렇게 사순절을 제정한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순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으로 차지하신 영광스러운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그분의 영광에 우리도 참여하기 위하여 그분의 수난에 우리가 참여하는 시기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로 돌리는 회개와 보속의 시기이다. 이럼으로써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사랑받는 자녀들이 되어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교회는 오늘 “재의 예절”을 거행한다. 이 재의 의미는 회개와 보속, 죽음과 겸손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머리에 재를 받는 것은 우리 죄로 인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및 부활에 참여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보속 하겠다는 약속의 표시이다.
이 재의 예절은 우리가 우리의 죽음을 미리 묵상하게 한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이것은 우리의 현세적인 삶의 종착점인 죽음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이기적인 생활과 그럼으로써 하느님을 멀리 떠난 삶에서 회개와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으로 돌아서게 하는 데 있다. 죽음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가를 알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이 재는 한 줌의 흙이다. 우리가 죽어 땅에 묻히면 한 줌의 흙이 된다. 그 자리에는 아무런 형체도, 권세도 명예도 볼 수 없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재를 교만과 명예의 자리인 머리에 얹음으로써 인생무상과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고 겸손하라고, 자신의 본 모습을 찾으라고 하는 것이다. 겸손하지 못하면 회개와 보속의 실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선을 행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면서 자선과 기도, 단식에 관한 세 가지 본보기를 알려주신다. 자신의 덕을 내보임으로써 사람들의 칭찬을 얻으려 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넘치게 기도하면서 자기의 신심을 자랑하지도 말라고 하신다.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2절). 내가 하는 일을 떠벌이지 말라는 뜻이다. 인간의 찬사를 얻으려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은 신앙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친절한 행동은 자체가 나팔이다. 숨겨야 할 것은 그런 행동이나 장소보다도 베풀려는 뜻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3절). 이 말씀 역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인데, 할 수 있으면 우리가 선을 베풀 때, 베푸는 손조차도 그 사실을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오른손은 의인과 의로운 행위를 뜻하고 왼손은 죄인과 죄가 되는 행동을 의미한다. 어떤 일이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이루어지려면, 의인인 오른손은 왼손이 하는 일을 몰라야 한다. 우리가 충실하고 신심 깊게 행하기 위해서는 죄인들 앞에서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6절). 우리의 기도는 인간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어디에나 계시며 우리가 말하기도 전에 들으시고 마음의 비밀을 이미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분께 기도하면 우리는 큰 상을 받을 것이다.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6절). 사람들에게서 상을 받으려 하는 자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또 다른 상을 받을 수는 없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16절). 교회도 또한 이 시기에 극기와 절제를 통하여 이웃에게 선을 베풀어 그리스도를 닮고, 어느 때보다 기도를 많이 하여 은총을 받고자 마음을 모으는 때이며, 예수님의 부활 영광을 우리도 누리기 위해 속죄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이 사순시기를 통하여 우리가 더 하느님의 자녀로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4)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 18)
우리는
우리자신을
정말 잘 알고
있는 지를 묻는
재의 수요일이며
사순 시기의
시작입니다.
십자가로
우리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삶이란
십자가가 없는
삶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무게가 바로
사랑의
무게입니다.
십자가로
하느님을
닮아가는
우리들
삶입니다.
사순시기의
지름길은
없습니다.
흙으로
빚어내시고
흙으로
열어주시는
하느님의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의 길은
저마다의 십자가로
하느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재와 먼지로
돌아갈
우리의 삶을
기억한다면
잊혀진
하느님을
간절히 다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흙과 십자가가
삶의 방향을
잡아주십니다.
흙과 십자가로
새로워지는
우리들
마음입니다.
우리자아만 있지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없는 우리의
삶을 반성합니다.
참된 반성이란
흙으로
돌아가야 할
우리의 삶과
십자가의 길을
받아들여야 할
우리의 삶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십자가와 흙으로
단식과 금육으로
하느님
사랑을 만나는
복된 시간입니다.
먼지로
돌아갈 우리를
부활의 삶으로
바꾸어주시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사랑하려 애쓰는
애끊는 우리들
사랑뿐입니다.
사랑의 힘을
믿는 용서와
생명의
새로운
시간입니다.
단식과 금육으로
하느님을
생각하는
사순의
첫날입니다.
5)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약속은 맺을 약, 묶을 속, 즉 단단히 묶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그 관계가 헐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에 참석할 사람 몇몇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안 오는 것이냐?”라고 물으니, “조금 늦는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약속 자체가 많이 헐거워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휴대전화가 없을 때는 연락이 되지 않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너무 쉽게, “미안, 급한 일이 있어서…. 조금 늦어.” 식으로 메시지를 보내면 그만입니다.
약속이 헐거워 짐은 관계 역시 헐거워지게 됩니다. 실제로 몇 차례 약속 시간에 늦는 친구를 보면서 아예 약속을 잡지 않게 되지 않습니까?
주님과 우리는 많은 약속을 합니다. 죄짓지 않겠다. 열심히 살겠다. 가정에 충실하겠다. 사랑하며 살겠다 등등…. 그런데 그 약속이 헐거워진 것이 아닐까요? 너무 쉽게 약속을 깨고 “다음에는 꼭 지키겠습니다.”라는 말을 한 뒤에 또 다른 약속을 만듭니다. 이렇게 약속을 지키지 않아 주님과 헐거워지는 관계가 되면, 결국 전혀 상관없는 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재의 수요일을 맞이하여 머리에 재를 얹으면서 사순시기를 시작합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시간,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얼마나 큰지를 다시금 묵상할 수 있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많은 약속을 주님께 하게 됩니다. 이렇게 죄를 많이 지으며, 주님 뜻과는 정반대로 나아가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서 다시 주님께로 향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그냥 입에서만 맴도는 공염불이 될 때가 많습니다. 약속이 계속 헐거워지면서 주님과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재를 얹으면서 사제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또는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 삶이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주님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삶은 다른 이들에게 칭찬받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칭찬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선과 기도와 참회를 겉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모두 갚아주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약속이 헐거워지도록 하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과의 약속을 통해 더욱 주님과 단단한 결속을 맺을 수 있고, 주님 안에서 참 기쁨과 행복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은혜로운 사순시기가 되길 기도합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하려면 자신이 끊임없이 변화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에이브스 칼슨).
6)이병우 루카 신부님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회개의 때!'
오늘은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오늘 미사에 꼭 참석합시다!
'사순시기'는 '오늘부터 주님 만찬 미사 전까지'입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집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부활 대축제를 준비'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사순시기 때 해야 하는 본질을 전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요엘2,12-13)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코린5,20-6,1.2)
오늘 복음(마태6,1-6.16-18)은 '올바른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기도 할 때에는' 골방에 들어가 하라고...
'단식 할 때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하십니다.
이는 곧, '나의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서 받을 상이 없다.'고 하십니다.
'자선의 본질'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너를 통해 다시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는 행위'입니다.
'기도의 본질'은 '하느님과의 사랑의 대화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이 사랑 안에 머무는 행위'입니다.
'단식의 본질'은 '구원의 장애가 되는 것들을 끊어버리는 행위'입니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해 봅시다!
7)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재의 수요일
“옷이 아니라, 너희의 마음을 찢어라.”(요엘 2,13)
우리의 마음은 꼭꼭 숨겨두고
겉모습만 찢고 있으면
주님의 마음이 찢어지신다네.
사순절의 은총은
거룩하게 꾸며진
우리의 겉모습이 아니라
비참하게 찢어진 내면의
진심을 타고 온다네.
마음을 찢은 자의
드러내지 않는 자선과
기도는
숨어계신 하느님께서
보고 계신다네.
복음 말씀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신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