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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기억하자며 5·18에 역행하는 그들
스타벅스 5·18 연상 마케팅에
정부와 여권 나서 연일 때리기
책임은 법·제도 안에서 물어야
5·18 정신이 뭔지 되돌아보길
[동서남북]
입력 2026.05.28. 23:38업데이트 2026.05.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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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중행동 등 146개 단체 회원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정용진 규탄, 스타벅스 불매운동 전국화 발표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5·18 민주화운동은 과거의 비극이 아니다. 국가 권력이 스스로를 ‘정의’라고 확신하고 법과 절차를 무시할 때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 성찰해야 할 현대사의 경고다. 국가 안보, 공공의 이익, 사회 정의, 피해자 인권…. 권력은 언제나 이런 명분을 앞세운다. 문제는 권력이 절대선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법치가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점이다.
최근 벌어진 ‘스타벅스 사태’를 둘러싼 정부와 여권의 대응은 5·18 정신에 역행하는 행태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 데이’라는 이벤트를 열고, 박종철 열사를 연상시키는 ‘책상에 탁!’ 같은 문구를 마케팅에 동원한 기업의 역사 인식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스타벅스 텀블러의 이름이 ‘탱크’였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공적 기억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잘못을 다루는 국가 권력의 방식은 또 다른 차원의 위험 신호를 보낸다. 사태 직후 신세계그룹은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이사를 신속하게 해임했고, 정용진 회장도 직접 대국민 사과를 했다. 관련 임직원은 줄줄이 대기 발령됐다. 기업이 책임을 다하며 대가를 치렀는지는 권력이 아니라 시장과 여론이 평가할 일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에 분노한다.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행정적, 법적, 정치적 책임이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썼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스타벅스코리아의 반역사적 행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정부 행사에서 스타벅스 모바일 상품권 사용을 배제하겠다고 나섰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 기회에 국산 차를 마시자”고 했다. 법에 따른 조치가 아니라 정치적 응징 릴레이였다.
법 집행 기관들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경찰은 시민단체의 고발장이 접수되자 반나절 만에 사건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으로 이관했다. 법무부는 대검찰청에 올해 예산으로 구매한 스타벅스 텀블러와 상품권 사용 내역을 전수조사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법무부는 “단순 현황 파악”이라고 했지만, 공무원들은 “스타벅스 커피 마셨다가 사상 검증당한다” “스벅 텀블러 빨리 치워야겠다”고 술렁인다. 이것이 정녕 국가가 할 일인가. 권력이 왜 개인의 사생활 영역까지 침범하는가.
이 사태는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시도에 가깝다. 이번엔 스타벅스였지만 다음엔 어느 기업이 찍힐지 모른다. 현장에서 두려움이 감지된다. 광주광역시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선 누군가 계란을 던진 흔적이 발견됐고, 일부 스타벅스 직원은 “너희도 똑같은 놈 아니냐는 폭언을 듣는다” “출근이 공포”라고 호소했다.
잘못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감정에 치우친 권력이 스스로를 정의이자 절대선이라고 확신할 때 그들이 내세운 민주주의는 흔들리고 법치는 파괴된다. 권력이 자의적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 어떤 권력도 법을 넘어서는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46년 전 5·18 민주화운동이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5·18 정신을 지킨다면서 그 정신을 배반하는 일이 벌어진다.
“진정 위험한 것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가 잊히는 게 아니다. 기념비에 둘러싸인 홀로코스트가 오늘날 유대인의 죄를 사면해 주는 도구로 이용된다는 사실이다.”
폴란드에서 태어나 이스라엘을 거쳐 영국에서 산 세계적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역사적 비극이 잊히는 것보다 권력이 그 비극을 무소불위의 수단으로 오남용할 때 더 위험하다며 이렇게 경고했다. 민주주의는 ‘정의로운 권력’을 믿는 체제가 아니라, 어떤 권력도 법 밖에서 작동하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체제다. 권력에 대한 신뢰는 선의의 확신이 아니라 법의 절제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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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hosun.com/opinion/dongseonambuk/2026/05/29/MDQIFFNMAFGXTOUBOZV3U5GMU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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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습니다 ~! 사지 않습니다 ~!
내 이름은 오춘삼 2026.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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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18 헌법전문 수록은 안된다
1980년 2학기 내내 계엄은 해제되지 않았다. 나는 문리대 문예부장직을 맡으면서 바빠지기 시작했다. 행사가 많았고, 그런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계엄사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모든 원고가 조사대상이었다.
원고를 제출하고나면, 부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원고가 통과되지 않으면 그 행사는 할 수 없었다. 계엄사는 도청에 있었다. 대부분 거의 모든 원고에 붉은 줄이 처져 있었다. 그리고 설명을 요구했다.
그리움이나 기다림 같은 문학적인 언어에도 해석은 다양할 수 있었다. 김대중이라는 주어를 넣으면 얼마든지 연결이 되는 문장도 있었다.
나는 심문을 하는 소위계급장을 단 장교의 얼굴을 보았다. ROTC 학사장교임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군복무를 마친 나이였다. 같은 젊은이로서 통할 수 있는 거리가 있었다. 나는 아랫도리를 가리켰다.
"이것이 솟구치니, 그리울 수밖에 없지 않겠소."
우리 둘이는 서로 마주보고 웃고 말았다. 그리고 원고는 무사히 통과하게 되었다. 이런 일이 2학기 내내 계속 되었다.
그렇게 2학기를 보내는 동안 우리는 5.18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했다. 그것은 금기어였고, 두번 다시 꺼내서는 안되는 짙은 색깔의 우울이었으며, 청춘의 침묵이었다.
그나마 광주지식인들이나 유지들이 총기반납운동을 벌이지 않았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을 것이다. 정말 두팔벌려 필사적으로 막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친구들은 무기를 놓고 대열을 떠났다. 복면을 쓴 정체 모를 인물들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므로 5.18의 비극이 그 정도로 끝난 것은 광주유지들 덕분일 것이다. 바로 이 정신이 진정한 5.18정신이라 해야 한다.
어리석은 것들이 무기를 탈취하고 경찰서를 습격한 사실을 무슨 명예처럼 떠들고 다니는 것은 옳지 않다. 수많은 유언비어에 속은 사람들이, 지금도 처녀 유방을 도려냈다는 거짓말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수많은 청년들을 죽여서 암매장했다는 의혹을 풀지 않고 있다. 행불자들에 대해서 탈북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5.18이 끝나갈 무렵 북으로 복귀하는 공작원들을 따라가기를 희망하는 청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산악구보를 1시간에 5키로씩 하는 공작원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결국 죽여서 묻고갈 수밖에 없었다."
탈북자들의 증언은 계속된다.
"복귀한 특수부대원들은 김정일의 환영을 받았다. 장소는 평양 목란관. 모두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고, 전사한 자는 애국열사릉에 시신없이 가묘(假墓)로 묻혔다."
2020년 5월 12일 미국 CIA와 국무성에서 한국 5.18 국가전복 관련 기밀해제 외교문서가 공개된다.
'광주 5.18은 국가전복을 목적으로 하는 노스코리아 (북한)에어전트 폭동'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또한 CIA 기록 문서에, 1980년 5월 26일에 북한대표와 미국대표가 판문점에서 만나 미팅을 통하여 5.18이 종결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5.18을 보호하려는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그리고 수많은 오류와 흠결이 드러날 때마다 5.18에 쏟아지는 비난과 조롱으로부터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해 왔다. 죄없이 죽어간 시민에 대한 조롱만큼은 안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그리하여 5.18은 '이제 역사 속으로 묻자'는 건의를 제기하였다. 더이상 5.18을 이용하고자 한다면, 5.18은 심각한 위험에 처하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헌법전문에 올린다는 발표가 있었고, 그 직후 5.18은 거의 난도질 수준의 비난을 받게 되었다.
나는 5.18을 온몸으로 겪은 증인이다. 무수한 무기를 보았고, 상상하기 힘든 유언비어를 들었다. 따라서 5.18이 헌법전문에 실리는 것은 진실에 대한 역행이며 정의의 모순이었다. 최근 법원은 지만원 박사의 판결문에서 5.18에 외부세력들이 관여했음을 인정하였다.
그러므로 헌법전문에 실리는 것으로 5.18은 끝나지 않는다.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5.18은 끝까지 묻어두어야 할, 진실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열고 만 것이다. 엄밀하고 참혹한 논란이 따를 것이 분명하기에, 나는 헌법전문수록을 허용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5.18은 헌법근처에도 가지 말라'는 글에 담았다.
그리고 광주시와 5.18단체로부터 고소를 받았다. 경찰에게 수사를 받으면서, 수사과정에서 경찰을 압박하는 보이지 않는 손을 느꼈다. 경찰수사관은 죄를 만들려는 아주 치졸한 논리를 세우고 있었다.
'(북한군이 내려왔다는) 암시를 했으므로 적시하였다.'
암시(暗示)했으므로 적시(摘示)다? 나는 이 기소의견을 읽으면서 웃고 말았다. 이건 죄를 만들기 위한 아주 유치한 논리였다. 적어도 대한민국 경찰은 이래서는 안된다. 이 부끄러운 초라한 논리는 역설이었고 궤변이었다. 아무리 직속상관이 죄를 만들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더라도, 그 직속상관은 5.18단체와 민주당으로부터 정치적 압력을 받았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경찰은 죄를 만들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로써 나는 5.18로부터 애정을 거두고 적이 되었다. 적이라. 5.18단체와 광주시는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되는 사람을 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을 보호해줄 평범을 버린 것이다. 나는 평범한 보통사람이다.
과거 전교조가 나를 적으로 삼을 때, 나는 20여년을 전교조와 싸우게 되었다. 2002년의 일이었다. 전교조는 고소고발과 협박이라면, 내가 곧 굴복할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명예와 이기(利己)를 버리고, 어떤 모진 세월이 지나간다 하더라도 굴하지 않고 싸워왔다. 지금도 전교조 폐해와 악행을 고발하고 있다.
그렇듯 5.18도 마찬가지다. 5.18을 역사 속에 묻을 때까지 나는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5.18에 울릴 조종(弔鐘)의 시작이다. 나는 그들을 이길 수 있다.
충고한 바대로 5.18 스스로 역사 속으로 들어가기 싫다면, 계속 살아있는 5.18로 만들어 이용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수많은 진실을 앞세워 5.18을 지옥에 이르게 하겠다. 그리하여 사장(死葬)시킬 수밖에 없다.
무려 4000명에 이르는 가짜유공자를 밝혀내어 그 무도함과 더러운 정체를 국민과 세계 인류를 향해 알려줄 것이다. 역사 앞에서 혹은 우리의 후손들 앞에서, 어디 낯 들고 다닐 수 있는가 두고 보아라.
뜨거운 청춘 속에 붉은 선혈로 남아있는 우리의 5.18은 죽었다. 남은 것은 더러운 협잡꾼들과 정치꾼, 국보법을 위반한 간첩들이 짓밟고 서있는 쓰레기 깃발뿐.
진실이 흔들리고 있다. 바람아, 불어라. 그리고 떠나가라, 사랑아 ! 1980년 5월의 청춘아 !
- 5.18이여, 안녕 ! -
2026. 5. 29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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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재판 재개하라"
"이재명은 당장 재판받아라!"
"이재명 재판 속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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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배 박사님 글.
[ 광주 사태를 5. 18 언어로 헌법에 올릴 수 있는가.]
대한민국 헌법은 특정 사건의 감정문이 아닙니다.
특정 단체의 기념사도 아니며, 특정 정치세력의 전리품도 아닙니다.
헌법은 국민 전체의 저울입니다.
2026년 대한민국 정치권 일부는 5. 18을 헌법 전문에 올리자고 합니다.
저는 묻습니다.
광주에서 벌어진 복합적 사건을 오직 “5. 18 정신”이라는 하나의 정치 언어로 포장하여 헌법에 올릴 수 있습니까?
비무장 시민의 희생은 희생대로 보아야 합니다.
국가폭력은 국가폭력으로 기록해야 합니다.
억울하게 죽은 시민의 눈물은 결코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모든 장면을 하나의 성스러운 언어로 덮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장 시민군의 국면은 무엇이었습니까.
무기고 탈취는 무엇이었습니까.
전남도청 점거는 무엇이었습니까.
방송국 방화와 군용 차량 탈취, 중화기 소유의 장면은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이 질문들을 막아 놓고 “5. 18 정신”만 헌법에 올리자는 것은, 헌법을 쓰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 논쟁의 문을 헌법으로 닫아버리자는 말과 무엇이 다릅니까.
헌법은 질문을 막는 문서가 아닙니다.
국민이 질문할 권리를 지키는 문서입니다.
그런데 5. 18에 대해서는 질문조차 금기시됩니다.
묻는 순간 낙인이 찍히고,
검증을 요구하면 모욕이라 하고,
유공자 문제를 말하면 혐오라 하고,
무장 국면을 말하면 역사 왜곡이라 합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입니까.
민주주의라면 비무장 시민의 희생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국가폭력도 말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무장 국면과 유공자 검증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쪽만 말하게 하고 다른 쪽의 입을 막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성역 관리입니다.
5. 18을 조롱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5. 18을 질문하지 못하게 해서도 안 됩니다.
진짜 희생자를 지키려면 가짜가 끼어들 수 있는 문부터 닫아야 합니다.
진짜 시민을 지키려면 정치적 보상 구조에 편승한 사람이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진짜 역사를 지키려면 기념식장의 박수보다 기록의 검증을 먼저 해야 합니다.
광주에 없었던 사람이 있었다면 걸러내야 합니다.
실제 희생과 무관한 사람이 있었다면 걸러내야 합니다.
정치가 만든 명예와 보상 구조가 있었다면 다시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광주를 모욕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광주를 “정치 장사”에서 구해내는 일입니다.
헌법 전문에 들어가는 말은 온 국민이 합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좌우가 달라도, 지역이 달라도, 세대가 달라도, 최소한의 사실과 기준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5. 18 언어는 어떻습니까.
추모의 언어입니까.
검증의 언어입니까.
국민 통합의 언어입니까.
아니면 특정 진영이 출입 자격과 발언 자격을 심사하는 정치 언어입니까.
기념식장에 들어갈 자와 쫓겨날 자를 가르고,
배지를 달 자와 떼어낼 자를 가르고,
질문할 자와 침묵할 자를 가르는 언어라면,
그 언어를 어떻게 헌법에 올릴 수 있습니까.
헌법은 편 가르기의 깃발이 아닙니다.
헌법은 국민 전체가 숨 쉬는 공기입니다.
대한민국은 배고픔을 너무 빨리 잊었습니다.
자유의 공기가 얼마나 비싼지 너무 빨리 잊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피 흘린 국군과 미군, 유엔군의 도움 위에서 살아남은 나라가, 이제는 마치 처음부터 자유와 풍요를 타고난 귀족국가처럼 행동합니다.
그 착각이 헌법까지 흔들고 있습니다.
사법은 칼이 아니라 저울이어야 합니다.
역사는 성역이 아니라 진실의 들판이어야 합니다.
헌법은 정치권의 도장이 아니라 국민 양심의 기준이어야 합니다.
저는 말합니다.
검증 없는 5. 18 헌법 수록은 어불성설입니다.
비무장 시민의 희생은 지키십시오.
국가폭력의 책임은 기록하십시오.
그러나 무장 국면과 유공자 문제와 정치적 이용 문제까지 함께 검증하십시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5. 18 언어는 헌법에 올라갈 자격이 없습니다.
헌법은 정파의 손익으로 쓰는 문서가 아닙니다.
권력의 유행어를 새기는 비석도 아닙니다.
후손에게 남길 국민 전체의 기준입니다.
논두렁에 물이 새면 한 톨의 수확도 할 수 없습니다.
역사의 논두렁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쪽에서 진실이 새고,
한쪽에서 검증이 새고,
한쪽에서 양심이 새는데,
그 위에 헌법이라는 금문자를 새기겠다는 것은 농부의 눈으에는 맞지 않습니다.
광주 사태를 5. 18 언어 하나로 덮어 헌법에 올릴 수 있는가.
제 답은 분명합니다.
검증 없이 안 됩니다.
분리 없이 안 됩니다.
국민적 합의 없이 안 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특정 세력이 제작한 기획을 지키는 울타리가 아니라, 자유 시민 전체의 숨길을 지키는 하늘이어야 합니다.
석종대 2026.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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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주년 5.18 군·경 순직자 추모식 국립현충원 20260518 자.대.호外 https://cafe.daum.net/bondong1920/N5RA/1405
정용진(58) 신세계그룹 회장 '탱크데이' 스타벅스 20260522 mbn外 https://cafe.daum.net/bondong1920/8dIJ/6699
이병태(66) 규합위 부위원장 사임 “5·18은 성역” 2026.7.7. 문화外 https://cafe.daum.net/bondong1920/8dIJ/6702
와 이리 무섭노 ‘5·18 모독’ 진중권 2026.7.9. 조선 外 https://cafe.daum.net/bondong1920/N5RA/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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