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된 미국의 기밀 문서를 근거로 우크라이나 정세에 대한 비관적 외신 보도가 이어지자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회의(우리 식으로는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의 '허위 정보 (대응) 센터'는 16일 서방 언론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짜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이 센터가 가짜 정보로 제시한 예는 이렇다.
- 우크라이나는 소모전으로 전쟁에서 지고 있다. 바이든 미 행정부는 평화 협상 대신 전쟁 승리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로 던져주고 있다.
- 우크라이나의 춘계 반격 작전은 미국과 나토에게는 죽음의 덫이다.
- 러시아군은 격전지인 바흐무트를 더 빨리 점령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사전에 있었다.
-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크림반도 탈환을 위한 대규모 군사 지원을 받는 대가로 폴란드에 서부 지역 일부(여러 주·州)를 넘겨줄 준비가 되어 있다.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회의 서기(사무총장) 다닐로프/사진출처:대통령실
우크라이나가 서방 언론의 최근 외신 보도에 짜증을 내고 불만을 토로했다는 사실은, 이미 미 정치 전문 '폴리티코' 등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가짜 뉴스'로 규정했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만큼 여론의 압박을 우려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스트라나.ua는 앞서(본보 4월 13일자 참조) 이같은 서방 언론의 보도가 △사실 그 자체이거나 △러시아에 역정보를 흘리는 공작 △평화협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 등 3가지 의도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주목을 끈 것은 러시아 민간용병 업체 '와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공격 중단 주장이다. 러시아가 특수 군사작전의 승리를 선언하고 공격 대신 방어에 나서자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최전선을 방문한 프리고진(오른쪽)/SNS 영상 캡처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14일 텔레그램을 통해 "이제는 공격을 중단하고 점령한 영토에 말뚝을 박고 경계선을 치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며 "러시아는 특수 군사작전의 목표를 달성했으며, 이를 모든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흑해와 아조프(아조후)해 연안 지역을 포함해 많은 우크라이나 영토를 점령하고 크림반도로 향하는 육로를 확보했으니,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남은 것은 점령한 땅을 확고하게 지키고 (러시아화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을 동결(휴전)하는 옵션은 비현실적"이라며 "방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러시아의 점령지역을 우크라이나로 되돌리려는 어떤 종류의 협상에도 반대한다고 했다.
최대 격전지 바흐무트 공략에 앞장선, 대표적인 전쟁 강경파인 그가 느닷없이 공격 중단을 주장하고 나선 데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스트라나.ua의 분석은 이렇다.
우선, 그의 텔레그램 글은 우크라이나 전쟁보다는 러시아의 자체 의제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아 인민의 적'에 대한 기준을 새롭게 제시했다. 미국과의 굴욕적인(?) 합의를 푸틴 대통령에게 강요 혹은 설득하는 친서방 자유주의 엘리트 그륩이다. 그들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러시아가 특수 군사작전의 개시(2022년 2월 24일) 이전 국경으로 물러나는 대신, 대러시아 제재 해제와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 금지 등을 얻어내야 한다는 온건 협상파다.
프리고진은 철군을 전제로 한 그같은 목소리는 "러시아에서 분노의 물결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을 준비하는 이상, 협상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스트라나.ua는 "프리고진의 이 글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 들여야 하는 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며 "스스로를 '타협하지 않는 애국자'의 이미지를 만드는 홍보용 글"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주장을 현재의 국내외 정세 흐름에 투영할 경우,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프리고진의 '공격 중단-방어 태세'로의 전환 주장은, 무엇보다도 전쟁 강경세력의 급진적인 사고의 대전환이나 다름없다. 스트라나.ua는 "현 전선을 따라 휴전하고 새로 국경을 획정하는 '한국 전쟁 시나리오'는 크렘린 온건파의 주장으로 간주됐다"며 "이를 날카롭게 비판해온 강경 우익 애국자들의 대표자 격인 프리고진이 '한국 전쟁 시나리오' 편에 섰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특수 군사작전 개시 이전 국경으로의 철군 협상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미국이 제공한 스트라이커 장갑차에 올라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뒤(위) 기동시험에 나선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영상 캡처
흥미로운 것은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지연을 미-러 협상과 연결지은 것이라고 스트라나.ua는 전했다. 프리고진은 미국이 러시아 측에 특수 군사작전 개시 이전 상태로의 철군을 전제로 한 협상을 제안했으며, 러시아가 이를 거부할 경우, 우크라이나군이 즉각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에 나서더라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싸웠느냐"이 질문이 제기되고, 국가 권력에 대한 원심력이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스트라나.ua는 "미러 협상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지 않는 상태에서 프리고진의 이같은 주장은 단순히 '애국주의자 프리고진'이 반역자들에 맞서고 있다는 홍보(PR)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프리고진은 또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밀려 러시아가 점령지 일부를 빼앗긴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싸우지도 않고 협상을 통해 내주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스트라나.ua는 "러시아의 군사적 패배는 국내에 더 큰 충격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에 프리고진의 글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러시아의 패배와 혼란을 무시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많은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스스로 점령지역을 포기하는 옵션은 극도로 비현실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러시아 투데이(RT) 편집장 시절, 시모냔이 푸틴 대통령에게 브리핑하는 장면/사진출처:위키피디아
현 전선에서 공격을 중단하자는 주장은 프리고진이 처음은 아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러시야 세고드냐'(Россия сегодня, RT와 같은 뜻)의 편집장이자 친 푸틴 언론인 마르가리타 시모냔은 서방에 동결된 러시아 외환보유고(약 3천억 달러 추정)를 우크라이나에 주고, 점령지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전쟁을 끝내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 역시, '한국 전쟁 시나리오'의 결과와 다를 바 없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전후 복구에 기여했다는 작은 명분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시묘난 편집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서방측에 의해 제재 대상에 오른 대표적인 러시아 언론인이다.
◇ 오늘(15, 16일)의 주요 뉴스 요약
-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동방정교회 부활절을 맞아 "늘 함께 계시는 주님께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화해하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드린다"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바티칸 뉴스에 따르면 교황은 "전쟁은 계속되고 끔찍한 방식으로 죽음의 씨앗을 뿌린다"며 “우리는 이같은 잔학 행위에 대해 슬퍼하고,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세상이 인간의 손에 의해 폭력적인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지 않도록 하느님께 간구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포로들의 수용소를 방문해 귤 박스를 전달하는 프리고진/현지 매체 RT 영상 캡처
- 부활절을 맞아 우크라이나군 포로 130여 명이 러시아군 포로와 교환돼 돌아왔다고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장이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공식 발표는 나오지 않았다. 민간 용병 업체 '와그너 그룹'의 수장 프리고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포로 교환 사실을 확인하고, '와그너 그룹'이 억류하고 있던 우크라이나군 포로들을 석방했다고 밝혔다.
- 모스크바를 방문한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이 16일 푸틴 대통령을 만나 군사및 군사기술, 안보 분야의 협력을 재확인했다. 리 부장은 푸틴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양국 관계는 냉전 때의 군사·정치적 연합 체제를 능가한다"며 "(양국 관계는) 비동맹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매우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또 "최근 군사 및 군사기술 분야에서 중국과 러시아 간 협력은 매우 잘 발전하고 있다"며 양국 협력이 지역 안보 강화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의 푸틴 대통령 면담에는 쇼이구 국방장관이 배석했다.
푸틴 대통령과 대화하는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사진출처:크렘린.ru
- 중국 국빈 방문을 마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평화 협상으로 이끌기 위한 '국가들의 연합'을 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쟁은 인류에 결코 어떤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대화 테이블에 나올 것"을 거듭 촉구하면서 "전쟁보다는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하는 각국의 정상들을 모을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 "대화가 평화를 확립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전쟁에 관여하지 않는 국가들 간 그룹을 구성하려 노력하고 있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