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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그대가 머문자리 원문보기 글쓴이: 성아
안동 하면 먼저 국가민속문화재 제12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하회마을이 떠오른다. 전통 한옥과 문화가 잘 보전되어 있어 왠지 엄숙하고 재미없을 것 같지만 반전 매력이 있는 도시가 바로 안동이다. 진짜 전통은 세련됐고 자랑스럽고 재미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기자기한 멋이 가득하고, 먹거리와 체험할 거리도 많다. 내 손으로 직접 고추장을 만들고, 한복 입고 한옥의 정원도 거닐고, 멋진 야경에 로맨틱한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안동 주민이 안내하는 반나절 투어를 이용하면 더 진득한 안동의 속살도 볼 수 있다.
안동반가의 '고추장만들기 체험'에 참가해서 만든 고추장
고추장 만들기가 이렇게 쉬웠어요?
전통 리조트 '구름에' 중앙에는 '안동반가'와 '안동식선'이 사이좋게 마주 보고 있다. 이 두 곳에선 세련되고 흥미로운 전통을 경험할 수 있다. 고즈넉한 한옥이나 조금 낡고 운치 있는 분위기를 상상했는데 웬걸! 서울 어느 핫한 골목의 북카페처럼 세련되고 정갈한 모습에 마음이 설렌다. 예약한 고추장만들기 체험을 위해 우선 안동반가로 향한다. 커다란 항아리와 산처럼 쌓인 고추가 있을 거라는 짐작과 달리 작은 테이블 위에 준비된 재료를 보고 당황스러웠다. 정말 이 재료들만 가지고도 고추장이 만들어질까? 오늘 만드는 건 사과고추장이다. 재료는 정말 간단하다. 안동에서 건강하게 자란 농산물이 고추장의 재료다. 낙과가 아닌 상품성 있는 사과로만 만든 사과즙, 우리 쌀로 만든 조청, 맛있게 매운 안동 고추, 안동 콩으로 빚은 메주로 낸 가루, 천일염만 있으면 고추장이 완성된다.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을 만큼 계량된 재료를 뭉치지 않도록 잘 섞어 주기만 하면 된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재료를 차례로 넣고 팔이 아플 때까지 잘 저어주면 끝이다. 체험시간은 30분이면 충분하다. 물론 이렇게 좋은 재료를 준비하는 게 제일 큰일이겠지만. 재료를 다 섞고 나서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맛본 고추장은 맵지도 않고 깊은 맛이 난다. 메줏가루의 텁텁함은 3~6개월 후에 재료가 모두 어우러지면서 사라진다고 한다. 이 정도 재료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면 집에서도 도전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취향에 따라 매실즙이나 감, 호박 또는 청양고추 등을 넣기도 하며 맛을 조절한다 하니 집집마다 장맛이 다른 이유를 알겠다. 생각해 보니 엄마가 만들어 준 떡볶이에선 할머니가 만들어 준 고추장 맛이 났다. 전통이란 게 이렇게 일상적인 곳에서 이어진다.
알뜰주걱으로 아낌없이 통에 담고 오늘 날짜를 적어주면 고추장 만들기 끝
한복 입고 인생샷 남기기
몇 해 전부터 한복 체험이 인기더니, 요즘 서울 경복궁 주변이나 전주 한옥마을에 가면 색이 고운 한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다. 우리의 전통 의상을 우리가 '체험'한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옷고름을 매는 방법은 어렵고 절할 때 손의 위치도 매번 헷갈린다. 이곳에선 단순히 한복만 빌려주는 게 아니라 옷고름을 매고 절하는 법도 알려준다. 전통 한복, 컨템포러리한 한복를 비롯해 드레스와 턱시도까지 준비돼 있다. 색감이 고운 한복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얼굴색에 어울리는 옷을 고른다. 머리를 단정하게 땋아 댕기를 단다. 쪽진 머리에는 떨잠과 뒤꽂이를 꽂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저고리 고름에 노리개를 달면 치장이 완성된다.
[왼쪽/오른쪽]전통 한복부터 디자이너가 새롭게 만든 한복, 턱시도와 드레스까지 준비돼 있다. / 노리개까지 달아주면 고급스러운 한복의 미가 더 살아난다
한복은 품도 넉넉해서 마음에 들지만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참 좋다. 단장하고 나와 절하는 법을 배운다. 두 손을 모을 때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가고 남자는 왼손이 위로 가야 한단다. 단 문상 가서 절할 때는 그 반대라고. 그나저나 손으로 바닥을 짚지 않고 앉았다 일어나는 게 쉽지 않다. TV를 보면 사극에서 전통 혼례를 치를 때 신부 양옆에 선 아주머니 두 분이 신부를 일으켜 세우고 앉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머지 시간은 한복을 입고 리조트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대여시간을 길게 해서 한옥마을에 다녀오거나 월영공원에 나가 사진을 찍는 이들도 많다.
리조트 구름에만 한 바퀴 돌아도 인생 사진이 앨범 가득 쌓인다.
안동찜닭의 변신
체험 후 출출해진 배를 채우러 맞은편 안동식선에서 운영하는 북카페인 '구름에 오프'로 향한다. 현대인의 입맛에 맞춰 새롭게 만든 전통 음료와 디저트가 준비돼 있다. 음료를 만드는 과일 청부터 빙수에 올라가는 팥까지 메뉴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재료를 직접 만든다. 구름에 오프만의 쑥와플과 걸쭉한 대추차는 멀리서도 찾아오는 단골이 있을 만큼 유명하다.
안동식선에서 운영하는 북카페이자 다이닝 레스토랑 '구름에 오프'
혼자 여행할 때 가장 서러운 건 맛있는 음식은 1인분만 파는 곳이 드물다는 점이다. 안동찜닭도 제일 작은 사이즈가 보통 2만5000원~3만 원 선으로 성인 4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가성비로 치면 훌륭하지만 혼자 또는 둘이 먹기엔 그림의 떡이다. 그래서 구름에 오프에선 혼자서도 안동 대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메뉴를 개발했다. 개인 화로를 준비해 안동찜닭과 한우불고기를 식사가 끝날 때까지 따뜻하게 먹을 수 있다. 애피타이저로는 계절 샐러드가, 디저트로는 음료와 과일이 나온다.
정갈하게 잘 차려져 나오는 1인 상과 디저트
혼자 온 여행자도 눈치 보지 않고 대접받는 기분이다. 식재료도 전부 안동에서 나는 것들이다. 우리나라 마의 70%가 안동에서 생산되는 만큼 안동에서는 마를 이용한 요리가 많다. 찜닭에는 단맛이 강한 와룡고구마와 감자가 적절히 섞이고 닭은 다리살만 이용한다. 식사는 그날그날 장을 봐서 준비하기 때문에 꼭 전날 예약해야 한다.
구름에 오프는 식사 전후 창밖의 한옥을 배경으로 느긋하게 책읽기 좋은 공간이다.
휴대전화와 노트북PC 같은 전자기기가 없으면 잠시도 시간을 보낼 수 없는 현대인에게 한옥의 여유로움을 느끼며 쉬어 가라는 의미에서 '구름에 오프(Gurume Off)'라고 이름 지었다. 그래서인지 카페엔 다양한 연령층이 섞여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용히 둘러앉아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과 멋지게 차려입은 어르신이 대추차와 아메리카노처럼 같은 공간 안에서 어우러진다.
한복을 입고 계단을 내려갈 때는 치맛자락을 휘감아 손으로 잡아야 한다. 한복을 입고 리조트 구름에를 벗어나 여행하고 싶다면 디자이너 한복보다는 일반 한복을 빌리는 게 좋다.
안동 주민이 안내하는 속 깊은 여행지
안동 시내엔 자동차로 멀리 가지 않아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재미난 것들이 모여 있다. 여행객들이 흥미로워하는 안동구시장과 안동 주민이 장을 보는 중앙신시장(안동신시장), 이야기가 있는 벽화마을, 독립운동의 성지인 임청각만 둘러봐도 반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소규모 여행객들을 위한 반나절 투어도 있다. 월영교 야경을 볼 수 있는 야경투어와 조금 멀리 가는 빅5투어도 있으니 개개인의 취향에 맞게 고르면 된다.
'버스로여행기획'의 대표. 안동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안동 주민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한다
도보 여행자들에게 안동 주민의 일상이 그대로 담긴 신세동 벽화마을은 필수 코스다. 안동구시장에서 신세동 벽화마을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15분 거리다. 동부초등학교 담벼락에 타일로 그려진 벽화를 찾으면 시작 지점이다. 초등학교의 커다란 벽면을 시작으로 넓은 면에 사람 키만 한 인물 벽화가 그려져 있다. 40년 전에는 택시도 들어오기 어려울 만큼 외진 달동네였는데 2009년 마을 미술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왼쪽/오른쪽]마을 주민의 얼굴이 사람 키보다 크게 그려져 있는 벽화, 스냅사진과 같은 벽화. / 벽화골목에 시작과 끝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동부초등학교 벽화를 시작점으로 삼으면 길찾기가 수월하다.
벽화는 아무리 잘 그려 놓아도 1~2년에 한 번씩은 수정 보완 작업을 해야 한다. 벽화가 깨끗하고 예쁘게 잘 보존되고 있는 것만 봐도 주민들이 얼마나 신경 써서 관리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골목을 누비는 자장면 배달 아저씨의 벽화에선 친근감이 들고, 포도 넝쿨이 드리운 집 담벼락의 굵게 여문 포도 그림에선 미소가 지어진다. 마을의 일상이 사진처럼 벽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골목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도 밝게 웃는 얼굴이 곳곳에 그려져 있어 마을 전체가 관광객을 기분 좋게 맞이해 주는 듯하다.
마을의 풍경을 잘 이용하면서 꾸며진 벽화는 주민들도 기분 좋게 하고 마을이 한층 밝아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안동 여행의 마무리, 월영교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인 월영교는 안동 주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낮에는 잔잔한 호수를 보며 산책하기 좋고, 해가 지면 상아동과 성곡동을 잇는 월영교에 은은하게 조명이 켜져 운치를 더한다. 월영공원이 있는 상아동 쪽에 헛제삿밥을 파는 식당과 카페가 모여 있고 건너편이 안동민속촌과 리조트 구름에로 올라가는 길이다. 월영교 가운데 있는 월영정에 서면 넓고 잔잔한 낙동강이 호수 같아 보인다. 월영교가 날개를 편 듯한 분수쇼는 늦가을 밤의 열기를 식혀 준다.
밤이 되면 조명을 밝히는 월영교
월영교만 왕복해도 산책 코스로는 충분하지만 낙동강의 운치를 더 즐기고 싶다면 월영교에서 시작해 법흥교까지 이어지는 2km 거리의 안동호반나들이길을 추천한다. 법흥교까지 낙동강을 따라 나무로 된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다. 안동시 승격 50주년 기념으로 2013년 준공된 길이다. 잔잔한 낙동강 바로 곁을 걸을 수 있어 강 위를 산책하는 기분이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를 땐 구름 위를 걷는 듯하고, 해가 진 후엔 월영교 야경이 풍경을 만드니 어느 시간이든 좋은 곳이다.
글, 사진 : 조혜원(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7년 9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