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으로 본 동행의 비밀 (창 5:18-24)
18.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19.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0.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이 시간에 “에녹으로 본 동행의 비밀”이라는 제목입니다. 본문 24절에 에녹이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동행이란 히브리어 원문의 의미는 “친교, 우정, 친밀, 사랑 그리고 교통”입니다. 하나님과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11:5에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했는데, 하나님 기쁘신 뜻대로 살기가 쉽습니까? 오늘은 기쁘신 뜻대로 사는 동행의 비밀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에녹이 보여준 동행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1. 말씀과 기도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18-20절에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했습니다. 여기 잠시 에녹의 아버지를 소개했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창 5장의 고대 족장들의 계보는 셋계통의 경건한 족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에녹은 이런 족장들이 포진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담도 살아있을 때입니다. 유1:14에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라 했듯이 계산해 보면 아담의 나이 488세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담이 930세를 살았으므로 그 나이 절반밖에는 되지 않던 때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낳았다고 한 것처럼 자손에 대한 관심이 아주 클 때였습니다. 자손에서 여자의 후손인 메시야가 나오기를 갈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경건한 조상들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가운데 그들의 영적 봉사와 사랑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오늘로 치면 교회입니다. 엡4:12-13에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말씀과 기도로 이끌어주는 교회를 주셨습니다.
교회생활 잘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모이고 예배하고 사랑하고 기도하고 가르치고 전도함으로 우리 신앙을 유지 발전 전승시키는 곳입니다.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를 만나면 더 좋을 수 없지만 그렇다 해도 각자가 가르침을 따라 노력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암3:3에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한 것처럼 자기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살려면, 늘 말씀 보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 속에서 우리는 가르침과 경건한 많은 신앙의 인물들을 만나게 되고 우리가 거기서 은혜를 받을 때 그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온전한 삶으로 이끌어줍니다.
2. 경건한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21-22절에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여기 "무드셀라를 낳은 후"라는 말씀이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어떤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에녹은 무드셀라를 낳을 때 장차 올 하나님의 심판을 보았습니다.
유1:14-15에 "아담의 칠 세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이것을 다 본 사람이 에녹입니다. 그 심판 때가 무드셀라가 죽을 때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계산해 보면 노아가 태어났을 때 므두셀라의 나이는 369세입니다. 노아 600세에 홍수가 있었으므로 그때가 므두셀라가 969세로 정확히 홍수가 있던 해입니다(창7:11).
글자 그대로 므두셀라는 창 던지는 자입니다. 마을을 지키던 창 던지는 사람이 죽으면 그 마을은 점령 당하고 맙니다. 이처럼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에녹은 심판의 비참함을 영의 눈으로 보았기에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은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경건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 때부터 우리 믿음은 자라기 시작합니다. 정말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는 마음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아야 합니다.
롬14:10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했고, 벧후3:7에는“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했습니다. 회개치 않으면 이젠 물이 아니라 불로 멸망합니다.
눅13:3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함부로 하다가 개인적으로 단체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교회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이 땅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고전10:8-11에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히12:28-29에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두려운 줄 아는 경건이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3. 하늘에 속한 자로 사는 것입니다.
24절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했습니다. 세상에는 있지 않지만 에녹은 하늘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계속됨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입니까? 땅에 속한 자입니까? 세상 것을 사랑하지 말고 하늘의 속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에녹을 얼마나 기뻐하셨으면 죽음을 보게 하지 않고 하늘에 올리셨을까요? 그러므로 우리 모두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 말씀과 기도에 힘쓰고,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자기를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늘에 속한 삶을 사는 가장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