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77]길에서 만난 어느 시인과 그의 여친
오늘은 친구와 진안 마이산 탑사에서 하는 ‘칠석七夕기도회’에 동참하기로 했다. 9시 30분, 임실역 광장에 주차하고 친구를 기다리는데, 우리 또래의 남녀가 택시기사에게 진안읍내까지 얼마냐고 묻는다. 30km가 넘으니 미터기로만 4만5000원은 나올 거라고 하니 망설이는 것같았다. 마침, 우리가 진안으로 가니 우리차에 동승하면 될 것같아 살째기 언질을 하니 ‘웬 떡’인가 싶었을 터. 차 속에서의 짧은 대화가 흥미로웠다. 백종원이 추천한 진안읍내 순대집을 찾아가는 길이라 했다.
아니, 이 더운 여름날에 대중교통 편으로 그곳을 가겠다고 남원에서 올라온 길이라 했다. 알고보니 임실서 진안 가는 버스는 하루에 1대뿐, 택시비는 너무 비싸고, 대안으로 전주에서 진안을 갈 참이었다고 했다. 어느 세월에? 연신 친절하고 맘씨 좋은 귀인貴人을 만났다해 쑥스러웠다. 그저 가는 길이니 태워드린 것뿐인데. 한편으로는 ‘착한 일’ 한 것같아 기분은 좋았다. 친구도 같은 생각. 부부일까? 뭐 하는 사람들일까? 진안 공용버스정류장에 내려드리니, 팔짱을 끼면서 여자친구라 한다. 그것 참. 그럼 불륜不倫? 아니면 로맨스?
아무튼, 탑사塔寺를 오랜만에 찾았다. 주지 진성스님에 합장을 하고 11시부터 칠석기도회에 참석, 불경을 외워대는데 따라하라 한다. 1시간 가까이 경건하게 하고 있는데, 전화다. 1시간 전 헤어진 '그 남성'이다.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라고 했다. 순대국집에서 점심을 같이 하자는 것. 우리 친절에 대한 ‘웬수’를 금세 갚고 싶었던 거다. 아니면 무엇에 끌렸을까? 순대국집은 역시 맛집이었다. 공짜점심을 했으니 우아한 찾집을 가자고 했더니, 남성이 금세 찾은 집이 ‘카페공간 153’이었다. 진안읍내에 이렇게 운치있는 카페가 있을 줄이야. 북카페인데다 ‘론니플래닛’(세계적인 여행가이드북)에 소개되었다 한다. 제대로 찾았다. ‘153’은 베드로가 예수님 말씀에 하면서 던진 그물에 잡힌 물고기 수란다. 여행작가 김현두씨가 전국을 순회하며 곳곳의 ‘작은 천사(예수)’들을 만나고난 후, 느낀 바 있어 이곳에다 카페를 차렸다는 곳이다. 어쩐지, 멋지다. 장사도 될 것같다. 부디 오래 존속되길.
‘길에서 (우연히) 만난 시인과 시인의 여친’ 이야기는 계속 된다. 이제 돌아가는 길, 마땅한 차편도 없고, 가는 길이니 당연히 동승. 임실역앞 치즈카페에서 3차 모임이 이루어지면서, 얘기는 조금 더 진전됐다. 사적인 얘기를 어찌 꼬치꼬치 물어보랴. 아무튼, 돌싱인 시인남성을 찾아 서울에서 내려온 여인과 자동차도 없는 그들의 ‘맛집 순례’는 희한한 일이라면 희한한 일. 임실역부터는 나의 집을 거쳐 남원까지 아예 모셔다 드리기로 했다. 이왕 착한 일을 할 바엔 ‘턴키베이스(일괄수주)’로 하는 게 좋겠다싶었다. 내려드리고 돌아오는 길, 가만히 생각하니, 월말부부인 나로서는 그들이 은근히 부러웠다. 아무래도 영육靈肉이 자유로운 사람들 같았다. ‘나도 여친이 있으면 좋겠다’는 물론 불가능한 바람이지만, 꿈조차 못꾼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닌가. 그들은 샤워를 한 후 스킨십을 하겠지. 시인은 58년 개띠. 이 나이에 성애性愛를 하면 얼마나 하겠느냐만 말이다. 흐흐. 하지만 여름날의 사랑이 '진짜 사랑'인 것을. 키스하라!
이런 인연因緣은 틀림없이 선연善緣일 터, 악연惡緣일 까닭이 없지 않은가.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언젠가 만날 사람이라면 꼭 만나게 될 것을 믿자며 악수를 했다. 재밌게 잘 사시오. 언제까지나 그렇게 자유롭게. 하하. 그나저나 나는 오늘 착할 일 하나 했다. 일일일선一日一善, 그대 복 받을진저!
후기: 마이산 탑사와 우리집은 세교世交가 70여년에 이른다. 천지탑, 오방탑, 일광탑, 월명탑 등 돌탑들을 보신 적 있으신가? 사발 위에서 거꾸로 어는 고드름 사진을 보신 적이 있는가? 말 귀를 닮았다는 마이산馬耳山은 제법 상당히 신비로운 산이다. 그 산속에 한 도인이 생식生食(솔잎을 말려 갈아 만든 환丸)을 하며 살았으니, 이갑룡(1960-1957) 처사이다. 그가 100개도 넘는 돌탑을 쌓았다는 주인공이다. 내가 태어나던 해가 돌아가신 처사는 우리 고향집에도 다녀갔으며, 당시 30세인 아버지가 업어드리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탑사의 주인은 이처사의 4대손. 세교는 이 처사와 할머니의 인연에서 시작됐다. 아들 둘 27살 청상과부 할머니는 평생동안 마이산 돌탑에 총생들의 무탈을 빌었다. 이처사의 장손이 태고종 스님이 되어 비로소 탑사로 자리잡았다. 어쨌든 돌탑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고 신비롭다. 한국의 불가사의, 수수께끼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조부모님을 그 절에 모시기 시작하여, 4년 전엔 어머니 49재를 치렀다. 4시간이 넘게 진행된 49재가 그렇게 장엄한 의식인 줄 처음 알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당연히 주지 스님이 독경을 외고 49재도 이 절에서 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