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췄던 소나기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수면을 스치며 바람도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뜨르륵 뜨르륵!”
도치씨의 장력 12000파운드 트롤 릴에서 무지막지한 금속마찰음이 들렸다. 스풀도 조금씩 빠듯하게 역회전했다.
도치씨를 향해 어부가 말했다.
“풀린 드랙 유격을 더 잠가!”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어부가 다가와 도치씨의 드래그를 힘껏 조였다.
“드랙 유격마저 완전히 잠그면 줄이 터지지는 않을까요?”
불안해하는 도치씨에게 어부가 단호하게 말했다.
“녀석은 정면 승부할 수 있는 놈이 아니야!”
어부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블랙마린이 도치씨의 라인을 가공할 힘으로 끌어당겼다.
라인에서 악기소리가 났다.
“위위잉! 윙! 윙!”
줄의 울림에 맞춰 도치씨는 사지를 비틀었다.
사타구니의 고통을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스스로의 착각이지만 처참하게 불알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퍽!”
“으아악! 으악!”
비명을 지르며 도치씨는 가야를 생각했다.
현재까지 간직했던 불알은 가야에게 예약된 것인데 블랙마린에게 터졌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허무한 생각도 들었다.
플라스틱재활용에 게을렀던 것을 후회했다. 세상의 모든 플라스틱은 재활용되어야 하는 것을 알면서 낚시할 때도 길거리에서도 아낌없이 버린 플라스틱 때문에 죄 값을 치른다는 해괴망측한 생각도 했다.
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바다에 버린 플라스틱처럼, 방금 터져버린 자신의 불알이 재활용불가능하다면 가야에겐 무척 다행스러운 일일 것 같았다.
고통 속에서 도치씨는 웃었다.
불알 때문에 가야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고통에 비하면, 지금 블랙마린에게 터져버린 것이 가야에겐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도치씨는 작은 소리로 체념했다.
‘미안하오! 가야.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진가 보오.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면 불알이 소용없는 세상에서 만납시다.’
빗물이 흘러내렸다. 어쩌면 그 빗물 속에 도치씨의 눈물이 섞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야의 얼굴이 얼룩졌다.
가야의 고운 얼굴에 흠뻑 슬픔이 젖어 있었다. 슬픈 가야를 상상하자 도치씨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치씨는 마닐라에서 말레이시아로 날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번엔 꼭 가야에게 프러포즈 하리라 굳게 결심했다.
만약 가야가 긴급출장가지 않았다면 비즈니스 미팅을 끝내고 아름다운 셈프로나 해변에서 프러포즈할 계획이었다.
가야를 처음 만나게 된 곳은 셈프로나가 아니었다.
개발포상으로 받은 휴가를 타히티로 선택했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도착한 날밤 발생한 사이클론 때문에 낚시를 할 수 없었다.
쥐약 빨아 먹은 파리처럼 도치씨는 하루 종일 호텔엘리베이터를 타고 전 층을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워낙 거세게 내리는 비는 우산도 소용없어 호텔 캐노피 밑에도 나갈 처지가 못 되었다.
그저 비실거리며 엘리베이터에 매달려 휴가를 다 소비했다.
귀국전날 오후에 거짓말처럼 사이클론이 사라졌다.
강렬한 태양에 눈이 부셨다.
바다는 여전히 거칠었지만 깨끗하고 청순한 섬과 하늘은 더 푸르고 맑았다.
“따르릉 따르릉.”
창가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던 도치씨는 룸인터폰을 받았다.
이틀간이나 갇혀 있던 도치씨에게 호텔 측에서 야외민속춤 관람을 제안했다.
트롤낚시를 못해 마음이 썩어 내키지 않았지만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연장으로 걸어서 갔다.
사이클론이 지나갔는데도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었다.
공연장은 인공 설치물이 전혀 없는 자연 그대로의 무대였다.
도치씨는 앞자리가 비었지만 맨 뒷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통음악연주 다음 순서는 전사들이 스페인군대와 싸우는 단막역사극이었다.
연극이 끝나고, 스페인군에 맞서 처절하게 지켜낸 타히티원주민들에게 박수를 치는 사이 가슴을 녹이는 음악이 야자나무 오두막에서 울려 퍼졌다.
흐느적거리는 하와이안기타와 전통악기 우쿨렐레를 들고 등장한 8쌍의 남녀댄서가 야자수 아래 잔디위에 정열 했다.
그 순간 도치씨는 창백하게 얼어붙었다.
세 번째 댄서가 도치씨의 혼을 빼버린 것이었다.
첫댓글 역시 여자는 그렇게도 좋아하던 낚시도
도치눈은 여자 한테로만 쏠리는 군요..
ㅎ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부랙 마린 잡지도 않고 애인 생각을 하고 있네요,,ㅋㅋㅋ
ㅎ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그순간에도 가야를 생각하고 있으니
낚시도 좋아하지만 여자를 더 좋아하는가 봅니다.
ㅎ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약속 해둔 애인생각에
으연히만난 여인한테
마음이 사로 잡혔으니
낚시왕에서 연애 대장으로
유명해지겠슴니다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ㅎ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