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년전인 1923년 9월 1일 일본 제국 사가미 만을 진앙지로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8.1과 7.2 그리고 7.3의 지진이 잇따라 일어났습니다. 이틀만에 규모 6이상의 지진이 관동지방에만 무려 15번 발생했습니다. 일본정부는 그야말로 혼비백산했습니다. 정부 조직이 마비됐으며 계엄령이 선포됐습니다. 대지진이 일어난 시간이 점심시간이었기에 점심을 준비하던 각 가정과 음식점에서 불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 불이 번져 대부분 목조건물인 일본 주택을 불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지진 사망자의 90%가 화재로 인한 사망자들이었습니다.
이 대지진과 대화재로 인해 도쿄와 요코하마 치바현 등에서 10만 명에서 14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3만 7천여 명이 실종됐습니다.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사망 실종자는 동일본 지진의 6배, 고베 대지진의 16배정도입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피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지진 바로 전날인 8월 31일에 일본 규슈 지방에 태풍이 상륙했고 지진 당일에 태풍은 동해로 빠져나가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아비규환상황이었고 그야말로 설상가상의 대참사가 펼쳐졌습니다.
일제는 엄청난 혼란으로 인한 정치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말도 안되는 희대의 꼼수를 동원합니다. 바로 유언비어 생산입니다. 그 대상은 바로 일본에 존재하던 조선인들이었습니다. 일본 내무성은 긴급발표를 통해 도쿄 등 일본에서 일어난 자연재해를 악용해 조선인들이 각지에서 방화를 일으킨다면서 조선인들의 행동에 대해 엄하게 단속해 주길 바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식민지시절 일본에 가서 거주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들을 방패막이로 삼은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이른바 자경단을 만들어 조선인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면 닥치는데로 살육을 벌인 것입니다. 식민지시절 이런 저런 이유로 일본에 머물러야만 했던 조선인들입니다. 그야말로 이유도 모른 채 이국땅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조선인이 도쿄에서만 6천명이 넘었습니다. 전국적으로는 집계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본 제국의 수도 도쿄를 관통하는 스미다강과 아라카와강 주변은 조선인들의 시체로 가득찼으며 강물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일제의 만행에 대해 일본이 제대로 사죄의 자세를 취한 적도 없지만 특히 이 관동 대학살은 그냥 잊혀지는 과거사에 머물고 있습니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나라를 빼앗긴 채 참담한 나날을 보냈고 일부는 일본땅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참하게 대학살을 당했지만 지금 한국인가운데 관동 대학살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 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인물들이 독도를 한국땅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희박하다느니, 위안부로 간 여성들이 자발적이었다느니, 강제 징용당한 사람들이 강압적이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느니 하는 망발을 2024년 지금 떠드는 상황입니다.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났는데 마침 그 때 일본에 있었다라는 이유로 무참히 죽어야만 했던 한국인들에대한 과거사 기억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텐데 말입니다. 역사적 기억이 참으로 없는지, 일본이 좋아 일본식으로 판단하려는 것인지, 그냥 망각하려고 하는 지는 잘 모르지만 말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관동 대학살도 당시 조선인들의 지어낸 가짜뉴스라고 항변하고 싶을 지도 모릅니다. 뼈속까지 일본 극우정신에 함몰돼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대지진공포와 엄청난 태풍속에서도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많다고 합니다. 도쿄의 거리를 걸어면서 도쿄의 스미다강을 지나면서 지금부터 101년전 벌어진 그 대학살극을 잠시라도 생각하는 한국인이 과연 있을까 의문입니다. 유대인들 대학살에 버금가는 관동 대학살극은 역사속에 버젓이 존재하지만 지금 한국인들은 그냥 망각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친일 극우세력이 준동하고 정치 사회 요직에 등용되고 그런 인물들을 중심으로 역사교과서가 만들어지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냥 좋다고 일본행 항공기에 올라타고 일본 제품이 좋다며 줄을 서는 그런 모습을 과연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과거사가 해결되지 않고 한일양국의 진전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호박에 페인트로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될 수 없듯이 요상한 생각과 판단으로 한일관계 현안을 슬며시 땅에 묻으려고 하는 시도는 큰 비가 오면 그냥 벗겨져 흘러가 버리는 그런 물감에 불과할 것입니다. 관동 대학살극이 결코 101년전의 상황만이 아니라는 것을 한국인들은 좀 깨닳았으면 좋겠습니다. 난카이 대지진이 이미 예고되어 있습니다. 난카이 대지진과 그로인한 후지산 폭발은 관동 대지진 못지않은 엄청난 재난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일본이 또 어떻게 나올지 지켜볼 일입니다.
2024년 9월 2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