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희생해가며 집단의 위기를 타개해내는 사람을 우리는 영웅이라 부른다.영웅을 가치체계의 정점에 위치시키는 사회 집단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의 행위를 기리고 따르게 하기 위해 온갖 제도와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하지만 집단을 위기에서 구해내고자 스스로를 희생한 사람 모두가 영웅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개인주의로 위장된 이기주의가 가치체계의 구성원리로 기능하고 있는 오늘날,우리는 자신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반면,타인을 위한 자신의 희생은 영화 혹은 소설 속에나 있거나 상징 조작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라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한겨울 꼭두새벽,안개 속으로 마차 한 대가 출발한다.보불전쟁에서 패한 프랑스의 북부 도시 루앙의 시민 가운데 영향력 있는 점령군 장교들의 환심을 사 여행 허가증을 얻어낸 일단의 주민들이 대절한 대형 마차 한 대가 출발하고 있다.
그 안에는 그 지역의 명문 귀족 내외,방직공장을 여러개 가진 지방의회 의원 내외,그리고 포도주 도매상 부부를 비롯해 두 명의 수녀,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며 정계 진출의 기회를 엿보던 공화주의자 한 명,또 ‘비계 덩어리’라는 별명을 가진,성적 매력이 넘쳐나는 매춘부가 자리하고 있다.
그들의 사회적 신분 차이와 정치적 입장 대립 이전에 귀부인이나 수녀와 함께 한 ‘비계 덩어리’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마차 안의 분위기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추운 겨울날 짙은 안개와 눈발 때문에 예정된 시간에 중간기착지에 이를 수 없게 되자 마차 안의 어색한 분위기는 초조감으로 변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길을 나선 이들을 엄습한 추위와 허기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더해져 견뎌내기에 한층 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모두가 위기를 느끼고 있을 때 ‘비계 덩어리’가 바구니를 열어 준비해온 포도주와 고기를 꺼내 식사를 시작하면서 마차 안의 분위기는 일신된다.
그 누구도 말을 걸지 않던 ‘천한’ 여인에게 상스럽기로 이름난 포도주상이 아양을 떨기 시작하고,‘비계 덩어리’는 그들 모두에게 자신의 음식을 아낌없이 나눠준다.서로가 섞일 수 없었던 마차 안의 승객들을 추위와 허기에서 구해내고 이들 사이의 대화가 가능하게 한 것은 ‘비계 덩어리’의 음식이었다.
마침내 마차는 중간기착지에 이르렀고,이들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하지만 이튿날이 되고 또 다음날이 되어도 마차는 출발할 줄을 모른다. 여행 허가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을 담당하는 프러시아 장교가 이들의 출발을 허락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그의 요구는 ‘비계 덩어리’와의 잠자리였다.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자유를 찾아 탈주를 감행한 프랑스의 선량한 시민 모두는 적군 장교의 파렴치한 요구에 분노하고,그들을 추위와 허기에서 구해낸 이 프랑스 여인의 단호한 거부 의사에 절대적인 지지를 표명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자신들이 붙잡혀 있는 곳에서 곧 대대적인 교전이 있으리란 소문에 불안감이 팽배해지면서 상황은 돌변한다.적군 장교의 요구를 야만적이라 비난하던 루앙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점령자에게 거역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고,또 위기에 처한 이들로서는 자신들의 ‘수치’인 매춘부를 설득하는데 있어 죄책감을 느낄 이유를 찾기도 어려웠다.
멋진 몸매를 지닌 프러시아 장교가 적군인 게 유감이라는 귀부인의 바람기 어린 발언을 필두로 모두 이구동성으로 희생의 미덕을 이야기하지만 당사자의 저항은 완강하기만 하다.‘비계 덩어리’에게 성관계를 요구하다 무안당한 공화주의자의 침묵 속에서,급기야 모두 매춘부가 자신의 신분을 잊고 상대할 남자를 가린다는 비난을 퍼붓기에 이른다.
이제 자유를 찾는 루앙의 시민들을 묶어놓고 있는 것은 프랑스의 적이 아니라 자신들과 동행할 자격이 없는 ‘비천한’ 창녀인 것이다. 결국,신은 순수한 목적에서 행한 죄악을 용서하리라는 수녀들의 단언에 떠밀린 ‘비계 덩어리’는 프러시아 장교를 찾아가게 되고,다음날 아침 마차는 자유의 땅을 향해 출발한다.그러나 수치심에 떨며 황급히 마차에 올라탄 이 희생양을 맞은 것은 이들을 교전지역에서 벗어나게 해준 동포 여인에 대한 감사도,짐승 같은 프러시아 장교에 대한 공분도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불결한 존재와의 접촉을 피하려는 안간힘이었고,적장의 노리개에 대한 철저한 외면이었다.
차가운 침묵에서 벗어나 음식을 꺼내 먹으면서도 누구 하나 이 여인에게 음식을 권하는 사람은 없었다.수녀들에게는 음욕의 화신이 되어버렸고,귀부인들에겐 여성의 수치가 되어버렸고,프랑스 국가를 읊조리는 공화주의자에게는 적군의 위안부가 되어버린 ‘비계 덩어리’는 허기와 수치 그리고 분노로 눈물을 흘릴 따름이다.
대가없는 희생만이 진정한 희생일 것이다.하지만 오늘의 사회는 타인의 희생만을 요구할 뿐이다.자신의 희생을 거부함은 물론,타인의 희생을 인정하는 것조차 거부한다.
귀족에서 천박한 상인에 이르기까지,보수파 정치가에서 공화주의자에 이르기까지,또 누구에게나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수녀는 물론 행실이 가벼운 귀부인 할 것 없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들을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자신의 음식과 몸을 바친 ‘비계 덩어리’를 짓밟고 있는 것이다.
식욕과 성욕을 밑그림으로 보불전쟁 당시의 프랑스 사회를 풍자하고 있는 모파상의 ‘비계 덩어리’는 거꾸로 쓴 영웅담일 수 있고,곧 희생에 근거한 영웅의 시대에 대해 공식적 종언을 고한 이야기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