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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옥누이 : cafe.daum.net/sinby0727
제 3 회. MT의 추억?!
(1)
통화 연결음 대신 익숙한 팝송 멜로디가 흐른다. 노래 한곡이 다 끝나도록 전화를 받지 않는다.
훗 - ♡ 네가 이런다가 내가 포기 할 줄 알고???
난 끈질기게 ‘붉은 머리’ 라고 적힌 번호위에 통화버튼을 꾸욱 눌렀다.
흥얼거리며 이젠 조금씩 익숙해지는 멜로디를 따라 부르는데 잠시 후, 음악이 끊기며 갈라지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붉은 머리가 외친다.
“ 아쒸- 누가 새벽부터 전화질이야!! ”
“ !! ”
아우. 깜짝이야.
이 녀석, 아무리 7시에 전화했기 소로니 여섯 번 만에 전화 받으면서 나한테 소릴 질러?
“ .. 야. 삐졌냐??? ”
붉은 머리가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난 버스가 완전히 출발할 때까지 계속 토라진 척 하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붉은 머리는 MT 안 간다고 생난리를 쳤을 것이다.
녀석은 MT에 가지 않기 위해서 총무나 과대까지 피해 다녔고 나한테도 그곳에 갈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장담했다.
“ 야.. 진짜 말 안 할 거야? ”
“ ... ”
좋아. 차도 출발했고 하니 이제 슬슬 용서해줄까?
“ 앞으로 한번만 더 내가 전화할 때 고함질러 봐. 일 년 동안 말 안 할 테니까.. ”
“ 누가 A형 아니랄까봐. 알았어. 앞으론 너 번호인지 확인하고 고함지르도록 하지. ”
차가 고속도로를 들어서자 붉은 머리도 MT안가는 걸 포기했는지 창을 바라보며 조용히 있었다.
붉은 머리 MT끌고 오기 성공~ 흐흐..
기차처럼 길게 늘어진 열대의 버스가 꾸불거리며 나란히 고속도로를 달린다.
한참을 그렇게 산길을 달리다 넓고 긴 다리 위를 덜컹거리며 건넜다.
그러자 다리 아래로 맑은 강물이 보이며 강촌에 들어섰다.
“ 우와. 강촌이다. ”
난 붉은 머리 몸 위로 얼굴을 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 이그~ 이 촌닭. 강촌 처음 왔냐? ”
“ 응. 처음이야. 그럼, 하수 넌? ”
“ 야.. 당연히.. .. 나도 처음이지. 내가 언제 와봤겠냐? 키킥. ”
칫. 그러면 그렇지.
길 양옆으론 다양한 숙박시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버스는 우리가 머물 콘도 주차장 앞에서 멈췄다.
숙박 집은 마치 그림에서나 나올법한 유럽식 대 별장처럼 생기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크고 멋진 3층짜리
건물이었다. 하긴 이렇게 많은 인원이 자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노랗게 말라버린 잔디정원에는 나무 테이블과 바비큐그릴도 보였다. 흐흐..
그리고 그 옆엔 족히 수십 박스는 되어 보이는 엄청난 양의 소주와 맥주들이 쌓여 있었다.
허걱. 설마 저 술들이 다 우리가 마실 건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남자 선배들이 또 엄청난 양의 안주들을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안주들은 좋아하지만) 저 많은 양의 술들을 보니 오늘 밤이 심히 걱정된다.
그때 4학년 과대가 나왔다.
4학년 과대는 우리 1학년 호리한 여자 과대하고는 달리 어깨도 떡 벌어지고 무섭게 생긴 남자였다.
진짜 사람 몇 명 잡게 생겼네.
“ 자. 이제부터 각 조장들이 앞으로 나와서 자신들의 조원을 부르겠습니다.
조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골고루 섞었고 모든 MT 일정을 함께 할 것입니다. ”
조장들이 나와서 (모두 4학년 선배들이었다) 호명하기 시작했다.
학년별로 줄 지어 서 있던 학생들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앞으로 나가 조별로 앉았다.
난 붉은 머리 옆에 찰싹 달라붙은 채 귀를 쫑긋 세우고 내 이름을 부르기만을 기다렸다.
“ 은하수, 8조 ”
그때 붉은 머리 이름이 불리며 벌떡 일어났다.
“ 나 먼저 간다. ”
붉은 머리는 무뚝뚝하게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렸다. 흑흑.. 나쁜 뇬..
“ 노하늘, 12조 ”
드디어 내 조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하수와 다른 조다. 이런..
난 뻘쭘한 표정으로 조로 들어가 앉으려 하는데 은영이가 손짓하는 게 보였다.
“ 하늘아. 이쪽으로 와~ ”
아. 은영이가 있었구나.
붉은 머리의 질투로 친해질 뻔했다가 기회를 놓쳤던 친구.
“ 어머, 지지배. 나랑 같은 조네. ”
“ 그러게. 다행이다. 하늘이랑 같은 조라서 말이야. ”
우리는 재잘재잘 거리며 조장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20명이 다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고 깨끗했다.
큰 거실과 부엌, 작은 방도 3개나 되었다.
작은 방에는 넓은 침대도 딸려 있었다. 우리는 양말도 벗지 않고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 너무 폭신폭신하다~ ”
“ 이대로 잤으면 좋겠어. 헤헤. ”
우리가 이렇게도 좋아하는 것도 잠시.
조 조장이 들어와 각 방문을 열며 소리쳤다.
“ 지금 당장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정원으로 집---합!!! ”
이제 막 쉬려고 하는 데 또 무슨 집합.
사람들은 툴툴거리며 옷을 갈아입고 정원으로 집합했다.
날씨는 아직 4월 초라 티와 추리닝만 입기엔 추웠다.
싸늘한 바람이 한번 스칠 때마다 우린 몸을 부들부들 떨며 어깨를 움츠렸다.
“ 이렇게 추운데 왜 부른 거야. ”
“ 그러게. ”
“ 이제부터 제대로 구르는 거지. ”
어디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어느새 붉은 머리가 옆에 와 있었다.
붉은 머리는 나와 은영이 사이에 끼어들며 은영이를 살짝 옆으로 밀쳐냈다.
“ 하수♡ 너무 보고 싶었어. ”
잠깐 떨어진 것뿐인데 이렇게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 너 내 말 안 들은 대가로 이제부터 눈물 쏙 빠지도록 고생할거다. ”
“ 응.. ? ”
그때 우리 앞에 4학년 과대 선배(이하 조교라 하겠음)가 빨간 모자에 검은 선글라스, 군인바지를 입고
등장했다.
“ 여기서 강변까지 뛰어 간다~ 실시!! ”
“ 네에?? ”
조교의 말에 다들 어이없다는 듯 반문했다.
설마 강변이라면 아까 강촌 들어왔을 때 보였던 다리 입구 쪽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 다들 귀가 먹었나? 뛰어 간다~~ 실~~~~~시~~~~ㅅ~~~~~~!!!!!!! ”
우린 아무런 준비운동도 없이 족히 40분 되는 거리를 헥헥 거리며 뛰어갔다.
4학년 선배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용달차를 타고 우리 옆을 따라 붙으며 감시했다.
“ 어이 거기 후배~ 시방 지금 걷는 거 아닌감? 좀 뛰지? ”
게다가 약까지 올리면서..
오랜만에 뛰는 거라 심장이 터질 것 같이 쿵쿵 거렸고 얼굴에서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왔다.
그에 비해 붉은 머리는 별로 힘든 기색 없이 성큼성큼 잘 뛰었다.
주위가 샛노랗게 보일 때쯤 강변에 도착했고 우린 풀밭에 주저앉아 버렸다.
“ 하이고. 죽겠다. 헥헥.. ”
“ .. 이건 시작에 불과해. ”
붉은 머리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미리 (용달차로) 도착한 조교가 호루라기를 삑삑 불며 소리쳤다.
“ 누가 앉으라고 했나. 당장 일어난다!! ”
“ 아쒸.. ”
학생들이 불만을 토했다. 그러자 조교의 이마에 川 자가 그려지며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 아.. 쒸... ? .. 지금 그 말 한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다들 뒤로 취침!! ”
“ 헉! ”
후배들은 투덜거리면서 뒤로 눕기 시작했다.
3학년 선배들은 슬쩍 분위기를 살피며 한 명씩 옆으로 빠졌다.
“ 너희들 똑바로 해. 똑바로. ”
후배들 핀잔을 주며 4학년 선배들 틈으로 낀다.
그러자 4학년 선배들이 눈을 가늘게 뜨며 쳐다봤다.
“ 너희들은 왜 안 누워? ”
“ 아이 참~ 선배님들. 후배들이 있는데 어떻게 저희가.. 하하하.. ”
3학년 남 선배 한 명이 4학년 선배 배를 팔꿈치로 쿡 찌르며 웃었다.
그러나 4학년 선배들은 굳은 표정으로 차갑고 단호하게 말했다.
“ 누워. ”
은근슬쩍 빠져보려 했던 3학년 선배들까지 우리 무리에 끼며 기합을 받았다.
“ 앞으로 취침!! ”
“ 뒤로 취침!! ”
“ 옆으로 굴러!! ”
“ 포복 전진!! ”
“ 단체 어깨동무 실시!! ”
“ 그 상태로 동시에 뛴다. 한번 파도타기 일어 날 때 마다 2번씩 추가. ”
“ 저 큰 가로수까지 오리걸음 ”
“ 어허!!! 똑바로 못하나? 다들 기가 빠져가지고!!
이러니까 하늘같은 선배를 우습게보지!! ”
얼마나 뒹굴고 굴렀는지 가지고 온 핑크색 추리닝은 까매지고 종아리와 허리가 부러질 듯 쑤셨다.
그렇게 두 시간 넘게 기합을 받고 숙소로 돌아 왔을 땐 기진맥진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에
누워 버렸다.
“ 하이고. 죽겠다.. ”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바지를 걷어 보니 무릎이 까져 피가 나고 있었다.
어깨동무 뛰기 할 때 앞으로 미끄러지며 넘어졌고 그 바람에 도미노현상이 일어나며 맨 아래에 깔리고
말았다.
“ 이게 무슨 MT야. 극기 훈련이지. ”
상처 난 부분을 호~ 불었다. 빨갛게 상처 난 부분에 입김이 닿자 쓰라릴 듯 아팠다.
그때 어디서 구했는지 붉은 머리가 밴드를 뜯어 내 무릎에 붙여 주었다.
“ 바보야. 그러니까 오지 말자고 했잖아. ”
“ 흑.. 네가 또 뻥치는 줄 알았지. ”
“ 얘가 나를 뭘로 보고. 누가 들으면 내가 매일 너 속이는 줄 알겠네. ”
붉은 머리가 눈썹을 찌푸리며 밴드 붙인 무릎을 손바닥으로 탁- 때렸다.
아이고 아파라. 뭐 틀린 말은 아니잖아.
그래도 이번엔 붉은 머리가 옳았다. 이건 진짜 후배들 잡기 MT다.
그때 베란다에 서 있던 여학생들이 호들갑을 떨며 들어왔다.
“ 저쪽 도로 건너편 숙박 집에 우리 학교 연극영화과 사람들이 왔대 ”
그러자 방에 누워 있던 여학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베란다로 뛰어갔다.
“ 진짜?? 단체 MT라면 이중기 선배도 왔을 거 아냐. 웬일이니~ ”
이중기는 2학년 선배로 최근 뜬 인기 영화배우다.
우리학교 연극영화과엔 연예인이나 방송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호기심 때문에 몇 번 연극영화과 건물에 간 적이 있는데 운이 없어서 그런지 연예인은 한 번도
보질 못했다.
“ 바보들. 연예인이 MT에 왜 오냐? ”
붉은 머리가 중얼거렸지만 여학생들의 비명소리 때문에 묻히고 말았다.
붉은 머리는 아예 우리 방에 눌러 앉을 참인지 은영과 나 사이에 끼어 앉아 움직이질 않았다.
저녁이 되자 숙소 앞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타닥타닥..
바비큐 그릴안의 숯이 타들어 가고 철망 위에 올려 논 고기들이 지글지글 익으며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숯 안에는 은박 호일로 감싼 큼직한 고구마들이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숙박 집 주인은 가위와 집게를 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고기를 구워주었다.
하얀 소금을 머금은 고기는 노릇하게 구워지며 내 코를 자극했다.
고기는 이제 막 익어 가는데 테이블에선 벌써부터 술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조별로 테이블에 앉아 가지고 온 술을 마시며 친목을 다졌다.
난 춥기도 했지만 익으면 제일 먼저 한 점이라도 먹어 볼 생각으로 바비큐 그릴 옆에 쪼그리고 있었다.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고기들이 서로 입에 넣어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아까부터 눈으로 찜해 놓았던 고기 한 점이 노릇하게 익었다.
그래. 내가 기꺼이 너를 먹어주마. 선택받은 고기야. 흐흐..
난 나무젓가락을 들어 고기를 집었다.
그리고 손바닥 위에 쌈장과 구운 마늘, 김치를 듬뿍 올려놓은 상추에 고기를 올리고 입에 막 넣으려
할 때였다. 내 입보다 먼저 다가온 다른 입이 내 상추쌈을 스윽 낚아챘다.
“ 우물우물~ 맛있다. 딴것도 구워봐라. 노란하늘~ ”
어디서 나타났는지 태원이 놈이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예정대로였다면 내 입에 있어야 할) 상추쌈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 너.. 너.. 너가 왜 여.. 여깄어?? ”
너무 놀라 말까지 더듬거리는 날 보며 태원은 얄밉게 씨익 웃었다.
“ 왜 있긴. 나도 여기 MT왔지. ”
“ 뭐? 너 우리 과 아니잖아. ”
“ 연극영화과. 우리 요 앞 건너편에 MT왔는데 몰랐냐? 나한테 관심 좀 갖지~? ”
놈은 아예 내 젓가락을 뺏어 낼름낼름 고기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이 녀석이 연극영화과였어? 난 잠시 고기를 먹어야 하는 것도 잊은 채 놈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그때 붉은 머리가 나타나 태원의 뒤통수를 갈겼다.
“ 이 기생충 같은 놈!! 누가 하늘이꺼 뺏어 먹으랬어. ”
“ 이 자식!! 먹을 때는 개도 안 때린다는데.. ”
둘은 목덜미를 잡으며 싸웠다.
으이그. 아무튼 저 녀석들은 만났다 하면 싸워.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먹는데 바빠서 아무도 놈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 왜 거기서 안 놀고 여기 왔어? ”
난 두 사람을 떼어 놓으며 물었다.
“ 자기만 잘난 줄 아는 녀석들과 도통 놀 수 있어야지.
누가 여기에 너희 과 MT왔다고 하기에 냉큼 달려왔지. 크큭. ”
태원이 능글맞은 표정으로 키득 거렸다.
그 녀석 누군지 참~
잡히기만 해봐라. 주둥이를 꿰매 놓을 테다.
두 놈은 티격 거리면서도 고기를 잘도 주워 먹었다.
어둡고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다른 과 학생이 몇 명 더 왔다 하더라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질세라 얼른 다른 젓가락을 가져와 열심히 고기를 먹었다.
“ 쟤.. 이태원 아냐?? ”
이놈들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던 은영이 어느새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 맞아. 태원이 알아? ”
“ 응.. 같은 사립유치원 나왔어.
유치원 때까진 같은 나이였는데 생일이 빨라서 학교를 일찍 들어갔어.
여기서 만나니까 선배가 되어 있네. 우습다. “
“ 그러게. ”
“ 여기 MT왔다더니 놀러왔나 봐. ”
“ 칫. 안 오면 더 좋았을 것을.. ”
난 놈이 안 들릴 정도로만 중얼거렸다.
은영은 고기를 먹으면서도 가끔씩 태원을 보는 것 같았다.
“ 모델 활동 한다던데 한가하나 보네. ”
풋- 은영의 말에 먹던 콜라가 코로 나올 뻔 했다.
“ 쟤가 모델?? 하. ”
“ 응. 너도 알만한 잡지모델도 하고 CF도 몇 개 찍었어. ”
“ 근데 왜 난 한 번도 못 봤지? ”
“ CF라 해도 멀리서 찍어 얼굴만 간신히 알아볼 정도니까..
솔직히 웬만한 스타 아니면 TV에 나와도 잘 모르잖아. ”
“ 하긴.. ”
은영의 말에 왠지 씁씁한 생각이 들었다.
이게 연예계 현실이지. 정상급 스타 아니고서야 누가 기억이나 하겠어.
.. 우리 아빠처럼.. .. 말이지..
저녁 먹고 뒷정리가 끝나자 다들 숙소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은영이와 팔짱을 끼고 들어가려 하는데 뒤에서 붉은 머리가 불렀다.
“ 하늘아. ”
“ 응? 왜? ”
붉은 머리가 작게 속삭이며 말했다.
“ 우리 드라이브 가지 않을래? ”
“ 헥? 드라이브?? 어떻게? 차도 없잖아. ”
“ 없긴~ 큭 ”
옆에서 태원이가 차 키를 흔들어 보였다. 아. 저 녀석 차가 있다고 했지..
.. 그런데 잠깐. 어떻게 MT에 차를 갖고 올수 있지? “
“ 차 어떻게 갖고 왔어? ”
“ 바보냐? 타고 왔지 어떻게 와. ”
“ 하지만 MT잖아. 버스 타고 안 왔어? ”
“ 이런 단순빵 같으니.. 고등학생 수학여행도 아니고 반드시 버스타고 오라는 법 있어?
우리 과는 대부분 차가 있으니까 개인적으로 차 몰고 온 사람들 많아. ”
아무튼 부자들이란..
“ 갈 거야. 말 거야? ”
“ 하.. 하지만 안가면 선배들한테 혼나는 거 아냐? ”
“ 큭. 사람들이 많아서 한두 명 빠져도 몰라. 가봤자 술밖에 더 마셔? ”
하긴, 아까 봤던 어마어마한 양의 술 박스를 보니 도저히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난 술을 세잔 이상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저번 담배 트릭 사건 때처럼 억지로 마시게 한다면 뻗어버리
거나 어떤 추태를 부릴지 모른다.
차라리 이 녀석들을 따라 드라이브를 가는 게 더 현명한 일인지도 모른다.
태원이 녀석의 차는 자신의 숙소 뒷마당에 있었다.
마당엔 마치 부자들 가든파티라도 열린 것처럼 고급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숙소도 우리 숙소하고는 비교도 안될 만큼 멋있는 서양식 주택 건물이었다.
역시 우리 과 하고는 다르구나.
삑 소리가 나며 태원이 녀석 차 앞 라이트가 깜빡거렸다.
헉. 역시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르지 않은 멋진 검은 외제차였다.
게다가 이게 말로만 듣던 그.. 컨버.. 머시기.. 아무튼 오픈카다.
내 생에 이런 차를 타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옆에 있는 은영이 또한 나의 반응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은영이도 입을 반쯤 벌린 채 차를 바라보았다.
“ 침 좀 닦아라. 쯧 ”
태원 놈이 차에 타며 말했다.
짜식. 무안하게.. .. 그래도 기분은 좋네. 헤.
나와 은영은 신기한 표정으로 뒷좌석에 탔고 붉은 머리는 조수석에 앉았다.
우리를 태운 차가 신나게 도로를 달렸다.
하지만 역시 위가 닫혀 있으니까 오픈카를 탔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 저기 있잖아. 이거 위에 열면 안 될까? ”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태원의 옆에 앉아 있던 붉은 머리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 뭐? 그거 열면 추워 죽어!!! ”
“ 힝~ 그래도 한번만 열어보자. 응? 나 이런 차 꼭 한번 타보고 싶었단 말이야. “
결국 내 고집에 손 들은 태원은 딱 1분만이야 하며 오픈 시켰다.
까만 덮개가 천천히 뒤로 넘어가며 갑자기 찬바람이 얼굴을 엄습 했다.
손을 차 밖으로 빼자 차가운 강바람이 손끝을 스쳤다.
쿵쾅 거리는 음악소리가 귀에 거슬리긴 했지만 뭐 나쁘진 않다.
강 아래 비친 초승달이 흔들흔들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아까 기합 받고 했던 건 어느 새 다 잊어버리고 기분 진짜 최고다.
난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국 영화에서처럼 소릴 질렀다.
“ 야~~~~~~~~~호~~~~~~~~~”
... ...
하지만 사실 이건 내 상상일 뿐.
현실은 세찬 바람이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에 눈도 제대로 한번 떠보지 다시 앉아야 했다.
“ 노란하늘이 오늘 완전 미쳤구나. ”
태원은 백미러로 날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 칫. 너무 기분 좋아서 소리 지르려고 했던 것뿐이야. 영화 보니까 이렇게 하던데.. ”
무안해진 난 입을 삐죽였다.
“ 드라마나 영화 보고 따라하는 애들이 꼭 있다니깐.. ”
옆에서 은영과 붉은 머리가 킬킬 거렸다.
차는 한참을 달리다 어느 강가 앞에서 멈췄다.
우린 바위 위에 걸터앉아 숙소에서 몰래 챙겨온 캔 맥주를 땄다.
얼음같이 차가운 맥주와 싸늘한 강바람 때문에 몸이 오싹거렸다.
“ 후아~ 맥주가 맛있는 건 처음이다. ”
입에서 연기처럼 하얀 입김이 나왔다.
으스름한 밤의 강변은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우릴 취하게 만들었다.
우뚝 솟은 검은 바위산 뒤로 하얀 초승달이 영롱한 빛을 뿜고 있었다.
“ 맥주 많으니까 실컷 마셔. 이 기사가 알아서 숙소까지 모셔다 줄 거야. 키킥. ”
“ 누구보고 기사라는 거야? 나도 술 마실 거니까 걸어가든 날아가든 알아서 해. ”
“ 안 돼. 음주운전하다 걸리면 어쩌려고. 넌 거기 오징어나 씹어. ”
붉은 머리는 태원의 맥주를 빼앗으며 말했다.
“ 두고 보자. 너희들, 취하기만 하면 도로 한쪽에다 버려두고 갈 거니까. ”
“ 킥. 내가 고작 맥주 몇 개로 취할 것 같아? ”
태원의 협박에도 붉은 머리는 눈 한번 깜짝 안하며 코웃음 쳤다.
이놈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내가 가장 위험했다.
옆에서 말없이 홀짝홀짝 마시는 은영이를 보니 얘도 은근히 센 것 같다.
혹시나 취중에 버려두고 갈까봐 조금만 마시려 노력하는데도 오늘따라 맥주가 자꾸만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갔다. 술술 넘어가서 술이라더니 그 뜻을 이제 알 것 같다.
우리 뒤로 태원의 검은 차가 보였다.
“ 나 저런 차는 처음 타봐. ”
“ 킥. 촌닭~ 이 오빠한테 잘 보이면 뭐 한 번 정도 더 태워 줄 순 있어. ”
태원이 녀석이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놈은 술을 마시지 못하자 나를 약 올리는 것으로 분풀이 할 셈인가 보다.
“ 누구보고 촌닭이라는 거야. ”
“ 하수도 차 있는데 안 태워주디? ”
“ 켁! 하수가 차가 있다고?? ”
난 놀라운 표정으로 붉은 머리를 바라보았다.
한 번도 붉은 머리가 차를 몬 것을 본적이 없다.
붉은 머리는 늘 버스와 지하철만 이용했던 것이다.
“ 아빠가 수능시험 친 기념으로 사주신 게 있긴 해. 순 기름만 잡아먹는 차지. ”
나의 놀라운 표정에도 붉은 머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기름 값이 나오면 얼마나 나온다고.. 구두쇠. ”
“ 너한텐 고작 몇 만원의 기름 값 일진 몰라도 나한텐 아르바이트 몇 개를 뛰어야 그 차 유지 할까
말까야.“
“ 그래. 평생 넌 그렇게 살아라~ 흥. ”
태원의 빈정거림에도 붉은 머리는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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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옥이입니다.
이번은 MT편입니다.
이거 보니 처음 대학교 들어가서 MT때 무지하게 기합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_-;;
후배 잡는다고 바닥 구르고 어깨동무하고 뛰고.. 그래서 우리가 선배가 되었을 때는
이런 관행을 없애자며 하지 않았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나이 한 두 살 정도는 친구사이로도 남을 수 있는데 그땐 왜 그렇게
선배 행세를 하려고 했었는지.. 참..
MT배경으로 나온 강촌은 만화 학원 사람들과 함께 갔던 기억을 토대로 썼습니다.
혹시 강촌 안 가보신분들은 한번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후후..
첫댓글 ㅎㅎ 옥이님~^^ 저예요!! 와우@.@헤~ 하수랑 노을이 좋아요!! 어쩜 좋아?>.<ㅋ 근데 옥이님 제가 요즘 19금?? ㅡ.ㅡ 암튼 소설을 쓰고있는데~ 올려도 될까요?? 퇴짜맞는거 아니예용?? ㅠ0ㅠ
홍연백향님 감사합니다. 19금이라고 제목에 쓰지 않으면 상관없는데 너무 선정적이지 않으면 괜찮은 걸로 알고 있는데 ^^ ㅎㅎ 전 써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MT편도 기대했던것 만큼 재미 있었어요~ 새록새록하는게, 하늘이가 구르고 뒹굴고 하는 부분에선 저도 모르게 헐떡였다는;; 능청스런 태원이 너무 귀여워요>_< 담편도 원츄원츄>_<
아로님 감사합니다. 늘 재밌게 읽어주시고 힘이 불끈솟는 옥이랍니다. 태원이의 특기라면 역시 오만하면서도 능청떠는 모습이 아닐런지 후후.. 두 사람이 어떻게 되어갈지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
엠티..제가 하고싶은거.. 고등학교졸업하고바로 취업해서 대학을 못갔는데..이제 슬슬 대학갈준비할려구요..그래도 엠티 완전 기대.. 아..님 소설 재미있어요.. 저도 강촌가보고싶네요^^
달콤한초콜릿님 감사합니다. 꼭 공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도 대학은 한번은 다녀야 할곳인것 같습니다. 엠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정말 재밌었다는.. ^^ 후후.. 초콜릿님도 꼭 대학가셔서 하늘이 같이 재밌는 캠퍼스 생활을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분명 좋은 추억으로 남을겁니다 ^^
ㅋㅋ 이번 엠티편 잘 읽었습니다. 엠티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 주신것 같네요. -.,,- 후후..
bc코드님 감사합니다. 엠티가 전체학년 엠티와 같은학년끼리 가는 엠티가 있죠.. 전 개인적으로 같은 학년끼리 가는 엠티가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엠티라고 해봤자 거의 술만 먹고 온다는.. ㅋㅋㅋ
아..MT편 전 학기초에 잠깐 학교다니다가 적성에 안맞아서 바로 휴학계내고 사회에 뛰어들어서..MT또한 동참하지못했지만..저정도일줄이야.. 뭔가 새로운 느낌을 접한듯 아 근데 왜자꾸 전 하수가 맘에 들까요...이러다 커밍아웃하는건 아닐지.. 책임져요
이치고 이치에님 감사합니다. 학교마다 다 다르긴 하지만 어떤 학교는 저것보다 더 빡세게 하는 곳도 있답니다 ^^; 저도 개인적으로 하수를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태원의 등장으로 점점 하수의 등장횟수가 줄어든다는 ㅠㅠ ;; ㅋㅋ 그래도 하수 계속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캬~~ >_<
이아이들의 정체가 뭘까요? ㅋㅋ 이중기가 누구랍니까?? ㅋㅋ
소심한얍삽녀님 감사합니다^^ 다 아시면서.. ㅋㅋㅋ .. 아.. 영화배우 이준기를 실제로 몇번 봤는데.. 정말 뻑가게 잘생기셨더군요.. ㅠㅠ 아.. 역시 배우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사실..
근데 왜 붉은머리 하수가 저는 남자같죠 ㅋㅋ;; 한 2편?부터 남자로 보였어요 ㅋㅋ;; 어쨋건 너무 재미있네요!! 오랜만에 제 취향에 딱맞는 소설 봐서 너무 좋아요 . 흥미진진~!
야바스류블루님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옛날거 들어왔는데 리플이 달려 있어 너무 기뻤답니다.. ㅠㅠ 아무쪼록 끝까지 재밌게 봐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