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을 배우자..
행복과 불행은 같은 지붕 밑에 살고 있으며, 번영의 바로 옆방에 파멸이 살고 있고 성공의 옆방에 실패가 살고 있다.
내가 튼튼하다고 믿고 있는 지반은 사실은 언제나 무너질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가진 불안한 자리라는 것을 우리는 응시하고 깊이 자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불안정하고 믿을 수 없는 것에다가 우리의 발을 붙일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동자를 모름지기 영원한 것에 두어야 한다. 내가 서는 자리가 불안한 자리라는 것을 알때 우리는 튼튼한 것, 영원한 것을 찾게 될 것이다.
불안은 실존으로 하여금 영원한 것을 찾게 하는 하나의 발판이 되고 인연이 되며 계기가 될 수 있다. 불안은 우리에게 종교의 세계를 지향하는 하나의 복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불안을 배워야 한다." 불안을 바로 배운 사람은 인생의 최고의 것을 배운 사람"이라고 키에르케고르는 말하였던 것이다. 여기에 불안의 깊은 철학적.종교적 의미가 있다. -안병욱님의 글에서-
*눈물은 정성의 상징이다..
사람은 피를 흘려야 할 때가 있고 눈물을 흘려야 할 때가 있고 땀을 흘려야 할 때가 있다.
피를 흘려야 할 때에 피를 흘리지 않으면 딴 민족의 노예가 되기 쉽다. 눈물을 흘려야 할 때에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인생의 냉혈한이 되기 쉽다. 땀을 흘려야 할 때에 땀을 흘리지 않으면 사회의 패배자가 되기 쉽다.
눈물은 정성의 상징이요, 양심의 심볼이다. 눈물을 화학적으로 분석하면 약간의 염분과 댜량의 수분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눈물 속에는 화학적으로 도저히 분석할 수 없는 정신적 가치가 있다. 그 정신적 가치는 햔량없이 크고 깊다.
그리고 그 종류는 다체다양하다.
죄인이 흘리는 눈물 속에는 맑은 양심의 가책이 있다.
오랜 이별 끝에 만나는 부부나 모자의 상봉의 눈물 속에는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이 있다.
구사일생으로 죽음을 면한 조난자의 눈물 속에는 생을 다시 찾은 한없는 감동이 있다.
분투 노력으로 영광을 차지한 승리자의 눈물 속에는 자기의 전력을 다한 보람찬 감격이 있다. 8.15해방으로 일제의 사슬을 벗어났을 때 우리 겨례가 흘린 눈물 속에는 자유의 기쁨과 폭발이 있었다.
눈물 한 방울의 값을 친다면 진실로 한량이 없다. 눈물은 인생에서 가장 순수한 것이다. 가장 맑고 아름다운 것이다. 가장 순수한 것이다. 가장 맑고 아름다운 것이다.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감명을 주고 감격을 불러일으킨다.
울어야 할 때에 울지 않는 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다.
우리는 울 때에는 울어야 한다.
도산은 나라의 운명이 멸망 속으로 기울어져가는 민족 쇠운을 보고 가슴을 치고 울었다.
눈물이 메말라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인정의 눈물, 사랑의 눈물, 감사의 눈물, 감격의 눈물, 참회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자가 정말 사람다운 사람이다.
우리의 가슴속에는 항상 맑은 눈물의 샘이 흐르고 있어야 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은 벌써 인간이 아니다. 그는 동물의 차원으로 전락한 것이다. 눈물은 인간을 심화시키고 향상시키는 정신의 깊은 원천이다. 우리는 이 원천을 메마르지 않게 해야 한다. -안병욱님의 글에서-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_()_()_()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감사합니다_()_()_()_
불안은 안정되지 못하는 마음의,,,
진리에 대한 의문이라고 볼 수 있어서,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불만은 욕심을 채우지 못한 욕망으로서
절대 가져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예 그렇지요 감사합니다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