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 별은 / 이상국
내가 사는 이 별은 대추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 백 년도 넘게 대추를 따고 사람 하나 땅에 묻으면 수천 마리 구더기를 먹이는 곳 여기서는 고래가 고래를 기르고 바이러스가 바이러스를 낳을 뿐, 별도 살던 집이 있어 흐르는 강 날아가는 새 길가의 돌멩이 어느 것 하나 특별한 것은 없다 내가 사는 이 별은 원래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자던 곳, 사람들은 쓸데없이 높은 집을 짓고 일을 너무 많이 한다 별도 집으로 가고 싶다
- 『시와징후』 2024년 가을호 -------------------------------
* 이상국 시인 1946년 강원 양양 출생. 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강원대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1976년 《심상》 등단.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 『뿔을 적시며』 『달은 아직 그 달이다』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등. 문학자전 『국수』. 1999년 백석문학상, 2012년 정지용문학상, 2013년 박재삼문학상, 2014년 현대불교문학상 등 수상 *************************************************************************** *** 새벽에 비가 내리더니 출근길 제법 쌀쌀합니다. 비릿한 가을 냄새를 맡으며 오랜만에 이상국 시인의 신작시를 읽습니다. - 내가 사는 이 별은 이상국 시인만큼 지구라는 이 별을 아끼는 시인이 있을까요. 우리가 사는 이 별이 어떤 별인지, 지구과학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은 사실들을 우리는 기꺼이 시인들에게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둠의 거울이었던 고향집 우물은 메워지고 이제 내 사는 곳에서는 별에게로 가는 길이 없어 - 이상국, 「별에게로 가는 길」(『집은 아직 따뜻하다』) 부분 산에서 자본 사람은 알겠지만 밤에도 숲이 물결처럼 술렁이는 건 나무들이 별 수리하느라 그러는 것이다 - 이상국,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부분 하늘에서는 다른 별도 반짝였지만 우리 별처럼 부지런한 별도 없었다 그래도 소한만 지나면 벌써 거름지게 세워놓고 아버지는 별이 빨리 돌지 않는다며 가래를 돋워대고는 했는데 그런 날 새벽 여물 끊이는 아랫목에서 지게 작대기처럼 빳빳한 자지를 주물럭거리다 나가보면 마당에 눈이 가득했다 나는 그 별에서 소년으로 살았다 - 이상국,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부분 아마도 우리는 높이 밤마다 우리를 올려다보는 다른 존재들의 하늘이리라. 그곳의 시인들은 우리를 칭송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우러러 기도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우리는 우리에게 결코 이르지 못하는 낯선 저주들의 목표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들이 외로이 울 때마다, 우리의 높이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신의 이웃인지도 모른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분수들에 대하여」 부분 어느 사이엔가 별을 잊고 살다 보니, "사람들은 쓸데없이 높은 집을 짓고/ 일을 너무 많이 한다"는 시인의 한마디를 메모해두는 아침입니다. 2024. 9. 2.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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