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없이 바라보기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언제부터인가 예술에 대한 관심을 거두었다. 대단하다며 온갖 찬사를 퍼붓거나 의미를 부여해도 그 모든 것은 감각기관에서 추구하는 가치들이지, 그 이상은 아니라고 여겼던 때문이다. 다시 말해, 눈, 귀, 코 혀, 몸, 마음 차원에서나 지어내고 찬탄하는 것일 따름이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이왕이면 이런 감각 차원의 것들보다 좀 더 높은 차원의 것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라보는 층위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육안(肉眼)은 대상의 형태, 색깔, 크기 등을 보는 것인데, 이것의 한계는 속을 보지 못하고 특히 자기가 원하는 것이나 본다고 한다. 천안(天眼)은 대상의 속은 물론 앞뒤를 다 보는 것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과거나 미래까지도 다 보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이것을 신통력 중의 하나라고 일컫는단다. 혜안(慧眼)은 대상에 관련된 모든 조건이나 상황을 다 알 뿐 아니라, 그것에 따라 변화할 따름이라는 공(空)을 꿰뚫어 아는 것이라고 한다. 법안(法眼)은 이러한 공성을 볼지라도 그때그때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는 보살의 눈이라고 한다. 불안(佛眼)은 앞서 말한 모든 것을 다 보는 동시에, 그 어느 것도 자기와 연결된 하나라고 여긴단다.
그리고 이러한 다섯 가지 눈은 높고 낮은 단계를 의미하지 않고, 각기 다른 층위일 뿐이라고 하였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육안으로만 보는 것을 넘어, 좀 더 폭넓게 보는 시야를 지니도록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아울러 사람들이 갈등하며 싸우는 게 자기가 보거나 생각한 바를 고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그것이 얼마나 협소하고 어리석은지를 곱씹었다.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 달라지게 마련인 것을 자기 시야에 갇혀 옳으니 그르니 한다는 게 얼마나 객쩍은 일인가. 고집 피울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절로 하였다.
잘 아는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다섯 가지 눈에 관한 이야기를 드렸다. 그랬더니 그분은 귀를 쫑긋하듯 귀담아듣는 듯했다. 그러다가 사모님에 대한 안부를 묻게 되었는데, 그분은 아내가 피아노 치는 것에 매우 열중하며 지낸다고 대답하였다.
연세가 80세나 되는 분인데, 피아노 치기에 그토록 열중하신다니. 나는 놀라움과 함께 의아함을 내비치며 거의 반사적으로 물었다.
“아니, 그 연세에 피아노를 쳐서 무엇하신데요? 솔직히 말해 음악이 아무리 대단해도 감각기관에서 추구하는 최고봉일 따름이지 않을까요?”
나의 이런 반응에 그분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젊어서 절제해야 한다는 신조 아래 부자연스러웠는데, 뒤늦게서야 천상병 씨의 시 『귀천』을 이해하게 되었지요. 잘 산다는 것은 그때그때 주어진 여건에서 즐길 것은 즐기고, 누릴 것은 누리다 가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렇기도 한데, 어차피 일정한 시간이 다하면 퇴장하게 마련이니까 잠시 살아있는 동안 좀 더 수승한 것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 아까 말씀하신 여러 시야 가운데 공성(空性)을 잘 알면서도 지금 여기의 현상에 충실히 하는 게 법안(法眼)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그분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얼어붙듯 멈추었다. 그러고는 내 의식에서 예술은 감각기관이 추구하는 최고 수준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어떤 것이든 다 소중하고 전체를 이루는 하나인데, 그것을 두고 수승하니 열등하니 하며 등급을 매기고 있던 차별심을 보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대상에 대한 차별이나 등급이 아니라, 그것을 집착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일 따름이지 않겠는가. 아무리 높은 차원의 것일지라도 집착하면 장애로 전락해 버리고,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여도 있는 그대로 품으면 그 나름의 가치로 살아나는 게 아닐까.
그냥 봐준다는 것, 그 어느 것이든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면서도 소중히 봐준다는 것, 그것이 잘 사는 길이지 않을까 한다.
첫댓글 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은 불교 경전(《금강경》 등)에서 말하는 부처의 다섯 가지 눈인 오안(五眼)을 뜻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깊고 넓은 단계에 따라 육신의 눈부터 부처의 깨달음의 눈까지 차례대로 이르는 말입니다.
다섯 가지 눈의 의미육안(肉眼): 가시적인 현상만을 보는 범부의 육신 눈이며, 시간과 공간 장애의 한계가 있습니다.
천안(天眼): 공간과 주야의 장애 없이 멀고 아득한 세계나 인과응보의 현상을 보는 눈입니다.
혜안(慧眼): 일체의 현상이 텅 비어 실체가 없다는 공(空)의 진리를 꿰뚫어 보는 지혜의 눈입니다.법안(法眼): 세상의 온갖 이치와 법문을 바르게 알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방편의 눈입니다.
불안(佛眼): 앞선 네 가지 눈의 경계를 모두 갖추고 세상의 모든 진실을 완벽하게 다 보고 아는 부처님의 눈입니다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여도 있는 그대로 품으면 그 나름의 가치로 살아나는 게 아닐까."
"그냥 봐준다는 것, 그 어느 것이든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면서도 소중히 봐준다는 것, 그것이 잘 사는 길이지 않을까 한다."
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시원한 수박( 햄스테드 수박 5불 )으로
에어컨 아래서 무더운 더위를 식히고 있네요..
다음 글도 기대됩니다..^^**
아, 불교에 대해 잘 아시는군요. 저는 초기불교에 관심을 두는 중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