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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돌격소총의 산물 - M16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보급된 M1, M16을 거쳐 독자 개발의 산물인 한국형 소총 K2까지 각 소총의 성능과, K2가 개발되기까지의 수많은 우여곡절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해방 직후 미군정이 폭동진압 및 치안유지 목적으로 경찰에 M1 카빈을 지급한 것이 한국군 및 한국 경찰이 M1 카빈을 보유하게된 시초였다. 그러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미군의 군사원조를 통해 급격한 확장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는 거의 50만 정에 달하는 M1 카빈이 한국군에 공급되었다. M1 카빈은 부사관 및 장교용 개인화기, 그리고 각종 지원화기 운용병력의 개인화기로서 지급되었기 때문에 1952년 이후에는 실질적으로 한국군 및 민간인에게는 가장 익숙한 소총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M1 카빈이 어떤 이유로 개발되었으며, 어떤 제원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좌 M1 카빈, 우 M1 개런드 소총>
M1 카빈은 그 이름 때문에 M1 개런드 소총의 카빈 버전이라는 오해를 주기도 하는데 M1 파생형이 아닌 독자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2차 대전은 1차 세계대전 때처럼 원거리에서 하는 전투와는 차원이 달랐다. 교전의 거리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아진데다, 무엇보다 속도로 승부가 결정되는 싸움이었다. 전격전으로 전투의 성격이 변모하고 교전의 장소도 시가지로 이동되자 사정거리가 짧더라도 짧은 시간동안 많은 화력을 쏘아낼 수 있는 능력의 소총을 필요로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미군은 M1 개런드 소총과 권총의 중간 정도로 탄을 쏜다는 발상으로 M1 카빈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당시 M1은 총 자체가 당대의 기관단총보다 훨씬 가벼웠고, 장탄수도 많으며 반자동 사격이 되고 고장도 매우 적었다. 게다가 설계 자체가 자동 사격을 전제로 한 것이었으므로 방아쇠를 빠르게 당기면 자동소총 못지않은 빠른 발사속도도 낼 수 있어 공수부대나 일반 보병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제작비 또한 적게 들었으니 많은 수량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M1 개런드 소총과 함께 세계 2차 대전을 화려하게 장식한 뛰어난 소총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세계
<M14
의 모습>
M14는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데다, 사정거리 또한 길어 한눈에 미군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총이기는 하였으나 큰 마음 먹고 배치한 베트남전에서 AK-47이나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베트공들의 게릴라전에 무참한 고전(苦戰)을 당했다. 애초 유럽형으로 제작된 소총이었기에 사방이 밀림으로 우거졌던 베트남의 지형과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 고전의 원인이었다. 제아무리 날고 긴다하는 명총이라 하더라도 전투의 성격과 어우러지지 못한다면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좋은 교훈이었다. 안타깝지만 이러한 이유로 M14는 미군 역사상 사장 짧은 수명을 가진 비운의 총이 되고 만다. 물론 이러한 쓰라린 상처가 M16이 미군의 주력 소화기가 되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말이다.
앞서 말했듯 M16은 M14와 경쟁했던 AR10의 원형인데, 이 총을 개발한 유진 스토너(Eugene morrison stoner)는 개발 당시 아주 파격적인 시도를 했었다. 알루미늄으로 된 본체와, 총열 덮개 및 개머리판이 모두 플라스틱으로 이뤄진 자칫 장난감과도 같은 모습을 보고 미군이 얼마나 황당해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는 깊고도 깊은 뜻이 있었으니 바로 총의 경량화를 위한 선택 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M14에 밀려 채택 되지는 못하였지만, 미군의 또 다른 프로젝트였던 ‘특수용도 보병화기 계획’ 즉 특공대를 위한 총을 만들기에 참여하여 AR10의 업그레이드형 AR15를 탄생 시킨다. 5.56mm의 고속탄을 쓰고, 개머리판에 완충스프링을 넣어 고속발사의 반동을 최소화 시켜 미국 최초의 고속 돌격 소총으로 탄생되었지만 이 역시 국방부에 의해 외면당했다. 후에 콜트로 판권이 넘어간 AR15는 XM-16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M-16이라는 이름의 시초가 되었다.
M-16의 시대가 온 데에는 베트남전이 큰 도움이 되었다. 베트남은 울창한 정글로 뒤덮인 나라였기에 베트공들이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 전에 엄청난 강세를 보이고 있었다. 사거리 25m까지 미군을 끌어들인 후 사격하는 베트공의 전술을 분석하자니, 천 미터밖에 날아가는 새의 오른 발톱까지 맞출 수 있다는 M14의 성능은 사족(蛇足)이었다. 그리하여 미군은 채용 10년 만에 M14대신 M16을 주력 소총으로 사용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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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에서 크게 활약했던 M16의 모습>
사실 베트남전 초기에는 이 녀석도 꽤 문제를 일으켰는데 미군이 정글 깊이 들어가자 총에 진흙이나 이물질이 끼는 경우가 많아 젊은 군인이 많이 죽는 사고가 일어났었다. 이에 미군에서는 특수 제작된 청소도구를 유심히 살폈고 PM매거진이라는 만화책까지 발간, 예방 유지차원에서 여자 군인을 등장시켜 M16 소총을 분해해 닦는 법을 설명해 놓은 책을 보급하여 미연의 방지책을 마련하자 다시금 정글을 주름 잡는 소총이 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베트남 참전국으로 당시 미군으로부터 M16을 지급받아 처음 접하였고, 베트남전 종전 이후 약 4만정을 보급 받은 이후 이 총의 성능을 높이 사 단순히 사용에만 그치지 않고 이를 라이센스 생산해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 M16 생산국가가 되었다.
3. 자주국방 확립의 상징 K2
1969년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 의존을 버리고 스스로 안보체제를 수립해야 한다.’는 ‘닉스 독트린’ (Nixon Doctrine:1969년 미국 대통령 R.M.닉슨이 밝힌 아시아에 대한 외교정책) 발표에 이어 1971년 국내 주둔 미군이 철수하면서 자주국방확립을 위한 무기의 개발이 시급해졌다. 이에 우리나라는 국방과학연구소(ADD-Agency for defence development)를 창설해 1972년부터 군의 기본화기인 소총을 자체 기술로 개발하기 시작한다. K2 소총의 개발이 진행되던 중 1976년 육군 특전사령부에서 그동안 써왔던 M3를 대체할 신형 기관단총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렇게 탄생한 것이 K1 기관단총이었다. K2 소총의 기술을 그대로 기관단총에 적용시킨 것으로, 개발의 시작과는 달리 기관단총이 먼저 채택되면서 K1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3년 뒤 한국형 소총 K2가 보급 <좌, K1 기관단총을 든 특공대, 우, K2를 들고 있는 보병>
우리나라의 국방자립을 위한 노력은 늘 그렇듯 없는 형편에 최선의 효과를 내려니 개발은 시작했어도 많은 난관이 있었다. 지금처럼 컴퓨터가 없던 당시의 형편 상 모든 작업이 수작업으로 진행되었고 때문에 시행착오와 개발 시간이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또 도플러 레이더(Doppler radar)가 없던 시절 탄도 측정을 위해 아침마다 사격장으로 출근해 사거리마다 표적을 세워놓고 많은 사격시험을 통해 소총의 탄도를 측정해야만 했다. K2의 유효사거리인 600m에 맞는 평지 사격장을 찾기도 힘들었다고 하니 자주국방을 향한 길이 얼마나 고행인지 피부로 느낄 일이다.
처음 한국형 소화기 개발에서 가장 초점이 되었던 부분은 한국의 지형과, 국군의 체형에 얼마나 적합한 소화기를 만들어 내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기존까지 사용되던 M1이나 M16이 미군들을 위한 평지전투용이고, 모델도 미군 중심으로 만들어졌으므로 그 것이 아무리 훌륭한 총이라 해도 일정부분 적합지 않은 점이 있었을 것이다. 미군에 비해 체격이 작은 국군의 신체사이즈를 고려해 전체적인 크기를 줄이고 가볍게 하는 설계가 이루어졌는데, 초반에는 외국형 소화기에 익숙했던 국군장병들의 거부감이 꽤 대단했다고 한다. 외국형 소총에 익숙했던 장병들이 K2 소총이 너무 작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K2는 국군 장병이 휴대하고 사용하기에 용이하도록 인체공학적 설계를 했기 때문에 한국군에 맞는 방아쇠의 크기, 개머리판의 길이, 총대까지의 거리를 설정했다. 또 산악지대가 많은 한국지형의 성격을 십분(十分) 활용했다. 상황에 맞지 않은 총을 사용했을 때 얼마나 큰 손실을 입는지는 앞서 말했던 M14의 베트남 고전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K2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지근한 시선이 많다. 총의 반동이 세고, 열을 쉽게 받으며, 가스 마개의 분실 위험, 탄피가 걸리는 문제, 개발되었던 당시의 한국군 체형에 비해 현대인들의 평균 신장이 증가해 한국인 체형에 완전히 적합하지 않는다는 등의 불만들이 그렇다. 하지만 K2의 탄생이 한국 자주국방의 시발점을 의미한다는 그 점만으로도 이 소화기의 가치는 크다. 이 총은 페루, 레바논, 피지, 나이지리아 같은 나라에 수출되어 그 나라의 제식소총으로도 쓰이며 대한민국 위상을 높여주고 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로보캅>이라는 영화에도 등장한 바 있는 소위 카메라 탄 총이다. 2008년 페루에서 열린 APEC 회담장을 지키던 군인들이 K2를 들고 있는 모습도 보인 바 있다. K2 소총을 끝으로 이제 다시는 연구하지 않겠다는 마인드를 보이는 게 아닌 이상 칭찬하고 응원할 가치가 충분하지 않은가? 잘못된 부분의 대한 올바른 질책은 눈부신 성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한국형 무기의 단점에 집중해 그 능력을 평가절하 하는데 혈안이 될 게 아니라, 무기의 단점을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 보다 나은 개술 개발을 하는데 초점을 두고 응원해야 한다.
4. K1, K2의 성장과 동명부대
대한민국 육군의 주력 돌격 소총, K2는 육군 보급이 거의 끝나가며 해군과 공군에 계속해서 보급 중에 있다. 또한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의 분쟁지역에 파견된 파병부대에도 그 나라의 실정에 맞게 업그레이드되어 이용되고 있는데 레일시스템이 한 예이다. K1과 K2소총은 보급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사실 이렇다 할 널리 보급된 조준 보조기구가 전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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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레일시스템이 장착된 K1, 아래 K-1소총의 기본 모델>
하지만 2003년에 들어서면서 몇몇 업체가 국산 소총에 장착 가능한 조준기구와 그에 따라 필요한 장착대(마운트 베이스)에 대한 개발을 의욕적으로 시작하였고 K1A용 레일 어댑터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레일 어댑터 시스템이란 쉽게 말해 총기에 총기용 액세서리를 장착할 수 있게 하고, 개인의 선호 사항에 맞게 조절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브라켓을 의미한다. 자동차에 옵션을 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기존에 사용되던 총기에 액세서리를 장착하게 되면 보다 효과적인 성능을 발휘하게 된다. 이러한 총기용 액세서리에는 많은 종류가 있는데 망원조준경, 레이저 표적지시기, 도트사이트(dot sight), 전방수직손잡이, 소음기 등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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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트사이트 |
망원스코프 |
소음기 |
레이저 표적지시기 |
전방수직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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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
선배님 믿습니다. 수색
폭파병으로 k1 사수였는데 반동이 좀 있지요
선배님 이름으로 수정을 부탁 드립니다...??? 850115 으로 수색 부탁드립니다..
좋은정보 잘보고 갑니다
수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