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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국내 최초로 조성된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이다.
샛강은 상류에 속하는 여의도의 63빌딩에서 국회의사당까지 올림픽대로를 따라 흐르는 한강의 조그만 지류이다.
이 샛강은 영등포구 여의도동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물줄기로 국회의사당 하류부 구간까지 길이 4.7km 폭 80~160m로
전체 면적은 518,000m²(156,700평)이다. 대부분 굴곡이 없는 평탄한 초지로서 여의도 상류와 하류의 인터체인지 안에
위치하여 분지형태로 되어 있다. 생태공원은 지난 2008년부터 생태공원 조성사업을 시작해, 2011년에 완공되었다.
한강은 노량진에서 서쪽으로 흘러간다. 그 물줄기는 한강철교를 지나 여의도 동쪽에서 갈라진다.
한때 서울의 랜드마크로 사랑을 받았던 63빌딩이 자리한 곳에서 한강 물줄기는 갈라져 샛강을 이룬다.
그렇게 물줄기가 갈라져 형성한 섬 여의도(汝矣島)이다.
여의도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나가는 행주형(行舟形)의 섬이다. 배의 앞머리에 돛대가 있다.
그렇듯 행주형의 여의도는 동쪽에 배의 앞 머리에 해당한다. 그 앞 머리에 63빌딩 등 고층빌딩에 몰렸다.
한강 물이 노량진 쪽에서 흘러들어오는 곳이다. 물줄기가 갈라지는 곳에서 여의도 샛강은 시작한다.
물길은 뱀이나 용으로 비유한다. 풍수에서는 물길을 중요하게 본다 그래서 힘차게 굽이 칠수록 좋다.
여의도를 위에서 내려다 보면 여의도는 뱀이나 용이 새끼를 잉태한 모양이다. 또는 뱃속에 알이 차 있는
모양과도 같다. 가히 명당지역이라 할 수 있다. 샛강이 함차게 감싸고 돌고 있어 여의도는 누가 뭐래도 명당이다.
샛강이 만들어낸 기가 막힌 명당 여의도이다. 동쪽 샛강 상류에 자연스럽게 조성된 둔치이다.
샛강생태공원 출범할 당시 다양한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는 놀이마당으로 이용되던 샛강둔치다.
2004년 5월 샛강 둔치에는 약 500㎡, 9개 홀의 규모를 가진 ‘파크골프’ 장이 들어섰다.
파크골프’란 공원(Park)과 골프(Golf) 합성어로 도심의 공원 등에서 나무로 된 채와 플라스틱 공을 사용해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골프의 한 종류이다. 골프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하며 골프처럼 공이 멀리 날아갈 우려가 없고,
평평한 잔디 위에서 경기를 진행해 예전부터 장애인들의 재활운동으로 꾸준히 사랑을 받아 오고 있다.
샛강 생태공원에는 다양한 습지생태를 볼 수 있는 수질정화습지구역, 버드나무 숲과 생태수로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생태체험학습구역, 샛강 상류에 자리한 여의경관구역, 생태학습장으로 조성된 버들문화구역, 자연 그대로
보존된 생태보전구역 등 6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어 볼거리가 풍부하다.
잔잔한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 사이로 날아 다니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온다.
갈대와 물억새 등의 습지식물은 수질을 정화하는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갈대나 부들 같은 습지식물의 뿌리는
박테리아의 성장촉진과 고형물 흡착의 기능을 담당한다. 줄기와 잎은 태양광의 차단으로 조류성장을 방해하여
물 위에서의 풍속저하를 유도하고, 대기 중 가스를 수중에 전달하여 식물의 침수된 부분으로 산소전달을 함으로써
수중의 유기물을 분해하는 데 필요한 용존산소의 양을 높여서 수질을 정화하게 된다.
또한 습지의 넓은 식물군락 등은 미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형태의 오염물질을 분해하거나
전환하여 수질을 정화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공원의 곳곳에는 샛강에서 살아가는 동식물과 갈대의 수질정화 기능,
샛강의 귀화식물 등에 대한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어 공원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여의도 주변에 조성된 샛강 생태공원은 접근성도 편리하여 누구나 쉽게 찾아 갈 수 있다.
지하철 1호선 신길역에서 내리면 여의도로 건널 수 있는 최근에 완공된 샛강다리가 나타난다.
샛강다리를 건너면 마치 하늘을 나는 듯이 생태공원을 바라보며 건널 수 있다. 디자인이 아름다운 샛강 다리에
올라서면 샛강 생태공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다리 중간에는 쉬어 갈 수 있는 벤치도 마련되어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도 그만이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빌딩 사이로 솟아 오르는 일출과 일몰 또한 도심에서
자연과 함께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이다.
샛강은 63빌딩이 있는 상류부터 47km 길이로 여의도 전체를 감싸고 흐른 뒤 국회의사당 앞에서 다시 한강 본류와 합류한다.
따라서 샛강에 접근할 수 있는 지하철 역만 해도 1호선 대방역과 신길역 5호선 여의도역 그리고 9호선 샛강역과 국회의사당역 등
여러 곳이다. 샛강생태공원 전체를 조망하기에는 샛강다리 위가 가장 좋다. 샛강다리는 1호선 신길역과 여의도를 잇는 보행자
전용다리이다. 다리 중간에 벤치가 있는 휴식공간이 있으며 샛강생태공원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도 설치되어 있다.
샛강다리는 여의도 윤중초등학교 앞과 신길동 신길역 사이를 연결한다.
세련된 양식을 갖춘 이 다리는 주변 풍경과 전망이 빼어난 샛강의 핫 플레이스다.
다리 밑에서 올려다본 모습도 공연히 색다르게 보인다.
여의도 샛강다리에 올라 서쪽으로 바라본 샛강이다. 여기가 영등포(永登浦)이다.
영등포란 나루터는 지금의 한강성심병원 건너편 여의도샛강변에서 여의도의 사라진 옛 양말산(羊馬山)을 오가며
한강 밤섬(栗島)과 마포를 연결하는 소규모 나루터이었다. '永登浦',한자의 포(浦)는 물가, 즉 바닷가나 강가를 의미하는 글자이다.
강가나 냇가에 있는 마을을 의미한다. 서울의 永登浦나 거제도의 永登浦는 같은 의미의 해변 강변마을을 의미하는 지명이다.
永登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영등굿에서 찾는다. 우리 민속에는 음력으로 정월과 음력 2월 초하루를 영등일(靈登日)로 하여,
보름까지 여의도샛강변에서 성행된 영등굿을 벌였다. 이 포구에서 영등굿으로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한다.
늘 소원하는 것을 이곳 한강에서 빌면 다 들어주는 명당으로 알려져 '靈登'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이 영등(靈登)이 永登(영등)"으로 변형표기된 것이라고 한다. 이 포구를 영등포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밤섬과 양말산 사이의 강보다 넓었던 샛강이다. 그 샛강을 건너던 영등포, 영등나루가 샛강생태공원으로 바뀐 것이다.
그 생태공원에는 숲이 있고 곳곳에는 슾지도 있고 물줄기가 끊기지 않고 흐른다. 물길은 잠시 멈추고 못을 이루다 다시 흐른다.
이곳 생태공원은 서울 도심에 있는 자연의 보고(寶庫)로 도시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옛날 여의도 샛강은 흰모래 언덕에 소나무가 무성하고 백학이 날아들어 놀던 곳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학이 노니는 호수 방학호(放鶴湖)라고 불렸다고 한다. 연못과 연못을 뒤덮은 각종 수생식물
그리고 버드나무 등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마치 오지의 늪 같다.
조선 숙종 때 문신이었던 이세운(李世雲)이 정자를 세웠다고 <여지도서> '금촌현'에 나와 있기도 하며,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이며 문장가로 유명하던 서명응(徐命噟)도 샛강 일대의 아름답고 깨끗한 풍경을
<학정명사(鶴汀明沙)>란 시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에어돌아 오가는 물 잔잔한 강가를 두르니
빛도 기운도 한 끝 밝아 해와 별이 반짝인다.
밤마다 조수 밀려 와서 깨끗이 씻어 나가니
희고 맑은 모래벌 바다 신이 만드누나.
이렇듯 풍광이 아름다웠던 샛강은 조선후기에도 여전히 풍광으로 유명하였다.
고종 시기에도 황실에서 세웠던 방학정이 있었다고 한다.
여의도 샛강 하류에 국회의사당이 들어섰다. 그 일대 풍수지리이다.
첫째, 여의도 땅은 전복 모양을 닮았고, 평지같은 경사지에 해당된다.
전복은 중심 지름이 넓고 양끝 가장자리는 좁다. 이는 중심지역 기운이 더 안정적임을 암시하게 된다.
둘째, 여의도의 절반은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흐르는 한강에 싸여 있고, 나머지 절반은 계류수인 샛강을
경계로 육지 땅이 두르고 있다. 한강과 샛강의 수세(水勢)는 국회의사당 공간으로 생기 바람을 제공하는
명당수(明堂水) 역할을 하고 있다.
셋째, 여의도 주변 지척에 퇴적층 섬으로 노들섬, 밤섬, 선유도가 있다.
강물이 흐르는 곳에 퇴적층 섬이 생긴다는 것은 강물의 유속이 가장 느린 지역으로, 그 주변은 바람의 속도가
부드럽고 상대적 안정을 유지하는 온풍지역이 된다. 그래서 그 주위 지역에서부터 도심 발전이 시작되어 크게
성장하는 사례가 많다.
여의도 전체를 놓고 볼때 한화그룹 본사 건물인 63빌딩은 한강 물이 흘러들어오는 상류에 위치해 있다.
국회의사당은 그 반대편 물이 흘러나가는 하류 쪽에 있다. 그 중간지역에는 은행과 증권사 등 대표적인 금융기관이
밀집해 있다. 지세를 살펴 여의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바람을 조사 분석해 유추하면 상류 쪽과 하류 쪽 양끝 가장자리와
강의 수면과 접하는 지대는 냉풍지대로, 중심지역은 온풍지대로 판단할 수 있다. 이때 샛강 바람의 역할은 여의도 전체 바람의
쾌적한 순환을 도우는 기능을 한다. 여의도 상류와 하류 지역의 바람 온도를 비교하면 하류의 바람이 더 차다.
상류 쪽에서 내려오는 한강의 물길이 굽어져 바람의 속도가 느려지는 지역인데 반해, 하류 쪽 한강 수세는 직류풍으로
속도가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상류 쪽보다 온도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국회의사당 건물 주변은 냉풍지대로
냉기가 유지되는 지역으로 볼 수 있다.
여의도 한강공원에 한강밤섬 철새조망대가 마련되었다. 1968년 푹파해 없어진 밤섬이다.
한강의 물은 모래와 자갈을 실어다 옛 밤섬 자리에 차곡 차곡 쌓았다. 두 개의 밤송이 모양의 섬이 생겼다.
사람들은 자연이 만들어 준 밤섬을 지켰다. 사람들의 왕래를 막았다.
폭파, 그 괭음이놀라 달아났던 새들이 다시 돌아왔다. 나무와 꽃들도 다시 피었다. 늪지도 생겼다.
밤섬에 철새가 다시 돌아왔다. 많은 시민들이 철새 보호에 나선 덕이다. 여기에 환경재단인 LG상록재단도 한 몫을 한다.
한강범섬 철새 조망대에서 바라다 본 밤섬이다. 섬 나무가 눈이 덮힌 듯 온통 하얗다.
겨울철새 민물가마우지의 배설물이다. 이 철새의 먹이는 주로 바다 또는 민물 어류이다.
우리나라는 서해 연안의 얕은 바다나 강 하구, 그리고 간척지 호수 등에서 관찰된다.
나무에 무리 지어 번식하며 나뭇가지와 마른풀 등을 이용하여 오목한 둥지를 만든다.
잠수능력은 뛰어나지만, 깃털의 방수력은 좋지 않아 암초나 폐선박 등에서 날개를 벌려
깃털을 말리는 행동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턱 아래에는 고기를 임시 저장하는 주머니가 발달해 있다.
강한 산성인 가마우지의 배설물은 좁은 밤섬(27만9281㎡) 내 풀과 나무의 숨통을 막고 있다.
이른바 ‘백화(白化) 현상’이다. 말라 죽는 고사 상태에 놓인 개체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밤섬에 유달히 애정을 갖고 가꾼 이가 있다.바로 LG그룹 고 구본무회장이다.
LG 구회장의 홈페이지에 자연사랑 철새사랑 정신이 남아있다.'구본무스토리' 중 <자연과 나>를 옮겨 싣는다.
"여의도 사옥에서 내려다 보이는 한강 밤섬은 겨울이면 수만마리의 철새들이 찾아오는 도심 속의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가끔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철새가 떼지어 드나드는 밤섬을 바라보며 자연에 매료되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여유도 생기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환경이 훼손되어 날아오던 새의 개체수가 줄고 나아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면 결국 인간도 살기 어려운
삭막한 풍경이 펼쳐질 것입니다.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대상을 주도하거나 변형시키는 것이 아닌 그 나름의 질서와 체계를
존중하고 보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공존과 상생의 관계 - 이것이 자연사랑,
인간사랑의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중학생 구본무는 어느 날 뒷산을 오르다 풀숲에 널브러져 있는 작은 새를 발견했다.
작은 새는 인기척에도 날아가지 않고 가쁜 숨만 헐떡이고 있었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자세히 살펴보니
날갯죽지를 크게 다친 것이 아닌가. 그냥 뒀다가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품에 안고 돌아왔다."
50여 년 전 다친 새를 품에 꼭 안았던 소년은 자연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경영인이 됐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마포 밤섬의 ‘철새 지킴이’로 유명하다.
그의 집무실은 밤섬이 훤히 내려 보이는 여의도 트윈빌딩 30층에 있다.
그는 밤섬에 사람이 출입한다 싶으면 즉시 신고한다. 밤섬은 지난 1999년 8월 서울시에서
생태경관보존지역으로 지정한 이후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구 회장이 지킴이로 활동하는 밤섬은 서울의 대표적인 철새도래지다.
현재 49종의 새들이 밤섬을 터전으로 살고 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수많은 철새들이 밤섬으로 날아든다.
지난 2012년에는 그 가치를 인정 받아 람사르습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람사르습지는 지난 1975년에 발효된 ‘람사르협약’에 따라 국제적 가치를 인정받는 습지다.
그의 집무실에는 철새 관찰을 위한 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구 회장은 업무를 보다 틈이 날 때면 망원경으로 밤섬의 야생 조류를 관찰한다.
어릴 적부터 이어져온 새 사랑에서 비롯된 취미다.
구 회장은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이들의 모습을 바라다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철새들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을 준다”고 말한다.
그는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면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마포와 영등포 사이에 있는 '쓸모 없는 섬' 여의도이었다.
그 한적한 여의도를 급격하게 변화시킨 것은 바로 '한강개발'이다.
오늘의 여의도로 변모시킨 '한강개발'을 기리는 기념비가 서울대교 남단에 있다.
마포대교 남단 동쪽 언덕 아래 작은 잔디밭에 '漢江開發'비가 있다.'漢江開發'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고 비문은 밝히고 있다.
서울시는 윤중제 준공을 1968년 말까지 계획했었으나 서울시장의 강한 의지와 한강건설사업소장의 밤낮없는 투지로 예정 기일의
80%를 앞당겨 준공, 한국 기술진의 새기록을 수립했다. 이 공사에는 연인원 52만 명이 동원되었다. 20∼30m 폭의 둘레 뚝 위에는
길이 7.5km의 4차선도로가 마련되었고 둘레에는 15년생 수양버들이 7m 간격으로 1천 그루가 심어졌다. 가로등은 30m간격으로
1개씩 506개가 가설돼있으며 둘레 뚝은 강변둘레에는 2m폭으로 36만7천2백35장의 잔디가 곱게 깔렸다. 윤중제가 완공된 뒤
도로가 건설되고 아파트가 건설되는 등 여의도 개발이 본격화됐다.
1967년 12월 25일 성탄일 여의도에서 거행된 '여의도 건설 기공식'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그리고 아들 박지만 군,김현옥 서울시장이 여의도 개발을 알리는 '버튼'을 누르고 있다.
김현옥 시장은 여의도 개발의 도시설계를 당시 가장 유력한 건축가 김수근에게 맡겼다. 당시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부사장
김수근은 후배인 윤승중, 김원, 김석철 등에게 이 일을 맡겼다.
“한강개발계획을 세워라. 첫째, 여의도에 제방을 쌓아서 가능한 한 많은 택지를 조성한다.
둘째, 여의도와 마포·영등포를 연결하는 교량을 가설한다. 셋째,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의 제방도로를
연차적으로 축조함으로써 한강 홍수를 방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동차가 고속으로 달릴 수 있도록 한다.”
'돌격! 돌격 앞으로!'
1960년대 개발년대를 이끌었던 불도저식 행정이다.
'불도저' 행정의 상징으로는 제14대 서울시장 김현옥을 선뜻 꼽는다.
김현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있다가 1961년 5.16쿠테타 이후 최연소 부산시장으로 부임한다.
그는 항만도로 등 부산 곳곳에서 각종 개발사업을 벌인 끝에 1966년에 서울시장으로 발탁돼 주목을 받는다.
서울시장이 된 김현옥은 앞뒤 가리지않고 미친 듯이 각종 공사를 밀어붙여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불도저식으로 각종 공사를 벌이는 김현옥 시장 일솜씨가 마음에 들어 그에 대한 신임도가 유별났다.
1968년 6월 1일 서울시가 수해를 방지하고 현대식 택지로 조성하기 위해 7,533m의 윤중제를 축조하여
한강의 기적이 열매를 맺게 됐다. 이날 오전 10시15분쯤 공사현장에서 베풀어진 윤중제 준공식에는 박정희 대통령 내외를
비롯, 삼부요인, 주한 외교사절, 각계대표, 시민, 학생 등 1만 여명이 참석했다. 윤중제란 여의도 공사 착공에 앞서 1967년 말
김현옥 서울시장이 현장을 둘러보며 <강 가운데 우뚝 솟아 둥그렇게 쌓아 놓은 둑>이란 의미로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낱말이다.
그 날 준공식 모습을 당시 신문의 기사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이날 준공식장에는 1백발의 오색불꽃이 하늘을 덮었다. 식이 끝난 뒤 서울지구 예비군 13개 중대가 시범 행진을 했다."
이 '한강개발'이 오늘의 여의도로 변화하게 되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