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샘2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3)
“carpe diem”
최종훈 토마스 신부 가톨릭목포성지 담당
신자들과 함께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던 기억이 납니다. 오랜 시간 성지순례를 준비해서 떠난 예수님의 땅은 성경으로만 상상하고 듣고 배웠던 그 이상의 것을 저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 나무 그늘 아래의 시원함, 사람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손끝에서 찌릿하게 전해지는 전율까지. 성경 속 이야기가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오랜 시간 성경을 공부하면서 느꼈던 그 어떤 기쁨과 행복감보다 컸습니다. 그래서 노트를 꺼내 그 느낌과 감흥을 적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그 생각과 감동을 간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강론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문체와 미사여구로, 신자들의 눈물을 쏙 빼놓는 강론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과욕이었습니다. 헛된 것이었습니다. 글을 적고 강론을 준비하면서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강론을 멋있게 잘해야 한다는 욕심과 걱정만이 저를 사로잡아서 기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지 못해서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산해진미를 눈앞에 두고서 내일 먹을 것들을 걱정하는 모양새입니다. 지금을 기뻐하지 않기에,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을 진정으로 바라보지 못하기에, 우리는 기뻐하지도 행복을 만끽하지도, 희망을 품고 살아가지도 못합니다. 걱정과 불안감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하더라도 아직 가보지 않는 길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우리는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고 있지 못합니다. “carpe diem(오늘을 즐기며 최선을 다하라)”의 격언처럼 오늘을 기뻐하고 살아가는 것이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입니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창세 1,1-5)
하느님의 첫 창조는 바로 ‘시간’입니다. “빛이 생겨라.” 이 말씀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가르시고 낮과 밤을 구분 짓습니다(3-5절). 그 시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영원성’을 체험합니다. 그 영원의 체험이 바로 기쁨의 뒷모습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우리는 시간이 정말 가지 않아 시계만 쳐다보는 때가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어떤 경우에는 몇 시간이 눈 깜빡하는 순간처럼 훌쩍 지날 때도 있습니다. ‘영원’은 무한한 시간이나 끝없는 되풀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원은 ‘우리가 시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순간’ 삶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원함을 체험하는 순간, 시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 시간이 바로 기쁨의 순간입니다. 자신이 하신 일, 자신 앞에 놓인 모든 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지금의 것들을 바라보고 기쁨을 발견해야지만 희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죽을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그러니 일하는 사람에게 그 애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 나는 인간의 아들들이 고생하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일을 보았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인간에게는 살아 있는 동안 즐기며 행복을 마련하는 것밖에는 좋은 것이 없음을 나는 알았다. 모든 인간이 자기의 온갖 노고로 먹고 마시며 행복을 누리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선물이다.(코헬 3,1-13)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뻐할 때 기뻐하지 못합니다. 슬퍼할 때 슬퍼하고 아파할 때 고통스러워하지만 기뻐할 때 걱정합니다. 행복하고 사랑할 때 기뻐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질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습니다.”(코헬 3,11) 현재를 살아가야 합니다. 현재는 0.1초보다 짧습니다. 현재에서 하느님을, 하느님의 영원함을 만나야 합니다. 찰나의 순간을 살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일 기쁨의 뒷모습을 찾았습니다. 강의할 때 언제나 시간이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힘들고, 피곤하고, 부끄러운 강의 시간이지만 그 시간 안에서 사람들과 얘기하고, 하느님을 만나며 영원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우리 각자가 기쁨이 보여주는 뒷모습을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친구들과 커피숍에 앉아 수다를 떨거나, 백화점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거나, 공 하나를 쫓으며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어다닐 때 우리는 바로 하느님의 기쁨을 체험할 때입니다. 커피숍에 앉아 책상 위의 책들과 일들을 걱정하고,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통장의 잔고와 사람들의 눈초리를 걱정하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옷이 더러워지는 빨래를 걱정한다면 우리에게 하느님의 영원함을 들어오지 않습니다.
지금의 현재를 즐겨야만 기뻐할 수 있습니다. 또한 힘들고 어렵고 짜증 나는 일 속에서도 열정과 최선을 다하는 순간 기쁨의 또 다른 모습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 기쁨을 만끽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기쁨 안에서 또 다른 기쁨이 찾아오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