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노래를 하지 못하는 음유시인을 본적이 있는가?
아마도 없을 것일세. 자네들은 너무 젊으니까.
젊음이 지식과 총기를 저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론 시간의 장벽에 의해 원하지 않는 무지 속으로 빠져들 수 있지.
자네들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하네. 그렇다고 자신이 너무 늦게 태어났다고 자학할 필요는 없네.
이미 내 시간은 저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고 이젠 자네들의 시간이니까.
내가 그를 만났을 때는 나또한 지금의 자네들과 같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같은 시간속에서 활개를 치고 다닐 때였네.
나는 갓태어난 아기와 같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었지.
하지만 그를 만나고 난후 난 그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지......
그때가 874년이었던가 873년이었던가 잘 기억은 나질 않지만 그때는 막 전쟁이 끝나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했을 때였어.
자네들이 부모님께 물어 보면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씀해 주실걸세.
난 다행히 징병되어 끌려가지는 않았지만 전쟁이 끝나고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
이미 난 그 나이에 도망자의 신분이었던 거야. 하지만 내게는 희망이 있었어. 바로 음유시인이라는 꿈이었지......
나는 밤에 아무런 계획 없이 빠져 나왔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음유시인에 대한 꿈때문이었어.
하지만 난 밥먹는 일이 급했어. 돈도 없었고 전쟁이 끝난 직후라서 일자리가 없었거든.
만약 일자리가 있었다 해도 나 같은 풋내기에게 일을 줄 사람도 없었겠지만 말이야.
그때도 난 주점에서 버린 쓰레기들을 뒤지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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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어 젊은이!"
어디선가에서 들려 온 목소리에 거지로 보이는 아이는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참으로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였다. 마치 야수의 신음 소리와 같은 낮은 톤의 목소리인 데다가 가래 끓는 소리까지 섞여 있었다.
"자네 먹을게 필요한 모양이지?"
그 아이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중년 줄에 갓 들어선 그는 그리 수려한 외모는 아니었지만 준수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다시 흘러나온 목소리는 정말 끔찍했다.
이상한 점은 그가 음유시인들이나 가지고 다니는 뷰페이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목소리로 노래를 할 수 있을지는 누구에게 물어 보아도 자명한 일이었다.
그는 노래를 할 수 없는 사람임에 틀림 없었다. 그런데도 뷰페이를 들고 있는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어떤 사연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에게는, 아니 테인에게는 상당히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마을을 밤에 빠져나온지도 2년째.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일것이다.
어떤이는 서커스단에 팔아넘기려고도 했고 어떤이는 노예시장에 넘기려고도 했다.
그렇기에 그의 호의적인 말에도 테인은 일단 의심을 할수밖에 없었고 그런 생각은 테안을 뒷걸음질 치게 했다.
공교롭게도 테인은 주점에서 막나오는 취객과 부딪히고 말았다.
그 취객은 검을 찬걸로 봐선 용병인듯 했다. 전쟁이 끝난지는 2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용병들은 넘쳐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할경우 곧바로 도적으로 변할 수 있을만큼 위협적인 존재들이었다.
오랬동안의 전쟁때문에 용병은 너무 많이 생겨났고 한때는 아이들이 가장 선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테인과 같은 거지들과 같이 전쟁이 남긴 업보일 뿐이었다.
평화는 그냥 주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못하는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고도 호전되지 않는 자신들의 생활때문에 점점 더 교활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때문에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엇다.
용병은 화가 심하게 났는지 테인이 사과를 하기도 전에 테인의 뺨을 후려쳤다.
벌써 사흘째 굶고 있던 테인은 취객의 어설픈 손놀림에도 저 구석으로 날라갔다.
취객은 이미 이성을 잃고 검을 빼들어 쓰러져서 도망가지도 못하는 테인에게 다가갔다.
테인은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오랫동안의 굶주림 때문에 몸을 일으킬수도 없엇다.
테인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을 담담히 그저 지켜볼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테인에게 눈길조차 주지않았다.
모두 그런일은 흔히 있는일이라는듯 구경조차 하지않고 무심하게 걸어갈뿐이었다.
어떤 사람은 왜 걸치적거리게 길에 누워 있냐면서 침을 뱉기도 했다.
참담한 심정이 되어 테인은 검을 쳐든 취객의 얼굴만을 힘없이 바라봤다.
술에 취해서 이미 얼굴의 표정조차 알아볼수 없게된 취객의 눈은 기묘하게도 사람을 죽이려는 살의보다는 울분으로 가득차 있었다.
왜 자신을 밀치며 무시하냐는듯한 눈이었다.
취객의 눈을 본 테인은 잠시 자신의 처지조차 잊고는 그가 불쌍했다.
어차피 그들은 같은 처지였다.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핍박받는 이 세상의 약자들인것이다.
하지만 테인의 목숨은 그런 취객에의해 영원히 없어질 운명이었다.
테인의 앞까지 느릿느릿 비틀거리며 걸어온 취객은 검을 높이 쳐들었다.
테인은 그의 검에 반사되는 햇살에 눈이부셔 눈을 뜰수가 없었다.
곧 자신의 명을 걷어갈 검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친근하게까지 다가왔다.
어차피 괴롭던 인생을 끝내주겠다는 취객의 검이 오래된 친구처럼 다가온 것이다.
부우우우웅
검이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궁정악사의 연주같이 들려왔다.
테인은 자신의 눈앞을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들을 볼수있었다.
그 옛날 자신의 부모님이 다 살아있었을때의 기억들이 마치 그림들처럼 떠올랐다.
언제나 행복했던 그 시절은 테인이 언제나 되돌아가고 싶었던 테인만의 고향이었다.
그 고향은 언제나 테인과 함께 했지만 테인은 언제나 그곳을 떠올리기도 힘들어 했다.
세상의 끝보다도 더 가기가 힘들정도로 느껴졌었다. 그 곳은 다름아닌 테인의 마음속이 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지금 테인은 그곳에 있었다. 이것이 안식이라는 것일까?
테인의 머리속은 더할나위 없이 평온해졌다. 그곳에서 엄마를 다시 볼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그것은 테인의 착각이었다.
"괜찮나? 젊은이?"
테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안식을 맞이하나 했는데 갑작스레 들려오는 끔직한 목소리에 지옥으로 떨어진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눈을 뜨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계속 누군가가 흔들어대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눈을 뜰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뷰페이를 들고 있던 남자였다. 그런 끔찍한 목소리는 그 사람외에는 아무도 가지지 못하는 것일테니.
남자는 테인이 깨어나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 자네 참 운이 좋구만. 자네 오늘 죽을뻔 했어."
남자는 손을 뻗어 테인이 일어서는 것을 도와주었다.
테인이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취객은 땅에 누워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형편없이 부서져버린 뷰페이를 검이 관통하고 있었다.
남자는 검을 빼내서 취객에게 던져주고는 애정이 담뿍담긴 눈길로 뷰페이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은 마치 자신의 애인이나 부인을 바라볼때의 눈길 같았다.
오랬동안 눈치밥을 먹어온 테인이 그것을 놓칠리 없었고 결국 어정쩡한 자세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남자는 눈가를 재빨리 훔치고는 이미 연주는 커녕 당장 버려야할 만큼 부서져버린 뷰페이를 자신의 짐꾸러미에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우리 점심이나 함께할까? 내가 낼테니."
남자는 사려깊게 말해주었고 테인은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를 꾸벅거렸다.
"아참! 우린 아직 통성명도 하지 않았군. 내 이름은 캘로로스라네. 자네 이름은 뭔가?"
"제 이름은 테인이라고 합니다."
"뭐라고? 자네 이름이 테인이라고?"
테인은 갑작스런 캘로로스의 태도에 의아해하며 그렇다고 말했다.
"테인이라. 자네 이름이 테인이란 말이지."
캘로로스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듯 했다.
"아. 이거 사람을 앞에다 놓고 내가 딴 생각을 하다니. 미안하네. 자 어서 들어가세. 이 마을에서는 이 주점에서밖에 음식을 먹을수 있는 곳이 없다네."
캘로로스는 재촉을 하며 테인을 먼저 들여보냈다.
주점은 뜨내기 손님보다는 토박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 둘을 바라보지는 않았다.
주점에는 이미 음유시인이 들어와서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노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캘로로스는 구석의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곧 오트밀과 빵 약간이 나왔다. 캘로로스는 테인에게 먹으라고 손짓을 했다.
테인은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다. 정말 오랜만에 대해보는 진짜 식사였다.
깨끗한 접시에 포크와 나이프 그리고 수저. 황송해서 건들수도 없을것 같았다.
"어서 들게."
캘로로스는 테인이 주늑들어 멈칫거리자 또 함박웃음을 지어주며 음식을 권했다.
그러자 테인은 겨우 수저를 들어 오트밀을 떠먹기 시작했다. 입안에 퍼지는 고소한 맛에 마치 천상의 음식을 먹는것 같았다.
캘로로스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음유시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흔하지 않은 여자 음유시인이었다. 전쟁 때문에 여자들이 나돌아다닐 세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음유시인은 가장 대중적인 노래인 '페름'을 뷰페이의 아름다운 선율에 맞추어 가는 목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세상사는 설움을 노래로 옮긴 페름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전쟁이 끝난뒤부터 유행한 이 노래는 원래 남자들이 부르는 노래였다. 하지만 페름을 여자의 목소리로 들으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캘로로스는 테인이 먹는걸 보다가 모자랄것 같았는지 오트밀을 한접시 더 시켰다.
테인은 정말 숨쉴틈도 없이 먹고 있었다. 거의 코를 접시에 박고 먹어서 체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잠시후 캘로로스가 또 다시 시킨 오트밀 두그릇까지 먹고나자 그제서야 테인은 트름을 했다.
"자 이제 배가 다 찼나? 이제 어쩔건지 물어봐도 되겠나?"
캘로로스는 온화한 얼굴로 물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정말 역겨웠다.
"뭐 이제 다시 거리로 나가야죠."
테인의 말에 캘로로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마치 자신의 일인양 절망하는 것같은 얼굴이었다.
"잠깐만. 내가 제안을 하나 하지."
캘로로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약간의 떨림이 담긴 목소리였다.
"예? 제안... 이라뇨?"
테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캘로로스를 바라봤다. 테인은 갑자기 의심이 들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그것도 거지에게 밥을 사준다는 것은 왠지 꿍꿍이가 있는것 같았다.
하지만 캘로로스는 테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웃음을 지을뿐이었다.
"내 제안이란는건 나쁜것도 자네에게 불리한것도 아니네. 오히려 자네에게는 천금과도 같은 귀한 기회일수 있지. 뭐 자네가 싫다면 어쩔수 없는거지만 말이야."
캘로로스는 왠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기분이 좋은듯 했다. 그 모습은 아빠가 사올 무언가를 기다리는 아이의 설렘과 비슷한 감정을 담고 있엇다.
"먼저 그 제안이라는 것이 뭔지 듣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테인은 정중한 말투로 말했지만 역시 이년동안 먹은 거리밥은 헛먹은게 아니었다. 테인은 이미 언제든지 뛰쳐나갈수 있게 몸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은 이미 의심스럽다는 눈초리였다.
"내 제안은 자네가 내 제자가 되는 것이네."
"예? 저 뭐라고 하셨는지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테인은 얼굴에 웃음을 띤채 말하는 캘로로스의 말을 믿을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을 놀리는것만 같았다.
"하하. 물론 내가 자네를 놀린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난 남의 불행을 가중시키는 일따위는 안한다네. 자네가 원한다면 다시 말해주지. 난 자네를 내 제자로 삼고싶네."
캘로로스는 조바심을 내었다. 물론 말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안면근육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저 대체 무슨일을 하시는데요? 연주를 하시는 분인가요?"
테인은 자신의 스승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 밥을 제때에 먹을수 있다는것이 테인을 더 기쁘고 조심스럽게 말하게 했다.
"난 음유시인이라네. 물론 이 목소리론 노래는 불가능하지만 연주정도는 할수있거든. 노래하지 못하는 음유시인이라... 웃기는 일이지. 보통 젊고 경험없는 애송이들 한테 노래를 부르게 하고 나는 연주만해서 수입을 반으로 나누지. 물론 어떤때는 삼분의 일만 받을때도 있지만......"
캘로로스의 말에 테인은 기가 막혔다. 음유시인이라니...
테인이 본 사람중에 가장 목소리가 역겨운 사람이 음유시인이라는데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왠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물론 캘로로스가 노래를 가르쳐주지는 못할것같았지만 연주정도만 배워도 자신의 꿈에 근접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 근데 뭘하죠? 먹고살려면 혹시 제가 노래를 해야하는건가요? 전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는 종종 듣지만 전문적으로 노래를 배운적이 없는데요."
테인의 말에 캘로로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지급까지는 웃음을 띈 얼굴이긴 했지만 왠지 불안해 보였던 것이다.
"상관없네. 사실 음유시인 치고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나한테 배우기는 어렵겠지만 이 일을 하다보면 동료들을 수시로 만난다네. 그들이 한곡씩만 가르쳐도 자넨 대단한 솜씨를 갖게 될꺼야."
테인은 캘로로스의 말에 기뻐서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물론 그랬다간 당장에 쫓겨날수도 있기때문에 자제 할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머리속엔 의문이 남아 있었다.
" 저...그런데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캘로로스는 테인의 질문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듯 마음대로 하라고했다.
"저... 실례인줄은 알고 있지만."
"내 목소리 말인가?"
테인은 깜짝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캘로로스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럴줄 알았네. 누구나 나를 처음 만나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언제나 그것을 물어보지. 약간 긴 이야기인데 들어 주겠나?"
"해주신다면 기꺼이 듣겠습니다."
테인은 은인에게 할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호기심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이미 내 제자가 되기로 했으니 숨길건 없지. 자네 나이였을때 벌이가 그런대로 괜찮은 음유시인이었다네. 물론 지금은 목소리가 이 모양이어서 연주로만 살고 있지만 말이야. 어느날 어떤 주점에서 노래를 끝마쳤을 때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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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로로스가 주점의 주인에게 돈을 받고는 막 주점의 문을 떠나려 할때였다.
"여보게! 음유시인! 이리좀 와보게!"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캘로로스는 자신을 부른 사람이 누구인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발견할수 없었다.
"누구시죠? 어느 분이 저를 부르셨나요?"
뷰페이의 소리처럼 낮은 톤의 감미로운 목소리였다.
캘로로스는 몇번더 자신을 부른 사람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의아해하며 주점을 나왔다.
"음유시인! 이리좀 와보게!"
또다시 들려온 목소리에 캘로로스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이미 새벽의 어둠에 휩싸인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캘로로스는 소름이 돋았다. 언젠가 동료들에게서 들었던 '목소리'에 대한 기억이 났다.
음유시인이 노래를 끝마치고 난후 음유시인을 부르며 계속 엉뚱한곳으로 유도한뒤 몸을 빼앗아 그 사람 행세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때에는 그저 우스개소리처럼 웃어 넘겼지만 자신의 일이 되고보니 오한이 날정도 였다.
"음유시인! 뭐하는 건가? 빨리 오게!"
캘로로스는 다시 자신의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았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캘로로스는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꿰뜛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는듯했다.
발자국 소리도 자신의 것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뛰다가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니 벌써 마을을 벗어나 있었다.
어쩔수 없었다. 이대로 해가 뜰때까지 다른 마을까지 걸어갈수밖에......
자신이 아무것도 듣지 못한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특히 신화에 관련된 노래를 많이 불렀던 것이다.
새벽의 차가운 이슬에 바짓자락이 젖는것이 느껴졌다. 차가운 기운에 몸서리가 쳐졌다. 얼마나 걸었는지는 모르지만 막 해가 뜨려하는 순간이었다.
"음유시인! 내 말이 안들리나?"
캘로로스는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듯했다.
"누... 누구냐!"
캘로로스는 더 이상 도망가는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곤 용기를 내어 말햇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오직 풀벌레 소리뿐이었다. 차라리 정막만이 감도는게 훨씬 나았다. 그랬다면 최소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더 이상 다가오면 죽여버리겠다!"
캘로로스는 자신의 뷰페이를 으스러져라 잡고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찾으려 했다.
저벅저벅
그때 누군가가 앞에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캘로로스는 반가운 마음에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에게로 달려갔다.
서서히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로브를 입은 평범한 여행자였다.
"안녕하세요! 아! 이렇게 여기서 사람을 만나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실례되지 않는다면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여행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자신의 짐에서 뷰페이를 꺼냈다.
그리고는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직은 알수없다 해도
난 포기하지 않아
언제나 모든것을 알수있는것은 아니니까.
아직은 할수없다 해도
난 포기하지 않아
언제나 모든것을 할수있는것은 아니니까.
희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걸 난 알고있어
그대가 기다리고 있는 그곳에.
포기하지마
아직 우리에겐 희망이 있어.
그대가 기다리고 있는 그곳에.
그대가 기다리고 있는 그곳에."
갑작스런 노래에 놀라기보다는 그의 노래실력에 놀랐다. 캘로로스는 아직까지 그렇게 노래를 멋지게 부르는 음유시인을 본적이 없었다.
천상의 노래라거나 하는 상투적인 말로는 표현이 되지않았다. 그의 노래는 아니 그녀일지도 모르는 그의 노래는 바람이 나뭇가지에 스치며 벌이는 하나의 향연같았다.
캘로로스는 그의 노래를 왠지 들어본것 같았다. 아니 그의 목소리를 어디선가 들어본것 같았다.
그랬다. 아까의 그 목소리 였다.
"너... 넌 아...까 그......"
캘로로스는 말을 잇지 못햇다. 여행자는 다시 한번 노래를 부르려는듯 뷰페이의 선율을 가다듬었다.
스르르르르릉
마치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오는 소리같았다.
"드디어 만났군. 왜 그렇게 도망다니나? 어때 아름답지 않은가?"
여행자는 다시 한번 선율을 가다듬었다.
차츠츠츠츠츠
캘로로스는 깜짝 놀랐다. 뷰페이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다니 정말 믿을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똑같은 현을 만졌는데도 말이다.
"당신 대체 누구야? 어떻게 그런 소리를......"
여행자는 뷰페이를 다시 짐에 넣었다.
"나 말인가? 난 처마끝에 달리는 차가운 물방울의 떨어짐이며 시냇물의 물살의 거세짐이라네. 난 자네가 태어났을 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지만 지금 여기에 있지 아니하며 또 다른 곳이 있다네. 내가 누군지 알겠나? 난 어떤곳으로부터 오고 있지만 벌써 와있고 또 어딘가로 가고 있다네. 자네는 누구이며 자네의 뷰페이는 또 어떤 선율을 노래하고 있나? 자네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헤매고 있으며 언제까지나 노래를 부를수 있을거라고 보나?"
"뭐...뭐라고?"
캘로로스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물었다.
"다시 말해줄까? 나는 모든 바람과 하늘과 눈물의 원천이며 여기에 있지만 또 어딘가로 가고있네."
"넌 대체 이름이 뭐지? 지금 날 놀리려는 건가?"
여행자는 로브를 고쳐입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야생동물처럼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난 목소리라고 하며 노래라고도 하지. 음악이라고도 하고 운율이라고 하며 박자라고도 한다."
캘로로스의 머릿속에는 단 한가지 생각 밖에 없엇다.
미친놈!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둘의 사이를 감싸고 돌았다. 초여름이기는 하나 새벽이라서 그런지 몸서리가 쳐질정도로 추웠다.
캘로로스는 몸이 점점 굳어가는 것만 같았다. 손가락 하나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이미 잘려진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남의 손가락 같았다. 오랬동안 뷰페이를 다루었던 손가락이어서 감각이 예민한데도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손가락 뿐이 아니라 다리도 땅에 처박힌것 처럼 움직이지가 않았다.
여행자는 그런 캘로로스의 상태를 알고 있다는 듯이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여행자는 캘로로스의 얼굴 바로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왔다.
캘로로스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여행자의 얼굴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얼굴이 화끈거리며 몸이 달아오르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캘로로스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믿을수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캘로로스는 여행자의 얼굴이 자신이 본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답다고 느꼈다. 바로 눈앞에서 봤기때문에 여행자가 남자라는걸 알았으면서도 말이다.
캘로로스는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들어본적이 있긴 했지만 자신이 그런 감정을 느낄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는 여행자를 넋을 잃고 바라봤다.
여행자는 마치 캘로로스의 얼굴을 감상이나 하는듯이 바라보았다. 점점더 캘로로스는 자신이 흥분되어 가는것을 느꼈다.
여행자는 한참이나 그렇게 바라보다가 천천히 캘로로스의 곁을 스치듯이 지나갔다. 그리고 캘로로스는 여행자의 모습이 사라질때까지 바라보았다.
자신의 눈에서 완전히 사라질때까지 바라보다가 결국 몸이 풀려서 쓰러졌다. 긴장한 탓도 있지만 오랫동안 추운 바람에 노출된탓도 있었다.
쓰러져서 정신이 혼미해진 그의 머리속에는 단 한가지의 생각만이 떠올라 있었다.
그 후 캘로로스는 여행자에게서 들은 노래만을 연습했다.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그는 한적한 곳을 찾아 그 노래를 연습했다.
페름
그게 그 노래의 이름이었다. 캘로로스는 거의 1년동안 그노래만을 연습했지만 그의 노래는 정말 끔찍하다는 야유만을 받을 뿐이었다.
다른 동료들 사이에서도 한번만 들을면 그대로 기억하는 캘로로스의 재능은 높이 평가되고 있을정도 였다.
그는 그대로 그 노래를 박자하나 틀림없이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의 노래는 그 어떤사람에게서도 박수를 받지 못했다.
왜 자신의 노래가 끔찍하냐고 물으면 언제나 대답은 같았다. 정확하게 어떤 부분이 끔찍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캘로로스는 그 중요한 무언가를 찾기위해서 노력했고 자신의 페름을 더 갈고 닦았다. 하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캘로로스는 자신의 노래를 제대로 들을줄아는 귀를 갖지 못한자에게는 노래를 불러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더 이상 페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렇게 몇년이나 되는 시간이 지나고 캘로로스는 어떤 마을에서 머물고 있을때였다.
그는 마을을 구경하고 저녁늦게 숙소로 돌아가고 있던중에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만했다.
길에 붙어있는 주점에서 페름이 흘러나오고 있던 것이다. 캘로로스는 귀신에 홀린듯 주점안으로 들어갔다. 주점안에서는 눈을감고 여자 음유시인이 페름을 부르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여자 음유시인은 임신을 한 상태였다. 이미 만삭이 다되어 가는데도 놀랍게도 주점에 나와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거이다.
주점안의 모든 사람은 그 여자음유시인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시끄럽게 떠들던 취객들도 숨소리도 내지 않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 사람들중에는 캘로로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고 장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모두 꿈에 취한 듯이 잠자코 여자 음유시인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장시간의 침묵을 깨트린건 힘찬 박수소리였다.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쳤다.
캘로로스는 몸이 떨려오는걸 느낄수 있었다.
분노인가.
캘로로스는 자신의 마음에 질문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저 여자 음유시인을 죽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내가......
내......
캘로로스의 머리속에서는 그 어떤 생각도 자리잡고 있지 않았다. 오직 행동만이 있을 뿐이었다.
기립박수속을 캘로로스는 술병을 들고 걸어갔다. 캘로로스는 누가 말릴사이도 없이 술병으로 그녀를 내리쳤다. 음유시인은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곤 깨진 병으로 그녀의 목을 찔렀다. 그게 그가 자유의지로 행동할수있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여기저기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그 비명소리는 곧 분노의 목소리로 바뀌었고 그는 성난 사람들에게 붙잡혔다.
"저 놈을 죽여버려!"
"애나!"
"어떻게 이럴수가! 신이여! 눈까지먼 애나에게 이러실수 있습니까!"
"내아이! 이럴수는 없어! 이럴수는 없다고!"
캘로로스는 눈이 멀었다는 말에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임신을 했고 만삭인 상태라는 것도 비로소 머리속에 들어왔다. 이미 온몸은 붙잡혀서 끌려나가고 있지만 말이다. 너무 늦은 깨달음과 후회였다.
'내가... 내가 왜!'
주점밖으로 끌려나간 캘로로스는 성난 사람들에의해 정말 무자비하게 얻어터졌다. 머리, 얼굴, 배 할것없이 온몸중에 성한곳이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맞은 캘로로스는 정신을 잃기는 커녕 점점 맑아지는 자신을 느낄수 있었다. 이전보다 더 맑아진 정신에 캘로로스는 의아함을 느꼈다.
보통 죽음에 가까워지면 점점 정신을 잃어간다는데 자신의 정신이 맑아진건 이해할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도 지쳤는지 잠시 때리는걸 멈추었다. 그들중 한 젊은이가 말했다.
"이런놈은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해야돼!"
젊은이는 주위에 굴러다나고 있던 돌을 주워들었다. 젊은이는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캘로로스의 목을 내리쳤다.
캘로로스는 자신의 목이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뭔가가 쉼없이 새어나왔다. 아주 따뜻한 무언가가 자신의 옷자락까지 적시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숨을 쉬는것이 어려워졌다. 마치 가래가 끓는것처럼 목이 무엇인가로 가득찬것만 같았다.
그때 주점에서 누군가가 나와서 외쳤다.
"애나가 살아있어! 빨리들 들어와!"
그 소리에 모든사람들이 황급히 주점 입구로 몰려들었다. 캘로로스는 그렇게 목에서 피를 흘린채 길에 버려졌다. 캘로로스는 고통을 느꼈지만 아직도 정신은 더없이 맑았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페름을 부른 사람이 있으니 자신도 그렇게 부를수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빛이 새어나오는 구름은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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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난 살아 날수 있었지. 난 골목사이로 기어서 들어갔고 거기서 난 도움을 받을수 있었네. 이게 내 이야기의 전부네."
잠시 주점안은 침묵만이 흘렀다.
아마도 주점안의 사람들이 모두 캘로로스의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침묵은 곧 깨지고 캘로로스가 테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 자네 이름이 테인이라고 했지?"
"예."
캘로로스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게 자네의 진짜 이름... 아니 성은 뭔가?"
테인은 갑자기 버벅거리는 캘로로스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젠, 테인 젠 입니다."
캘로로스의 얼굴에 놀란 빛이 떠올랐다.캘로로스는 자신의 짐꾸러미에서 부서진 자신의 뷰페이를 꺼냈다. 그는 그 뷰페이를 테인에게 내밀었다.
"이. 이걸 왜..."
"이건 자네꺼네. 자 이걸보게"
캘로로스가 뒤집어보인 뷰페이의 뒷면에는 놀랍게도 테인 젠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이건 사실 내것이 아니네. 내가 오래전에 어떤 장인에게서 얻은 거라네. 이걸 테인 젠이라는 사람에게 전해주라고 했네. 이제와서야 이걸 자네에게 전해주는군."
테인은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자신의 이름이 뷰페이에 새겨져 있는건지. 그리고 대체 그 장인이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혼란스럽겠지. 하지만 이건 현실이네. 난 왜 자네에게 이걸 전해주어야 하는지 그리고 자네가 왜 이걸 받아야 하는지는 모르네. 난 이걸 전해주라는 부탁을 받았을 뿐이네."
테인은 하고싶은 말도 해야할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그저 가만히 형편없이 부서져버린 뷰페이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끊임없이 쓰다듬을 뿐이었다.
날은 이미 저물어서 석양의 붉은 빛 마저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음유시인도 갈 채비를 하는지 끊임없이 불러오던 노래를 잠시 멈추고 목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제 날도 저물고 가야할때는 아직 멀었지만 저는 마지막 노래를 불러야겠군요."
음유시인의 말에 취객중 한사람이 술에 찌든듯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소리야! 아직 초저녁이라구! 계속 노래를 불러야 흥이 날거아냐!"
음유시인은 그의 말에 웃음으로 답했다. 보조개가 드러나는 아주 귀여운 미소였다. 그 미소에 취객조차도 누그러졌다.
"그럼 왜 가야하는지 말을 해야지. 그래야 나나 다른 사람들이 만족하고 보내줄거 아냐."
"그건 노래를 먼저 부르고 답해드리죠."
음유시인은 취객의 답변을 듣지도 않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음유시인은 놀랍게도 또 다시 페름을 부르고 있었다. 원래 마지막 노래는 음유시인이 가장 자신있고 그날 한번도 부르지 않았던 노래를 부른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그이유는 이미 취해 버릴대로 취해버린 취객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음유시인의 페름이 시작되는 그 순감 모든 취객들은 술이 갑자기 깨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이제껏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바람소리와도 같았다. 밭일을 하고 나면 언제나 느껴지는 선선한 산들바람이었다. 그 산들바람이 귀를 간지럽힐때 약간씩 조심스레 들려오는 그 음성이었다.
캘로로스에게는 그 페름이 마치 지옥에서 들려오는 악마의 음성처럼 들려왔다. 똑같았다. 그때 애나가 부르던 페름과 여행자가 불렀던 페름과......
테인도 그 페름에 또 다른 세상으로 빨려들어가는듯한 느낌이었다. 어렸을적 들었던 기억도 나지않는 그 옛날에 들었던 어머니의 자장가였다. 이미 잃어버린 무언가를 다시 되찾은 느낌이 들었다.
그 주점안의 모든 사람들은 음유시인의 페름에 취해서 각자 어딘가에 갇혀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사람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고 어떤사람은 괴로움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리고 또 어떤사람은 지독한 외로움에 괴로워했고 어떤사람은 환청을 듣는지 멍한 얼굴로 허공에 대고 대답하고 있었다.
영원같은 시간이었는지 찰나같은 순간이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단지 자신만의 세계속에서 그렇게 괴로워하거나 행복해할뿐이었다. 누구에게나 기억이란 존재했고 그건 각자에게 다른의미 일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페름은 끝나고 음유시인은 천천히 갈 채비를 했다.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은채 각각 자신만의 일에 빠져있었다. 음유시인이 그런 사람들에게는 신경도 쓰지않고 서두르지않는 걸음걸이로 아주 천천히 문쪽으로 걸어 가고 있을때였다. 그녀의 손에는 소중히 천에 싸인 뷰페이가 들려있었다.
"잠깐! 거기에서 움직이지마!"
캘로로스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않고 그녀는 계속 여유있는 모습으로 주점의 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마치 귀가 먼 사람처럼 듣지 못한 듯이 계속 걸어갔다. 캘로로스는 갑자기 달려나가 그 여자 음유시인의 팔을 잡았다. 여자는 뒤를 돌아보며 빙긋이 웃어주며 캘로로스의 팔을 밀어내려했다.
"너... 넌 대체... 누구지?"
캘로로스는 그녀가 사라지기라도 할것처럼 팔을 으스라져라 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 편안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순박한 농부의 그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얼굴에 캘로로스는 자신도 모르게 팔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나? 난 네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다. 네가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페름, 그 자체이며 모두가 느끼고 싶어하는 이미 심연속에 가라앉아 버린 그것이다. 모두가 구하는 것이지만 결국 소유하는 사람도 소유해본 사람도 없어지는 바로 그것이다. 난 네가 바라보는 이 자리에 존재하지만 넌 나를 보지 못할뿐만아니라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난 그리고 애나의 살과 피와 노래이며 눈물과 땀과 목소리와 눈빛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나 보고싶어했던 그녀의 분신이다. 난 그녀에게서 부화했으며 그녀는 나로서 다시 부활했다. 난 희망이란 존재이다."
캘로로스는 전신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눈앞이 흐려지는것을 느끼며 서있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씩 다리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늘에 떠있는 별과 달마저도 그에게는 눈을 쏘아붙이는 강렬한 광선으로 보였다. 그는 조금씩 그리고 아주 천천히 쓰러졌다. 아니 무너져 내렸다.
그는 그의 육체뿐만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이 붕괴되고있는 것을 느꼈다. 이미 오래전일이 되어버린 그일은 언제나 자신의 주위에 있었으며 자신이 그것을 지니고 다녔다는 것을 깨달을수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젠 너무 오랜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기억마저 가물가물 해지고 있었다. 이렇게 끝날수는 없었다.
캘로로스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온 테인은 그를 부축했다. 하지만 캘로로스는 언제나처럼 끔찍할정도로 갈라지고 찢어진 목소리로 말하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래. 내가 그랬던건 전부 내 욕심때문이었겠지. 하지만 넌 내 대답에 대답하지 않았어. 넌 누구지? 대체 누구길래 나를 이렇게 파멸로 몰아가는건가. 난 단지... 단지... 내운명에 충실하려 했던거야. 하지만 넌 나를 파멸로 이끌었을 뿐 어떠한 적대감조차도 내비치지 않았지. 넌 내가 그렇게 하도록 이끌었어. 너자신은 단지 몇마디의 말만을 하면서 말이야. 넌 대체 누구지? 누구길래 날 이렇게 괴롭히는건가. 말해! 말하라구!"
음유시인의 얼굴이 이상하게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애나의 얼굴과 그 옛날에 만났던 여행자의 얼굴이 겹쳐져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도 이미 그 옛날로 돌아가 있었다. 그녀의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며 캘로로스의 시야를 가렸다.
"난 운명이다. 난 바로 너의 운명의 실로 천을 짜는 자이다. 이제 만족하나?"
헛소리!
캘로로스의 뇌리를 스쳐가는 한마디에 캘로로스는 애나를 죽이고 맞고 있을때의 상태처럼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그의 눈에 보였고 이미 그는 그 어떤 것도 막을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이미 부서져버려서 음을 낼수 없는 뷰페이를 테인의 손에서 건네받았다. 그는 이미 공명통이 부서진 뷰페이의 현을 가다듬었다.
트트트트트트트
쇠로된 줄들이 튕기는 듯한 기분나쁜 소리가 났다. 하지만 캘로로스는 개의치않고 그 뷰페이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음의 높낮이조차 표현할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아직은 알수없다 해도
난 포기하지 않아
언제나 모든것을 알수있는것은 아니니까.
아직은 할수없다 해도
난 포기하지 않아
언제나 모든것을 할수있는것은 아니니까.
희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걸 난 알고있어
그대가 기다리고 있는 그곳에.
포기하지마
아직 우리에겐 희망이 있어.
그대가 기다리고 있는 그곳에.
그대가 기다리고 있는 그곳에
난 포기하지 않지.
언제나 모든 것을 잘할수 있는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난 노력하지.
그때가 올때까지. 내 모든 것이 멈출때까지.
운명의 실은 언젠가는 끊어진다는걸 알고있어.
하지만 난 계속 나아갈꺼야.
그대가 기다리고 있는 그곳에.
그대가 기다리고 있는 그곳에......"
캘로로스는 실로 오랜만에 노래를 불렀다. 자신도 언제 노래를 마지막으로 불렀었는지 잊을정도이니.
그는 그곳에서 행복을 느꼈다. 이미 그는 두가지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뷰페이에 이름을 새기고다닐 정도로 만나고 싶었던 아들녀석을 만났고 그리고 자신의 페름을 다시 불렀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그녀가 생각났다. 자신을 기꺼이 자신의 집에 숨겨준 그녀가. 그리고 고마운 젊은부부도 생각났다. 지금은 죽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곳에서 더할나위없이 행복하고 기뻤다. 이미 그의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의 운명도 희망도 그리고 자기 자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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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렇게 떠나갔지. 그 페름을 부르고는 영원히 잠들어버렸어. 지금도 의문인건 그의 뷰페이에 왜 내 이름이 새겨져 있었냐는 거네. 하지만 아는 사람도 없으니 이젠 나의 오랜 의문으로 간직 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
오늘 전쟁속에서 도적의 손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묘에 갔다왔다네. 하지만 그분들은 아무말도 없으셨어. 난 외로웠다네. 고향에 가고싶었지.
나 자신이 있는 바로 이곳이 고향이며 진짜 고향은 내 가슴속에 있는데도 말이야.
너무 오랜만에 너무 많은 말을 해버린 것 같군. 이젠 나도 잠을 자야겠네.
아참. 마지막으로 자네들에게 해줄말이 있네.
이 모든 일은 자네들의 부모님께 물어보면 기억할정도로 가까운 과거의 일이라네.
자네들도 기억을 되살려 보게나. 어렴풋이나마 기억이 날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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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한40분정도를 투자했지만 타자가 늦다보니 결국 테인이 제자가 되는 것만 추가 시켰군요. 원래 들어있는 부분인데 전에 올렸던곳에서 두시간 정도 쓴게 날아가는 바람에 없어졌던 부분입니다. 부끄럽습니다. 토감에서 그렇게 욕을 하더니... 결국 쩝. 누워서 침뱉은 꼴이 되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