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알레고리
여의사의 솔로몬 : 이것은 이데올로기나 인간권력의 욕망을 상징하는 듯하다. 유대의 왕인 솔로 현자이고 유대를 부강하게 하였으나, 또한 그의 치정시대에 남의 아내를 취하고 우상을 유대에 인정함으로서 유대가 신의 저버림을 받게되 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즉 그는 인간의 불완전함과 완전함에의 추구, 신앙과 불신, 도덕과 부도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또한 인간 전체에 대한 상징일 수 있고,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에 대한 상징일 수도 있다.
첩보원들이 사용하고 있는 이름 : 뉴우튼은 유럽물리학의 시작을, 아인슈타인은 20세기 물리학을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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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사설 요양소 ‘르 세르지에’의 좀 낡긴 했어도 설비는 훌륭한 한 빌라의 살롱.
인접한 환경 : 처음엔 자연 그대로의 호숫가였는데, 들어서는 건축물로 조망이 막혀가다가 결국은 제법 규모 있는 중소도시를 이룬 곳. 한때는 성채와 구시가로 이뤄진 예쁜 보금자리였던 이곳에 지금은 보험회사들의 흉한 건물들이 끼어들어 서 있다. 이 지역을 유지시키는 주된 시설로는, 확장된 신학부와 여름 어학과정이 포함된 소박한 종합대학이 하나 있고, 그 외에 상업학교와 치과기공 기술학교가 하나씩, 또 몇몇 여자 기숙학교와, 이렇다할 이름도 없는 경공업 업체 하나가 고작이다. 따라서 지역 자체가 이미 분방한 산업생활권과는 동떨어져 있다. 게다가 주변의 풍경까지 신경을 안정시키기에는 큰 덤이 되고 있다. 어쨌든 푸른 산줄기와 친근감 가는 수풀진 등성이들, 괄목할 만한 호수가 하나, 여기에 연이어 저녁이면 연기가 피어 오르는 넓다란 평원,-한때 음산한 소택지였던- 이 평원엔 지금은 관개수로가 들어와 있어 비옥한 땅을 이루고 있다. 아울러 평원 어디엔가 자리 잡은 교도소와 거기 딸린 대농장이 있어서, 말없이 그림자처럼 크고 작은 무리를 지어 곡괭이질, 삽질을 하는 죄수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장소에 관한 것은 근본적으론 중요하진 않다. 다만 엄밀함을 기하기 위해 언급되었을 뿐. 어쨌든 우리는 정신병원(이제 결국 이 말이 나왔다.)의 빌라를 전혀 떠나지 않게 된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곳의 살롱을 떠나지 않게 되며, 공간과 시간, 사건의 일치를 엄격히 지키기로 작정했다. 정신병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은 고전적 형식으로만 파악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빌라로 말할 것 같으면, 지난 날 그 안에는 이 요양업체의 창설자인 명예박사요 의학박사 마틸데 폰 짜안트 양의 환자 전부가, 즉 영락한 귀족들,-이젠 통치를 하지 않는-동맥경화에 걸린 정객들, 정신 박약한 백만장자, 정신병에 걸린 작가, 조울증세의 대기업인 등등, 요컨데 유럽 반쪽에 사는 정신적으로 혼란을 일으킨 엘리트들이 몽땅 묵고 있었다. 그럴 것이 이 처녀 의사는 여러 면에서 유명했기 때문이다. 늘 의사가운을 걸친 이 곱추처녀는 그 지방의 유력한 가문 출신이었을 뿐 아니라, 박애주의자요 정신병의로서도 세계적이라고 주장해도 좋을 명성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C. G. 융과 그녀의 서한집이 바로 얼마 전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이 저명하면서도 항상 즐겁지는 못한 환자들은 벌써 오래 전에 우아하고 양지 바른 신축 병동으로 옮겨가 있었다. 여기서는 엄청난 입원비 덕분으로 아무리 심한 악성의 과거도 순수한 즐거움으로 되어 버린다. 신축 병동은 넓은 정원의 남쪽에 서로 다른 모양의 정자(亭子)(예배당에는 에르니의 스테인드그라스 그림이 있다.)로 평원을 향해 산재해 있고, 한편 빌라로부터 큰 수목들이 심어진 잔디가 호수 쪽으로 내리 뻗어 있다. 호변을 따라서는 돌담이 쳐져 있다. 이제는 환자가 붐비지 않게 된 빌라의 살롱에는 대체로 세 명의 환자가 묵고 있는데, 우연히도 모두 물리학자들이다. 아니면 완전히 우연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인도적 원칙을 적용해서 유유상종하게 배려해 준 것이니까. 그들은 각기 자신 들이 망상하는 세계 속에 틀어박혀서 제가끔 따로 살아간다. 다만 살롱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이따금 자기네 학문에 대해 토론을 벌이거나 멍청히 앞을 쳐다보고 있다. 무해무탈하고 호감이 가는 정신병자들로서, 상대하기 쉽게 말을 잘 듣고 까다롭지 않다. 요컨데, 만약 최근에 와서 심상찮은 사건, 실로 끔찍한 사건만 벌어지지 않았다면, 이들은 참된 모범 환자 노릇을 한다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이 석 달 전에 어떤 간호원을 교살한 일이 벌어졌고, 지금 같은 사건이 또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이 집 안에는 다시금 경찰이 와 있다. 따라서 살롱은 다른 때보다 붐비는 셈이다. 간호원은 비극적이며 결연한 자세로 쪽마루의 약간 뒷쪽, 배경 쪽으로 누워 있다. 관객에게 불필요한 놀라움을 덜어 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싸움이 벌어졌다는 흔적은 간과될 수 없다. 가구들이 눈에 띄게 뒤죽박죽 되어 있다. 전기 스탠드 하나와 안락의자 둘이 바닥에 뒹굴어져 있고, 왼쪽 전면으로는 둥근 테이블 하나가 다리 쪽을 관객에게 보이며 뒤집혀있다. 아울러 정신병원으로 개조한(이 빌라는 지난날 짜안트 가문의 여름 별장이었다.) 쓰디쓴 흔적들이 살롱 안에 남아 있다. 사방 벽들에는 사람 키 높이 만큼 위생적인 빛깔의 도료가 칠해져 있는데, 그 밑에 발라진 회칠이 드러나 있고 부분적으로는 아직 남아 있는 장식 채색도 보인다. 작은 홀로부터 물리학자들의 병실로 통하는 배경 쪽에 있는 세 개의 문은 검정 가죽으로 푹신하게 씌워져 있다. 그밖에도 문들에는 1에서 3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다. 홀 왼쪽 옆으로는 꼴불견의 라디에이터, 오른쪽으로는 수건이 여럿 걸린 수건걸이와 세면대가 하나 있다. 2호실(가운데 방)로부터는 피아노 반주에 바이얼린 연주소리가 새어나온다. 베토벤, 크로이체르 소나타. 왼쪽에는 높은 곳에서 바닥에까지 창문이 달린 베란다, 바닥에는 리노륨이 깔려 있다. 창 정면의 좌우로 묵직한 커튼. 날개문이 테라스로 통하는데, 정원과 비교적 양지 바른 11월 날씨를 배경으로 하여 테라스의 돌난간이 두드러져 보인다. 오후 4시 반이 조금 지난 시간. 오른편으로 지금은 쓰지 않는 벽난로(그 앞에 격자가 쳐져 있다.) 위로는 뾰죽한 수염을 기른 한 노인의 초상화가 무거운 금빛 액자에 담겨 걸려 있다. 오른편 앞쪽으로는 육중한 상수리나무 문. 갈색의 우물 정(井) 자 무늬의 천정으로부터 육중한 샹들리에가 흔들리고 있다.
가구들 : 둥근 테이블 주변에 -살롱은 정돈되었다.- 세 개의 의자, 테이블과 마찬가지로 흰 페인트칠이 되어 있다. 나머지 가구들은 약간 낡았고, 각종 시대의 것이다. 오른편으로는 작은 탁자와 소파, 그 양쪽으로 두개의 안락의자가 호위하고 있다. 전기 스탠드는 원래 소파 뒤에 놓여 있다. 따라서 이 방 안에는 결코 많은 세간이 들어차 있지는 않다. 고대 작품들과는 반대로 사튀로스 극이 비극에 선행하는 지금의 무대 장치에는 별로 이렇다할 것이 없다. 우리는 이제 공연을 시작할 수 있다. 시체를 둘러싸고 형사들이 일을 하고 있다. 사복 차림의 침착하고 다소곳한 젊은이들, 벌써 자기네 몫의 백포도주를 마시고 술냄새를 풍긴다. 그들은 측정을 하고 지문을 찌고, 시체의 윤곽을 따라 분필로 긋는 등 분주하다. 살롱 한가운데 형사 수사과장 리하르트 보쓰가 외투를 입고 모자를 쓴 채 서 있고, 왼쪽에 수간호원 마르타 볼, 그녀는 이름이나 성품처럼 보기에도 과단성 있는 모습이다. 오른편 안락의자에 경찰 한 사람이 앉아 속기를 하고 있다. 수사과장은 갈색 담배 케이스에서 시가를 꺼낸다.
수사과장 담배를 좀 피워도 되겠습니까?
수간호원 그건 안 됩니다.
수사과장 용서하시오. (그는 시가를 다시 넣는다.)
수간호원 차라도 한 잔?
수사과장 차라리 위스키를.
수간호원 당신은 지금 요양소에 계십니다.
수사과장 그럼 됐소. 블로허, 사진을 찍어도 좋아.
블로허 알겠습니다, 수사과장님.(사진을 찍는다. 라이트가 터진다.)
수사과장 저, 간호원 이름이 뭐였죠?
수간호원 이레네 슈트라웁
수사과장 나이는
수간호원 스물 둘. 코올방 출신.
수사과장 가족은?
수간호원 동 스위스에 사는 오빠가 한 사람.
수사과장 알렸나요?
수간호원 전화로요.
수사과장 살인자는?
수간호원 수사과장님- 그 가엾은 사람은 환자인걸요.
수사과장 그렇다면 좋습니다, 범행자는?
수간호원 에른스트 하인리히 에르네스티. 우리는 그를 아인슈타인이라고 부릅니다.
수사과장 왜요?
수간호원 그 사람은 자신이 아인슈타인인 줄 알고 있으니까요.
수사과장 그렇군요. (속기 중인 경찰관에게) 간호장의 진술을 적고 있나, 구울?
구울 물론이죠, 수사과장님.
수사과장 역시 교살인가요, 의사 선생님?
법정의사 명백합니다. 전기 스탠드의 코드로. 정신병자들은 흔히 거인같은 힘을 발휘하지요. 어딘가 엄청난 데가 있어요.
수사과장 그렇군요. 그렇게 보시는군요. 그렇다면, 이런 정신병자들을 여자 간호원들한테 맡겨 놓는 것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건 벌써 두번째 살인-
수간호원 수사과장님.
수사과장 ‘르 세르지에르’ 요양소에서 석 달 사이에 일어난 두번째의 불상사란 말이오. (그는 메모첩을 꺼낸다.) 8월 12일에, 위대한 물리학자 뉴우톤을 자처하는 헤르베르트 게오르크 보이틀러라는 자가 간호원 도로테아 모오저를 목졸라 죽였지요. (그는 메모첩을 다시 넣는다.) 역시 이 살롱에서. 남자 간호인을 뒀더라면 그런 일은 결코 안 일어났을 것이오.
수간호원 그렇게 생각하세요? 간호원 도로테아 모오저는 여자 레슬링 연맹의 회원이고, 간호원 이레네 슈트라웁은 국내 유도연맹의 챔피언입니다.
수사과장 그럼 당신은?
수간호원 역도를 합니다.
수사과장 지금 그 살인자를-
수간호원 제발, 수사과장님.
수사과장 -그 범행자를 만나 볼 수 있겠소?
수간호원 그 사람은 바이얼린을 켜고 있습니다.
수사과장 그 사람이 바이얼린을 켜다니, 무슨 말입니까?
수간호원 지금 연주 소리가 들리잖아요.
수사과장 그렇다면 이제 그만하라고 말해 주시오. (수간호원의 반응이 없자) 그 사람을 심문해야하오.
수간호원 안 돼요.
수사과장 왜 안 된단 말입니까?
수간호원 우리는 의학적 입장에서 그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에르네스티 씨는 지금 바이얼린을 켜야합니다.
수사과장 그 녀석은 뭐니뭐니해도 간호원 한 사람을 교살했단 말이오!
수간호원 수사과장님. 문제는 그 사람이 단순한 그 녀석이 아니라, 안정을 취해야 하는 환자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아인슈타인인 줄 알고 있기 때문에, 바이얼린을 켜야만 진정되지요.
수사과장 그렇다면 애당초 내가 제 정신이 아니란 말이오?
수간호원 그렇지 않아요.
수사과장 뒤죽박죽 갈피를 잡을 수 없군. (그는 진땀을 닦는다.) 여기는 덥군요.
수간호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수사과장 마르타 간호장. 부탁이니 병원장을 데려오시오.
수간호원 그것도 안 됩니다. 박사님께선 아인슈타인의 피아노 반주를 하고 계십니다. 아인슈타 인은 박사님이 반주를 해야만 안정을 찾거든요.
수사과장 석 달 전에도 여류 박사께서 뉴우톤과 체스를 두어야 했지요. 그 자가 안정을 찾게한답시고. 이제 더 이상 그런 것에 동의할 수 없소이다, 마르타 간호장. 병원장과 꼭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수간호원 그렇다면 그냥 기다리십시오.
수사과장 저 바이얼린 연주는 얼마나 더 계속될거요?
수간호원 15분, 한 시간. 그때 그때 따라서.
수사과장 (자제를 하고) 좋습니다. 기다리겠소. (고함을 친다.) 기다리겠소!
블로허 우리 일은 끝난 것 같습니다, 수사과장님.
수사과장 (먹먹한 소리로) 그런데 나는 녹초가 됐소. (침묵. 수사과장은 땀을 닦는다.)
수사과장 그 시체는 밖으로 치워도 되네.
블로허 알겠습니다, 수사과장님.
수간호원 공원을 지나 예배당으로 통하는 길을 형사님들께 안내하지요.
그녀는 날개문을 연다. 시체는 밖으로 실려 나간다. 기재들 역시. 수사과장은 모자를 벗고 소파 왼편의 안락의자에 녹초가 되어 주저 앉는다. 여전히 바이얼린 켜는 소리, 피아노 반주. 그때 3호실에서 헤르베르트 게오르크 보이틀러가 18세기 초의 의상에다가 가발을 쓰고 나온다.
뉴우톤 아이자크 뉴우톤 경이오.
수사과장 수사과장 리하르트 보쓰입니다. (그는 앉은 채로 있다.)
뉴우톤 반갑소, 아주 반갑소. 진심이오. 쿵쾅거리는 소리, 신음소리,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소리를 흉내낸다.) 사람들이 왔다가는 소리가 났는데. 여기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수사과장 간호원 이레네 슈트라웁이 교살됐지요.
뉴우톤 국내 유도연맹의 여자 챔피언이?
수사과장 그 여자 챔피언이.
뉴우톤 끔찍하오.
수사과장 에른스트 하인리히 에르네스티가 그랬지요.
뉴우톤 그렇지만 그 사람 지금 바이얼린을 켜고 있지 않소?
수사과장 그 자는 자신을 진정시켜야만 한다는군.
뉴우톤 하긴 한바탕 일을 치르고 나면 피곤해지기 마련이지. 그 친구, 생각보다 허약하군. 뭘 갖고 그가?
수사과장 전기 스탠드의 코드로.
뉴우톤 전기 스탠드의 코드로. 그것도 가능하겠구만. 에르네스티라는 친구. 안됐군요. 말도 못 하게. 또 유도 챔피언도 안됐구려. 제가 여길 정돈해도 방해가 되지 않겠소?
수사과장 그러시지요. 증거는 촬영했습니다.
뉴우톤은 테이블과, 의자들을 똑바로 세워 놓는다.
뉴우톤 나는 무질서를 참지 못하오. 원래 나는 질서를 사랑하기 때문에 물리학자가 되었다오. (그는 전기 스탠드를 세운다.) 자연의 피상적 무질서를 한층 높은 질서로 환원시키기 위해서. (그는 궐련을 피워 문다.) 담배를 피워도, 방해가 되지 않겠소?
수사과장 (반가와서) 천만에요. 그렇다면 저도- (그는 담배 케이스에서 시가를 한 대 꺼내려 한다.)
뉴우톤 미안하오만, 우리가 마침 질서에 대해 얘기하던 참이니 말이오, 여기서는 오직 환자만이 담배를 피울 수 있지, 방문객에겐 금지되어 있소. 그랬다간 당장 살롱 전체가 오염될 거요.
수사과장 알겠소. (그는 담배 케이스를 다시 집어 넣는다.)
뉴우톤 그리고 내가 꼬냑을 한 잔 마셔도, 당신한테 방해가 되지 않겠소-?
수사과장 전혀 그렇지 않소.
뉴우톤은 벽난로 격자 뒤에서 꼬냑 병과 유리잔을 하나 꺼낸다.
뉴우톤 에르네스티란 친구. 나로선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소. 어떻게 사람이 일개 간호원을 목졸라 죽일 수 있단 말이오! (그는 소파에 앉아 꼬냑을 따른다.)
수사과장 당신도 실은 간호원을 한 사람 교살했지요.
뉴우톤 내가?
수사과장 간호원 도로테아 모오저를.
뉴우톤 그 여자 레슬링 선수를?
수사과장 8월 12일에. 커튼 끈으로.
뉴우톤 그렇지만, 그건 전혀 다른 얘기요, 수사과장. 궁극적으로 나는 미친 사람은 아니란 말이오. 당신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수사과장 위하여.
뉴우톤은 꼬냑을 마신다.
뉴우톤 간호원 도로테아 모오저. 되돌아 보니, 밀짚 빛깔의 금발이었죠. 엄청난 장사였지. 우람한 몸집을 가졌는 데도 연약한 여자였지. 그녀는 날 사랑했고 나도 그녀를 사랑했지요. 그 딜레마는 오직 커튼 끈을 써서 풀 수밖에 없었소.
수사과장 딜레마라니?
뉴우톤 나의 사명은 만유인력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지, 여자를 사랑하는 데 있지 않소.
수사과장 그렇군요.
뉴우톤 게다가 엄청나게 나이 차이가 났거든.
수사과장 물론이겠죠. 당신은 2백 살도 훨씬 넘었을 테니까.
뉴우톤 (어리둥절해서 그를 응시한다.) 어째서요?
수사과장 내 말은, 당신이 그 뉴우튼-
뉴우톤 수사과장, 당신 돌았소? 아니면 돈 척하고 있는 거요?
수사과장 내 말 좀-
뉴우톤 당신이 그랬잖아요?
수사과장 당신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지 않소.
뉴우톤은 의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본다.
뉴우톤 한 가지 비밀을 털어 놓아도 좋을까요, 수사과장님?
수사과장 물론이죠. (엄숙한 표정으로 수첩을 꺼낸다.)
뉴우톤 사실, 나는 아이자크 뉴우튼 경이 아니랍니다. 나는 단지 뉴우톤이라고 자칭하고 있을 뿐이지요.
수사과장 그렇다면 왜?
뉴우톤 에르네스티를 당황하지 않게 하려구요.
수사과장 무슨 소린지 모르겠소.
뉴우톤 나와는 달리 에르네스티는 진짜 환자랍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고 망상하고 있지요.
수사과장 그것이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오?
뉴우톤 실제로는 내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는 걸 에르네스트가 알게 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수사과장 그렇다면 바로 당신이-
뉴우톤 그렇습니다. 상대성원리를 세운 저명한 물리학자가 바로 나란 말입니다. 1879년 3월 14일 울름에서 태어났지요.
수사과장은 얼떨떨해져서 일어선다.
수사과장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뉴우톤 역시 일어선다. 그들은 악수를 한다.
뉴우톤 나는 에른스트 하인리히 에르네스티보다는 훨씬 감동적인 선율로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켤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소. 저 친구는 안단테를 마냥 야만적으로 켜고 있단 말야.
수사과장 나는 음악에는 문외한이오.
뉴우톤 자, 앉읍시다.
뉴우톤은 수사과장을 소파 위에 끌어 앉힌다. 그리고 수사과장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뉴우톤 수사과장, 나를 체포할 수 없어서 당신은 화가 나 있지요?
수사과장 하지만.
뉴우톤 당신은 나를 간호원 살인죄로 체포하고 싶나요, 아니면 내가 원자탄 발명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날 체포하고 싶은 건가요?
수사과장 천만에요, 뉴우튼. 아니, 아인슈타인.
뉴우톤 저 문 옆의 스위치를 돌리면 어떻게 되지요, 수사과장?
수사과장 불이 켜지겠지요.
뉴우톤 당신은 전기를 접속시킨 것이지요. 전기에 관해 뭘 좀 아시나요?
수사과장 나는 물리학자가 아니오.
뉴우톤 나 역시 그것에 관해 별로 아는 게 없습니다. 다만 자연을 고찰한 것을 토대로 그것에 대한 이론을 수학의 언어로 작성하고 여러 가지 공식을 얻어냅니다. 그 다음은 기술자들의 몫이지요. 그런데 그들은 단지 공식에만 관심을 갖지요. 그들은 마치 침대 속에서 창녀를 다루듯 전기를 취급합니다. 전기를 한껏 이용만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기계류를 생산해냅니다. 그 기계란, 그것의 발명을 초래한 인식에서부터 독립해 떨어져 나갈 때에야 비로소 사용가능해지지요. 그래서 오늘날엔 그 원리를 알지 못하는 어떤 멍청이라도 전기 스위치를 올릴 수 있지요. 수사과장, 자, 이젠 저 전기 스위치 좀 올 려 줄수 있겠습니까?
수사과장은 전기 스위치를 멍하게 쳐다 본다. 일어나서 다가가다 멈칫 두려운 듯.
수사과장 아, 아직 어둡지도 않은데요, 뭘.
뉴우톤 또한, 오늘날엔 어떤 멍청이라도 원자탄 같은 것을 폭발시킬 수 있지요. (그는 수사과장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런데 당신은 내가 원자탄의 이론을 조장했다는 이유 때문에 나를 체포하려하는 군요, 리하르트. 그것은 정당치 못해요.
수사과장 나는 당신을 체포할 생각이 전혀 아닌데요, 알베르트.
뉴우톤 그거야 단지 당신이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왜 당신은 좀전에 전기불 켜기를 거부했지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당신은 전기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전기 스위치를 수없이 올렸다 내렸다 해왔잖소. 어쨌거나 난 이제 꼬냑을 감춰야겠소, 안그랬다간 수간호사 마르타 볼이 미쳐 날뛸거요. (뉴우톤은 꼬냑병을 다시 벽난로 철책 뒤에 감춰놓는다. 그러나 잔은 그대로 둔다.) 잘 지내시오.
수사과장 잘 지내시오.
그는 다시 3호실로 사라진다.
수사과장 이제 담배나 피워야겠다.
그는 단호히 담배 케이스에서 시가를 한 대 꺼내고 불을 붙여 피운다. 날개문으로 블로허 등장.
블로허 떠날 준비가 완료됐읍니다, 수사과장님.
수사과장 바닥을 구른다.
수사과장 난 기다리고 있는 중이네! 병원장을!
블로허 알겠습니다.
수사과장은 진정하고 투덜댄다.
수사과장 일행을 데리고 시내로 돌아가게, 블로허. 나는 나중에 뒤따라 가지.
블로허 명령대로 하겠습니다.(퇴장)
수사과장은 멍하니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뻣뻣하게 방 안을 서성대다가 벽난로 위에 걸린 초상화 앞에 멈춰 서서 그것을 관찰한다. 그러는 사이에 바이올린과 피아노 반주소리가 멈춘다. 2호실 문이 열리고 마틸데 폰 짜안트 여류 박사가 나온다. 곱추에다, 55세가량, 흰 의사가운, 청진기를 들고 있다.
여의사 나의 부친, 추밀고문관 아우구스트 폰 짜안트지요. 내가 이 빌라를 요양소로 바꾸기 전에 아버지는 여기 사셨지요. 위대한 재계의 거물이셨지요. 나는 아버지의 유일한 혈육이지요. 그런데 아버지는 나를 역병처럼 싫어 했어요.
수사과장 석 달 전엔 여기 다른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
여의사 나의 아저씨, 정치가였죠. 요아힘 폰 짜안트 재상이오. (그녀는 악보를 소파 앞의 작은 탁자 위에 놓는다.) 자. 에르네스티가 진정되었어요.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죠. 행복한 사내아이처럼. 이제 마음이 놓이는군요. 그가 브람스 소나타 3번을 또 켤까봐 걱정을 했는데. (그녀는 소파 왼편의 안락의자에 앉는다.)
수사과장 용서하시오, 짜안트 박사. 금지된 줄 알지만 담배를 피우고 있소. 그렇지만-
여의사 마음놓고 피우세요, 수사과장님. 나도 담배를 피워야겠어요. 수간호원 마르타가 뭐라든 간에. 불 좀 빌려 주세요.
여의사 수간호원 때문이지요.
수사과장 알고 있소.
여의사 뉴우톤이랑 얘기를 나누셨나요?
수사과장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지요. (그는 소파에 앉는다.)
여의사 축하합니다.
수사과장 뉴우톤은 실제로는 자기가 아인슈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더군요.
여의사 그는 누구한테나 그 소리를 하지요. 그렇지만 진심으론 자기를 뉴우톤이라고 여기고 있답니다.
수사과장 (아연해 하며) 정말입니까?
여의사 내 환자들이 스스로를 누구라고 여기는가 하는 건 내가 결정합니다. 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내가 그들을 훨씬 더 많이 알지요.
수사과장 그럴 수도 있지요. 그렇다면 우리를 좀 도와 주셔야겠군요, 박사님. 정부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여의사 검사가요?
수사과장 노발대발하고 있습니다.
여의사 이 일은 내게 맡기시지요.
수사과장 두 건의 살인-
여의사 아니, 수사과장.
수사과장 두 건의 불상사가 일어났어요. 석 달 사이에. 당신 요양소 안에 안전조치가 미흡하다는 점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여의사 안전조처라니, 어떤 상상을 하시는 겁니까, 수사과장? 나는 요양소를 운영하고 있지, 교도소를 관리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네들이라 해도, 아무리 살인자라지만 그들이 살인 을 저지르기 전에 미리 가둘 수는 없을 겁니다.
수사과장 문제는 이들이 살인자가가 아니라 정신병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정신병자는 언제라도 살인을 할 수 있지요.
여의사 건강한 사람들도 살인을 합니다. 그것도 눈에 띄게 매우 빈번히 우리가 위험한 환자 와 위험하지 않은 환자를 구별할 줄도 모른다는 말씀인 것 같군요.
수사과장 이 구별 능력이 어쨌든 보이틀러와 에르네스티의 경우엔 명백한 실패였읍니다.
여의사 유감이지요. 그것은 나를 불안하게 하는 일이지, 당신네 노발대발한 검사를 불안케 하는 일이 아닙니다.
2호실에서 아인슈타인이 바이올린을 들고 나온다. 마른 몸집에 밀짚같은 긴 백발, 코밑수염.
아인슈타인 이제 깨어났습니다.
여의사 아니, 교수님.
아인슈타인 내 연주가 괜찮았나요?
여의사 훌륭했어요, 교수님.
아인슈타인 간호원 이레네 슈트라웁-
여의사 이제 그 문제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수님.
아인슈타인 다시 자러 가야겠읍니다.
여의사 잘 생각하셨습니다, 교수님.
아인슈타인은 다시 자기 방으로 되돌아 간다. 수사과장 벌떡 일어서 있다.
수사과장 그러니까 저 작자군!
여의사 에른스트 하인리히 에르네스티입니다.
수사과장 살인자-
여의사 아니, 수사과장.
수사과장 아인슈타인을 자처하는 그 범행자로군. 저 사람 언제 입원했습니까?
여의사 2년 전에요.
수사과장 그리고 뉴우톤은?
여의사 일 년 전이죠. 두 사람 다 불치입니다. 보쓰, 모르긴 해도 나는 이 직업의 초년생은 아닙니다. 그 점은 당신이나 검사나 다 아는 일이예요. 검사는 내 진단서를 항상 높이 평가했지요. 내 요양소는 세계적으로 이름나 있고 그만큼 비쌉니다. 나는 과실같은 걸 저지를 짬밥도 아니고, 또 경찰을 끌어들이는 변을 당할 입장은 더우기 아니지요. 여기서 누구든 실패했다면, 그것은 의학의 실패이지 나의 실패는 아닙니다. 이 불상사는 예견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당신이나 나도 마찬가지로 간호원을 살해했을 수 있는 겁니다. 이 변사에 대해서는 의학상으로는 아무런 해명이 있을 수 없어요. 그렇다면-(그녀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수사과장이 불을 켜 준다.)
여의사 수사과장. 당신한테 눈에 띄는 점이 없읍니까?
수사과장 어떤 면으로?
여의사 두 환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수사과장 그런데?
여의사 둘 다 물리학자이죠. 핵물리학자요.
수사과장 그래서요?
여의사 당신은 정말로 아무런 의심도 품을 줄 모르는 사람이군요, 수사과장.
수사과장 (생각을 하다가) 당신 생각은-?
여의사 두 사람은 방사성 물질을 연구했답니다.
수사과장 그게 무슨 연관이라도 있다고 추측하십니까?
여의사 다만 확인하고 있는 중입니다. 즉 두 사람 다 미쳐버렸으며, 병이 악화일로에 있고 사납게 위험해져서, 둘 다 간호원을 교살했다는 점이죠.
수사과장 일종의-방사능으로 인해 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여의사 유감스럽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사과장 여기에 몇 사람의 환자가 있습니까?
여의사 세 명입니다.
수사과장 그뿐인가요?
여의사 나머지 환자들은 지난 번 불상사가 있고 난 직후에 신축 건물로 이주시켰지요. 다행히도 신축 건물 공사를 때 맞춰 끝낼 수 있었거든요. 돈 많은 환자들과 나의 친지들이 기부금을 냈습니다. 그들 대개는 여기서 세상을 떠났지요. 그럴 경우 나는 유일한 상속자였지요. 운명이라는 거죠, 보쓰. 나는 항상 단독 상속인이랍니다. 우리 가문은 사실 유전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 자신의 정신상태를 볼 때 비교적 정상적이라고 여 겨질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의학상으로는 하나의 작은 기적에 비견될 지경이랍니다.
수사과장 (생각에 잠겨) 세번째 환자는요?
여의사 똑같이 물리학자입니다.
수사과장 이상하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의사 전혀 그렇지 않아요. 나는 분류를 합니다. 작가는 작가들끼리, 대기업가는 기업가들끼리, 여류 백만장자는 여류 백만장자끼리, 그리고 물리학자는 물리학자끼리.
수사과장 이름은?
여의사 요한 빌헬름 뫼비우스.
수사과장 그 사람도 방사능하고 관계있나요?
여의사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수사과장 그 사람도 혹시-?
여의사 그 사람은 15년째 여기 있는데, 무해무탈합니다. 또 그의 상태도 변동이 없어요.
수사과장 박사님. 검사는 이 병동에 반드시 남자간호인을 배치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신 은 이 요구를 거부하실 수 없습니다.
여의사 그렇게 하겠다고 전하시죠.
수사과장 (모자를 집으며) 잘 됐군요. 당신이 그 요구를 받아들여 주시니 기쁘군요. 내가 “르 세리지에르”에 온 것이 두번째였지요, 짜안트 박사. 다시는 나타나고 싶지 않소이다.
그는 모자를 쓰고 왼쪽 날개문을 통해 테라스로 나가 공원으로 멀어져간다. 마틸데 폰 짜안트 박사는 생각에 잠겨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오른편에서 수간호원 마르타 볼이 깜짝 놀라며 숨을 몰아쉬면서 등장. 손에는 병력일지를 들고 있다,
수간호원 저, 박사님-
여의사 오, 미안. (그녀는 담배를 비벼 끈다.) 간호원 이레네 슈트라웁은 안치되었나?
수간호원 예.
여의사 나의 아주머니 젠타는 어떤 상태인가?
수간호원 불안해 하고 있읍니다.
여의사 복용량을 갑절로. 사촌 울리히는?
수간호원 그대로 입니다.
여의사 마르타 볼 간호장, 유감이지만 ‘르 세리지에르’의 한 가지 전통을 이젠 끝내야겠소. 이 제껏 나는 여자 간호원만 고용했는데, 내일부터 남자 간호인이 이 빌라를 맡게 될 것이오.
수간호원 마틸데 폰 짜안트 박사님. 저는 제 환자인 세 명의 물리학자를 빼앗기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내게 가장 흥미로운 케이스에요.
여의사 내 결심엔 변동이 없어요.
수간호원 박사님께서 어디서 남자 간호인을 데려오실지 궁금하군요. 요즘같은 구인난(求人難)에.
여의사 그거야 내가 걱정할 문제지. 뫼비우스 가족들이 도착했나요?
수간호원 초록빛 살롱에서 기다리고 있읍니다.
여의사 들어오게 해요.
수간호원 뫼비우스의 병력(病歷)입니다.
여의사 고맙군요.
수간호원은 그녀에게 서류를 넘겨주고 오른쪽 문으로 나가다가 다시 한 번 되돌아선다.
수간호원 그렇지만-
여의사 그만둬요, 마르타 간호장, 그만 됐어요.
수간호원 퇴장. 짜안트 박사는 차트를 펼치고 둥근 테이블 앞에서 그것을 검토한다. 오른편에서 수간호원이 로제 부인과 열네 살, 열다섯 살, 열여섯 살의 소년들을 안내해 들어온다. 제일 나이든 소년은 가방을 메고있다. 끝으로 선교사 로제. 여의사는 일어선다.
여의사 친애하는 뫼비우스 부인-
로제 부인 로제입니다. 로제 선교사 부인. 깜짝 놀라시겠지만, 박사님, 삼주 전에 저는 로제 선 교사와 결혼했지요. 어쩌면 너무 서둘렀는지 몰라요. 우린 9월에 어느 집회에서 알게 되었거든요.(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좀 어색하게 새 남편을 가리킨다.) 오스카는 홀아비였죠.
여의사 (그녀의 손을 잡아 흔들며) 축하합니다, 로제 부인, 진심으로 축하해요. 그리고 당신에게도. (그녀는 선교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로제 부인 박사님은 우리들의 조처를 이해하시겠지요?
여의사 물론이에요, 로제 부인. 인생은 마땅히 계속 꽃피어야 하니까요.
로제 선교사 여기는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군요! 너무나 친절하시고. 이 집 안에야 말로 참된 하나님의 평화가 지배하고 있군요. 그야말로 시편의 한 구절처럼. “주께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귀 기울이시며 포로된 자들을 멸시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로제 부인 오스카는 아주 훌륭한 설교자랍니다, 박사님. (그녀는 얼굴을 붉힌다.) 저의 아이들이예요.
여의사 안녕 얘들아.
세 소년 안녕하세요, 박사님.
제일 어린 소년이 바닥에서 뭔가 집어 들었다.
외르크-루카스 전기 스탠드의 코드예요, 박사님. 바닥에 떨어져 있었어요.
여의사 고맙다, 얘야. 아주 영리한 소년이군요, 로제부인. 확신을 갖고 앞날을 기대 하셔도 되겠군요.
로제 선교사 부인은 오른편으로 소파에 앉고 여의사는 왼쪽 테이블 앞에 앉는다. 소파 뒤쪽으로 세 소년이 서 있고, 오른편 바깥 안락의자에 선교사 로제가 앉는다.
로제 부인 박사님, 아이들을 데려온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스카는 서태평양 섬의 선교사직 을 맡았거든요.
로제 선교사 태평양에 말입니다.
로제 부인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떠나기 앞서 친아버지를 아는 게 옳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 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병이 났을 때 아이들은 아주 어렸거든요.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영 이별이 될는지 모르구요.
여의사 로제 부인, 의사의 소견으로 보면 몇 가지 염려스러운 점이 있긴 합니다만, 인간적으로 는 저도 부인의 소망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이 가족 상봉을 기꺼이 허락하겠습니다.
로제 부인 우리 요한 빌헬름은 좀 어떤가요?
여의사 (차트를 뒤적이며) 우리 뫼비우스의 병세는 호전되지도 악화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로 제 부인. 그 사람은 자기의 세계속에 틀어 박혀 있지요.
로제 부인 아직도 여전히, 솔로몬 왕이 자기 앞에 나타난다고 주장하나요?
여의사 여전히.
로제 선교사 슬프고 딱한 망상이군요.
여의사 당신의 편협한 판단이 나로선 놀랍군요, 로제 선교사님. 신학자로서 당신은 기적을 믿 어야 할 텐데요.
로제 선교사 물론이죠 - 그렇지만 정신질환자의 경우엔 다릅니다.
여의사 정신질환자들이 지각하는 현상들이 실재하느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정신의학도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정신의학은 오로지 정서와 신경의 상태에만 관여해야 하지요. 그런데 우리 착실한 뫼비우스의 경우엔, 비록 병세가 심한 경과를 보이지는 않더라도, 상황은 충분히 딱합니다. 도와준다고요? 맙소사! 인슐린요법 정도는 다시 한번 쓸 수 도 있었음을 인정하지요. 그렇지만 다른 요법들이 아무 성과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도 그만 두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마술을 부릴 줄 모릅니다, 로제 부인. 그래서 우리의 뫼비우스를 완쾌시킬 수 없지요. 그렇지만 그를 괴롭히고 싶지도 않답니다.
로제 부인 그 사람이 알고 있나요, 내가 - 내말은, 이혼에 대해 알고 있나요?
여의사 알려 주었어요.
로제 부인 알아 들었나요?
여의사 그 사람은 바깥 세상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어요.
로제 부인 박사님, 저를 올바로 이해해 주십시오. 나는 그이를 열 다섯 살짜리 고등학생 쩍에 친정 집에서 알게 되었어요. 그이는 친정집 다락방에 세 들어 있었어요. 그이는 고아인데다 찢어지게 가난했어요. 나는 그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해 주었고, 나중 엔 물리학 공부를 하게 도와주었지요. 그이의 스무 번째 생일날 우리는 결혼했답니다. 친정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는 밤낮으로 일했어요. 그이는 학위논문을 썼고, 나는 어떤 운수회사에 일자리를 얻었지요. 4년 뒤에 아돌프-프리드리히가 태어났죠. 우리의 맏아들이예요. 이어서 다른 두 아이도. 마침내 교수 자리가 눈 앞에 보였고 우리는 이제 한숨 돌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요한 빌헬름이 발병한 겁니다. 그리고 그의 병세는 엄청난 돈을 집어 삼켰어요. 나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초콜렛 공장에 들어갔죠. 토블러 초콜렛 상회였지요. (그녀는 말없이 눈물을 닦는다.) 나로선 평생동안 전력을 다해 애를 썼어요.(모두가 감동되어 있다.)
여의사 로제 부인 당신은 용기 있는 아내입니다.
로제 선교사 그리고 훌륭한 어머니구요.
로제 부인 박사님. 지금껏 저는 요한 빌헬름이 선생님 요양소에 머물 수 있도록 조달해 왔습니 다. 그 비용은 내 재력으로는 어림없이 큰 것이었지만 항상 하나님이 도와주셨지요 그런데 이젠 저의 경제력도 바닥이 났어요. 추가될 비용을 더 이상 조달할 수가 없습니다.
여의사 이해합니다, 로제 부인.
로제 부인 박사님께선 혹시, 제가 단지 요한 빌헬름에 대한 책임을 벗기 위해 오스카와 결혼했다고 여기실는지 모르겠군요 그렇지만 그건 아니예요. 지금부터 저는 더 힘든 생활을 할 거예요. 오스카는 결혼하면서 여섯 명의 아이를 끌고 왔어요.
여의사 여섯이라구요?
로제 선교사 여섯이오.
로제 부인 여섯이요. 오스카는 아주 정열적인 남자랍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턴 아홉 명의 아이를 먹여야 할 판입니다. 게다가 오스카는 건장한 몸집도 갖고 있지 못하고, 보수도 쥐꼬리만해요. (그녀는 운다.)
여의사 그만, 로제 부인, 그러지 마십시오. 울지 마십시오.
로제 부인 가엾은 요한 빌헬름을 팽개쳐 버린 저 자신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어요.
여의사 로제 부인! 그렇게 한탄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로제 부인 분명, 요한 빌헬름은 이제 국립 요양원에 수용되겠지요.
여의사 아닙니다, 로제 부인. 우리의 뫼비우스는 여기 이 빌라에 그냥 있게 됩니다. 맹세하지요. 그 사람은 여기 익숙해졌고, 아주 좋은 친구들도 사귀었어요. 결국 나도 인간입니다.
로제 부인 어쩌면 그렇게도 저에게 잘해 주십니까, 박사님.
여의사 전혀, 로제 부인, 전혀 그렇지 않아요. 원조재단들이 있으니까요. 병든 과학자들을 후원하는 오펠 재단, 또 슈테이네만 박사 재단. 널린 게 돈이지요. 당신의 요한 빌헬름을 위해 그 중의 얼마를 떼서 메꾸는 것은 의사로서 내 의무랍니다. 당신은 마땅히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서태평양 군도로 떠나셔도 됩니다. 자, 이제 우리의 뫼비우스를 이리오도록 하지요.
그녀는 배경을 향해 걸어가 1호실 문을 연다. 로제 부인은 흥분해서 일어난다.
여의사 친애하는 뫼비우스. 손님들이 와 있어요. 당신의 골방에서 나와 이리 오십시오.
1호실에서 요한 빌헬름 뫼비우스가 나온다. 40세에 약간 어수룩한 남자. 그는 불안하게 방 안을 둘러보고 로제 부인을 찬찬히 보더니 다음엔 소년들을, 마침내 선교사 로제를 본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는 듯, 침묵한다.
로제 부인 요한 빌헬름.
소년들 아빠.
뫼비우스 침묵.
여의사 뫼비우스, 제발 당신의 아내만은 알아 봤으면 좋겠군요.
뫼비우스 (로제 부인을 뚫어지게 보며) 리나?
여의사 기억이 살아나는 군요, 뫼비우스. 물론 당신의 리나예요.
뫼비우스 안녕, 리나.
로제 부인 요한 빌헬름, 나의 사랑하는, 사랑하는 요한 빌헬름.
여의사 자, 이제 된 것 같군. 로제 부인, 선교사님, 나와 면담하실 사항이 남아 있다면 저 쪽 신축 건물로 오십시오.
그녀는 날개문을 통해 왼쪽으로 퇴장.
로제 부인 당신의 아이들이에요, 요한 빌헬름.
뫼비우스 (놀라며) 셋이나?
로제 부인 물론이죠, 요한 빌헬름. 셋이죠. (그녀는 뫼비우스에게 아이들을 소개한다.) 아돌프-프리드리히, 당신의 큰아들이에요.
뫼비우스 악수를 한다.
뫼비우스 반갑구나, 아돌프-프리드리히, 나의 큰아들.
아돌프-프리드리히 안녕, 아빠.
뫼비우스 넌 몇 살이나 됐지, 아돌프-프리드리히?
아돌프-프리드리히 열 여섯이예요, 아빠.
뫼비우스 넌 뭐가 되고 싶으냐?
아돌프-프리드리히 목사요, 아빠.
뫼비우스 생각나는구나. 언젠가 네 손목을 잡고 성 요제프 광장을 거닐었었지. 햇빛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고, 그림자들이 깎아놓은 듯이 선명했지. (다음 소년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너-너는?
빌프리이트-카스파르 나는 빌프리이트-카스파르예요, 아빠.
뫼비우스 열 네 살?
빌프리이트-카스파르 열 다섯이예요. 난 철학 공부를 하고 싶어요.
뫼비우스 철학이라구?
로제 부인 아주 조숙한 아이예요.
빌프리이트-카스파르 나는 쇼펜하우어와 니체를 읽었어요.
로제 부인 당신의 막내, 외르크-루카스예요, 열네 살.
외르크-루카스 안녕, 아빠.
뫼비우스 안녕, 외르크-루카스, 나의 막내.
로제 부인 이 애는 당신을 가장 많이 닮았어요.
외르크-루카스 나는 물리학자가 되겠어요, 아빠.
뫼비우스 (막내를 깜짝 놀라 응시한다.) 물리학자라구?
외르크-루카스 그래요, 아빠.
뫼비우스 그래서는 안 된다, 외르크-루카스. 절대로. 그런 생각을 버려라.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외르크-루카스 (당황해서) 그렇지만 아빠도 물리학자가 되셨잖아요, 아빠-
뫼비우스 분명 그렇게 되지 말았어야 했는데. 외르크-루카스. 결코, 그것만 아니었다면, 지금나는 정신병원에 와 있지도 않았을 거다.
로제 부인 아니, 요한 빌헬름, 그건 잘못된 생각이예요. 당신은 요양소에 와 있는 거지, 정신병원에 있는 게 아니예요. 당신의 신경이 단지 쇠약해져 있을 뿐, 그뿐이예요.
뫼비우스 (고개를 가로 흔들며) 아니오, 리나. 사람들은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소. 모두가, 당신까지도. 또 내 아이들까지도. 내게 솔로몬 왕이 나타난다는 이유로.
모두 황당해서 입을 다문다. 로제 부인이 선교사 로제를 소개한다.
로제 부인 당신한테 여기 오스카 로제를 소개할께요, 요한 빌헬름. 나의 남편이예요. 선교사지 요.
뫼비우스 당신 남편이라구? 그렇지만 내가 당신 남편인걸.
로제 부인 이젠 아니예요, 요한 빌헬름. (그녀는 얼굴을 붉힌다.) 우리는 이혼했잖아요.
뫼비우스 이혼했다구?
로제 부인 당신도 아시잖아요.
뫼비우스 모르오.
로제 부인 짜안트 박사께서 당신한테 알렸어요. 분명해요.
뫼비우스 그랬을 수도 있겠지.
로제 부인 그리고나서 나는 바로 오스카랑 결혼했어요. 이이한텐 여섯 명의 아이가 있어요. 이이는 굿타넨에서 목사로 일했는데, 이제 서태평양 군도의 선교사로 발령받았죠.
로제 선교사 서태평양군도는 태평양 서쪽에 있죠.
로제 부인 우리는 모래 브레멘에서 배를 타요.
뫼비우스는 말이 없다. 다른 이들은 당황해 한다.
로제 부인 그래요. 그렇게 됐어요.
뫼비우스 (로제 선교사에게 고개를 숙여보이고) 내 아이들의 새 아버지를 알게 되어 기쁩니다, 선교사님.
로제 선교사 아이들 셋 모두가 제 마음에 썩 듭니다, 뫼비우스 씨.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실겁니다. 시편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로제 부인 오스카는 시편을 모두 외우고 있어요. 다윗의 시편들, 솔로몬의 시편들을요.
뫼비우스 아이들이 똑똑한 아버지를 갖게 되어 기쁘군요. 나는 모자라는 아버지였죠.
로제 부인 아니, 요한 빌헬름.
뫼비우스 진심으로 축하하오.
로제 부인 우리는 곧 떠나야 해요.
뫼비우스 태평양군도로.
로제 부인 작별을 해야겠어요.
뫼비우스 영원히.
로제 부인 당신의 아이들은 음악에 특출한 재능을 갖고 있어요, 요한 빌헬름. 아이들은 매우 훌륭하게 리코오더를 연주해요. 얘들아, 아빠 앞에서 작별 인사로 연주해 보려므나.
소년들 알았어요, 엄마.
아돌프-프리드리히는 가방을 열고, 플루우트를 나누어 준다.
로제 부인 앉으세요, 요한 빌헬름.
뫼비우스는 원탁 앞에 앉고 로제 부인과 선교사 로제는 소파에 앉는다. 소년들은 살롱 한가운데 선다.
외르크-루카스 북스테후데의 작품이예요.
아돌프-프리드리히 하나, 둘, 셋.
소년들 플루우트 연주를 한다.
로제 부인 은은하게, 얘들아, 아주 은은하게.
소년들 더욱 진지하게 연주한다. 뫼비우스 벌떡 일어난다.
뫼비우스 그만 둬! 제발, 집어쳐!
소년들은 당황하여 연주를 중단한다.
뫼비우스 연주를 집어쳐라. 제발. 솔로몬을 위해서. 연주를 그만 둬.
로제 부인 그렇지만 요한 빌헬름!
뫼비우스 제발, 더 이상 하지 말아라. 더 이상 하지 마. 제발 부탁이다.
로제 선교사 뫼비우스 씨, 바로 솔로몬 왕이야말로 이 천진한 소년들의 리코오더 연주를 듣고 기뻐할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시편을 쓴 시인 솔로몬을, 아가(雅歌)를 노래한 솔로몬을!
뫼비우스 선교사님. 나는 솔로몬을 직접 만나보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술라미트나, 꽃밭에서 풀을 뜯는 쌍동이 노루를 노래하는 위대한 황금의 왕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는 자주빛 어의(御衣)를 벗어 던졌단 말이오-
뫼비우스는 깜짝 놀란 가족들을 단숨에 스쳐 지나, 뒤쪽 자기 방으로 가서 문을 활짝 열어 젖힌다.
뫼비우스 그는 지금 헐벗고 악취를 풍기면서 초라한 진실의 왕이 되어 내 방 안에 웅크리고 있지요. 그의 시편들도 이젠 소름이 끼칩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선교사 양반. 당신은 시귀절을 좋아하더군요, 시편의 구구절절을 알고 암송까지 하신다구요-
그는 왼편 원탁으로 가서 그것을 뒤집어 놓고 그 안에 들어가 앉는다.
뫼비우스 우주여행사들에게 노래하는 솔로몬의 시편이라오.
Wir hauten ins Weltall ab.
Zu dn Wüsten des Monds. Versanken in ihrem Staub
Lautlos verreckten
Manche schon da. Doch die meisten verkochten
In den Bleidämpfen des Merkurs, lösten sich auf
In den Ölpfützen der Venus, und
Sorgar auf dem Mars fraß uns die Sonne
Donnernd, radioaktiv und gelb
로제 부인 아니, 요한 빌헬름.
뫼비우스 Jupiter stank
Ein pfeilschnell rotierender Methanbrei
Hing er so mächtig über uns
Daß wir Ganymed vollkotzen
로제 선교사 아니, 뫼비우스씨.
뫼비우스 Saturn bedachten wir mit Flüchen
Was dann weiter kam, nicht der Rede wert
Uranus, Neptun
Graugrünlich, erfroren
Über Pluto und Transpluto fielen die letzten
Unanständigen Witze.
소년들 아빠-
뫼비우스 Hatten wir doch längst die Sonne mit Sirius verwechselt
Sirius mit Kanopus
Abgetrieben trieben wir in die Tiefen hinauf
Einigen weißen Sternen yu
Die wir gleichwohl nie erreichten
로제 부인 요한 빌헬름! 사랑하는 요한 빌헬름!
뫼비우스 Längst schon Mumien in unseren Schiffen
Verkrustet von Unrat
수간호원이 모니카 간호원과 오른편으로 등장.
수간호원 뫼비우스 씨.
뫼비우스 In den Fratzen kein Erinnern mehr
An die atmende Erde
그는 멍하니 가면같은 얼굴로, 뒤집힌 탁자 속에 앉아 있다.
로제 부인 요한 빌헬름.
뫼비우스 너희들은 이제 서태평양 섬으로 꺼지기나 하라구!
소년들 아빠-
뫼비우스 꺼져버려! 당장! 서태평양 군도로! (그는 위협적으로 일어선다.)
로제 가족들 얼떨떨해 있다.
수간호원 갑시다, 로제 부인. 가자, 얘들아, 그리고 선교사님. 이 분은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그 뿐이예요.
뫼비우스 나가! 나가라구!
수간호원 가벼운 발작입니다. 모니카 간호원이 이 분 곁에서 안정을 시켜 줄 거예요. 가벼운 발작이죠.
뫼비우스 썩 물러가! 영원히! 저 태평양 바다로!
외르크-루카스 안녕 , 아빠 ! 안녕!
수간호원은 당황해서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을 오른 쪽으로 안내해서 퇴장. 뫼비우스가 그들의 등에 대고 사정없이 소리친다.
뫼비우스 나는 너희들을 다시는 보지 않겠어! 너희들은 솔로몬 왕을 모독했거든! 너희들은 저주를 받아야 해! 서태평양 군도랑 함께 서태평양 시궁창에 빠져 죽으라고! 1 만 미터 깊은 곳으로! 바다 속 시커먼 동굴에서 썩어 문드러져서, 하나님과 인간의 기억에서 없어져 버리라구!
모니카 간호원 우리만 남았어요. 당신 가족들은 당신의 소리를 이제 못 들어요.
뫼비우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모니카 간호원을 응시하더니 마침내 정신을 차린 듯 보인다
뫼비우스 아, 그렇군, 물론이지.
모니카 간호원은 입을 다물고 있다. 그는 약간 열적어 한다.
뫼비우스 내가 너무 격했나?
모니카 간호원 상당히요.
뫼비우스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소.
모니카 간호원 그럼요.
뫼비우스 흥분했었소.
모니카 간호원 당신은 그런 척 위장을 했어요.
뫼비우스 나를 꿰뚫어 본다는 말이요?
모니카 간호원 벌써 2년째 당신을 간호하는 걸요.
뫼비우스 (서성대다가 멈춰선다.) 좋아. 그 점을 시인하지. 나는 정신 병자 놀음을 했던 것이오.
모니카 간호원 왜요?
뫼비우스 내 아내랑 작별하기 위해, 그리고 내 아이들과도. 영원한 이별을 하려고.
모니카 간호원 그렇게 끔찍한 방식으로요?
뫼비우스 그렇게 인간적인 방식으로. 이 정신병원 안에 들어앉아 과거를 지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바로 미치광이 행동이라오. 내 가족은 이제 아무런 가책없이 나를 잊을 수 있지 내가 벌인 난장판을 보고 나를 다시 찾아 볼 마음이 싹 가셨을 거요. 이 안에서 나에게 남겨질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요. 단지 요양소 바깥 생활이 중요한 것이지. 정신병이란 돈이 많이 드는 병이라오. 15년 동안 내 착한 리나는 엄청난 거액을 지불해 왔지. 이젠 종지부를 찍을 때가 온 거요. 시기가 적절하게 맞아 떨어졌지. 솔로몬은 드러날 수 있는 모든 것을 나에게 계시해 주었다오. 그 덕분에 모든 발견의 체계가 완성되었소.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두 받아 적었으니까. 뿐만 아니라 내 아내도 독실한 선교사 로제를 새 남편으로 맞게 되었으니, 안심해도 좋아요, 모니카 양. 만사가 제대로 된 것이오. (그는 퇴장하려 한다.)
모니카 간호원 당신은 계획에 맞추어서 행동하는군요.
뫼비우스 나는 물리학자요. (그는 자기 방으로 향한다.)
모니카 간호원 뫼비우스 씨
뫼비우스 (멈춰서서) 모니카 양?
모니카 간호원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뫼비우스 해 봐요.
모니카 간호원 우리 두 사람에 관계되는 얘기에요.
뫼비우스 앉읍시다.
그들은 앉는다. 여자는 소파에 남자는 그 왼편 안락의자에 앉는다.
모니카 간호원 우리도 작별을 해야겠어요. 역시 영원히.
뫼비우스 (깜짝 놀라며) 당신이 날 떠난다구?
모니카 간호원 명령을 받았어요.
뫼비우스 무슨 일이 있었오?
모니카 간호원 저를 본관으로 이동시켰어요. 내일부터는 이곳은 남자 간호인들이 담당해요. 여자 간호원들은 이 빌라에 출입 금지에요.
뫼비우스 뉴우톤과 아인슈타인이 한 짓 때문에?
모니카 간호원 곤란한 사태를 염려한 검사의 요청에 따라서 병원장이 양보했어요.
침묵
뫼비우스 (의기소침하여) 모니카 양, 나는 이런데 서투른 사람이요.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잊어 버렸소. 같이 살고있는 저 두 명의 환자랑 전공에 관계된 시시한 소리를 나누긴 하지만 그건 대화라고 이름 붙일 수 없지요. 나는 벙어리가 되었소. 진심으로 겁이 났다는 말이오. 그렇지만, 당신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내게 있어 만사가 달라졌다는 을 해야겠소. 좀 쉽게 견딜 수 있게 되었지. 그런데. 그런데 이것마저도 지나갔구려. 어느 때보다도 행복했던 2년의 세월이. 모니카 양, 나는 당신을 통해 단절과 정신병자로서의 내 운명을 받아들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오. 잘 살길 바라오. (그는 일어서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으려 한다.)
모니카 간호원 뫼비우스 씨 , 저는 당신이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뫼비우스 (웃으면서 다시 앉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그 사실이 내 상황을 바꾸지는 않는다오. 운 나쁘게도 나에게 솔로몬 왕이 나타나거든요. 과학의 분야에선 기적보다 더 불쾌한 것은 없단 말이오.
모니카 간호원 뫼비우스 씨 , 난 그 기적을 믿어요.
뫼비우스 (어찌할 줄 모르며 그녀를 응시한다.) 믿는다구?
모니카 간호원 솔로몬 왕이 나타나는 것을.
뫼비우스 매일같이 밤낮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모니카 간호원 매일같이 밤낮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뫼비우스 그가 내게 자연의 비밀을 구술해 준다는 것을 ? 만물의 연관성을, 가능한 모든 가능성을 이야기 해준다는 것을?
모니카 간호원 나는 그것을 믿어요. 설사 다윗 왕이 시종들을 거느리고 당신에게 나타난다 해도 나는 당신의 그말을 믿을 거예요. 나는 무엇보다도 당신이 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거든요. 그것을 느끼고 있어요.
침묵. 잠시 후 뫼비우스 벌떡 일어난다.
뫼비우스 모니카 양! 나가시오!
모니카 간호원 (앉은채) 있겠어요.
뫼비우스 당신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소!
모니카 간호원 당신에겐 내가 필요해요. 나 말고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으니까요. 단 한사람도.
뫼비우스 솔로몬 왕의 존재를 믿다니, 그것은 치명적인 일이오.
모니카 간호원 당신을 사랑해요.
뫼비우스는 어쩔 줄 몰라하며 모니카를 응시하다가, 다시 앉는다. 침묵
뫼비우스 (조그마한 목소리로) 당신은 지금 멸망을 향해 달리고 있오.
모니카 간호원 나는 내 걱정은 안 해요. 당신이 걱정돼요. 뉴우톤과 아인슈타인은 위험한 인물이에요.
뫼비우스 나는 그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소.
모니카 간호원 도로테아 간호원과 이레네 간호원도 그들과 사이좋게 지냈어요. 그런데도 그들은 죽었어요.
뫼비우스 모니카. 당신은 나에게 믿음과 사랑을 고백했오. 이제 당신은 나 역시 진실을 털어놓게 만드는 구려. 나 역시 당신을 사랑하고 있오, 모니카.
그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뫼비우스 내 생명보다 더 사랑하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더욱 위험에 처해 있단 말이오.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2호실에서 아인슈타인이 나와, 파이프를 피운다.
아인슈타인 다시 잠이 깼소.
모니카 간호원 저, 교수님.
아인슈타인 갑자기 기억이 나더군.
모니카 간호원 아니, 교수님.
아인슈타인 내가 이레네 간호원을 목 졸라 죽였단 말이오.
모니카 간호원 그 생각은 이제 하지 마세요.
아인슈타인 (자신의 두 손을 들여다보며) 앞으로도 계속 바이올린을 켤 수 있을까?
뫼비우스는 모니카를 보호하려는 듯 일어난다.
뫼비우스 당신은 벌써 바이올린을 켰다오.
아인슈타인 들을만 했나요?
뫼비우스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연주했지. 경찰이 와 있는 동안에.
아인슈타인 크로이체르 소나타라, 감사할 일이군.(그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진다.) 하지만 나는 바이올린을 즐거워서 켜는 게 아니야. 또 이 파이프 담배도 즐겨서 피우게 아니지. 이 놈의 맛은 끔찍스럽거든.
뫼비우스 그럼 그만 두시지 그래.
아인슈타인 그럴 수는 없지. 난 아인슈타인이니까. (그는 두 사람을 날카롭게 관찰한다.) 당신들은 서로 사랑하나?
모니카 간호원 우리는 서로 사랑해요.
아인슈타인은 생각에 잠겨, 살해된 간호원이 누워 있던 배경 쪽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볼펜 윤곽을 눈여겨본다.
아인슈타인 이레네 간호원과 나도 서로 사랑했었지. 그녀는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했었다오, 이레네 간호원 말이요. 나는 그녀에게 경고했지. 그녀는 내게 악을 썼오. 그래서 나는 그녀를 개처럼 대했소. 한편으로는 도망치라고 간청도 해 보았지. 소용없는 짓이었소. 그녀는 떠나지 않았지. 나랑 같이 시골에 가서 살고 싶어했다오. 그녀의 고향 코올방으로. 나랑 결혼하기를 원했지. 벌써 허가서까지 얻어 갖고 있었오. 병원장 짠안트 박사로부터 말이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목졸라 버린 것이라오. 가엾은 이레네 간호원. 여자들이 자기를 희생하고 싶어하는 것보다 더 미친 은 없을 거요.
모니카 간호원 (그에게 가서) 다시 가서 누우세요. 교수님.
아인슈타인 나를 알베르트라고 불러도 좋아요.
모니카 간호원 이성을 찾으세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성을 찾으시오, 모니카 간호원. 당신 애인 말을 듣고 도망치시오! 안 그러면 당신은 끝장이오. (그는 다시 2호실로 향한다.) 다시 자러 가겠오. (그는 2호실로 사라진다.)
모니카 간호원 가엾게도 돌아버린 사람이에요.
뫼비우스 그가 결국 당신에게 확인시켜 준 것이오, 나를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니카 간호원 당신은 결코 정신병자가 아니에요.
뫼비우스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편이 당신으로서는 한결 현명한 일이오. 도망치구려! 당장 떠나요! 꺼져 버리라니까! 안 그러면 나 역시 당신을 개처럼 취급할 수밖에 없소.
모니카 간호원 그보다는 나를 애인 취급해 주세요.
뫼비우스 이리와요, 모니카. (그는 그녀를 안락의자로 데려가 마주 앉아 두 손을 잡는다.) 내 말 잘 들어요. 나는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소. 내 비밀을 털어놓은 것이오. 솔로몬 왕의 출현을 감추지 못했오. 그 때문에 왕은 벌을 줄 것이오. 종신형으로. 하지만 당신까지 그 때문에 벌을 받아서는 안돼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당신은 지금 한낱 정신병자를 사랑하고 있다오. 단지 불행을 짊어질 뿐이오. 이 요양소를 떠나 나를 잊으시오. 그것이 우리들에게 최선책이오.
모니카 간호원 나를 갖기를 원하시나요?
뫼비우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거요?
모니카 간호원 나는 당신과 함께 자고 싶고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 지금 내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아요. 그렇지만 왜 당신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으세요? 내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하긴 이 간호원 제복이 흉칙하지요. (그녀는 간호모를 훽 벗어버린다.) 나는 내 직업이 싫단 말예요. 5년 동안이나 환자를 돌보아왔지요, 이웃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이 길에서 나는 한번도 한 눈을 판 적이 없었어요. 모든 사람을 위해 나를 희생해 왔지요. 그렇지만 이제 나는 누구인가 한 사람만을 위해 나를 바치고 싶어요. 오직 당신만을 위해 존재하고 싶지, 타인을 위해 있고 싶진 않단 말이에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살고 싶어요. 당신을 위해, 당신이 시키시는 일이면 뭐든 하겠어요. 당신을 위해 밤낮으로 일할께요. 다만 나를 보내지는 마세요. 내게도 당신밖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단 말예요! 나도 외톨이란 말예요.
뫼비우스 모니카, 나는 당신을 보내야 겠소.
모니카 간호원 (절망적으로) 당신은 나를 전혀 사랑하시지 않는군요?
뫼비우스 난 당신을 사랑하오, 모니카. 맙소사, 난 당신을 사랑하오, 그야말로 미친 짓이오.
모니카 간호원 그렇다면 대체 왜 저를 배반하시는 거죠? 나뿐만이 아니죠. 당신은 솔로몬 왕이 당신에게 나타난다고 주장하고 계세요. 그렇다면 왜 당신은 솔로몬 왕까지 배반하시려는 거죠?
뫼비우스 (잔뜩 흥분하여 그녀를 잡는다.) 모니카! 당신은 나에 관해 어떤 예측을 해도 좋고 나를 나약하다 여겨도 좋소. 그거야 당신 마음이요. 나는 당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놈이오. 그렇지만 솔로몬 왕한테만은 충직을 지켜왔소. 그는 내 현존 속으로 기어 들어왔지요. 느닷없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그는 나를 악용하고 내 인생을 망가뜨려 버렸소. 그래도 지금껏 나는 그를 배반하지 않았소.
모니카 간호원 확실한가요?
뫼비우스 의심스럽소?
모니카 간호원 당신은, 그의 출현에 대해 입을 다물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을 받으리라고 생각하고 계시지요. 그렇지만 어쩌면 그 반대로 당신은 그의 계시를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을 받게 되실는지 몰라요.
뫼비우스 (그녀를 놓아주며) 나는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소.
모니카 간호원 그는 가능한 모든 발견의 체계를 당신에게 구술해 주었어요. 당신은 그 체계를 인정받기 위해 투쟁을 적이 있나요?
뫼비우스 사람들은 나를 정신병자로 취급하오.
모니카 간호원 왜 그렇게 용기가 없으세요?
뫼비우스 용기란 내 경우엔 일종의 범죄라오.
모니카 간호원 요한 빌헬름, 나는 짜안트 박사와 상의했어요.
뫼비우스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상의를 했다구?
모니카 간호원 당신은 이제 자유의 몸이에요.
뫼비우스 자유롭다구?
모니카 간호원 우리는 결혼할 수 있어요.
뫼비우스 맙소사 !
모니카 간호원 짜안트 박사님께서 이미 모든 일을 처리해 놓으셨어요. 박사님은 당신을 환자라고 여기긴 하지만 , 그래도 무해하다고 보고있어요. 또 유전성도 없구요. 자기자신이 더 정신병자라고 웃으시던 걸요.
뫼비우스 참 좋은 분이지.
모니카 간호원 정말 근사한 인물이잖아요?
뫼비우스 맞아.
모니카 간호원 요한 빌헬름! 나는 블루멘슈타인의 교구 간호원 자리를 하나 얻었어요. 저축도 했구요. 우린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돼요.
뫼비우스는 일어선다. 방안이 점차 어두워진다.
모니카 간호원 멋지지 않아요?
뫼비우스 물론.
모니카 간호원 당신은 기뻐하지 않는군요.
뫼비우스 너무 뜻밖의 일이라.
모니카 간호원 나는 또 다른 일도 했어요.
뫼비우스 어떤 ?
모니카 간호원 저명한 물리학자 세르베르트 교수와 상담을 했지요.
뫼비우스 나의 스승이셨소.
모니카 간호원 그 분은 당신을 상세히 기억하고 계셨어요. 당신이 그 분의 수제자였다구요.
뫼비우스 그런데 그 사람이랑 무엇을 상의 했소?
모니카 간호원 그 분은 당신 원고를 공정하게 검토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어요.
뫼비우스 그럼 그 원고가 솔로몬 왕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점도 그에게 설명했단 말이요?
모니카 간호원 물론이죠.
뫼비우스 그랬더니?
모니카 간호원 웃으셨어요. 당신은 항상 대단한 익살꾼이었다나요? 요한 빌헬름! 우리는 그냥 우리들 일만 생각하면 안돼요. 당신은 선택된 인간이에요. 솔로몬 왕이 나타나 광채에 싸인 자신을 드러내 보여 주었어요. 천상의 지혜가 당신에게 부여된 것이지요. 이제 당신은 지혜가 명하는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야 하는 거예요. 비록 그 길이 조롱과 조소, 불신과 의혹을 뚫고 나가야 하는 길일지라도. 그런데 그 길은 우리를 이 요양소 밖으로 인도하고 있어요. 요한 빌헬름, 그 길은 공개된 장소로 통하지, 은둔으로 통하는 길이 아니에요. 그것은 투쟁으로 통하는 길이에요. 나는 당신을 도와 주려고, 당신과 함께 싸우려고 여기 있어요. 솔로몬을 당신께 보낸 하늘은 또한 나를 당신께 보냈답니다.
뫼비우스는 창 밖을 내다본다.
모니카 간호원 사랑하는 요한 빌헬름!
뫼비우스 사랑하는 모니카! 왜?
모니카 간호원 기쁘지 않으세요?
뫼비우스 무척.
모니카 간호원 이제 당신 짐을 꾸려야겠어요. 8시 20분에 기차가 떠나요. 부루멘슈타인으로. (그녀는 1호실로 들어간다.)
뫼비우스 (혼잦말로) 그래, 그게 대수로울 것도 없지.
1호실에서 모니카가 원고뭉치를 들고 나온다.
모니카 간호원 당신 원고에요. (그녀는 원고를 테이블위에 놓는다.) 어두워 졌군요
뫼비우스 이제 해가 일찍 저무는군.
모니카 간호원 전등불을 켤께요. 그리고 당신 짐을 챙길께요.
뫼비우스 잠깐만. 이리로 와요.
그녀는 그에게로 간다. 두 사람의 실루엣만이 보인다.
모니카 간호원 울고 계시는 군요.
뫼비우스 당신도 그렇군.
모니카 간호원 기뻐서 그래요.
그는 커튼을 잡아내려 그녀를 덮는다. 잠시 엉겨 붙어 싸우는 모습. 실루에트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이어서 정적. 3호실문이 열린다. 한 줄기 빛이 방안으로 비치어 든다. 뉴우톤이 당대의 의상으로 방문 앞에 서있다. 뫼비우스는 테이블로 가서 원고를 집어든다.
뉴우톤 무슨 일이있었나?
뫼비우스(자기 방으로 가며) 내가 모니카 슈테틀러 간호원을 목졸라 죽였네.
(2호실에서는 아인슈타인의 바이올린 연주가 들려온다.
뉴우톤 아인슈타인이 또 바이올린을 켜는군. 크라이슬러. 아름다운 로즈메리. (그는 벽난로에서 꼬냑을 꺼낸다.)
2
1시간 뒤, 같은 방. 바깥은 밤이다. 다시 경찰이 와 있다. 다시 측정을 하고 스케치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다만 지금은 관객에게는 안 보이는 모니카 슈테틀러의 시체가 배경 오른쪽 창 아래에 뉘여 있다. 살롱에는 전등불이 밝혀져 있다. 샹들레에와 전기 스텐드가 빛을 발한다. 소파에는 마리아 폰 짜안트 여박사가 침울하게 생각에 잠겨 앉아 있다. 그녀 앞의 작은 의자 위에는 담배 케이스. 오른쪽 안락의자에는 구울이 속기 노트를 들고 앉아 있다. 수사과장 보쓰는 모자를 쓰고 외투 차림으로 시체를 떠나 앞쪽으로 나온다.
수사과장 간호원 이름이 뭐였지요?
여의사 모니카 슈테틀러.
수사과장 나이는?
여의사 스물 다섯. 블루멘슈타인 출신.
수사과장 가족은?
여의사 없습니다.
수사과장 진술을 적고 있나, 구울?
구울 물론입니다, 수사과장님.
수사과장 이번에도 교살인가요, 박사님?
법정의사 명백합니다. 이번에도 무서운 힘으로. 다만 이번에는 커튼 고리를 사용했지요.
수사과장 석달 전하고 똑같이. (그는 피곤한 듯 앞쪽 오른편 안락의자에 앉는다.)
여의사 지금 살인자를-
수사과장 아니, 박사님.
여의사 내 말은 행위자를, 보시겠습니까?
수사과장 그럴 생각이 없소.
여의사 그렇지만-
수사과장 짜안트 박사, 나는 내 의무를 이행할 뿐이오, 기록을 작성하고 시체를 검시하고 사진 촬영을 시키고, 법정의사한테 감정을 시킬 뿐이오. 그렇지만 뫼비우스는 조사하지 않겠소. 그 자는 당신한테 맡기리다. 영원히, 방사능에 관계된 다른 물리학자들과 함꼐.
여의사 검사꼐선?
수사과장 이젠 전혀 노발대발하지 않아요. 생각에 잠겨 있죠.
여의사 (땀을 닦는다.) 여긴 덥군요.
수사과장 전혀 덥지 않은데요.
여의사 이 세번쨰 살인을-
수사과장 아니, 박사.
여의사 이 세번쨰 불상사로서 ‘르 세리지에르’에서의 내 일은 끝장난 셈입니다. 나는 사직을 해야할 거예요. 모니카 슈테틀러는 나의 가장 우수한 간호원이었지요. 환자를 이해했어요. 환자와 같이 느낄 줄 알았어요. 나는 그녀를 딸처럼 사랑했지요. 그녀가 죽은 것도 죽은 거지만, 의사로서의 내 명성도 떨어지대로 떨어졌죠.
수사과장 그 명성은 다시 찾아 올겁니다, 블로허, 사진을 한 장 더, 위에서부터 찍게.
블로허 알겠습니다, 수사과장님.
오른쪽에서 두 명의 거인같은 남자 간호원이 식기와 음식이 실린 수레를 밀고 등장. 간호인 중의 한 사람은 흑인이다. 그들은 역시 거인같은 수간호인을 따라 들어온다.
수간호인 환자들의 저녁식사입니다, 박사님.
수사과장 (벌떡 일어서서) 우베 지이베르스.
수간호인 맞습니다, 수사과장님, 우베 지이베르스입니다. 헤비급 권투 전 유럽 챔피언. 지금은 ‘르 세리지에르’의 간호장이죠.
수사과장 그리고 다른 두 명의 거인들은?
수간호인 무릴로, 남미 챔피언이죠, 역시 헤비급입니다. 그리고 맥아더- (그는 흑인을 가리킨다) -북미 챔피언, 미들급입니다. 식탁을 갖다놓게, 맥아더. (맥아더 식탁을 놓는다.)
수간호인 식탁보를, 무릴로.
무릴로, 새하얀 식탁보를 깐다.
수간호인 마이쎈 도자기를, 맥아더.
맥아더는 식기를 분배해 놓는다.
수간호인 수프 그릇을 한가운데로, 맥아더.
맥아더는 수프그릇을 식탁 위에 놓는다.
수사과장 환자들이 대체 무엇을 먹지요? (그는 수프그릇의 뚜껑을 들어 올린다.) 간완자 스프로군.
수간호인 Poulet a la broche. Cordon Bleu.
수사과장 기막히게 고급이군.
수간호인 일급입니다.
수사과장 14급짜리 관리인 나같은 사람에겐 이런 요리는 어림도 없소.
수간호인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박사님.
여의사 이제 가도 돼요, 지이베르스. 환자들이 알아서 먹을테니까.
수간호인 수사과장님, 만나뵈서 영광입니다.
새 간호인은 절을 하고 오른쪽으로 퇴장.
수사과장 (그들 뒷모습을 보며) 빌어먹을.
여의사 저들이 맘에 드세요?
수사과장 샘이 나는 걸. 저 자들을 우리 경찰이 데리고 있다면-
여의사 보수가 천문학적 숫자예요.
수사과장 대기업주 귀족들, 억만장자들을 환자로 거느린 당신으로서야 그런 보수를 감당할 수 있겠지요. 저 친구들이라면 검사도 안심할 겁니다. 저 손아귀에선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할테니.
2호실에서 아인슈타인의 바이올린 연주가 들려온다.
여의사 다시 크로이체르 소나타군요.
수사과장 알고 있소. 안단테요.
블로허 끝났습니다, 수사과장님.
수사과장 그럼 이번에도 시체를 밖으로 치우게.
두 경찰관은 시체를 높이 든다. 그떄 뫼비우스가 1호실에서 뛰쳐 나온다.
뫼비우스 모니카, 내 사랑.
시체를 든 경찰관들 멈춰선다. 여의사는 위엄을 갖추고 일어선다.
여의사 뫼비우스!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어요? 당신은 가장 우수한 내 간호원을 죽였어요. 제일 온순하고 귀여운 간호원을!
뫼비우스 저도 가슴이 찢어지듯 아픕니다, 박사님.
여의사 아프다구.
뫼비우스 솔로몬 왕이 그렇게 명령했기 떄문이오.
여의사 솔로몬 왕이. (그녀는 다시 주저 앉는다. 우울하게 창백한 모습으로) 폐하꼐서 살인을 교사했다구요.
뫼비우스 나는 창가에 서서 어두운 밤을 내다보고 있었지요. 그떄 솔로몬 왕이 저 공원에서부터 테라스를 지나 내게 내려오더니 유리창을 통해 속삭이며 명령을 내렸답니다.
여의사 실례합니다, 수사과장. 신경이 피로해서.
수사과장 괜찮습니다.
여의사 요양소는 사람을 지치게 하지요.
수사과장 이해가 갑니다.
여의사 물러가겠어요. (그녀는 일어선다.) 내 요양소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매우 유감스러워 한다고 검사님께 전해 주십시오. 이제 만사가 제대로 되었다고 보고해 주십시오. 여러분, 물러갑니다.
그녀는 먼저 왼쪽 배경으로 가서 엄숙하게 시체 앞에서 절을 하고는, 뫼비우스를 바라보더니 오른쪽으로 퇴장.
수사과장 음, 이제 자네들은 시체를 아주 예배당으로 옮겨도 좋네. 이레네 간호원 곁으로.
뫼비우스 모니카!
두 경찰관은 시체를 들고, 나머지는 기구들을 들고 정원 쪽의 문으로 퇴장. 법정의사가 뒤따른다.
뫼비우스 사랑하는 모니카.
수사과장 (소파 곁의 작은 탁자로 다가가) 이제 하바나를 한 대 피워야겠군. 내겐 그럴 만한 자격이 있지. (그는 케이스에서 길다란 시가를 꺼내 찬찬이 들여다 본다.) 훌륭한 품질이야. (시가를 물고 불을 붙인다.) 친애하는 뫼비우스, 저 벽난로 격자 뒤에 아이자크 뉴우톤 경의 꼬냑을 좀 가져다 주시겠소?
뫼비우스 갖다 드리죠, 수사과장님.
수사과장은 시가를 뿜어대고 있고, 뫼비우스는 꼬냑병과 유리잔을 꺼내 온다.
뫼비우스 따뤄 드릴까요?
수사과장 그러시지요. (그는 유리잔을 들고 마신다.)
뫼비우스 한 잔 더?
수사과장 한 잔 더.
뫼비우스 (다시 술을 따른다.) 수사과장님, 부탁인데, 저를 체포해 주십시오.
수사과장 대체 왜 그러시오, 뫼비우스 씨?
뫼비우스 내가 어쨌든 모니카 간호원을-
수사과장 당신 자신의 고백에 따르면, 당신은 솔로몬 왕의 명령에 따라 행동한 것이오. 솔로몬 왕을 체포할 수 없는 한, 당신은 자유요.
뫼비우스 그렇지만-
수사과장 됐소. 내게 술이나 한 잔 더 따라주시오.
뫼비우스 그러지요, 수사과장님.
수사과장 그리고 꼬냑을 다시 제 자리에 감춰 놓으시오, 안 그러면 간호인들이 다 마셔 치울테니까.
뫼비우스 알겠습니다, 수사과장님. (그는 꼬냑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수사과장 앉으시오. (뫼비우스는 소파에 앉는다.) 이리로. (긴 안락의자를 가리킨다.)
뫼비우스 알겠습니다, 수사과장님. (그는 안락의자 위에 앉는다.)
수사과장 보시오, 나는 해마다 이 도시와 주변에서 살인자들을 체포하지요. 많지는 않아요. 한 반 다스가 될까. 어떤 놈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체포하지만, 어떤 이들은 체포할 떈 마음에 걸린다오. 그런데도 체포해야 하지요. 그런데 이번엔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이 걸려들었소. 처음에는 내가 개입할 수 없 는게 정말로 화가 났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갑자기 즐거운 기분이 되었소. 환호성이라도 치고 싶구려. 전혀 양심의 가책 없이, 내 손으로 체포하지 않아도 되는 세 살인자를 찾아낸 것이오. 정의라는 것이 생전 처음 휴가를 맞았소. 참 기막힌 느낌이오. 여보시오, 정의란 말하자면 엄청나게 힘을 빼는 것이라오. 정의에 종사하다 보면 스스로가 망가지지요, 건강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아무튼 내겐 휴식이 필요하오. 여보시오, 당신 덕분에 나는 이 휴가를 즐기고 있소. 잘 살기 바라오, 뉴우톤과 아인슈타인에게도 인사를 전해 주고 솔로몬 왕에게도 내 안부를 전해 주시오.
뫼비우스 알았습니다, 수사과장님.
수사과장 퇴장. 뫼비우스 혼자 있다. 그는 소파에 앉아 양손으로 정수리를 누른다. 3호실에서 뉴우톤이 나온다.
뉴우톤 오늘 메뉴가 뭐지?
뫼비우스 말이 없다.
뉴우톤 (수프 그릇을 연다.) 간완자 수프로군. (수레에 놓인 다른 요리들도 열어본다.) Poulea la broche. Cordon bleu. 이상하군. 다른 환자들이 신관으로 옮기기 전엔 저녁식사를 가볍고 소박하게 했는데. (그를 수프를 뜬다.) 배고프지 않나?
뫼비우스 침묵.
뉴우톤 알 만해. 나도 내 간호원을 살해한 뒤에도 나도 입맛을 잃었지.
그는 앉아 간완자 수프를 먹기 시작한다. 뫼비우스는 일어나 자기 방으로 가려 한다.
뉴우톤 그냥 있게. 잠깐!
뫼비우스 아이자크 경, 왜?
뉴우톤 당신과 할 말이 있소, 뫼비우스.
뫼비우스 (멈춰서서) 그래서? 뭐요?
뉴우톤 (식사를 가리키며) 아무튼 이 간완자 수프를 맛 보지 않겠소? 기막히게 훌륭한 맛이오.
뫼비우스 아니.
뉴우톤 친애하는 뫼비우스, 이제 여자 간호원들이 더이상 우리를 보살피지 않는다오. 거인같은 남자 간호인들의 감시를 받게 되어 있소.
뫼비우스 그거야 아무려나 상관없소.
뉴우톤 아마 당신에겐 그럴테지, 뫼비우스. 당신이야 분명코 평생동안 정신병원 안에서 보내기 를 원하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나한텐 그것이 문제가 되오. 말하자면 나는 나가고 싶으니까. (그는 간완자 수프를 다 먹었다.) 자, 이젠 영계 꼬치구이로 넘어갈까. (그는 손수 서브를 한다.) 이 남자 간호인들의 등장은 드디어 내게 행동하기를 강요하고 있소. 오늘 중으로.
뫼비우스 그거야 당신의 문제지.
뉴우톤 완전히 그렇지만은 않소. 고백을 하나 하겠소, 뫼비우스.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오.
뫼비우스 물론 아니지요, 아이자크 경.
뉴우톤 나는 아이자크 뉴우톤 경이 아니오.
뫼비우스 알고 있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지.
뉴우톤 멍청한 소리. 여기서 사람들이 알고 있듯 헤르베르트 게오르그 보이틀러도 아니오. 내 진짜 이름은 킬톤이라네, 여보게.
뫼비우스 (깜짝놀라며 그를 응시한다.) 알랙 야스퍼 킬톤?
뉴우톤 맞았어.
뫼비우스 상응론을 세운 사람?
뉴우톤 그래.
뫼비우스 (식탁으로 가서) 당신은 몰래 이곳으로 잠입해 들어왔군?
뉴우톤 정신병자 놀음을 해가지고.
뫼비우스 나를-염탐해 내려고?
뉴우톤 당신이 정신병에 걸린 이유를 캐내려고. 나무랄 데 없는 내 독일어는 우리 비밀첩보부 진영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은 덕분이지, 끔찍스런 고역이었어.
뫼비우스 그런데 저 가엾은 도로테아 간호원이 진실을 알아냈기 떄문에, 자네는-
뉴우톤 그렇지, 그 불상사는 나로서도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야.
침묵
뉴우톤 명령은 명령이니까.
뫼비우스 당연하지.
뉴우톤 나도 그럴 수밖에 없었소.
뫼비우스 물론 그랬겠지.
뉴우톤 내 사명이 위태로와졌단 말이오. 우리 첩보부의 가장 큰 기밀사업이. 의심을 벗어나려면 죽일 수밖에 없었지. 도로테아 간호원은 나를 이미 정신병자가 아닌 것으로 취급했고 여자 병원장께선 다만 적당히 병들어 있다고 보는 판이고. 살인을 통해서라도 내 광기를 결정적으로 입증할 필요를 느꼈었지. 여보게, 영계 꼬치구이 맛이 정말로 근사하다네.
2호실에서 아인슈타인의 바이올린 연주가 들린다.
뫼비우스 아인슈타인이 또 연주를 하는군.
뉴우톤 바하의 가보트로군.
뫼비우스 저 친구 음식이 식겠어.
뉴우톤 저 미치광이는 그냥 깽깽이나 켜게 내버려 두시오.
뫼비우스 협박이오?
뉴우톤 나는 당신을 무한히 존경하고 있소이다. 강압적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면, 나로서도 유감일테지요.
뫼비우스 당신은 나를 납치하라는 임무를 띄고 있는 거요?
뉴우톤 우리 첩보부에서 품고 있는 의문점이 입증되는 경우에는,
뫼비우스 그것이 무엇인데?
뉴우톤 첩보기관측 에서는 우연히도 당신을 현존하는 가장 천재적 물리학자라고 여기고 있소이다.
뫼비우스 나는 한낱 중증의 정신병자일 뿐이오, 킬톤.
뉴우톤 그 점에 대해 우리 첩보부에선 다른 의견을 갖고 있소.
뫼비우스 그럼 당신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뉴우톤 한마디로, 당신이야말로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라고 여기고 있소.
뫼비우스 그렇다면 당신네 첩보부에선 어떻게 나를 추적했소?
뉴우톤 나를 통해서지요. 우연히도 나는 새로운 물리학의 토대에 관한 당신의 학위 논문을 읽었지요. 처음엔 그 논문이 한낱 장난이라고 여겼댔소. 그리고 나서 갑자기 눈이 번쩍 띄었어요. 그것이 새로운 물리학의 가장 천재적 기록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거요. 나는 논문의 저자를 추적하기 시작했지만 알아낼 수 없었소. 그래서 비밀첩보부에 알렸고, 첩보부 측이 계속 추적했소.
아인슈타인 그 논문의 독자가 당신 한 사람만이 아니오, 킬톤. (그는 겨드랑이에 바이올린을 끼고 활을 든 채 몰래 2호실에서 나와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정신병자가 아니라오. 나를 소개하지요. 나 역시 물리학자요. 어떤 비밀첩보부의 요원이오. 그렇지만 전혀 다른 곳의. 내 이름은 요제프 아이슬러요.
뫼비우스 아이슬러-효과의 발견자?
아인슈타인 그렇소.
뉴우톤 1950년에 실종된.
아인슈타인 자발적으로 실종했지요.
뉴우톤 (갑자기 권총을 뽑아 든다.) 아이슬러, 얼굴을 벽에 대고 서지 않겠나?
아인슈타인 물론. (그는 유유하게 벽난로로 어슬렁거리고 가서 바이올린을 벽난로의 돌출부 위에 놓고, 권총을 쥔 채 느닷없이 돌아선다.) 친애하는 킬톤. 짐작컨데 우리 둘 다 총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닐텐데, 어쨌든 결투만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으시오? 당신이 콜트를 치운다면, 나도 기꺼이 내 브라우닝을 치우겠소.
뉴우톤 동의하겠오.
아인슈타인 갑자기 간호인들이 닥필 경우를 대비해서 꼬냑이 있는 격자 뒤에가 감춥시다.
뉴우톤 좋소.
두 사람은 그들의 권총을 벽난로 격자 뒤에 놓는다.
아인슈타인 당신이 내 계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소, 킬톤. 난 당신이 정말로 미쳤다고 여겼었지.
뉴우톤 안심하시오, 나 역시 당신을 그렇게 여겼으니.
아인슈타인 요컨데 여러 가지가 뒤틀렸어. 이를테면 오늘 오후 이레네 간호원의 일만 해도 그렇지. 그 여자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고, 그래서 사형 선고를 받은 거지. 그는 나로서도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프다오.
뫼비우스 알 만하오.
아인슈타인 명령은 명령이니까.
뫼비우스 당연하지.
아인슈타인 내겐 그 수밖에 없었소.
뫼비우스 물론 그랬겠지.
아인슈타인 또한 내 사명도 위태로와졌소. 역시 우리 첩보부의 가장 큰 기밀사업이. 우리 앉도록 하지.
뉴우톤 앉읍시다.
그는 식탁의 왼편에, 아인슈타인은 오른편에 앉는다.
뫼비우스 내 생각에는, 아이슬러, 당신도 나를 억지로-
아인슈타인 아니 뫼비우스.
뫼비우스 당신 나라로 데려가려 하는군.
아인슈타인 우리도 결국 당신을 모든 물리학자 중의 가장 위대한 자로 여기고 있소. 하지만 지금은 저녁 식사를 몹시 하고 싶소. 순전히 처형 전의 만찬이지. (그는 수프를 뜬다.) 여전히 식욕이 안 나시오. 뫼비우스?
뫼비우스 웬 걸. 갑자기 식욕이 나는군. 자네들의 정체를 알고난 지금.
아인슈타인 개새끼들.
뉴우톤 공원에는 또다른 등치들이 도사리고 있소이다. 아까부터 내 방 창문에서 그 놈들을 보았지.
아인슈타인 (일어서서 철책을 조사한다.) 단단하군. 특수 자물쇠를 썼고.
뉴우톤 (자기 방으로 가서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내 방의 창문에도 별안간 창살이 쳐졌 군요. 요술을 부린 것 같이.
그는 배경에 있는 다른 두 개의 방문도 열어 본다.
뉴우톤 아이슬러의 방에도. 또 뫼비우스의 방에도. (그는 오른편 방으로 간다.) 격리 수용되었 군. (그는 다시 앉는다. 아인슈타인도.)
아인슈타인 갇혔어.
뉴우톤 논리적으로 맞지요. 간호원들을 살해한 우리들로서는.
아인슈타인 이젠 우리가 공동으로 행동해야만 그나마 정신병원을 탈출할 수 있을 거요.
뫼비우스 나는 전혀 도망칠 생각이 없소.
아인슈타인 뫼비우스-
뫼비우스 그럴 이유가 눈꼽만치도 없소. 오히려 반대요. 나는 내 운명에 만족하오.
침묵.
뉴우톤 그렇지만 나는 거기에 만족할 수 없소. 실로 위기일발의 상황이라고 생각지 않으시오? 당신의 개인적 감정은 존중하오만, 당신은 천재요. 천재는 곧 공중의 자산이지요. 당신 은 물리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들어갔어요. 그렇지만 당신이 과학을 점유한 건 아니오. 당신은 천재가 못 되는 우리들에게도 길을 밝혀줄 의무가 있소. 나와 함께 갑시다. 일 년 뒤에 우리는 당신에게 연미복을 입혀 스톡홀름으로 보내드리겠소, 그리고 노벨상을 받는 거요.
뫼비우스 당신네 첩보부는 제법 고매하군요.
뉴우톤 무엇보다 당신이 중력의 문제를 해결했으리라는 추측이 우리 첩보부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점을 털어놓지요.
뫼비우스 맞았소.
정적.
아인슈타인 그 사실을 그토록 느긋하게 말하다니?
뫼비우스 그렇담 어떻게 말해야겠소?
아인슈타인 우리측 첩보부에선, 당신이 소립자의 통일원리를-
뫼비우스 당신 첩보부를 안심시킬 수 있소. 통일된 장의 이론도 발견되었소.
뉴우톤 (네프킨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세계 공식이로군.
아인슈타인 어이가 없군. 거대한 국립 연구소들에서 한 무더기의 물리학자들이 돈을 잔뜩 받으며 수년째 애를 써도 진척을 못 본 것을, 당신은 정신병원 책상 안에서 심심풀이로 해치우다니. (그는 역시 내프킨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다.)
뉴우톤 그럼 가능한 모든 발견의 체계는, 뫼비우스?
뫼비우스 그것도 있소. 호기심에서 그 체계를 정립했지요. 나의 이론들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 연구 검토하는 것은 나의 의무이기도 했소. 그런데 그 결과라는 것이 엄청나게 파괴적인 것이었소. 나의 연구가 인간의 수중으로 들어갈 경우, 상상할 수도 없는 새로운 에너지가 방출되어,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무서운 상황을 초래한단 말이오.
아인슈타인 그것은 피할 수 없을 거요.
뉴우톤 문제는, 누가 먼저 그 기술에 접근하느냐 하는 것이지요.
뫼비우스 (웃으며) 당신은 이 행운을 당신네 첩보부가, 그리고 그 배후의 참모들이 잡기를 원하는 거요, 킬톤?
뉴우톤 왜 아니겠소. 온 시대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를 물리학자들의 공동체로 환원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참모부라도 내겐 상관없소.
아인슈타인 내게는 오로지 나의 참모부만이 중요하오. 우리 물리학자들은 인류에게 막대한 권력 수단을 제공하고 있소. 우리는 누구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학문을 적용할 지 결정해야 하오. 그리고 나는 결정을 했소.
뉴우톤 넌센스요. 아이슬러. 중요한 것은 우리의 학문의 자유이지, 그 밖의 것은 없소. 우리는 선구자적 업적을 쌓으면 됐지. 그 밖의 것은 필요 없소. 우리가 개척한 길을 인류가 걸어 갈 줄 아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그들의 소관이지 우리가 알 바 아니오.
아인슈타인 당신은 참 딱한 유미주의자로군, 킬톤. 오로지 학문의 자유만이 당신에게 중요하다면 왜 우리에게로 오지는 않소? 우리 역시 성과를 필요로 하오. 우리 정치체제 역시 학문에 대해 비굴할 수밖에 없다오.
뉴우톤 우리 양 정치체제는, 그러니까 아이슬러, 지금 무엇보다 뫼비우스에 대해 비굴할 수 밖에 없단 말이군.
아인슈타인 그 반대요. 그가 우리에게 복종해야만 할 거요. 결국 우리는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테니까.
뉴우톤 정말 그럴까?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막다른 골목에 모는지도 모르오. 우리의 첩보부들은 유감스럽게도 똑같은 발상을 했소. 뫼비우스가 당신과 함께 간다면,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지요, 당신을 쏠 수밖에. 또 혹시 뫼비우스가 내 편으로 결정을 내린다면, 당신이 어쩔 도리가 없을 거요. 여기서 선택권은 뫼비우스가 가졌지 우리가 아니오.
아인슈타인 (엄숙하게 일어선다.) 권총을 꺼내옵시다.
뉴우톤 (역시 일어서며) 결투를 합시다.
뉴우톤은 벽난로 겨자 뒤에서 권총 두 자루를 꺼내, 아인슈타인에게 그의 것을 건네준다.
아인슈타인 이 일이 유혈극으로 끝나게 되어 유감이오. 그래도 우린 쏠 수밖에 없소, 서로를. 그리고 저 감시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부득이하면 뫼비우스까지. 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원고니까.
뫼비우스 내 원고라구 ? 나는 그것을 태워 버렸소.
죽음같은 정적.
아인슈타인 태웠다구?
뫼비우스 (열적게) 아까. 경찰이 다시 오기 전에. 안전위주로.
아인슈타인 (절망적인 웃음을 터뜨린다.) 태웠다는군.
뉴우톤 (화가 나서 소리친다.) 15년간의 업적을!!
아인슈타인 정말 미칠 것 같군.
뉴우톤 공식적으로는 우리는 벌써 미쳐 있는 걸.
그들은 권총을 집어넣고, 의시소침하여 소파에 앉는다.
아인슈타인 결국 우린 당신의 수중에 놓인 셈이군요, 뫼비우스.
뉴우톤 그리고 이 꼴이 되자고 나는 독일어를 배우고 간호원까지 목졸라 죽였단 말이오.
아인슈타인 또 나는 바이올린을 억지로 배웠소. 그건 음악에는 백지인 사람한텐 일종의 고문이 었소.
뫼비우스 식사를 계속하지 않겠소?
뉴우톤 입맛이 싹 달아나 버렸소.
아인슈타인 치즈 햄 스테이크가 아깝군.
뫼비우스 (일어서서) 우리는 세 명의 물리학자이지요. 우리가 내려야 할 결정은 물리학자들 사이의 결정입니다. 우리는 과학적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편견들에 좌우되어서는 안 되며, 논리적 귀결에 따라야 합니다. 이성적인 것을 찾으려고 애써야 하지요. 우린 결코 사고의 오류를 범해선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릇된 결론은 파국으로 치달을 테니까. 우리 세 사람은 모두 같은 목표를 눈앞에 두고 있읍니다. 그런데 책략은 각각이지요. 우리의 목표란 물리학의 발전입니다. 킬톤, 당신은 물리학자의 자유를 보존하겠다면서 그것의 책임은 부연하고 있소이다. 또, 아이슬러, 당신은 반대로, 책임이라는 명목으로 물리학을 특정 국가의 권력정책에 종사토록하고 있구려. 그런데, 현실은 어떤 모습인가요? 그 점에 대해 정보를 주시오. 그리고나서 내가 결정을 내리겠소.
뉴우톤 몇몇 저명한 물리학자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소. 보수와 숙식은 이상적이고, 주변 정치는 삭막하지만 기후는 아주 좋지요.
뫼비우스 그 물리학자들은 자유로운가요?
뉴우톤 친애하는 뫼비우스. 이 물리학자들은 국가 안보에 기여하는 과학적 문제들을 풀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소. 그러니까 당신도 이해해야만-
뫼비우스 그러니까 자유롭지 못하군요. (그는 아인슈타인을 향한다.) 요제프 아이슬러. 당신은 권력정치를 좇고 있소. 거기엔 어쨌든 권력이라는 게 속해 있지요. 그럼 당신은 그 권력을 가졌나요?
아인슈타인 내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군요. 뫼비우스. 우리의 권력정책은 바로 당의 이득을 위해 개인의 권력을 포기한 점에 있소이다.
뫼비우스 당신이 뜻하는 책임에 준하여, 당신은 그 당을 움직일 수 있나요, 아니면 당신이 당의 조종을 받는 처지에 있나요?
아인슈타인 뫼비우스! 그건 웃기는 얘기요. 물론 나는 당이 나의 제안을 따라주기를 희망할 수는 있지요. 그 이상은 아닙니다. 희망이 없다면, 정치적 태도라는 것도 존재할 수 없는 법이오.
뫼비우스 최소한 당신네 물리학자들은 자유로운가요?
아인슈타인 그들 역시 국가 안보를 위해서-
뫼비우스 이상하군요. 제가끔 내게 다른 이론을 선전하는데도, 제시되는 현실은 똑같은 것- 곧 하나의 감옥이란 말이오. 그런 판이니, 나는 차라리 내 정신병원 쪽을 택하겠소. 이곳은 최소한 정객들한테 이용당하지 않도록 내게 보장해주니까 말이오.
아인슈타인 결국 얼마간의 모험은 감행해야지요.
뫼비우스 우리가 결코 감행해선 안 될 모험들이 있소. 인류의 몰락이 그런 것이오. 우리는 이 세계가 이미 존재하는 무기들을 갖고 벌이는 판을 알고 있고, 또한 내가 앞으로 가능케 할 무기들을 써서 야기시킬 판도 상상할 수 있지요. 나는 이같은 통찰에 따라 내 행동을 결정했소. 지난 날 나는 가난했지요. 아내와 세 아들도 있었어요. 대학에서는 명예가 손짓하고, 산업체에서는 돈이 추파를 던졌지요. 두 길 모두가 너무나 위험했어요. 아마 나는 내 논문들을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고, 그 결과는 학문의 몰락과 경제구조의 붕괴였을 거요. 책임의식이 나로 하여금 다른 길을 가도록 강요하였소. 나는 학자로서의 출세길을 버렸고 산업체도 버렸고, 내 가족은 그들의 운명에 맡겨 버렸소. 그리고 어릿광대의 모자를 쓰는 쪽을 택했지요. 나는 솔로몬 왕이 내게 나타난다고 사칭했소. 그러자 곧 나를 정신병원에 가뒀다오.
뉴우톤 그건 결코 해결책이 아니었소!
뫼비우스 이성이 이 길을 요구했소. 우리의 학문분야는 이제 더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소우리의 두뇌로는 접근할 수가 없소. 우리는 우리 길의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것이라오. 그렇지만 인류는 아직 거기까지도 못 미쳤소. 우리는 앞장서서 싸워 왔는데, 아무도 뒤를 따라오지 않고 우리는 허공에 부딪쳤소. 우리의 학문은 끔찍해졌고 우리의 연구는 위험해졌고, 우리의 인식은 치명적이 되었소. 현실은 우리를 감당하지 못하오. 현실은 우리에게 부딪쳐 몰락해 간단 말이오. 우리는 우리의 지식을 철회해야만 하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철회했소. 다른 해결이란 없소. 당신네들에게도 마찬가지요.
아인슈타인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시오?
뫼비우스 당신네들은 비밀 송신기를 가졌겠지!
아인슈타인 그래서?
뫼비우스 당신네들에게 지령을 내린 사람들에게 보고하시오. 당신네들이 잘못 알았노라고. 나는 진짜 미치광이다라고.
아인슈타인 그렇게 되면 우리는 여기 죽을 때까지 갇혀 있는 거요.
뫼비우스 물론.
아인슈타인 실패한 첩보원들을 누가 거들떠 보겠소?
뫼비우스 그렇구말구.
뉴우톤 그래서?
뫼비우스 당신들은 나와 함께 정신병원에 머무는 것이오.
뉴우톤 우리가?
뫼비우스 당신들 둘 다.
침묵.
뉴우톤 뫼비우스! 우리한테 그렇게 요구할 수는 없소, 우리가 영원히-
뫼비우스 내가 그나마 노출되지 않고 머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요. 오로지 정신병원 안에서만 우리는 그나마 자유롭다오. 오로지 정신병원 안에서만 우리는 연구를 해도 좋지요. 바깥에 나가면 우리의 연구는 폭발물이오.
뉴우톤 그래도 결국 우리는 정신병자가 아니란 말요.
뫼비우스 그렇지만 살인자들이오.
그들은 당황해서 뫼비우스를 응시한다.
뉴우톤 무슨 소리요!
아인슈타인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하오, 뫼비우스!
뫼비우스 사람을 죽인 자는 살인자요, 그리고 우리는 살인을 했소. 우리는 각기 어떤 목적을 위해 자기의 간호원을 죽였소. 당신들은 당신네 비밀 임무를 안전하게 하려고, 또 나는 모니카 간호원이 나의 존재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오. 그녀는 나를 인정받지 못한 천재로 알고 있었소. 오늘날에는 인정받지 못한 채 묻혀 있는 것이 천재의 의무라는 사실을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소. 사람을 죽인다는 건 끔찍스런 일이오. 나는 살인을했소. 더욱 끔찍스런 학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데 당신들이 나타났군. 당신네들까지 내가 제거할 수는 없소. 그렇지만 혹시 설득할 수 있을지는? 우리의 살인이 무의미한 것으로 되버려야겠소? 우리가 스스로를 희생한 것이냐, 아니면 살인을 한 것이냐. 우리가 정신병원에 머무느냐, 아니면 세계 전체가 정신병원으로 되느냐. 우리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느냐, 아니면 인류가 사라지느냐, 그런 양자택일이오.
침묵.
뉴우톤 뫼비우스!
뫼비우스 킬톤?
뉴우톤 이 요양소. 흉측한 감시인들. 꼽사등이 여의사!
뫼비우스 그래서?
아인슈타인 그들은 우리를 야생동물처럼 가두고 있단 말요!
뫼비우스 우리는 사나운 짐승들이오.우리를 인류를 향해 풀어 놓아선 안 된다오.
침묵.
뉴우톤 다른 방도가 정말로 없겠소?
뫼비우스 없소.
침묵.
아인슈타인 요한 빌헬름 뫼비우스. 나는 착실한 인간이오. 여기 머물겠소.
침묵.
뉴우톤 나도 머물겠소. 영원히.
침묵.
뫼비우스 고맙소. 세계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기 위해 그나마 남아 있는 작은 기회를 위해서. (그는 술잔을 추켜든다.) 우리 간호원들의 명복을 빌며! (그들은 엄숙하게 일어선다.)
뉴우톤 이 잔을 도로테아 모오저를 위해.
나머지 두 사람 도로테아 간호원을 위해!
뉴우톤 도로테아! 나는 당신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소. 당신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죽음을 주었지! 이제 당신한테 부끄럽지 않은 나를 보여주겠소!
아인슈타인 나의 잔은 이레네 슈트라웁을 위해.
나머지 두 사람 이레네 간호원을 위해!
아인슈타인 이레네! 나는 당신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소. 당신을 기리고 당신의 헌신을 찬양하기 위해. 이젠 분별있게 행동하리다.
뫼비우스 나의 잔은 모니카 슈테틀러를 위해.
나머지 두 사람 모니카 간호원을 위해!
뫼비우스 모니카! 나는 당신을 희생시킬 수 밖에 없었소. 우리 세 물리학자가 당신의 이름으로 맺은 우정을 그대의 사랑으로 축복해 주시오. 우리로 하여금 바보가 되게 하여 우리의 학문의 비밀을 충실히 지킬 힘을 갖게 해 주시오.
그들은 마시고 술잔들을 식탁 위에 놓는다.
뉴우톤 우리 다시 정신병자로 변신합시다. 뉴우톤이 되어 유령처럼 떠돌아 다닙시다.
아인슈타인 다시 클라이슬러와 베토벤을 깡깽이로 켭시다.
뫼비우스 솔로몬 왕을 다시 나타나게 합시다.
뉴우톤 미쳤지만, 현명하게.
아인슈타인 갇혔지만, 자유롭게.
뫼비우스 물리학자지만, 죄를 짓지 않고.
세 사람 서로 손짓을 하며 자신들의 방으로 간다. 무대는 비어있다. 오른편에서 맥아더와 무릴로 등장. 두 사람은 까만 제복 차림에 모자를 쓰고 권총을 차고 있다. 그들은 식탁을 치운다. 맥아더가 식기를 실은 수레를 끌고 오른쪽으로 나가고, 무릴로는 창문 오른편으로 원탁을 갖다 놓고 식당 청소를 하듯 그 위에 의자들을 뒤집어 놓는다. 그리고 무릴로도 오른편으로 퇴장. 방안은 다시 비어 있다. 이어서 오른편에서 마틸데 폰 짜안트 박사 등장. 언제나처럼 흰 의사가운에 청진기. 그녀는 주변을 둘러본다. 끝으로 지이베르스 등장, 역시 까만 제복을 입고 있다.
수간호인 원장님.
여의사 지이베르스. 초상화를 바꾸어 걸도록.
맥아더와 무릴로가 묵직한 금빛 액자의 커다란 초상화를 가지고 들어온다, 장군의 초상화이다. 지이베르스는 먼저 걸렸던 초상화를 떼고, 새 것을 건다.
여의사 레오니다스 폰 짜안트 장군은 여자들 틈에서보다 여기서 더 잘 대우를 받을 거야. 언제 봐도 당당한 모습이거든. 바세도우씨 병을 앓긴 했어도 노련한 노투사였지. 그 분은 영웅적인 죽음을 사랑했어. 그런데 그런 죽음이 이 집안에서도 일어났었지. (그녀는 자기 부친의 초상화를 유심히 바라본다.) 그 대신 추밀 고문관께서는 여류 백만장자들이 모인 여환자 병동으로 가는 거야. 잠시 동안 그 분을 복도에 모시도록.
맥아더와 무릴로가 초상화를 갖고 오른편으로 퇴장.
여의사 프뢰벤 총재와 참모들이 도착하였나?
수간호인 초록빛 살롱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샴페인과 철갑상어알을 준비할까요?
여의사 그 거물들께선 만찬을 들러 오신 게 아니라 일을 하러 오셨어.
그녀는 소파에 앉는다. 맥아더와 무릴로가 오른편으로 다시 등장
여의사 세 환자를 데려오게, 지이베르스.
수간호인 알았습니다, 원장님. (그는 1호실로 가서 문을 연다.) 뫼비우스, 나오시오!
맥아더와 무릴로는 2호실 및 3호실 문을 연다.
무릴로 뉴우톤, 나오시오!
맥아더 아인슈타인, 나오시오!
뉴우톤, 아인슈타인, 뫼비우스가 나온다. 모두가 환한 모습이다
뉴우톤 신비로운 밤이로군. 그윽하고 거룩한 밤이야. 내 방의 창살사이로 목성과 토성이 반짝이며 만물의 법칙을 계시해 주고 있네.
아인슈타인 행복한 밤이야. 위안을 주는 포근한 밤. 수수께끼들은 침묵을 지키고 의문들은 입을 다무네. 바이올린을 끝없이 키고 싶군.
뫼비우스 성스러운 밤이로군. 암청색의 경건한 밤. 막강하신 왕의 밤. 왕의 하얀 그림자가 벽에서 떨어져 나오네. 그의 눈빛이 광채를 내며 번득이네.
침묵.
여의사 뫼비우스. 검사의 지시에 따라, 나는 단지 감시원의 입회 하에서만 당신과 얘기를 할 수 있소.
뫼비우스 알겠습니다, 박사님.
여의사 그렇지만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은 당신 동료들한테도 해당되오, 알렉 야스퍼 킬톤과, 요제프 아이슬러한테도.
두 사람, 놀라서 그녀를 응시한다.
뉴우톤 당신은- 알고 있었나요?
두 사람, 권총을 빼어 들려고 한다. 그러나 무릴로와 맥아더에게 무기를 빼앗긴다.
여의사 너희들의 대화는 도청 당했다. 벌써 오래 전부터 의심을 품어 왔었지. 킬톤과 아이슬러 의 비밀송신기를 가져 오게, 맥아더, 무릴로.
수간호인 두 손을 등 뒤로, 너희 셋 다!
뫼비우스, 아인슈타인, 뉴우톤, 손을 등 뒤로 돌린다. 맥아더와 무릴로는 2호실과 3호실로 간다.
뉴우톤 묘하게 됐군! (웃는다. 혼자, 유령처럼.)
아인슈타인 어떻게 된 영문인지-
뉴우톤 웃기는군! (다시 웃는다. 그러다 입을 다문다.)
맥아더와 무릴로가 비밀송신기를 갖고 돌아온다.
수간호인 손 내려!
물리학자들 복종한다. 침묵.
여의사 스포트 라이트를, 지이베르스.
수간호인 예, 대장님.
그는 손을 들어보인다. 밖으로부터 스포트 라이트가 눈부시게 물리학자들을 비춘다. 동시에 지이베르스는 방 안의 불을 꺼버린다
여의사 이 빌라는 감시원들이 포위하고 있지. 도망친들 소용없어. (간호인들에게 나가라고 손 짓한다.)
세 간호인, 권총과 송신기재를 들고 퇴장. 침묵.
여의사 너희들에게 내 정체를 알려 주지. 너희들이 안다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을테니까.
(침묵.)
여의사 (엄숙하게) 나한테 역시 황금의 왕 솔로몬이 나타났지.
세 사람, 어안이 벙벙하여 그녀를 응시.
뫼비우스 솔로몬이?
여의사 수 년 동안 내내
뉴우톤이 조그만 소리로 웃는다.
여의사 (의연하게) 맨 처음엔 내 서재에 나타났어. 어느 여름밤이었지. 해질 무렵 홀연히 황금 의 왕이 둥둥 떠서 다가 왔다오. 위풍당당히 천사 같은 모습으로.
아인슈타인 저 여자가 미쳤군.
여의사 그 분은 나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지. 당신의 여종과 말하기 시작한 것이었어. 그 분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지난날이 땅에서 당신이 누렸던 권세를 다시 인수하려고 하신댔어. 그 분은 벌써 당신이 지닌 지혜를 활짝 열어 보이셨지. 그래서 뫼비우스로 하여금 솔로몬의 이름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게 하려고 하셨지요.
아인슈타인 저 여자 미쳤군. 정신병원에 집어 넣어야 해.
여의사 그런데 뫼비우스가 그 분을 배반한거야. 뫼비우스는 숨길 수 없는 것을 숨기려고 했거든. 그에게 계시되었던 것은 이미 비밀이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지. 사고 가능한 것은 무엇이든, 언젠가는 사고되기 마련인거야. 솔로몬이 발견해 냈던 것은 언젠가 다른 누구에 의해서도 발견될 거란 말이야. 드디어 왕께선 나를, 당신의 보잘 것 없는 여종으로 찾았지.
아인슈타인 (열심히) 당신은 정신이 나갔어. 이봐, 당신은 미쳤다니까.
여의사 황금의 왕께서는 내게 뫼비우스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서 통치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지. 나는 복종했구. 나는 의사이고, 뫼비우스는 환자, 그러니까 내 뜻대로 그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어. 나는 몇 년 동안 반복해서 그를 무력하게 했고, 솔로몬 왕의 수기를 복사해 두었어. 이제 그 마지막 페이지까지 수중에 넣었지.
뉴우톤 당신은 실성했어요! 완전히! 제발 사정을 알아 보시라구요! (나직이) 우리 모두가 실성했지요.
여의사 나는 용의주도하게 일을 추진했어. 처음에는 필요한 자산을 모으기 위해 간단한 이론만 써먹었지. 이어서 거대한 기업을 세웠고 공장이 차례로 생겨났지. 그리고 이제 엄청난 신디케이트를 세웠답니다. 이제부터 가능한 모든 발명의 체계를 써먹을 참이야, 얘들아.
뫼비우스 (열을 내며) 마틸데 폰 짜안트 박사님, 당신은 환자요. 솔로몬 왕은 실재하지 않아요. 한 번도 내게 나타난 적이 없다구요.
여의사 거짓말.
뫼비우스 나는 단지 내 발견들을 숨기기 위해 솔로몬을 꾸며냈을 뿐이요.
여의사 네가 솔로몬의 존재를 부인하다니.
뫼비우스 이성을 찾으시오. 당신이 정신병자라는 점을 인정해야 하오.
여의사 네가 정신병자가 아니듯, 나도 아니야.
뫼비우스 그렇다면 나는 세상에 대고 진실을 외쳐야겠소이다. 당신은 수 년 간 나를 착취했소.
염치도 없이. 심지어는 내 가엾은 아내한테까지 돈을 받아 먹었소.
여의사 맘대로 해보시지, 뫼비우스. 설사 네 목소리가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해도 사람들은 네 말을 믿지 않을 테니까. 왜냐하면 세상의 눈으로 보면 넌 위험천만한 정신병자에 지나지 않으니까. 네가 저지른 살인 때문에.
세 사람은 진실을 예감한다.
뫼비우스 모니카?
아인슈타인 이레네?
뉴우톤 도로테아?
여의사 좋은 기회였지. 솔로몬의 지식은 확보될 필요가 있었고, 너희들의 배반은 처벌되어야 마땅했지. 너희들은 위험해서 제거되어야만 했지. 너희들의 살인을 통해. 그래서 세 명의 간호원들을 부추겨 너희들에게 메달리도록 몰았지. 난 너희의 행동을 빤하게 예측할 수 있었어. 너희들은 내 손바닥 안에 있었고, 살인을 한 거야.
뫼비우스는 그녀에게 달려들려 한다. 아인슈타인이 그를 말린다.
여의사 덤벼 봤자 소용없어, 뫼비우스. 아까 원고를 태운 일이 헛수고였던 것처럼.
뫼비우스는 몸을 돌린다.
여의사 여긴 더이상 요양소가 아니야. 이 건물은 나의 요새지. 이 건물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는 세 명의 물리학자를 가두고 있지. 너희들은 스스로 감옥으로 도망쳐온 셈이야. 솔로몬은 지금껏 너희들을 통해 사고하고 너희들을 통해 행동해 왔지만, 이제 그는 너희들을 제거하고 있는 거야. 나를 통해서.
침묵. 여의사는 모든 말을 조용히 엄숙하게 이어 간다.
여의사 내가 솔로몬의 권세를 떠맡을거야. 나는 겁나지 않아. 나의 요양소는 장신구와 훈장을 주렁주렁 단 미치광이 친척들로 만원이지. 나는 우리 가문의 마지막 정상인이지. 임신도 할 수 없고 다만 이웃 사랑의 소질만 갖고 있는. 그래서 솔로몬 왕이 나를 불쌍히 여긴거야. 수 천 명의 여자를 거느린 그 분이 바로 나를 선택했어. 이제 나는 나의 선조들보다 더욱 막강해질 거야. 내 트러스트는 지배할 거야. 모든 나라, 모든 대륙들을 정복하고 태양계를 발판으로 안드로메다 성운을 향해 우주 정복을 할거야. 계산은 맞아 떨어졌지.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늙은 꼽사등이 처녀를 위해서. (그녀는 작은 종을 울린다.)
오른편에서 수간호인 등장.
수간호인 대장님, 부르셨습니까?
여의사 가세, 지이베르스. 이사진들이 기다리고 있어. 세계 기업이 시작되고, 생산이 시작되는 거야. (그녀는 수간호원과 함께 오른편으로 퇴장.)
세 물리학자들만 남는다. 모든 유희가 완료되었다. 침묵.
뉴우톤 이제 다 끝났어. (그는 소파에 앉는다.)
아인슈타인 세계가 한 미친년의 수중에 떨어졌군.
그는 뉴우톤 곁에 앉는다.
뫼비우스 일단 사고된 것은, 이미 철회할 수 없는 거야. (그는 소파 왼편의 안락의자에 앉는다.)
침묵. 그들은 멍하니 앞을 보고 있다. 이어서 아주 침착하고 자연스럽게 관객을 향해 자신들을 소개한다.
뉴우톤 Ich bin Newton. Sir Isaak Newton. Geboren am 4. Januar 1643 in Woolsthrope bei Grantham. Ich bin Präsident der Royal Society. Aber es braucht sich deshalb keiner zu erheben. Ich schrieb: Die mathematischen Grundlagen der Naturwissen-schaft. Ich sagte: Hypotheses non fingo. In der experimentellen Optik, in der theoretischen Mechanik und in der höheren Mathematik sind meine Leistungen nicht unwichtig, aber die Frage nach dem Wesen der Schwerkraft mußte ich offenlassen. Ich schrieb auch theologische Bücher. Bemerkungen zum Propheten Daniel und zur Johannes-Apokalypse. Ich bin Newton. Sir Isaak Newton. Ich bin Präsident der Royal Society. (그는 일어나 자기 방으로 간다.)
아인슈타인 Ich bin Einstein. Professor Albert Einstein. Geboren am 14. März 1879 in Ulm. 1902 wurde ich Experte am Eidgenössischen Patentamt in Bern. Dort stellte ich meine spezielle Relativitätstheorie auf, die die Physik veränderte. Dann wurde ich Mitglied der Preuß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Später wurde ich Emigrant. Weil ich ein Jude bin. Von mir stammt die Formel E=mc2, der Schlüssel zur Umwandlung von Materie in Energie. Ich liebe die Menschen und liebe meine Geige, aber auf meine Empfehlung hin baute man die Atombombe. Ich bin Einstein. Geboren am 14. März 1879 in Ulm. (그는 일어나 자기 방으로 간다. 이어서 그의 바이올린 연주가 들린다. 크라이슬러. 사랑의 슬픔.)
뫼비우스 Ich bin Salomo. Ich bin der arme König Salomo. Einst war ich unermeßlich reich, weise und gottesfürchtig. Ob meiner Macht erzitterten die Gewaltigen. Ich war ein Fürst des Friedens und der Gerechtigkeit. Aber meine Weisheit zerstörte meine Gottesfurcht, und als ich Gott nicht mehr fürchtete, zerstörte meine Weisheit meinen Reichtum. Nun sind die Städte tot, über die ich regierte, mein Reich leer, das mir anvertraut worden war, eine blauschimmernde Wüste, und irgendwo um einen kleinen, gelben, namenlosen Stern kreist, sinnlos, immerzu, die radioaktive Erde. Ich bin Salomo, ich bin Salomo, ich bin der arme König Salomo. (그는 자기 방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