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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겨울, 첫 휴가 때 병진, 승배]
다방 인질 사건 지난주에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민통선에 위치한 ‘두타연’을 관광하고 오후 시간에는 ‘대암산’ 등산을 하였습니다. 빨갛고 노랗게 물든 고향의 산과 계곡, 그리고 파란 가을 하늘은 아마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처럼 마침 장날이어서 저녁 무렵에는 5일장 구경도 하고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흔히 ‘명동’이라고 불리는 양구의 번화가를 걸었습니다. 많이도 변한 고향의 모습에 아쉬움을 토해 내다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있어 2층을 올려다봅니다. 지금은 무슨 학원이라는 글씨가 창문에 붙어 있지만 당시에는 ‘소라다방’이라는 꽤 유명한 다방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강춘’이라는 유명한 중국집과 함께 양구에서 몇 채 안 되는 2층 건물이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생한 ‘다방 인질극’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중학교 1학년 무렵으로 생각됩니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몰라도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난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중앙시장을 지나 명동으로 접어들 무렵 길을 가로질러 새끼줄이 쳐져 있었으며 새끼줄 저편에서 경찰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새끼줄을 타넘어 가고 있는데 총을 든 경찰이 ‘빨리 가라.’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기겁을 하고 뛰어 도망을 갔습니다. 그날 저녁 라디오에서는 ‘총을 든 무장괴한이 다방에서 인질을 잡고 경찰과 대치 중’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박 추수’라는 범인의 이름이 밝혀지고 다음 날 아침에는 용감한(사실은 술에 취했다고도 합니다) 군인이 다방으로 올라가다가 범인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도 합니다. 오후 무렵에는 괴한의 부모가 와서 설득 중이라고도 하고 석간신문에는 총을 들고 다방 창문에 서 있는 범인의 모습이 실리기도 하였습니다. 저녁 무렵에는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가 듣고 싶다는 범인의 요청에 바로 맞은편에 있는(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레코드 가게에서 노래를 틀어 주었다고 하며 이윽고 다음 날 아침 뉴스에서는 범인이 자살을 했다고 발표를 하고 이 사건이 모두 끝나게 되었습니다. ‘다방 인질 사건’ ‘박 추수 사건’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가 듣고 싶다.’등 당시 신문과 선데이 서울 등 주간지에 대대적으로 보도 되었던 제목들을 기억해 봅니다. 그 후 전국의 다방에서 모방범죄가 기승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시 범인이 ‘신광서점’(지금은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앞을 지나가는데 서점 앞에 세워져 있던 빈 군용 지프차 안에 실탄이 장전 된 카빈 소총이 있어 꺼내 들고 바로 옆의 ‘소라다방’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물론 범인에게 여자문제인지 하여튼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도된 것으로 기억하며 발표는 자살이라고 하였으나 맞은편 건물에서 자격수가 사살하였다는 것이 사건의 진실이라고 우리는 아직도 굳게 믿고 있습니다. “나는 그때 이 건물 뒤에서 머리만 내밀고 구경하고 있었어,”라는 친구의 말에 다시 한 번 건물 2층을 올려다보는데 친구가 말을 이어갑니다. “40년 전 일은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말이야 4년 전 일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 “그래, 맞아.”큰 소리로 웃으며 내가 맞장구를 칩니다. “나는 4일 전 일도 기억이 나질 않아” 우리들의 웃음소리는 밤공기를 가르며 명동 거리에 퍼져 나갑니다. 정말이지 정확히 4일 후면 고향에 다녀온 것도 잊어버릴지 모릅니다.
2009. 10. 12. 갑규니 |
첫댓글 갑균이 글 잘읽었읍니다.항상 실감 나는글로 어린시절을 떠올리는구나. 글과 함게 건강하여라.
후후 그런일이 가물가물하게 기억이 나는군~~~~
갑균이의 머리는 알아주어야 해!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지만,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 주는 기억력은 대단하고 설명도 옛추억을 새록새록거리게 하네 그랴~
몇년전만 해도, 고려당위로 통하는 골목길(농협골목)에 위치한 요정(술집)이름이 생각났었는데.... 이름을 잊어버렸다... 그 요정옆에숨어서, 군경과 대치하던 광경을 보았던 기억이 아스라한데........
옛날은 무조건 내겐 그리움이야!!걱정스럽고 무섭던 사건조차도....나도 갑균이의 기억력에 감탄하며..잠시 옛날로 가게해준 친구에게 고마운 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