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터는 샛길로 똑바로 달려가고,새터드웨이트는 헐떡거리면서 그를 쫓아갔다.
1분도 채 안 되어 그들은 '숨어 있는 정원' 바로 담 옆에 도달했다.그러자 동시에
리처드 스콧과 언커턴이 집 반대편 모퉁이를 돌아서 왔다.그들은 '숨어 있는 정원
입구의 좌우에서 서로 마주보고 멈춰섰다.
"안에서---안에서 들렸습니다." 하고 떨리는 손으로 정원을 가리키면서 언커턴이
말했다.조사해 보자고 말하면서 포터가 앞장서서 정원 안으로 들어갔다.담장의 마
지막 모퉁이를 돌았을 때 그는 갑자기 발을 멈췄다.새터드웨이트는 그의 어깨 너
머로 들여다보았다.갑자기 리처드 스콧이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정원 안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두 사람은 돌의자 옆 잔디밭에 쓰러져 있었다.남자
와 여자였다.또 한 사람은 스태버턴 부인이었다.그녀는 담장 옆에서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며,오른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었다.
포터가 외쳤다.
"아이리스,아이리스,어떻게 된 거요! 지금 뭘 들고 있는 거요?"
그 때 아이리스는 고개를 숙여 그것을 보았다---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태연하게.
"권총이에요."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그리고---시간이 꽤 흘렀다고 느껴
졌지만,실은 몇 초 뒤에, "내가 주웠어요."
새터드웨이트는 언커턴과 스콧이 무릎을 짚고 앉아 있는 잔디밭으로 갔다.
스콧이 말했다. "의사,의사를 불러야 해."
그러나 의사를 부르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모래 점성술을 얘기했던 지미 앨런슨
과,집시에게 돈을 되돌려 받았다는 모이라 스콧은 죽음의 고요 속에 누워 있었다.
리처드 스콧은 간단한 조사를 했다.이런 경황에도 그는 강인하게 행동했다.한번
고통스런 비명을 지른 뒤,그는 다시 안정을 되찾은 것이다.그는 자기 아내를 조심
스럽게 내려놓았다.그리고는 짧게 말했다.
"뒤에서 쏘았어요.총알이 완전히 관통했어요."
그리고는 그는 앨런슨을 조사했다.앨런슨은 가슴에 상처를 입었고,총알은 몸속에
박혀 있었다.존 포터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그리고는 엄숙하게 말했다.
"아무데도 손을 대서는 안 됩니다.그대로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경찰이라고?" 하고 리처드 스콧이 말했다.담장 옆에 서 있는 여자를 보는 그의
눈은 갑자기 증오로 불타고 있었다.그는 그쪽으로 발을 내딛었다.그러나 그와 동
시에 존 포터가 그를 막았다.순간,두 사람사이에는 눈싸움이 일고 있는 것 같았다
포터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그리고는 말했다.
"안 돼,리처드 자네는 착각하고 있어."
리처드 스콧은 마른 입술을 적시면서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럼,왜 저것을 손에 들고 있는 거지요?"
아이리스 스태버턴이 힘없이 다시 말했다. "나는 주웠을 뿐이에요."
언커턴이 일어서면서 말했다.
"경찰을 불러야 합니다,스콧 씨.당신이 전화를 걸어 주실수 있겠죠? 누군가 여기
에 남아 있어야 하는데---그래요,분명히 누군가가 여기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시종 조용하고 신사다운 태도로 지켜보고 있던 새터드웨이트가 자기가 남아 있겠
다고 저청했다.언커턴은 흔쾌히 그것을 승낙했다.그리고는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부인들에게 이 일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레이디 신시아와 아내에게."
새터드웨이트는 정원에 남아서 모이라 스콧의 시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고 윙크필드 경감이 말했다.
그들은 서재에 모여 있었다.마흔 살 남짓의 빈틈이 없어 보이는 경감은 취조를 끝
마치려 하는 참이었다.그는 초대 손님들 모두에 대한 심문을 끝내고 지금은 이 사
건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었다.그는 포터 소령과 새터드웨이트의 말에 귀를 기울이
고 있었다.언커턴은 맞은편 벽을 쳐다보면서 차분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경감이 말했다.
"내가 듣기에는 두 분은 산책을 나갔다가 '숨어 있는 정원'이라고 부르는 정원의
왼쪽으로 나 있는 샛길을 통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이었다고요? 틀림없습니
까?"
"예,틀림없습니다,경감님."
"두 분은 두 발의 총소리와 여자의 비명을 들었다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숲을 달려나와서 '숨어 있는 정원'의 입구 쪽으로 갔었고요?
만일 누군가가 그 정원에서 달려나와 오른쪽으로 구부러졌다면 언커턴 씨와 스콧
씨를 만났겠죠.그리고 만일 왼쪽으로 구부러졌더라면 틀림없이 포터 씨와 새터드
웨이트 씨를 만났을 겁니다.그렇겠죠?"
"그렇습니다." 하고 포터 소령이 말했다.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경감이 다시 말했다.
"그리고 언커턴 씨 부부와 레이디 신시아 드레이지는 잔디밭에 앉아 있었습니다.
스콧 씨는 잔디밭에 접해 있는 당구실에 있었습니다.6시 10분이 좀 지나서 스태
버턴 부인이 집에서 나와 잔디밭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몇 마디 나누고
나서 집 모퉁이를 돌아 '숨어 있는 정원' 쪽으로 갔습니다.그리고 2분 뒤에 총소
리가 들렸습니다.스콧 씨는 집에서 달려나와 언커턴 씨와 함께 '숨어 있는 정원'
쪽으로 뛰어갔습니다.동시에 포터 씨와 새터드웨이트 씨가 반대편에서 뛰어왔습
니다.스태버턴 부인은 권총을 손에 들고 '숨어 있는 정원'안에 있었습니다.그리
고 그 권총에선 두 발의 총알이 발사되어 있었습니다.그렇다면 내가 보는 바로는
부인은 먼저 돌의자에 앉아 있는 스콧 부인을 등 뒤에서 쏘았습니다.그러자 앨런
슨 대위가 그녀를 향해 뛰어왔습니다.그리고 그녀 앞에까지 왔슬 때 가슴을 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스태버턴 부인과 리처드 스콧 씨와의 사이에는 그--뭐랄까
과거의 관계와 같은 것이 있었다고 생각---"
"새빨간 거짓말이오." 하고 포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상당히 도전적이었다.경감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흔들 뿐이었다.
"그 부인은 뭐라고 합니까?" 하고 새터드웨이트가 물었다.
"잠시 조용히 혼자 있고 싶어서 그 정원으로 들어갔었다고 합니다.마지막 담 모퉁
이를 돌기 직전에 총소리를 들었다고 하는군요.모퉁이를 돌자 발밑에 권총이 떨
어져 있길래 무심코 그것을 주워들었답니다.빠져 나간 사람도 아무도 없었고,그
두 사람의 희생자 이외에는 그 정원에 아무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경감은 의미심장하게 말을 중단했다. "이것이 그녀의 진술입니다---제가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습니다만,같은 진술만 되풀이해 주장하는군요."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면,모두 진실일 것입니다.나는 아이리스 스태버턴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어요." 포터 소령은 이렇게 말했지만,그의 얼굴은 여전히 죽
은 사람처럼 창백했다.경감이 말했다.
"음,아니 그런 것은 나중에 얘기할 시간이 충분히 있을 겁니다.지금은 나도 임무
수행중이라서."
포터는 갑자기 새터드웨이트를 보며 말했다.
"당신이 도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 좀 해주실 순 없겠어요?"
새터드웨이트는 득의만만했다.자신이 남에게 부탁을 받은 것이다.자신이.
더군다나 존 포터 같은 사람에게.
새터드웨이트가 안절부절 못해하며 이것 참 정말 난처한 부탁이라든가 무슨 적당
한 대답을 하려고 하는데,바로 그 때 집사인 톰슨이 헛기침을 하면서 그것을 주인
한테로 가지고 갔다.언커턴은 얘기에 끼어들지 않고 아직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아마 못 만나실 거라고 그 시산분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하고 톰슨이 말
했다. "아무리 그렇게 말씀드려도 중요한 약속이라면서 듣지 않으시더군요.그래
서---"
언커턴은 명함을 손에 들고 읽었다.
"할리 퀸.생각나는군.그림에 관한 일로 만나기로 했었지.약속을 하긴 했지만,이런
상황에서는---"
그러자 새터드웨이트가 벌떡 일어섰다.그리고는 소리를 질렀다.
"할리 퀸이라고 하셨죠? 정말 묘한 인연이로군요.포터 소령,당신이 나에게 도움을
청하셨죠.당신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 퀸이라는 사람은 내가 좀 아는 사
람인데,정말 훌륭한 사람입니다."
"분명히 아마추어 탐정 중 한 사람이겠죠." 하고 경감이 경멸하듯이 말했다.
"아니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그 사람은 신비한 힘을 갖고 있어요.우리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우리들에게 정확하게 전해 줍니다.아뭏든 사건의 경위를 이
사람에게 알려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한번 들어 보십시다."
언커턴 씨는 경감을 흘끗 쳐다보았지만 경감은 천정만 바라 볼 뿐이었다.그래서
그는 톰슨에게 고개를 약간 끄덕여 보였다.톰슨은 방을 나가서 후리후리하게 키가
큰 낯선 남자를 안내하며 다시 들어왔다.
"언커턴 씨입니까?" 그는 악수를 청했다. "방해가 되어 죄송합니다.그 그림에 관
한 얘기는 다음에 해야겠군요.아니,새터드웨이트 씨! 변함없이 연극을 즐기고 계
시는군요?"
"퀸 씨." 하고 새터드웨이트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이 그 순간입니다.지금이 드라마의 절정기이지요.나는,그리고 내 친구인 포
터 소령도 그렇습니다만,그 드라마에 대해서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퀸은 의자에 앉았다.빨간 갓의 전등은 그의 격자 무늬 외투를 물들이고,그늘진 그
의 얼굴은 거의 반밖에 보이지 않았다.
새터드웨이트는 비극의 요점을 간결하게 들려주었다.그리고 그는 입을 다물고 숨
을 죽이며 퀸의 대답을 기다렸다.그러나 퀸은 고개만 흔들 뿐이었다.이윽고 그가
말했다. "정말 슬픈 일이로군요.소름끼치는 비극입니다.동기가 없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군요."
언커턴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그리고 말했다.
"그건 모르시는 말씀입니다.스태버턴 부인은 리처드 스콧을 위협했어요.그것을 엿
들은 사람이 있습니다.스태버턴 부인은 스콧 부인을 매우 질투하고 있었던 겁니
다.질투란----"
퀸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질투는 악마의 포로나 마찬가지죠.그러나 당신은
나를 오해하고 계십니다.나는 스콧 부인의 경우를 말씀드린 것이 아니고 앨런슨
대위가 살해된 점에 대해서 말씀드린 겁니다."
갑자기 포터가 앞으로 불쑥 나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맞아요.그 점이 의문입니다.아이리스가 스콧 부인을 쏘려 했다면 스콧 부인만 있
는 곳에서 그녀만 쏘았을 겁니다.이건 분명히 우리들의 예상 착오입니다.게다가
다른 각도로도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그 정원에 들어간 사람
은 세 사람뿐입니다.그 점은 시비할 여지도 없는 것이고,시비하고 싶지도 않습니
다.그렇지만 나는 이 비극을 다른 각도에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지미 앨런슨
이 먼저 스콧 부인을 쏘고,그런 뒤에 자신을 스스로 쏘았다고 볼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쓰러질 때 권총이 땅에 떨어졌고,그것을 스태버턴 부인이 발견해서 주
운 겁니다.그녀가 말한 대로입니다.이 견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감은 고개를 흔들었다.
"불가능합니다,포터 씨.앨런슨 대위가 자기 몸에다 대고 총을 쏘았다면,옷이 탔을
겁니다."
"그럴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동기가 없습니다."
"갑자기 미쳐 버렸는지도 모르죠." 하고 포터는 말했지만 그다지 자신은 없어 보
였다.그는 다시 침묵을 지켰다.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켜 도전적으로 말했다.
"그런데 퀸 씨는?"
퀸 씨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마법사가 아닙니다.그리고 범죄학자도 아닙니다.그러나 한 가지만 말씀드리
겠습니다.나는 인상(印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어떤 위험한 경우에
도 마음에 새겨지는 한 순간이 있습니다.다른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뒤에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마음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새터드웨이트 씨는 아마 여기에 계신
분들중에서 가장 편견 없이 사물을 관찰하고 계셨을 겁니다.새터드웨이트 씨,한
번 기억을 더듬어서 제일 강한 인상을 받은 순간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들려주시
지 않겠습니까? 총소리를 들은 순간이었습니까? 처음으로 시체를 본 순간이었습
니까? 선입견을 완전히 씻어 버리고 솔직히 말씀해 주시지요."
새터드웨이트는 학생이 자신 없는 숙제를 암송할 때와 같이 약간 그런 태도로 퀸
을 가만히 쳐다보았다.그리고는 천천히 말했다.
"아니,그런 편견은 없습니다.내가 결코 잊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나 혼자서 시
체 옆에 서서 스콧 부인을 내려다보고 있던 때입니다.그녀는 옆으로 쓰러져 있었
지요.머리칼은 흐트러지고 작은 귀에는 피가 한 방울이 묻어 있었습니다."
이 말을 하고 난 순간을 새터드웨이트는 자신이 무섭고 중대한 말을 했다는 느낌
이 들었다.
"귀에 피가 묻어 있었다고요? 맞아요.나도 기억나요." 하고 언커턴이 천천히 말했
다.
"쓰러질 때 귀걸이가 떨어지면서 생긴 상처일 겁니다." 하고 새터드웨이트가 설명
했다.그러나 막상 그렇게 말해 놓고 나니 어딘가 앞뒤가 안 맞는것 같았다.
포터가 말했다. "왼쪽으로 쓰러져 있었으니까 그쪽 귀였겠군요?"
"아니오." 하고 새터드웨이트가 재빨리 대답했다. "오른쪽 귀였어요."
경감이 헛기침을 했다. "내가 이것을 잔디밭에서 발견했습니다만." 하고 그는 거
드름을 피우며 말했다.그는 가느다란 금 귀걸이를 손가락으로 집어서 보여 주었다
포터가 갑자기 외쳤다.
"하지만,그것은 쓰러질 때 떨어질 만한 것이 못 되지 않습니까? 오히려 총알에 맞
아 떨어진 것 같은데요."
새터드웨이트가 몹시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맞아요,총알입니다.총알이 분명해요."
경감이 말했다. "쏜 것은 두 발뿐입니다.총알 하나가 귀를 스쳐서 등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그리고 또 만일,한 발이 귀걸이를 떨어뜨리고 두 번째 총알이 그녀의 등
을 관통했다 해도 앨런슨 대우를 동시에 죽일 수는 없었겠죠.앨런슨 대위가 그녀
바로 앞---극히 가까운 곳에,말하자면 그녀와 얼굴을 마주보고 있지 않았다면 말
입니다.아아! 아니,그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그,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녀가 대위의 품에 안겨 있지 않았다면---이 말씀이시죠." 하고 퀸은
약간 묘한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맞아요,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모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퀸의 생각은 정말 뜻밖일수 밖에 없었다.앨런슨과
스콧 부인이 그럴 리가---믿을 수 없는 일이다.언커턴이 먼저 말을 꺼냈다.
"하지만,두 사람은 거의 대면한 적도 없었잖습니까?"
새터드웨이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요,혹시 또 모르죠.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서로를 잘 알고
있었는지도.레이디 신시아의 말에 의하면,작년 겨울 이집트에 갔을 때 위험한 상
황에서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사람이 앨런슨이었다고 합니다.그리고 또 당신의
---" 그는 포터를 쳐다보았다--- "당신의 말에 의하면,리처드 스콧이 자기 아내
를 만난 곳이 작년 겨울 카이로에서였다고 했습니다.그렇다면 두 사람은 그쪽에서
서로 잘 알던 사이였는지도...."
"별로 친해 보이지도 않던데요." 하고 언커턴이 말했다.
"그렇습니다.오히려 서로가 피했습니다.지금 생각해 보면 보기에 부자연스러울 정
도였지요."
그들은 모두 퀸을 보았다.그들은 이런 뜻밖의 결론에 대해 약간 놀란 표정들이었
다.퀸은 일어섰다.
"결국 새터드웨이트 씨의 인상에서는 이 정도의 결론이 얻어졌군요." 그는 언커턴
쪽을 보았다. "이번에는 당신 차례입니다."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방에 들어왔을 때 당신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그 생각이 분명히
말해서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그것이 이 비극과 무관한 것이라고 해도 상관
없습니다.설령 그것이 약간 어폐가 있다 해도 괜찮습니다." 언커턴은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말씀해 주시지요."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하고 언커턴이 머뭇머뭇 말했다.
"이 사건과 관계없는,아니 오히려 웃음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만,나는 아내가 그
방의 유리창을 괜히 갈아끼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마치 그 일이 불행을 초
래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그의 정면에 앉아 있는 두 남자가 왜 그렇게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는
지 그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부인께서는 아직 그 유리를 갈아끼우지 않았습니다."
하고 새터드웨이트가 말했다.
"아니오,갈아끼웠습니다.오늘 아침 일찍 유리공이 왔었는데요."
"빌어먹을!" 포터가 말했다. "이제야 알겠군.그 방의 벽엔 종이가 아니고 판자가
붙어 있죠? 벽에 판자를 댔죠?"
"예.하지만 그것이 무슨---"
포터는 방을 달려나갔다.다른 사람들이 뒤를 따랐다.그는 곧바로 2층에 있는 스콧
의 침실로 갔다.그 방은 깨끗했고,크림색의 널빤지로 벽이 둘러싸여 있었다.
창문이 남향으로 두개 나 있었다.포터는 서쪽 벽의 널빤지를 두 손으로 더듬었다.
"어딘가에 분명히 '용수철'이 있을 텐데,틀림없이.아!" 삐거덕 소리가 나면서 널
빤지의 일부가 쑥 뒤로 물러났다.그러자 얼룩진 유리가 모습을 나타냈다.그 중 한
장의 유리는 새것이며 깨끗했다.포터는 재빨리 몸을 굽혀 무엇인가를 주워 들었다
그는 그것을 손바닥에 얹어서 내밀었다.타조의 깃털 조각이었다.그리고 그는 퀸을
보았다.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방을 가로질러서 벽장으로 갔다.그 벽장에는
몇 개의 모자가 있었다---죽은 스콧 부인의 모자다.그는 챙이 넓고 깃털이 달린
모자를 꺼냈다.정교하게 만든 애스콧 모자(상류층의 부인이 애스콧 경마 등을 구
경갈 때 쓰는 모자)였다.
퀸은 부드럽고 신중한 목소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천성적으로 질투심이 강한 남자가 있다고 합시다.무
척 오래 전에 이곳에 묵었던 적이 있는,판자 속의 숨겨진 '용수철'을 알고 있는
남자입니다.어느 날 장난삼아 그 널빤지를 열고 '숨어 있는 정원'을 내다봅니다.
그런데,거기에서 그는 믿고 있던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목
격했습니다.그로서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의심해 볼 여지가 없었습니다.그는
분노로 이성을 잃었을 테니까요.어떻게 해줄까? 그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
습니다.그는 벽장으로 가서 새털 장식이 달린 모자를 씁니다.땅거미가 지고 있고
또 그는 유리에 묻어 있는 '얼룩'을 알고 있었지요.창문을 올려다본 사람은 누구
라도 왕당파 당원의 모습이 보였다고 생각하겠죠.이처럼 안전하게 몸을 숨기고
그는 두 사람을 감시하는 겁니다.그리고 두 사람이 포옹을 한 순간,그는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지요.그는 사격이 명수입니다.두 사람이 쓰러질 때 그는 다시
한 번 쏩니다.그 총알이 귀걸이를 쟹춘 것이지요.그는 창을 통해 권총을 정원에
던져 버리고 계단을 내려가 당구실을 통해 뛰어나갑니다.
포터는 퀸에게로 한 발자국 다가섰다.그리고는 외쳤다.
"그런데 왜 그는 스태버턴 부인이 죄를 뒤집어쓰는 것을 방관만 했습니까? 그는
그녀가 살인자로 몰리고 있는데도 보고만 있었잖습니까? 왜죠? 왜 그랬슬까요?"
"그 이유는 충분합니다.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이것은 나 개인의 추측에 지나지
않습니다만,괜찮을지 모르겠군요---리처드 스콧은 옛날에 아이리스 스태버턴을
열렬히 사랑했습니다.그래서 몇 년이 지난 뒤에 그녀를 만났을 때까지도 그 질투
의 흔적이 남아 있슬 정도였습니다.아마 아이리스 스태버턴은 일시적인 감정으로
그를 만났을 겁니다.그리고 그녀는 그와,그리고 또 한 남자와 셋이서 함께 수렵
여행을 떠납니다.그리고 돌아왔을 때 그녀의 마음은 이미 딴 남자한테로 가 있었
습니다.마음이 변한 거지요."
포터가 당황하며 말했다.
"딴 남자한테로?"
퀸은 희미한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바로 당신에게로---"
퀸은 잠시 말을 중단하더니 다시 말했다.
"만일 내가 당신이라면 지금 그녀에게 가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하고 포터가 힘차게 말했다.그는 방향을 바꿔서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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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0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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