탯줄과 실타래
문 남선
수능 고사장에 아들을 내려주고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가까이서 “야옹” 하는 소리가 들렸다. 5미터 남짓 떨어 진 곳에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불안한 듯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상황을 근방의 은행나무 위의 또 다른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대신 설명해줬다. 나를 보고 도망 가던 중 새끼 한 마리가 얼떨결에 나무 위로 올라갔던 모양이다.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듯한 아기 고양이에겐 무리한 높이였고, 내려오는 것 또한 수월치 않을 듯싶다. 누구든 위기에 처하면 놀라운 능력이 발휘되나보다. 불안해 할 고양이 가족을 위해 숨어서 지켜보니, 주변의 조용함을 확인한 어미가 새끼에게 다가가 애타는 신호를 연신 보낸다. 몇 번의 미끄럼질을 반복하다 겨우 내려온 새끼를 확인하고는 집으로 왔다.
지금 시간은 전국수능 언어 듣기 평가 시간이다. 지나칠 정도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나라답게 수능일은 국가적인 대 행사다. 출근 시간의 조정은 물론이고 언어와 영어의 듣기 평가 시간엔 항공기의 이착륙까지 금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쯤 아들 녀석도 귀에 모든 촉각을 세우고 있겠지.
총명하던 아이가 기대를 벗어나기 시작한건 한 삼사년 전쯤이다. 위성 과외를 위해 아들 방에 넣어준 TV가 영화광인 녀석을 더욱 더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했고, 아들의 방은 역기, 아령, 검도, 모래주머니 등으로 채워졌다. 새벽 한 두시 경에도 도둑고양이처럼 기어 나가 전신이 땀에 젖을 정도로 뛰고 오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 것 이란 건 불을 보듯 뻔한데 그때마다 속이 뒤집히기 몇 번이던가.
상상력과 창의력이라면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녀석의 우상은 스필버그와 배우 릭윤이다. 해서 자신의 우상인 릭윤을 그리며 몸매 다듬기에 열중하다보니 공부는 아예 뒷전이었다. 우편으로 오는 성적표는 번번이 정체불명의 도둑놈에 의해 집까지 배달되지 못하고, 담임을 통해 듣는 성적은 나를 깊은 우울증에 빠져들게도 했다.

2008년 경주콘도에서 시아버지 생신때(사진은 경주 시내 한정식집)
그럴 때면 언제나 학원하나 보낼 수 없던 환경 조성의 일등공신인 남편과 시댁 탓으로 돌리며, 남편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내곤했다. 녀석 탓에 ‘자식이 원수다’ 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부부 싸움도 자주 했다. 아무리 ‘네 인생은 네 인생, 내 인생은 내 인생’ 이라며 마음을 다져보려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하랴?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어도 강제로 물을 먹이지는 못하는 것을……. 허나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녀석도 감응이 되었는지 여름 무렵 아들의 태도가 수능 두세 달을 남겨두고 달라지기 시작했다. 초점 없던 눈엔 총기가 돌고 공부에 전념하는 모습이 감지되었다. 늦게라도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탓인지 성적 역시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던 참이었다.
친정 식구와 이웃들이 사온 엿과 찹쌀떡, 초콜릿이 수능일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요사인 바나나 가격이 폭락하고 계란도 잘 팔리지 않는다했다. 미끄러운 부분의 징크스를 두려워하며 소설 <아버지>속의 아버지처럼 나쁜 징크스 자체를 피하고 싶은 부모 마음 때문이리라.
큰 아들이 태어난 다음날 시어머니는 첫차로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셨다. 일주일 정도 개인 병원에 계시는 동안 목욕 시간이면 손자가 바뀔까봐 직접 간호원의 뒤를 쫒아가서 지켜보시고, 누가 아이를 안고 갈까봐 제대로 눈도 떼지 못하셨다. 이런 각별한 손자이고 보니 시험을 앞두고 시키시는 요구 사항 또한 많으셨다. 평상시 같으면 미신이라며 대답만하고 따르지 않을 일도 반쯤은 실행하고 있었다. 바로 내 아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태어나자 시어머니는 실타래의 일부를 꼬아서 새끼줄처럼 만들어주셨는데, 그 줄을 시험 당일 아이의 주머니에 넣어 주라신다. 그런데 나는 한술 더 떠 남편의 출생시 말라버린 탯줄까지 넣어주었다. 결혼 초 남편의 탯줄을 시어머니께 받은 뒤 별 생각 없이 장롱 속에 넣어 두었었는데…… . 남편의 기(氣)라도 아들에게 전달되길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지금 이 시간 전국의 사찰과 교회 그리고 교문에서는 애타는 모정의 기도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속 섞인 녀석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수험생 엄마들의 기도하는 마음도 나무에서 새끼가 무사히 내려오길 가슴 졸이며 바라보던 어미 고양이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2002년 11월 5일
첫댓글 요즘 대학 수시모집 원서를 다들 냈다고 하더군요. 두살때 한글을 깨치고 서너살때 영어단어 이천단어 이상을 외고 여섯살전에 천자문을 깨쳤던 큰 아들이 시누이 탓에 우리 가정이 곪아 들어가고 무척이나 힘들었던 시절, ..... 그 직격탄을 직접 맞아 나의 자존심과 희망을 송두리째 뭉개버렸지요. 믿을 수 없는 여러가지 현실들에 참으로 오랜 시간 난 많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그 힘든 시간이 작은 애에겐 전화위복이 되었음이 증명되고 있지만 큰 애는 아직 증명이 안된 상황입니다. 이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큰 애에게 말합니다. <신은 큰 것은 그냥 주는 것이 아니란다. 바닥을 몇번 치고 바닥을 다진 자에게만 성공을 준다고....>
<신은 큰 것은 그냥 주는 것이 아니란다. 바닥을 몇번 치고 바닥을 다진 자에게만 성공을 준다고....> 마지막 한줄이 많은 감동을 주는군요. 귀감이 되는 좋은 말입니다.
참 많이도 울고, 몸부림치고, 녀석 때문에 암도 걸리고..... 그랬는데 사람의 커다란 운명은 이미 정해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요. 죠 터지고 깨지고 찢겨진 상처 투성이 때문에 가족 모두가 좀 더 넓고 큰 마음을 가지고 타인을 보듬어 줄 수있게 되었다면.... 그 시련이 결코 살아가는 데 있어서 득이 되었으면 득이 되지 실이 되진 않을 거라 생각해요. 이 시간에도 울 큰애는 책과 씨름하느라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어요. 늦게 철이 들었나봐요. ㅎㅎㅎㅎ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난 큰녀석과 작은녀석, 글로벌 리더로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문선배님만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왜냐면 자식은 부모 욕심만큼 성장 하지 못하니까요, ㅎㅎ
엥? 잠이 안와서 서성대다 올렸는디..... 언제 댓글을 ??? 성환 후배는 왜 아직 잠도 안자고???? 건강 해쳐요. 그러면 못써요. ㅎㅎㅎㅎㅎㅎ 암튼 추석 잘 보내요. 난 몸이 부실해서 이번 추석은 대구도 못내려가요. 글고 나한테 엄청 좋은 일 있는디..... 에공!! 자랑도 못하것고 미치겠넹. 입이 근질거려서.... 올 초에 만난 인제 문안사의 큰 스님이 말씀 하실때만 해도 그냥 흘려 들었는데, 큰 스님이 말씀하신게 현실로 다가오네요. 아!! 자랑하고 시포라!! ㅋㅋㅋㅋㅋ
너무 많은것을 바라고 얻어려하면 상대는 더더욱 힘들어 할게에요
그래서 버리고 또 버리고 .... 엄청 버렸습니다. 버리고 버린 빈 공간에 또 다른 것이 채워지게 되지요. 그래도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질긴 것이 있지요. 마지막까지 지켜봐주고 한결같이 기다려주면 자식은 언젠가는 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