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참전군인이 보내온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 하와이 카네오에의 해병기지에 이색적인 건물이 들어선다. 이건 그들이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색다른 일로서 교회를 짓는 것이다. 그것은 흔히 부대 안의 교회가 그렇듯이 군대식당 일부를 세내거나 도너스 가게 뒤의 일부를 개조해서 하는 그런 교회가 아니다. 그리고 보기에도 흉한 암갈색 판자따위를 연결해서 짓는 그런 가건물도 아니다. 2004년 2월에 시작된 이 교회 신축공사는 비용이 자그만치 9.5백만 불이나 책정되어 있으며 2005년 봄이면 완공될 예정이다. 어쨌든 삭막하기 짝이 없는 부대 안에 새 교회를 짓는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막대한 돈을 들여 멋진 디자인의 건축물을 짓는다는 것이다. 특히 기사는 그 교회에 장식될 5개의 대형 색유리창(스태인드 글라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 디자인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던 지난 달 초신휴 회장이던 캘루스씨가 팩스를 한 장 보내왔다. “작가님, 그 5개의 대형 색유리창 중 하나에 초신휴의 로고인 ‘고토리의 별‘ 이미지를 새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이디어를 내어서 교회측과 의논하여 승인이 났어요. 색유리창과 교회건물은을 5월의 둘째 주 중 완공된답니다.” (아, 아, 고토리(古土里 )의 별!) “고토리의 별은 이제 우리의 용기와 희생, 고난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상징이 되었어요. 교회에 색유리창에 새겨질 그 별은 1950년 11-12월, 북한의 장진호에서 싸웠던 모든 해병대와 군인들, 선원들, 공군과 로열마린 특공대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랍니다.” 캘루스씨는 매우 흥분해 있었다. 나는 그 별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 별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950년 11월 27일 장진호 주변, 넓게 흩어진 미제1해병사단은 영국군과 다른 유엔군들과 함께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온 10만 여 명의 중공군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중공군의 목표는 미제1해병사단을 완전히 박멸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11일 동안 혹한의 기온에서 전투를 거듭한 미제1해병사단은 25마일의 빙판길을 헤치고 극적으로 장진호 주변의 고토리(古土里)라는 작은 마을로 진입할 수 있었다. 12월8일, 살을 에이는 시베리아 북풍과 눈보라 속에서 미제1해병사단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최후의 53마일 장정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고 았었다. 오후 내내 그리고 저녁 때까지 눈보라는 그칠 줄을 몰랐다. 15,000명의 해병대와 군인들은 눈보라가 잦아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상황은 그들에게 절망적으로까지 느껴졌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협과 대처하며 괴로워 하던 한밤중에 문득 눈보라가 멈추고 하늘이 열리며 별이 빛나기 시작했다. “별이 떴다!” “오- 주여!” 전 전선에 걸쳐 감격어린 외침과 노래와 기도가 울려 퍼졌다. 하늘이 맑아지자 공군 전폭기들이 날아와 그들을 공중 지원하기 시작했다. 전폭기들의 엄호 하에 미해병 1사단과 군인들이 무사히 흥남으로 귀환하여 자유의 품에 안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의 그 고토리의 ‘기적의 별’을 그들은 잊지 않고 수호신처럼 여기고 있었다. 내가 처음 초신휴(The Chosin Few)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몇 년 전 일이었다. 초신휴의 캘루스회장이 내게 한 장의 팩스를 보내 왔었다. 한국전쟁을 다룬 내 책에 관한 내용이 영자신문에 실렸었는데 그가 하와이에서 그 기사를 읽은 모양이었다. 팩스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하와이에서 코리아 헤럴드에 발간된 기사를 읽어 보았고, 당신의 책이 우리와 많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The Chosin Few)는 한국전 참전 미군들의 국제조직입니다. 많은 우리 미군들은 부산방어선(낙동강 전선)과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든 미군들은 혹한의 장진호 전투에서 10만 명의 중공군과 맞서 싸웠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가족과 고향과, 친구와 집을 버리고 새 삶을 찾아 우리와 함께 흥남부두에서 배를 타고 내려온 십 만명의 한국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작가께서 하와이에 오시면 우리 모두 함께 하와이에 있는 펀치볼 국립묘지를 방문할 것입니다. 그 곳에는 848 명의 한국전 참전 무명용사가 묻혀 있고, 8,000 여 명의 미군 실종자 명단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해마다 6월 25일이 되면 한국전 참전 미군 제 59지부가 펀치볼에서 기념식을 가집니다.... “ 어쨌든 영문으로 인쇄된 그 팩스에는 맨 위에 커다란 별이 그려져 있었다. 난 그 때 모든 것이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별은 물론이고 초신휴란 말도 그 때 처음 들어 본 것이다. (‘초신’이라니?) 하와이에서 날아온 팩스이긴 했지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별마크는 길게 뻗쳐 있었고 그 아래에는 영어로 <십일월-1950-십이월, 북한> 이란 장식어가 디자인 되어 있었다. 나는 이 불가사의한 별 마크를 해독하기 위해 주위의 온갖 친구들과 지인들을 불러 모았다. 신문기자, 교수, 소설가, 동창, 시인 등등 모든 친구들이 그 별마크가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물론 나중엔 모든 의문이 풀렸지만, 어쨌던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으로서 최초의 별 마크가 주는 당혹스러움은 표현할 길이 없다. 얼마 후 난 우연한 기회에 관광차 하와이에 갔다. 춤추는 야자나무와 끝없이 푸른바다, 아름다운 훌라 아가씨와 윈드써핑, 등 모든 것이 즐거움에 넘쳐 보였다. 지상천국 하와이, 그 곳에서 나는 최초로 진주만에서 초신휴 회원들을 만났다. 약 20명 정도의 매우 쾌활한 분들이었다고 기억된다. 동행이 있어 시간에 쫓기던 나는 그들을 잠깐 만났는데 그 때 그들은 예의 그 별이 새겨진 명함을 내게 하나씩 주었다. 그들은 또한 별 마크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그들이 보여주는 모든 잡지와 팜플렛, 봉투, 메모지 등 모든 것에 별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들이 외계인이라도 된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별이 무슨 뜻이죠?”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당시 나는 장진호전투의 존재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즉시 ‘장진, 유담리, 해가루리, 독동 고개, 고도리, 고도리의 별’등 한국인도 모를 한국지명을 유창하게 발음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나도 전혀 모르는 한국의 지명을 그들의 입에서 마치 고향집 이야기하듯 외는 것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 이 고토리의 별에 관해 말할 때는 그들의 눈이 별처럼 빛나곤 했다. 더더욱 그들이 외계인처럼 느껴졌었다. “한국에서 초신휴 단체에 대해 들어 보았나요?” 그들은 물었다. 그러나 나는 일반 한국인들은 초신휴란 단체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캘루스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을 시작했다. “1983년 한국전쟁이 끝난지도 한참 후 장진호에서 함께 싸웠던 우리 참전군인들은 ‘초신휴(The Chosin Few)'라는 단체를 만들었죠. 초신(Chosin)이란 말은 장진호(長津湖)의 ’장진‘이란 말의 일본식 표기입니다. 역사적으로 이차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전쟁이 터졌기 때문에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던 맥아더 장군은 일본어로 표기된 지도를 가지고 작전지휘를 했다고 합니다. 그 일본식 군사지도에 한국의 ’장진‘이 일본어로 ’초신‘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던 거지요.” 그에 의하면 초신휴 단체는 현재 6천 여명의 회원이 있으며 당시 미군과 유엔군이었던 미국과, 영국, 호주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극소수란 의미의 ‘FEW’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생존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우애를 다지고 있다. “우리는 생존자들, 장진호 생존자들, 영원한 형제들이다” 라는 글귀가 그들이 입은 티셔츠나 모자 등에 프린트 되어 있었다. “이 회의 목적은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군인들을 통합하여 동지애를 나누고 죽은 동지들을 영원히 기념하는 것이죠. 또, 전쟁 중 포로가 된 자(POW), 행방불명된 자(MIA)를 찾는일도 합니다. 우린 이를 위해 끊임없는 관심을 쏟으며 정보를 수집하지요. 그리고 한국전쟁 때 혹한 때문에 동상으로 고생하는 친구들을 돌보아 줍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한국전쟁 중에 잃어버린 미국가족들을 돌보는 것도 주요 목적이구요.” 인상 좋은 할아버지 같은 캘루스씨는 말했다. 그는 2차대전과 한국전쟁 등 수 많은 전투에 참가했으며 운 좋게도 부상 한 번 당하지 않고 위기를 극복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평생을 봉사하는 삶으로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우린 당시 중공군이 의료시설이 미비해 막대한 희생자를 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치료만 받았어도 그렇게 많이 죽지는 않았을 것을...” 그는 말했다. 흔히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리워 왔다. 많은 미국사람조차 한국전쟁을 잊었다. 뉴스미디어가 미국인이 싸운 전쟁을 일컬을 때도 세계 제2차대전을 이야기하고, 베트남전으로 뛰어 넘는다. 한국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참전인들 사이에도 ‘잊혀진 전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세계 제1차 대전은 ‘서부전선 이상없다’와 헤밍웨이를, 제2차 세계대전은 천여편의 노래와 잊지 못할 노래를, ‘나자와 사자’와 ‘지상에서 영원으로’등의 영화를 만들게 했다. 그러나 한국전은 그 교훈을 제대로 전할 영화나 노래가 제대로 만들어 지지 않아 아쉬움을 자아낸다. “신축된 교회의 색유리창을 장식하려는 초신휴의 노력은 기리 남을 일입니다. 이 색유리창은 1950년 북한 장진호에서 절망적 상황에 대처했던 해병대와 군인들에게 기념비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라고 하와이의 다니엘 이노우에 상원의원은 교회 기공식에서 말했다. 역사는 잊는자에게 되풀이 된다고 한다. 구원과 생명의 의미를 지닌 ‘기적의 별’이 신축되는 교회의 색유리창에 새겨지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