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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편 본질론
제1 장 문학의 본질
제 1 절 문학의 내함
1. 문학의 함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정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답이 나올수 없듯이 한마디로 문학에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문학의 성격과 본질은 인간의 삶과 정감을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기때문에 더욱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의《시학》에서부터 사르트르의《문학이란 무엇 인가》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갈수록 다양한 삶을 영위해 왔으며 그것의 반영과 표현형태, 방식도 다양화되였다. 그만큼 문학의 개념, 정의가 저마끔이다.
문학은 인간의 삶의 현장이고 정감의 거울이였다. 다만 시대가 바뀌면서 형식과 내용이 끊임없이 달라졌다. 전시대에 대한 반발과 그 반발에 대한 대안으로 이어진 문예사조는 예술사의 흐름과 더불어 인류의 삶을 비춰주는 만화경과 같다.
그 다종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치렬한 정감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 하고 그것들을 체험하고 인식하며 울고웃은 모습들이 곧 문학이 걸어온 력사의 발자국이다. 그러기에 눈부시게 장식된 문학의 화랑은 단순히 정보적차원에 머무는것이 아니라 문학의 미래를 가늠하는 잣대로 되기도 하는것이다.
문학의 원초적함의는 문장과 박학(博学)을 가리켰다. 문헌기재에 의하면《문학》이라는 단어가 처음 출현된것은 공자의《론어》에서 였는데 문장과 박학을 가리켰다. 처음부터《문채(文彩)》의 함의를 돌출히 하면서 동시에 학식의 함의도 가지고있었다. 이 관점에 따르면 문채가 뛰여난 작품과 연박한 지식을 현시하는 서사작품을 모두 문학이라고 칭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문학의 협의적의미는 문채와 감정적으로 련계된 작품을 가리켰다. 위진시기부터 문학에서《박학》을 배제해버리고 문채가 풍부한 언어 로 감정을 표달하는데 주의를 돌렸다. 이로부터 문학은 보다 단일한 함의를 가지게 되였다. 즉 문학은 감정표달을 위주로 하는 문채있는 언어작품을 가리키게 된것이다.
문학이란 단어는 고정불변이 아니여서 왕왕 학식과 소유의 언어 성작품과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였다. 제일 처음의《박학》이라는 함의는 점차 쇠퇴해지다가 소실되였다. 당,송 시기에 이르러 《문 (문학)》과《학(학술)》지간의 분계선이 점차 융합되여《문의재도 (文以载道)》혹은《문의명도(文以明道)》의 사상과 통하게 되였는바 이로써 광의적의미의 문학은 진일보 구체화되였다.
문학의 목적은 도리를 전달하려는데 있었다. 이것은 유가지도가 구체화된 형태였다. 그때로부터 청조에 이르기까지 이런 학술의의 상에서의《문학》이 줄곧 사용되였다. 청조말기, 민국초기의 학자인 장병린의 관점은 이런 광의적문학관의 일종 극치였다. 무릇 언어 (문자)로 지어진 작품을 모두 문학이라 할수 있다는것이다.
이에는 인류가 창조한 모든 언어 문성부호ㅡ구두어 및 문자로 전달되는 시가, 산문, 소설, 철학, 력사 등 작품이 포괄되였다. 이런 광의적의미에서의 문학의 함의는 현대서방언어학과 부호학의《언어 성부호》에 접근된것이다. 문학에 현대의미를 부여한것은 만청이래의 시기이다. 서방학술의 분류기제가 전파되면서 중국에도 차차 문학은 언어예술이라는 현대문학술어가 형성되였던것이다. 문학을 어떻게 정의를 내리든 언어를 기본수단으로 하여 생활을 형상적으로 반영 하는 사회적의식형태라는데 귀결될것이다.
언어문자로 사회생활속에 아름다운것과 추악한것의 속성을 반영 하며 작자의 심미의식(감정, 취미, 관점, 리상)을 표현하여 독자들과 교류하는 예술로서의 문학은 작가의 생명운동이며 가치실현의 도구이다. 그러나 문학문본은 사회생활에 대한 기계적복사가 아니라 작가 의 두뇌를 거쳐 능동적으로 반영되고 예술적개괄을 거쳐 창조된 새로 운 정신세계이다. 그만큼 문학적대화의 제일 요소는 정화되고 다듬 어진 예술언어일수밖에 없다.
문학예술의 본질적규정은 미와 기술을 전제로 하고있는데 크게 세가지 관점이 있다. ① 문학본체ㅡ예술품의 객관적존재를 주요한 착안점으로 하는것이고 ② 문학예술가의 주관창작작용을 주요한 착안 점으로 하는것이며 ③ 문학예술자체를 하나의 문화령역 혹은 문화 가치의 일종 형태로 보는것이다.
관점①에서 탐구되는 문제는 문학예술의 본질이 구경 내용에 있는가? 아니면 형식(혹은 형성)에 있는가? 아니면 량자의 결합에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관점②에서는 문학예술활동의 본질은 자연 혹은 현실의 모방이라고 주장한 유래가 오랜 학설과는 반대로 예술 활동의 본질은 마땅히 주관감정의 표출에 돌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신적존재로의 문학예술은 문화의 일종 특수령역으로서 일정한 리념을 지도원리로 하는 정신가치창조의 형식이다. 문학예술과 인류 정신, 사회생활은 밀접한 련계가 있으면서도 아울러 현실적인생에서 벗어나 독립적존재로 되고있다. 이 시점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과 “인생을 위한 예술”이 대립되면서 쟁의가 끝이지 않고있는것이다.
문학은 언어로 생활을 묘사하며 예술형상을 창조한다는 속성에서 자체의 특수성이 규정된다. 문학이 내세우는 첫번째 규정은 인간의 정감은 아주 복잡하고 오묘하기에 다양한 측면에서 움직이고 자극 할수 있는 내용으로 독자가 느끼게 하고 감동받게 하는것이다.
문학의 또 다른 목적은 그외에 정신이 그 사상과 리념속에 지니고 있는 본질적이고 숭고하며 고귀하고 참된것의 찬란함을 인간의 감정과 직관에 제공하여 향유하게끔 하는데 있으며 또 불행, 죄악, 선과 미의 개념을 파악하게 하고 내면속에 있는 모든 추악하고 허위적인것, 끔직스러운 참상, 모든 욕망과 기쁨을 알도록 가르치는 데있다. 한편 창조적상상력의 결과로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감성이 제공하는 마술같은 유혹속에서 한가한 유희에 잠기게도 한다.
문학이 본질적인 목적으로 내세우는 두번째 규정은 정감을 순화시키고 교훈을 주며 도덕적으로 완성시켜주는것이다. 즉 한편 으로 감정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속에서 공포와 련민, 고통스런 감동, 경악을 일으키면서도 동시에 만족을 주고 또 그런 감정과 열정적인 관심을 일으키고 문학작품이 표현한것의 효과에 대해 쾌감, 만족, 즐거움을 느끼도록 해주는데 있다. 그러면서 문학의 효용성에 더 높은 목적과 가치실현을 시도하는것이다.
인류문화발전의 초창기에 특징적이였던 구두창작 즉 민간문학은 문자가 보급됨에 따라 서사창작에 의해 대체되였는데 그로부터 가치실현의 무대가 무한히 넓게, 그리고 보다 확실하게 펼쳐졌다. 형상창조의 기본수단으로서 승화된 문학예술이 인간의 사상과 감정의 모든 뉴안쓰를 다른 그 어떤 예술형태보다 더없이 폭넓게 반영하는 다방면적이고 가장 보급된 일류의 예술로 개화기를 맞게 된것이다.
서방의 경우 “시”인즉 곧 문학이였는바 고대에는 운문형식과 련계되였다. 문학의 시조로서의 “시”의 개념은 희랍어에서 왔는데 “생산”과 창작”이라는 말이였다. 고대희랍시기에는 예술창작에 유관된 협의적의미로 연혁되여 일정한 범위내에서 사용되였는바 그 뜻도 광의적의미와 협의적의미로 나뉘여졌다. 시의 개념에 가장 이르 게 분명한 질서와 체계를 부여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로서 그의 《시학》은 서양의 최초의 문학리론서로 되였다.
그에게서는 문학이라는 개념이 광의적의미에서 사용되였다. 아리 스토텔레스는 시가 자연의 모방이라고 하였지만 르네상스시대 슐레 멜의 예술론과 헤겔의 미학에서는 시가 자체의 고유한 원리에 의해 창조되는 자아발전적유기체라는 개념으로 애용되였다. 광의적의미에 서의 시는 거의 문학과 동의어로 되여 예술성을 구비한 소유의 창조 성적인 언어작품을 포괄하였다.
다른 한 관점은 특수한 내용으로부터 오직 창조성이 있고 또한 사람을 진실로 감동시키는 순문학작품만이 진정한 “시”라는것이 였다. 19세기말에 시학의 개념이 차차 달라지기 시작하다가 20 세기 에는 상상력과 감정의 시학으로부터 구성의 법칙과 기술적책략의 시학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나타났다. 현대에 이르러 크로체의 “시와 비(非)시”구별이 그 례로 될수 있고 왈레리 등 사람들의 “순수시” 주장에서도 그런 경향을 보아낼수 있다.
문학은 회화, 조각, 음악 등과 병렬되는 하나의 예술종류로서 그 자체가 정신적존재물인 언어를 표현수단으로 하므로 기타 예술에 비해 결구가 더 복잡한 독특한 성질을 지니게 되였다. 문학은 인간의 내심체험으로부터 시작하여 사회의 복잡한 정황과 인생현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묘술할수 있다는 그 한가지 장점만으로도 눈부신 발전을 가져올수 있었던것이다. 이런 인식적특징상에서 문학적대화는 또 철학적대화와도 밀접하게 접근되여 있다.
그러나 문학은 인생의 보편적본질을 추상적개념과 사상으로 표현하는 철학과 달리 인생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형태화하고있다. 그
런데 객관에 너무 편중하면 인식관념이 돌출해지고 주관에 의뢰하면 가치관념이 과분하게 내세워질수 있다. 미학연구론에서《미는 자유의 상징》이라는 명제가 제출되였는데 편협한 과학주의로부터 인문문제 를 인기시킴으로써 문학연구를 한차원 높이 끌어올렸다.
문학활동은 창작으로부터 시작하여 교류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개 환절도 생략될수 없는 정체성이라는 속성을 고유하고있다. 문학의 정체성이란 일체 문학대화현상의 존재방식과 상태 그리고 운동과정을 말한다. 그것에는 객관적으로 자아규정된 내용이 없다. 가령 현실 생활로부터 출발하여 심미대상, 창작대상, 창작과정을 거쳐 물질화된 문학문본ㅡ감정실체로 전화하고 다시 독자의 접수를 통하여 최종적 으로 현실생활속으로 회귀한다고 할 때 완정한 흐름과정이 형성된다.
첫째 단계는 현실생활로서의 대화의 본원과 대화의 정신적풍모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사회인문환경이다.
둘째단계는 대화주체인 작가의 심미의식을 산생시키고 대화의 내용을 준비시키는 결정적인 여건인 심미대상이다.
셋째 단계는 대화내용의 창작과정에서 작가와 심미대상 사이에 진행되는 쌍변활동이다.
넷째 단계는《문학문본》,작가의 창조성적로동에 의해 문자화된 감성실체인 작품이다.
다섯째 단계는 사회독자와의 교류이다. 이 견지에서 매 한부의 문학작품은 작가 한사람이 완성하는게 아니라 독자군체와 공동히 완성한다고 하는것이다. 문학작품의 실제적이고 최종적인 가치실현은 독자의 적극적참여 즉 열정적이고 진솔한 대화에서 이루어진다.
여섯째 단계는 사회실천으로서 문학대화의 사회적작용의 체현을 말한다. 이 여섯개의 원소는 문학정체의 론리적구성의 기틀에 들어있 다. 환언하면 이는 문학의 정체를 구성해주는 현실세계, 표현세계, 허구세계, 가치세계 등 네개 단원을 형성하는 기초이다.
2. 문학의 본질
문학은 언어를 표현수단으로 인생을 예술적으로 그려내는 언어 예술로서 개인의 특수한 체험이면서도 인간의 보편적삶과 합일하는 체험이어야 한다. 사상과 정서의 표현으로서의 문학은 미적으로 순화 되고 정감화된 사상의 표현이며 상상에 의해 허구화한 예술세계이다.
문학은 항구성을 가지는바 위대한 문학작품은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다. 이것은 문학이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정서 를 다루어 무한한 감동을 주기때문이다. 문학이 모든 인류의 공통적 인 정서를 다루기때문에 위대한 문학작품은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 감동을 준다. 문학이 항구성과 보편성을 가지지만 주관적체험의 표현이기때문에 개성적이며 독창적이다.
문학형상에 간접성특점이 있지만 독자와의 담화과정에서는 직접 적인 효과를 얻는다. 거기에 흔상주체의 경험에 의해 더 보충되고 재창조된다. 독일의 미학가 라씬은 문학작품의 언어를《인위적언어부 호》라고 칭하면서 회화에서의 선과 색채 등 “자연적부호”와 엄연 히 구별하였다.
언어의 음과 의미라는 두가지 기능을 가지는 문학의 다층차적인 표현은 종합적이고 통일체이다. 문학적대화의 독특한 표술기초는 언어에 고유한 표달공능이다. 문학에서 인간의 내심체험으로부터 시작하여 사회의 복잡한 정황과 인생현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묘술 할수 있다. 다른 예술들이 미치지 못하는 이런 우월성으로 하여 문학 을 인생의 비평 혹은 해석이라고 하는것이다.
문학창작에 동원되는 인위적부호는 사람들의 청각에 호소하고 시간속에 선후로 계속되는 동작도 핍진하게 서술할수 있지만 직관적 시각형상은 조성할수 없기에 문학형상은 간접성형상이 될수밖에 없다. 례하여 만약 누군가 두보의 경물시중에서 한절구 읊어준다고 하자.
꾀꼬리는 버들숲에서 우지짖고
백로는 푸른 하늘에 줄쳐오르네.
창문은 먼산에 천년설 머금고
문밖엔 동오의 배 만리길 오가네.
우리는 랑송자의 목소리에서나 혹은 문자속에서 꾀꼬리, 푸른 버들, 백로, 푸른 하늘, 배를 볼수 없지만 화가들이 이런 구체적인 경상을 그려내려 한다면 쉽게 그려낼수 있으며 일단 그려냈다면 우리는 생생한 화폭을 볼수 있다. 이렇듯 언어묘술은 청각을 통하여 사람들의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경험적련상을 불러오며 사상감정 활동을 촉동할수 있다. 이것이 바로 언어예술의 독특한 매력이다.
언어를 매개로 하기에 언어예술은 광범성과 현실을 재현하는 거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바 인생현장의 구석구석과 생활의 이모 저모를 파헤칠수 있고 인물의 복잡다단하고 오묘한 내심세계를 지속 적인 시간의 흐름속에서 발전시킬수 있다. 그래서 문학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적게 받는다고 한다.
언어야말로 인간의 사상감정을 가장 명확하고 세밀하게 표달할수 있는 사상의 직접적현실이므로 기타 예술언어는 그것의 표달정도에 미칠수 없다. 이런 특점에서 문학은 상상직각을 환기시키는 “상상 예술”이라고 정의해야 한다는 휘트맨의 주장과 대립되는“언어예 술”이라는 개념이 문학학에서 더 광범위하게 운용되고있다.
모두어 말하면 문학의 본질적속성에는 성음요소와 의미적요소, 대상요소가 포괄된다. 그러나 문학적대화의 가장 본질적속성은 바로 그것의 미적가치실현이다. 인류의 가치관념형태의 하나인 문학대작품 은 일정한 인식작용도 가지고있다. 그외에도 도덕이라든가 사회정치 등 여러가지 가치성분을 보유하고있으나 심미가치야말로 문학대화의 기타 가치인소의 총체적심리효응이라고 개괄할수 있다.
이 시점에서 문학작품을 생활의“반영”이라기보다 외재사물에 대한 인류의 정서감응에서 기인된 사색과 지혜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실제적이다. 이는 중국의 “시는 곧 뜻” 이라는 전통적문학관념과 유관된다. 그러나 개인의 정서는 가치관념 형태의 일종일뿐이지 결코 가치관념의 전부의 내함을 포괄하는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오래동안 류전되여 온 “시는 곧 뜻((诗言志)”이라는 명제는 가치관념의 각도에서 말할 때 오히려 너무 “문의재도(文以 载道)”에 매달리는 지경에 이르게 하였고 마침내 문학으로 하여금 도덕설교의 외골목에 들어서게 하였다. 하여 현대문학리론에서도 가치론본성을 상실하고 주요하게 인식론을 기초로 하게 되였다.
문학이 리상적현실성체현이 될 때 부정적이 된다. 문학은 현실을 초월한 해석이며 그것을 초월한 의의세계를 창조하여 주체의 상상 력과 직각력을 밝혀주며 문화의 장애를 돌파하고 존재의 자체를 깨닫게 하여 생명의 진정한 자각을 얻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리상 성은 곧 부정적이 되고 문학은 현실에 대한 비판이 되는것이다.
문학은 현실인식과 현실가치의 국한성을 극복하고 독자들로 하여 금 자유적의식을 얻게 하며 현실적인 인생결함과 현실세계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인생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기게 함으로써 더욱 아름다운 인생을 추구하게 한다. 문학가는 특정된 리상의 지도 하에 현실생활에 판단을 내리고 현실인식과 현실가치표준에 대해 비판함으로써 사람들이 아름다운 리상도 추구하게 한다.
그리하여 문학활동은 인류의 현실행위를 초월하는 일종의 연장 행위이고 현실을 초월하기를 바라는 념원이며 현실활동을 기초로 그것을 개변하고 초월하려는 생명활동이며 인류의 특성에 가장 알맞 는 생명운동의 최고의 존재방식이 되였다.
인류는 리상의 실현과 현실의 일치와 조화를 념원한다. 작가들은 현실에서 만족시킬수 없는 념원을 문학활동으로 깨우쳐주어 현실 개조의 격정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 인류에게 불가결의 생명활동방식이 되는 주요한 원인이자 본질적속성이기도 하다.
작가의 매 한차례의 창작행위는 독자와 대화하고싶은 충동, 혹은 내심의 괴로운 정서, 독자와 나누어 가지는 모종 희열감, 사회, 력사, 인성에 대한 감수를 독자와 교류하고싶은 자아표현욕 등등에서 시작 되는바 문학문본은 독자와의 대화를 위한 예술정품이다. 문학활동에 서 독자의 열독이 문학적대화기능의 유일한 도경이라면《리해는 리해 되는것에 속하는 존재이다.》즉 문본의 전제는 독자와의 대화이다.
이상의 서술은 전통적관점에서의 서술이다. 문학의 속성은 다방 면적이다. 우리는 부동한 각도에서 기틀을 잡을수 있다. 이를테면 작가의 허구성으로 판정할수 있고 언어성으로 설명할수도 있으며 심미성과 정감성으로 천술할수도 있다. 문학문본의 대화성은 문학의 속성이다. 매 한부의 작품, 매 한종류의 문학문본은 모두 대화중 에서만이 자기 존재의 위치와 구체의미를 확정할수 있다.
3. 대화(Dialogism)로서의 문학
현대에 이르러 문학을 대화(discourse)라고 한다. 문학적대화는 일상적인 대화의 연장선우에 있으며 그 산생과 전달과정을 비롯하여 구조와 조직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문학이 인생문제를 다루고있기에 작가가 작품을 매개물로 사회와 인간들과 진행하는 가장 진지하고 심도깊고 폭넓은 대화라는 제법기에는 당연히 일리가 있다. 작가는 어떤 모티브(예술작품에서 표현된 동기가 된 중심사상)를 형상화 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저 한다. 이것이 문학대화의 동기이다.
문학문본은 작자가 은페되여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작가의 지향과 감정의 표달이다. 프랑스학자 뷔퐁의 《풍격인즉 그 사람》이라는 말 은 문본과 작자의 긴밀한 련계성을 설명하고있다. 글인즉 그 사람과 같다고 한 중국의 고전과 같은 뜻이다. 한걸음 물러서서 본다면 창작은 작가와 그가 처한 사회의 대항성에서 산생된것이다.
다음 사회정세로부터 출발하여 비극적정감이입을 통하여 작가를 그의 창작수단의 본원에로 돌려보낸다. 력사는 작가를 위해 자유롭게 사용할수 있는 언어를 제공할수 없는바 오직 일종 자유로운 창작 언어에 대한 수요를 제출할수 있을뿐이다. 창작행위는 작가의 사색을 표달한것으로서 이 세계에 대한 감수와 비평을 담게 되는바 창작으로 세계에 대한 자기의 정신적반향을 전달한다.
문본은 작가의 부분적인 사색을 표달한것이고 동시에 독자들과의 대화가운데서 하나의 거울처럼 작가의 일부 모습을 비춰보인다.
김소월의 《길》을 례로 들어보자.
(상략)
오늘은
또 몇십리
어데로 갈가.
산으로 올라갈가
들로 갈가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
차가고 배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에 길이 있어 잘가는가?
(하략)
보다싶이 시《길》은 《랑인의 봄》이나 《버리운 몸》등 일련의 시작품들과 같이 바로 집과 고향, 님과 조국을 잃고 떠도는 나그네의 방황의 세계이다. 이 떠도는 나그네는 조국을 잃은 인민의 형상인 동시에 인민을 다만 조국을 잃은 형상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한 시인 자신의 제한된 정신적자태이기도 한것이다.
문학문본은 독자와의 대화내용이라 할수 있다. 이 대화는 독자가 문본을 읽는 경우에 진행되는바 독자는 비록 접수자의 지위에 있지만 감수하고 체험하고 사고하는 대화의 주체이기도 하다. 또 다른 시각 에서 본다면 비대칭성을 이룬다. 문본의 특성은 곧 기다림이다. 독자는 그 어떤 성질의것이든 반응이 있기마련이다. 이런 대화는 끝이 없이 진행된다. 례컨대 쉐익스피와 같은 세계급대사들과 독자들 의 대화는 세기를 넘어서도 진행되고있다.
문학문본과 문학문화관례간에도 대화가 진행된다. 물질적존재로 체현되는 문본이지만 우리는 그것의 의의를 정신적의의에서 흥량한다. 그리고 이 사회적의의는 사회가 규정한다. 례하면 《금병매》와 《채털리부인》같은 문본은 해당시기 보수적사상과 관습으로 하여 문본과 독자의 대화를 저애하였다. 담장너머 규방을 훔쳐보듯이 한다 해도 심리상에서 그리 당당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같은 이성의 이야기를 쓴《데카메론》의 경우는 다른것이다.
문학문본과 기타 문본간에도 대화가 진행된다. 문본들지간의 대화성은 창작시 작자가 의도적으로 도모한것이다. 고대에 성행된 노래와 시의 경우가 이것을 잘 설명한다. 그리고 작가가 한부의 작품 을 창작하였을 때 다른 한 작가가 읽고나서 촉동을 받고 그 작품의 기초상에서 창작을 진행한 실례가 많다.
조설근의 미완성작《홍루몽》 80회본이 세상에 나온후 여러 종류의 속편들이 륙속 나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있는 120회 본은 고악이 쓴것으로서 원작에 비해 여러가지로 손색을 보이고 있으나 가장 근사하고 훌륭한 속편으로 공인하고있다.
중국작가 고효성의 《진환생이 도시에 들어가다》가 나온후 몇년 래《진환생의 전업》《진환생이 입당하다》《진환생이 출국하다》등 작품들이 뒤이어 세상에 나왔다. 문본간의 대화의 지속이다. 이외도 다른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번안소설이라는것인데 외국의 소설을 자국의 현실에 맞게 각색해서 옮긴 소설을 가리킨다.
번안소설은 언어만을 옮기는 번역과는 달리 옮기기의 과정에서 번안자의 주관적, 상상적개입이 두드러지고 심한 경우 원작의 상당 부분이 변형되거나 첨삭되기도 한다. 대체로 사건이나 줄거리의 골격 은 유지하면서 인명이나 지명, 풍속 그리고 인물들의 정서와 말씨… 등등을 자국의것으로 바꾼다.
사회,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문학적대화는 긍정적인 면에서만 대화가 이루지는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소위《부조리문학》이 그러하 다. 베케트나 까뮤의 작품이 그것으로서 인간존재의 무력함과 인간의 근본적인 야수성, 강행성, 비생명성, 요컨대 인간의 부조리를 아이 러니칼하게 표현한다.
이런 경향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근원적으로 부조리하다는 인식을 표현하고 있는 문학들 특히 희곡과 소설장르에서 두드러진다. 부조리문학은 전통적문화 및 문학의 신념과 가치세계에 대한 하나의 반항으로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났고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 등 전위적예술류파의 형식실험에서 영향받으며 성장했다.
《부조리》란 용어를 최초로 그리고 본격적으로 문학에 도입하고 유행시킨 사람은 알베르 까뮈이다. 존재와 삶 자체가 부조리하다는 인식 즉 하나의 개인은 리유없이 낯선 우주에 던져진 존재이며 우주 는 아무런 내재적인 진리나 가치와 의미를 지니지 않고 인간의 삶은 무에서 왔다 무로 돌아가는 과정일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중점적으로 강조하여 표현했다.
부조리의 느낌은 어느 장소에서나 어떤 사람에게나 불의의 습격 을 가할수 있으며 즉 인간이 서로 의사전달을 할수 없고 죽음은 불가 피하며 고독의 인식은 인간의 뇌리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해결책 또한 없다는 부조리의 인식위에서 성립된다.
이와 반대로 화해적인 대화를 의미하는《동반자문학》이라는 개념도 사용되고있다. 동반자문학이라는 명칭은 본래 1920년대초반 로씨야의 문학적상황에서 생성된것이다.
예세닌, 똘쓰또이 등과 같은 작가들은 로씨야의 혁명적환경속 에서 자신들의 계급적문학적조건들이 이질적이기는 하나 선택적으로 사회주의적세계건설과 혁명문학에 참여할 뜻을 밝힌다. 즉 그들은 인테리겐챠로서 혁명의 시대적필연성에는 공감하였으나 사회주의는 사상과는 무관한 위치에 있었다.
그들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혁명의 동반자 즉 동반자작가라는 명칭을 얻게 된다. 더욱이 동반자문학은 사회주의에 동조하는 일군의 유럽작가들에 의해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대두하게 된다. 즉 동반자 문학은 사회주의적리념을 지향하지 않으면서도 자발적이며 제한적이 긴 하나 사회운동과 인물의 각성을 제재로 삼아 프로문학의 리념과 공동의 보조를 취한것이 주되는 특성이다.
전통리론에서는 문학의 특성을 형상성, 정감성, 언어성 등 방면 에서 탐색하고 제시하고있지만 문학의 대화성을 일종의 특성으로 보는것은 문학의 본질과 특성에 대한 인식에서 새로운 탐색이다. 특 히 인간성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대상이 시대마다 다른 양상을 보이는 이 시대, 인간성의 고양을 전제로 하는 문학적대화는 더욱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