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결혼식 모습, 새 시대의 새로운 시도
요즈음 나이가 들어 자식들에 대한 불만이 많아지는 모양이다. 마음을 비우면 되고,
손에 잡은 것을 놓아버리면 될 것을 놓지 못하는 바람에 너나 나나 고민이 생겨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다.
“ 며느리의 남편을 자식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
“ 유치원 다닐 때까지는 내 자식, 초등학교에 가면 3촌, 중학교에 가면 5촌, 고등학교에
가면 7촌, 대학에 가면 9촌(일가친척이라면 8촌까지), 그러니 대학에 가면 자식이 아니라
남이다 ”
“ 만약 세 자식을 가졌을 경우, 세 딸이면 금매달, 딸 둘에 아들 하나면 은매달, 딸 하나에
아들 둘이면 동매달, 아들 셋이면. . . . . . . . . . 몽매달 ”
“ 낙섭아. 결혼식을 마치고 양가 부모에게 자식이 인사하는 뜻이 무언지 아나? 모른다.
그 절은 이제 이 시간 이후에는 부모 말 듣지 않고 제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라는 뜻이다.
새겨들어라 ”
언젠가 동기들과 제주도 눈구경을 가는 등산이 있었다. 인천에서 배로 가는 루트를 잡은
일이 있었다. 저녁에 배를 타고 친구들과 눈구경 여행을 가는 길이라 새로운 분위기에 들떠
모두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잔 술로 회포를 풀고 있는데 나이가 나이라 자연스럽게 유산의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 참 하고 있는데 3학년 모 반 반장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
“ 너희들 모두 그래싸도 모두 며느리 손에 달렸다. 아들이 아버지 판교 아파트 신청한 것
어떻게 되었습니까 라고 묻는 말은 아들이 어버지를 걱정하여 묻는 말이 아니고 며느리가
궁금하여 아들의 입을 통하여 묻는 말이다 (이 말이 공개되면 세상의 모든 며느리로부터 적
이 되니 내가 그런 것이 아니고 3학년 모반 반장이 하였다고 말 좀 해 주라)” 라고 하며
지나가는 것이었다. 참으로 맞고 동감이 가는 말이었다.
요즈음 남자측은 장가를 가지만, 여자측은 시집을 간다고 하나 결혼을 한다고 하지. 그
것은 요즈음 여자들이 본의든 위장된 타의든 시집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이렇게 변화해 가는 사회 속에서 나는 셋째 아들을 결혼시키게 되었다. 나의 일생에
자식들에 대한 마지막 결혼인 것이다.
“ 결혼 장소와 시간, 주례는 선정되었나? 주례를 구할 수 없으면 아버지가 구하고. ”
친구들 중에서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몇몇 머리 속을 지나갔다.
“ 아버지. 주례 없이 결혼식을 할려는데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 . . . . . . ”
한참 머리를 굴러보았다. 이 말을 들은 아내도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자식의 크는 모습도, 그리고 현재도 잘 모르고, 더욱이 나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주례라.
그러면 귀에 들어오지 않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 친구의 부탁이니까 안 들어 줄수도
없고. 주례를 모시고 신혼부부가 찍은 사진 몇 번이나 볼까? 언젠가 주례 없는 결혼식에
참가했었는데 축하금만 건네고 식당으로 바로 가지 말고 자세히 보아둘걸.
“ 너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라 ”
얼마 후에 집에 온 아들이,
“ 아버지 식순에 아버지 덕담이라도 한마디 하는 순서를 넣을 테니 그렇게 아십시오 ”
하면서 손가락을 내미는 것이었다. 단지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알았다라고만 답변을 하였다.
며칠 후 손가락이 들어가니 이번에는 또다시
“ 성혼선언문을 아버지가 읽으면 안 될가요? ”
하는 것이었다. 손가락 들어가니 주먹 디밀고 주먹 들어가니 이제는 어께까지? 뭐 한 가지쯤
더 추가되는 것이 대수인가?
마지막에는 덕담이 아니라 축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결혼식을 하다보면 신랑측 아버지는 아무 할
일이 없는데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식순이 결정되었다.
이렇게 되니 축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 하지?
한 친구가 “야 걱정하지 말고 잘 먹고 잘 살아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되지 무얼 고민하느냐.
그 말 속에 다 있는 것이지. "
새로운 며느리 앞에 두고 시아버지의 첫 마디로서는 참으로 적절하지 못할 것 이라고 생각하였다.
드디어 친구들에게 청첩이 된 날자가 되었다. 혼주로서는 손님들의 교통편, 기상, 식사 등등
걱정스런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청첩에 빠진 사람은 없는가? 다 전달되었는가? 몇
명이나 올까? 화환은 보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신부 축과 너무 차이가 나지 않게 하객이니 올까?
나는 셋째의 결혼이라 왠만하면 청첩을 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둘을 결혼을 시키고 손을
털었는데 셋째를 결혼시키면서 청첩하기는 마음이 너무 고민스러웠다. 친한 친구들에게
청첩이라는 것 보다는 알림이라는 개념으로 하자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청첩장을 발송시켰다.
이런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아끼는 한 친구가 누구에게는 왜 보내지 않았느냐고 전해 오는,
나를 아끼는 친구도 있었다.
정작 시간이 되니 너무나 많은 친구들이 추위를 무릎서고 교통편도 좋지 않은 여건에서 와 주었다.
눈물이 겹도록 고마웠다. 여기에서 일일이 나열하여 감사드리지 못함이 아쉽다. 나도 더욱 친구들의
이런 애경사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다시 다짐을 하였다.
결혼식이 시작하였다.
신랑과 신부 부모의 입장에 이어 양가의 어머니가 촛불을 밝히는 것 까지는 다른 의식과 같았다.
이어 신랑의 입장이 있었고, 다음에는 신랑이 신부에게 프로포즈를 노래로 하였다.
이윽고 신부 아버지가 신부를 데려와서 신랑에게 인계를 하였고, 단상에 올라가서 하겍들에게 인사를
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다음은 성혼선언문을 신랑의 아버지가 읽어야 했다. 단상에 올라가서 신랑의 아버지가 신랑과
신부에게 서로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냐고 다짐을 하는 것이었다. 결국 주례가 아니고 아버지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다짐을 받고, 원만하게 혼인이 이루어졌음을 선언함으로써 아버지에게도
책임을 부여한 것이었다. 이 부분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축사를 아버지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하였다. 내용은 덕담이었다. 내용은 아주 쉬우면서
지키기 어려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살면서 웃음을 잃어버리지 말며 부모에게도 항상 웃는 얼굴을
보여 달라는 것과 사랑을 견지하되 이 사랑은 유지하려면 뼈를 깎는 고통이 있으니 인내를 하라는
두 가지만을 이야기 하여 주었다.
이어서 축가가 진행되었는데 하객들이 모두 참여하여 같이 손뼉을 치면서 진행하였고
신랑신부가 부모에게 드리는 편지를 읽은 후 행진으로 끝을 맺었다.
참으로 주례 위주가 아니고 신랑과 신부, 그리고 결혼하는 사람의 부모와 가족 위주로 즐거운
한마당으로 진행 되었었다.
식을 마치고 내려오니 참 좋았다. 앞으로 결혼식의 풍토를 바꿀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 주었다.
작은 아버지 덕담에 나는 눈물을 흘렀다. 내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그대로 해 주었다는
등등의 코멘트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듣기 좋은 말이고 침묵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은
나도 모르겠다. 하여튼 그렇게 내 인생의 셋째 막내아들의 결혼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출발시켰다.
아내도 새로운 시도가 좋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누구의 결론보다 흐뭇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든 일을 하였다는 결과 뒤의 허전함이 가슴속으로 봇물처럼 넘쳐 들어왔다.
날씨가 몹시 춥고 또 교통이 불편한 가운데 이 못난 친구를 위하여 축하해준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나도 너희들에게 기여할 수 있도록 연락해 주길 바란다.
희망찬 2010년을 건강하게 맞길 바란다.
2009. 12. 20 서 관 주
첫댓글 앗다 ,주례를 세우지 않았으니 돈 남았네 그 돈 술 한잔 사거라 농담 좀 하거야. 중간 중간에 사진을 걷들어 꾸민다면 금상첨화일텐데.
그렇게 하지 않구나. 지금까지 보면. 마지막이라고 하니 할 일 다한것 같은데 .난 언제 다하나 딸 셋이나
딸 셋이니 금메달 달고 무얼 걱정하느냐. 글 써서 올리는 사람도 그렇지만 빨리도 읽었다.
축! 결혼. 어제 토요일 오후, 진료가 끝나고 1시가 조금지나 오늘은 별일 없으니 그동안 수북히 쌓인 우편물이나 정리하고 집으로 가야겠다 하고 우편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왠 날벼락인가? 한시 35분에 오늘 날자의 두 청첩장이 내손에 잡혔다. 하나는 고등학교 한반의 친한 친구 막내 아드님 결혼(토요일 1시 30분)이었고 또다른 하나는 같은 세브란스 정형외과 후배의 장남의 결혼(토요일 5시)이었다. 5시 결혼은 지금이라도 달려가면 되지만 소중한 동기 동창의 막내 결혼식은 이젠 날라갈수도 없다. 황급히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인사는 대신 했지만 마음이 펺지를 않다, 서교수! 좋은 최신 결혼 참여치 못해 섭섭하오.
이헌영. 그래도 잊지 않은 걸 보니 보석같은 친구야. 부담 갖지 말고 연말 송년 등산에서 보세.
좋아! 좋아 ! 변하는것이 인생살이 인데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좋은 말씀 고맙고 축하 드립니다
석송. 축하해 주어 고마우이. 셋째라서 모두에게 부담을 줄 것 같아 청첩을 가급적 제한했네. 동기들의 글방을 위하여 항상 노력하는 모습이 고마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