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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청정불교를 위한 바른불교 재가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무구
한국불교설화 - 충청도편
충청도편
수덕사 버선꽃 | 노파와 온양온천 | 금빛 까마귀 | 거지청년의 죗값 | 효자와 산삼 | 은혜 갚은 소 | 시냇가의 아이들 | 구렁이 아들 | 무심천의 칠불 | 정진 스님의 예언 | 왕비의 기도 | 도승과 말세 우물
수덕사 버선꽃 <예산·수덕사>
『도련님, 어서 활시위를 당기십시오.』
시중 들던 할아범이 숨이 턱에 차도록 채근을 하는데 과연 귀를 쫑긋 세운 노루 한 마리가 저쪽 숲속에서 오고 있었다.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졌고 화살이 막 튕겨지려는 수간 수덕은 말없이 눈웃음을 치며 활을 거두었다.
『아니 도련님, 왜 그러십니까?』
몰이를 하느라 진땀을 뺀 하인들은 활을 당기기만 하면 노루를 잡을 판이기에 못내 섭섭해 했다.
『너희들 눈에는 노루만 보이느냐? 그 옆에 사람은 보이지 않느냐?』
『이 산골짜기에 저런 처녀가?』
하인들은 모두 의아해 했다.
『도련님, 눈이 부시도록 아리땁습니다. 노루 대신 여인을… 헤헤.』
『에끼 이녀석, 무슨 말버릇이 그리 방자하냐. 자 어서들 돌아가자.』
수덕은 체통을 차리려는 듯 일부러 호통을 치고 갈 길을 재촉했으나 가슴은 뛰고 있었다.
노루사냥이 절정에 달했을 때 홀연히 나타난 여인, 어쩜 천생연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수덕 도령의 가슴은 더욱 뭉클했다.
「차라리 만나나 볼 것을…」
양반의 법도가 원망스럽기조차 했다.
『이랴.』
마상에서 멀어져가는 여인을 뒤로 하고 집에 돌아왔으나 들떠있는 수덕의 가슴은 진정되지를 않았다. 책을 펼쳐도 글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눈에 어리는 것은 여인의 모습뿐.
하는 수 없이 도령은 할아범을 시켜 그 여인의 행방을 알아오도록 했다.
할아범은 그날로 여인이 누구이며 어디 사는가를 수소문해 왔다.
그녀는 바로 건넛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 낭자였다. 아름다웁고 덕스러울 뿐 아니라 예의범절과 문장이 출중하여 마을 젊은이들이 줄지어 혼담을 건네고 있으나 어인 일인지 모두 일어지하에 거절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덕의 가슴엔 불이 붙었다.
자연 글읽기에 소홀하게 된 수덕은 훈장의 눈을 피해 매일 처녀의 집 주위를 배회했다.
그러나 먼 빛으로 스치는 모습만을 바라볼 뿐 낭자를 만날 길이 없었다.
어느 날 밤. 가슴을 태우던 수덕은 용기를 내어 낭자의 집으로 찾아 들었다.
『덕승 낭자, 예가 아닌 줄 아오나….』
『지체 높은 도련님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낭자! 나는 그대로 인하여 책을 놓은 지 벌써 두 달, 대장부 결단을 받아주오.』
두 볼이 유난히 붉어진 낭자는 한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일찍이 비명에 돌아가신 어버이의 고혼을 위로하도록 집 근처에 큰 절 하나를 세워 주시면 혼인을 승낙하겠습니다.』
『염려마오. 내 곧 착수하리다.』
마음이 바쁜 도령은 부모님 반대도,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상관치 않고 불사에 전념했다.
기둥을 가다듬고 기와를 구웠다. 이윽고 한 달만에 절이 완성됐다.
수덕은 한걸음에 낭자의 집으로 달려갔다.
『이제 막 단청이 끝났소. 자 어서 절 구경을 갑시다.』
『구경 아니하여도 다 알고 있습니다.』
『아니 무엇을 다 안단 말이오.』
그때였다.
『도련님 저 불길을….』
절에서 불길이 솟구치고 있는 게 아닌가. 수덕은 흐느끼며 부처님을 원망했다.
낭자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수덕을 위로했다.
『한 여인을 탐하는 마음을 버리고 오직 일념으로 부처님을 염하면서 절을 다시 지으십시오.』
수덕은 결심을 새롭게 하고 다시 불사를 시작했다. 매일 저녁 목욕재계하면서 기도를 했으나 이따금씩 덕숭 낭자의 얼굴이 떠오름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마다 일손을 멈추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절을 완성 할 무렵 또 불이 나고 말았다.
다시 또 한 달.
드디어 신비롭기 그지없는 웅장한 대웅전이 완성됐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수덕은 흡족한 마음으로 합장을 했다.
『도련님, 소녀의 소원을 풀어주셔서 그 은혜 백골난망이옵니다. 이 미천한 소녀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마침내 신방이 꾸며졌다. 촛불은 은밀한데 낭자가 조용히 일을 열었다.
『부부간이지만 잠자리만은 따로 해주세요.』
이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수덕은 낭자를 덥썩 잡았다.
순간 뇌성벽력과 함께 돌풍이 일면서 낭자의 모습은 문밖으로 사라졌고 수덕의 두 손에는 버선 한짝이 쥐어져 있었다.
버선을 들여다보는 순간 눈앞에는 큼직한 바위와 그 바위 틈새에 낭자의 버선 같은 하얀 꽃이 피어있는 이변이 일어났다.
신방도 덕숭 낭자도 세속의 탐욕과 함께 사라졌다.
수덕은 그제야 알았다. 덕숭 낭자가 관음의 화신임을.
그리하여 수덕은 절 이름을 수덕사라 칭하고 수덕사가 있는 산을 덕숭산이라 했다.
지금도 수덕사 인근 바위 틈에서는 해마다 「버선꽃」이 피며 이 꽃은 관음의 버선이라 전해 오고 있다.
노파와 온양온천 <온양·온양온천>
아득한 옛날 충청도 땅에 아주 가난한 절름발이 노파가 삼대독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려운 살림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노파는 아들 키우는 데 온 정성을 다했다.
어느덧 아들이 혼기를 맞게 되니 하루빨리 손자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노파는 매파를 놓아 사방팔방으로 혼처를 구했으나 자리마다 고개를 저었다. 가문도 볼 것이 없고, 살림도 넉넉치 못한 데다 시어머니마저 절름발이이니 누구도 선뜻 딸을 내주려 하지 않았다. 노파는 절름거리는 자신의 다리를 원망하면서도 실망치 않았다.
이러한 노파를 측은히 생각한 중매쟁이는 좀 모자라는 처녀라도 그냥 며느리로 맞자고 다짐을 받고는 아랫마을 김첨지 집으로 달려갔다. 그 집에는 코찡찡이 딸이 있었기에 말만 꺼내면 성사가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김첨지는 다짜고짜 소리부터 질렀다.
『그런 소리 입밖에 두번 다시 내지도 마슈. 원 아무리 사윗감이 없기로서니 절름발이 홀시어머니 집에 딸자식 보내겠소?』
『원 영감님두, 그 노인이 다리 하나 저는 게 흠이지 아들이야 인물 좋고 부지런하고 어디 나무랄 데가 있습니까?』
『아 듣기 싫다는데두요.』
김첨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흥! 까마귀똥도 약에 쓰려니까 칠산바다에 찍 한다더니 코찡찡이 꼴에 꼴값하네.』
중매쟁이는 이렇게 퍼부으면서 이번엔 황영감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팔을 제대로 못 쓰는 그 집 딸에게느 노파의 아들이 오히려 과분할 것 같아 자신만만하게 달려갔다.
『가만있자! 내 딸과 정혼을 하자구요?』
한동안 눈을 껌벅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황영감은 이윽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왜 너무 황송해서 그러시요?』
『그게 아니구요. 팔을 못 쓰는 내 딸이 그 집으로 들어가면 그 집엔 반편들만 모였다고 남들이 얼마나 놀리겠소?』
『원, 그렇게 따지다간 따님 환갑 맞겠소, 환갑.』
이제 더이상 알아볼 곳이 없다는 중매쟁이의 말을 들은 노파는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노파는 마지막으로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기로 결심하고 불편한 다리를 끌고 산사를 찾았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나뿐인 우리 아들 짝을 정해 주옵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온 정성을 다해 불공드리기 백일째 되던 날 밤. 깜빡 잠이 든 노파 앞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났다.
『쯧쯧… 정성은 지극하나 순서가 틀렸으니 이 일을 어이할까.』
『순서가 틀렸다 하심은 무슨 말씀이신지 상세히 일러주옵시면 다시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들이 장가를 못 드는 까닭을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그야 어미 된 제가 한쪽 발을 못 쓰는 탓이옵니다.』
『그렇다면 자네의 두 발을 온전히 쓰도록 빌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오나 무슨 수로 이 늙은 것의 다리를 고칠 수가 있겠습니까?』
말을 마친 관세음보살은 어느덧 바람처럼 사라졌다. 꿈을 깬 노파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싶어 관세음보살이 일러준 대로 다시 불공을 시작했다.
『관세음보살. 제발 이 몸의 다리를 고쳐 주옵소서.』
다시 백일째 되는 날 밤. 난데없이 허공에서 우렁차고 경건한 목소리가 울려 왔다.
『내 그대의 정성에 감복하여 그대의 소원을 들어주리라. 내일 망르 앞 들판에 다리를 절름거리는 학 한 마리가 날아와 앉을 터인즉 그 모양을 잘 살펴보면 다리 고치는 비법을 알게 되리라.』
필시 기도의 영험이 나타날 것으로 믿은 노파는 그 길로 캄캄한 산길을 더듬어 내려왔다.
이튿날 저녁나절이 기울 무렵, 하얀 학 한 마리가 훨훨 날아와 논 가운데 앉았는데 정말 한 다리를 절름거리고 있었다. 그 학은 이상하게도 앉은 자리 근처를 뱅글뱅글 돌면서 껑충껑충 뛰고 있었다.
그렇게 하기를 사흘. 학은 언제 다리를 절름거렸더나는 듯 두 발로 뚜벅뚜벅 걷더니 힘껏 땅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아 훨훨 날아가 버렸다.
이 모양을 지켜보던 노파는 하도 신기해서 급히 학이 뛰며 뱅글거리던 논둑으로 달려갔다. 논에서는 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괴이하게 생각한 노파는 발을 물 속에 담궈 보았다.
『아 뜨거! 아이 뜨거워! 옳지 이 물에 발을 담그면 낫는 모양이구나.』
노파는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근 채 이를 악물었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몸이 쉬원해지기 시작했다. 노파는 신이 나서 열심히 발을 담그었다. 그렇게 10일째 되던 날 신통하게도 노파의 절룩거리던 발은 씻은듯이 완쾌됐다.
노파는 기뻐 아들을 부둥켜안고 덩싱덩실 춤을 추며 울었다.
마을에선 부처님의 가피를 받은 집이라 하여 혼인 말이 빗발치듯 했고 그 아들은 예쁘고 가문 좋은 색시를 맞아 어머니를 모시고 잘살았다.
그 소문이 널리 퍼지자 뜨거운 물에 병을 고치기 위해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이곳이 바로 오늘날의 온양온천이다.
금빛 까마귀 <예산·향천사>
백제 의자왕 때다. 7척 키에 인물이 준수하며 범학에 뛰어난 보조국사 의각 스님이 있었다. 스님은 평소 반야심경을 늘 지송했다.
스님이 중국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잠자리에 들려던 혜의 스님은 밖에서 섬광이 일고 있음을 엿보았다.
『아니 이 밤중에 웬 빛일까?』
놀란 혜의 스님은 선뜻 문을 열지 못하고 창틈으로 엿보았다.
「저 곳은 의각 스님 방이 아닌가.」
이때 의각 스님은 방에 단정히 앉아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있었다.
『간밤에 내가 눈을 감고 반야심경을 백 번 외우고 눈을 떠보니 사방벽이 뚫린 듯 뜰 밖까지 훤히 보이더군요. 웬일인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벽을 만져 보았으나 벽과 창이 모두 달려 있어 다시 앉아서 경을 외웠는데 역시 뜰 밖이 보였습니다. 이는 반야의 부사의한 묘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들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서로 얼굴을 쳐다볼 뿐 아무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이때 혜의 스님이 일어나 간밤에 본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 후 의각 스님은 더이상 중국에 머물 것이 아니라 고국에 돌아가 불법을 널리 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 포교의 원력을 세운 의각 스님은 주먹보다 조금 더 큰 석불상 3청53위와 삼존불상을 모시고 지금의 충청도 예산 땅에 도착했다.
스님은 모시고 온 불상을 봉안키 위해 명당을 찾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이때 어디선가 황금빛 까마귀 한 마리가 스님의 머리 위를 맴돌면서 「까악까악」 울어댔다.
『오 -라, 네가 절터를 안내하겠단 말이지. 그래 내 따라갈 터이니 어서 앞장서거라.』
스님의 말귀를 알아차린 듯 까마귀는 서서히 날기 시작했다.
얼마 후 까마귀는 덕봉산 기슭에 내려앉았다. 스님은 그 자리에 절터를 닦기 시작했다.
어느새 인근 마을에 소문이 자자했다.
『중국에 다녀오신 큰스님이 우리 마을에 절을 세우고 3청불을 모신다지요?』
『우리 마을의 경사가 아니고 뭐겠어요. 작은 힘이지만 우리 모두가 뜻을 모아 법당이 속히 완성되도록 불사에 동참하도록 합시다.』
마을 사람들은 너무나도 정성이 담긴 시물을 의각 스님에게 전했다.
어느 날 아침, 떠꺼머리 총각이 의각 스님을 찾아왔다.
『아직 이른 시각인데 어쩐 일로….』
『벌써부터 스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시물을 마련치 못해 망설이다 오늘 용기를 내어 이렇게 빈손으로 올라왔습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흙을 파내고 나무를 나르는 등 불사를 돕고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참으로 고맙소.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란 시물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라오. 나를 만나고 싶고, 법당을 세우는 이 현장에 오고 싶은 그 마음엔 벌써 불심이 가득했으니 부끄러워 말게나.』
『스님, 제게는 몸져누워 계신 노모님이 계십니다. 이 몸 장가도 들지 못하여 변변히 모시지 못하니 불효가 큽니다. 법당이 완성되면 제 모친의 병환이 속히 완쾌되길 부처님께 간곡히 기도 올리려 합니다.』
『그대의 효심이 그리 장한데 어찌 기도가 성취되지 않았소.』
스님은 그 총각에게 반야심경을 수지독송토록 일러줬다. 종일 일하면서 한줄씩 외우기 시작한 것인데 어느새 총각은 반야심경을 줄줄 외우게 됐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어머니 머리맡에 앉아 반야심경을 독송하며 병환에 차도가 있길 기원했다.
법당 낙성식이 거행되는 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새옷으로 갈아입고 모두 새 절로 향했다. 떠꺼머리 총각도 그날은 깨끗한 옷으로 몸을 단정히 하고 어머니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올렸다. 그때였다.
『얘야, 나 좀 일으켜다오. 나도 법당 낙성식에 가서 부처님을 뵙고 싶구나.』
『어머님, 아니 됩니다. 그대로 누워 계세요. 저 혼자 다녀오겠어요.』
『아니다. 이상스럽게 오늘 아침 몸이 아주 가볍구나.』
어머니 청에 못 이겨 아들이 손을 내밀자 총각의 어머니는 언제 아팠느냐는 듯 거뜬히 일어났다. 떠꺼머리 총각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어머님, 부처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셨어요.』
기뻐 어쩔 줄 몰라하며 부둥켜안고 울던 모자는 3월의 햇살을 받으며 낙성식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길을 걸어 갈증을 느낀 노파는 법당 옆에 있는 샘물을 마시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아들에게 물을 권했다.
샘물에서는 전날과 달리 그윽한 향기가 풍겼다. 이를 확인한 스님은 그날 낙성식에서 절 이름을 향천사라 명했다. 그리고 덕봉산은 금 까마귀가 안내했다 하여 금오산으로 고쳐 불렀다.
훗날 마을 사람들은 의각 스님이 처음 배를 댄 곳을 배논이라 불렀고, 스님이 타고 온 배가 포구에 닿았을 때 어디선가 한밤중에 은은한 종소리가 들렸다 하여 마을 이름을 종성리라 명했다. 또 그 바닷가는 석주포라고 했으며 황소가 돌부처를 실어 나른 후 바위 옆에서 크게 소리치며 쓰러져 죽었으므로 절 입구의 바위를 고함바위라 불렀다. 지금도 향천사 극락전에는 1,053위의 부처님이 계신다.
거지청년의 죗값 <공주 도척이바위>
사람들이 흔히 몹시 악한 사람을 일러 「도척이 같은 놈」이라고 말한다. 이는 옛날 중국 춘추시대에 9천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나라 안을 휩쓸며 악한 짓을 한 유명한 도둑 도척에 비유하여 생긴 일종의 욕이다.
엣날 백제의 도읍지 공주에 한 게으름뱅이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끼니를 굶기가 예사였다. 그러나 일할 생각은 안하고 때가 되면 이집 저집 문전걸식을 하면서 자란 탓인지 그는 청년이 되어서도 놀면서 얻어먹으며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다 그는 마음씨까지 아주 고약했다.
어느 날 아침 게으름뱅이 청년은 늦잠을 자고 난 뒤 밥 얻으러 가는 일마저 귀찮아 엊저녁에 먹다 남은 찬밥 덩이를 먹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한 스님 한 분이 찾아와 시주를 구했다.
『지나가는 객승입니다. 아침밥을 굶어 몹시 시장해서 그러니 바브ㅇㄹ 좀 나눠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흥! 딴 데 가서 알아보슈. 남는 밥이 있으면 뒀다가 점심에 내가 먹겠소.』
욕심쟁이 청년은 자기도 배고픔을 겪고 있으면서도 남의 배고픈 심정은 조금도 이해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욕설을 퍼부었다.
스님은 돌아가면서 뭔가 주문을 외우듯 입 속으로 외웠다.
그러자 밥을 먹던 청년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뒹굴기 시작했다.
『아이구 배야! 아이구 배야! 사람 좀 살려주세요.』스님은 이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다. 때마침 이 마을 의원 박노인이 청년의 집앞을 지나게 됐다. 인정이 많은 박노인은 얼른 청년의 집으로 들어가 그에게 침을 놓고 약을 먹였다. 얼마 후 배아픈 것이 가라앉고 몸이 거뜬해지자 마음씨 고약한 청년은 엉큼한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 그 영감 돈을 울거내면 평생 동안 편히 먹을 수 있을 거야, 히히.』
청년은 박영감 집으로 찾아갔다.
『영감, 당신은 내 병을 고쳐준다고 내게 약을 먹이고 침을 놓아준 뒤 우리 집에 모아 둔 돈 1만냥을 훔쳐갔지? 만약 내놓지 않으면 관가에 알려 혼을 내줄 테니 좋게 말할 때 얼른 내놓으시오.』
『이런 고얀 녀석 봤나. 목숨을 구해 줬더니 이제 와서 고맙다고 인사는 커녕 날 도둑으로 몰다니….』
박노인은 하도 어이가 없어 더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게으름뱅이 청년은 원님한테로 갔다.
『저는 비록 구걸을 해서 먹을지언정 얻은 돈을 아끼고 아껴 그간 일만냥을 저축해서 저의 집 항아리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한데 이 사실을 안 박노인이 제가 아픈 틈을 타서 제게 약을 주는 등 친절을 베풀고는 정신을 잃은 사이에 제 돈을 모두 훔쳐갔습니다.』
『소인은 평생 동안 의술을 인술로 삼아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도왔지 한 번도 누구를 해친 일이 없습니다. 이번 일은 참으로 억울하오니 사또께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박노인이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청년이 먹다 남은 약을 내놓고 그럴 듯하게 꾸며대니 원님은 그만 속고 말았다.
『의원 박씨는 청년에게 만냥을 돌려주도록 하라.』
박노인은 좋은 일을 하고도 하루 아침에 거지가 됐다. 반면에 게으름뱅이 못된 청년은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됐다.
청년은 좋은 집으로 옮겨 거드름을 피우며 살기 시작했다. 어려운 이웃에게 선심을 쓰는 척 이잣돈을 빌려주고는 제 날짜에 갚지 않으면 가산을 빼앗아 오는 등 날이 갈수록 심한 횡포를 부렸다.
좋은 집에서 잘 입고 잘살게 된 게으름뱅이는 이제 장가가 들고 싶었다.
청년은 가세가 기울어져 가는 이생원집 딸 달래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성질이 급한 그는 직접 생원집을 찾아갔다.
『소인 가진 것은 많지 않으나 이제부터 좋은 일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제가 가을 농사를 거둘 때까지 댁에서 필요한 식량을 대어드릴 터이니 부담없이 받아주시지요.』
이웃 마을까지 평이 좋지 않은 청년이 찾아와 뜻밖의 선심을 베풀자 이생원은 어안이벙벙했다.
『제가 그냥 드린다면 어른께서 받지 않으실 테니 이자는 그만두시고 가을에 능력껏 상환하도록 하시지요.』
무슨 속셈인가 싶어 사양하던 이생원은 살림이 워낙 궁색한지라 그만 청년 집에서 쌀 한 섬을 가져왔다.
보릿고개를 넘기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니 청년은 빌려준 쌀 한섬을 독촉했다. 그러나 워낙 어려운 살림에다 흉년까지 들어 생원 집에서는 갚을 길이 없어 내년으로 미뤘다.
『정 안되시면 댁의 따니므ㅇㄹ 저와 혼인토록 하여 주십시오.』
막무가내인 청년의 생떼에 이생원은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때였다. 밖에서 시주를 구하는 염불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얼마전 청년 집에 왔던 노스님이 서 있었다.
놀란 청년은 주인을 제쳐 놓고 스님 앞으로 달려갔다.
『잘 만났소. 지난번 당신이 다녀간 뒤로 내가 죽을 뻔했는데 이번엔 또 나를 어떻게 해치려고 예까지 쫓아왔소?』
『소승 몹시 시장하여 한 끼 식사를 좀 부탁하려는 참이오.』
『거짓말 마시오.』
청년은 재빨리 몽둥이를 높이 쳐들고는 스님을 향해 내리쳤다.
스님은 피할 생각도 않고 태연히 염불만 욀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님을 향해 높이 쳐든 청년의 팔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 청년은 서서히 바위로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마음을 쓰지 않으면 개 돼지나 다름없는 법. 게으름뱅이 청년 너는 네 죗값으로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착한 마음으로 살아갈 때까지 그렇게 바위로 서 있거라.』
스님은 이 말을 남기고는 어디론가 훌쩍 가 버렸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도척이 바위」라 불렀는데 지금도 공주에 있다고 한다.
효자와 산삼 <공주 월곡리>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군 의당면 월곡리에 한 젊은 내외가 늙은 아버지와 일곱 살짜리 아들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살림은 넉넉치 않으나 마음씨 고운 내외는 열심히 일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로하신 아버지가 갑자기 몸져눕게 되었다. 효성이 지극한 젊은 내외는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좋다는 약은 다 써 보았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여보, 아무래도 아버님께서 속히 일어나시지 못할 중병에 걸리셨나봐요.』
『그래도 어디 좀더 노력해 봅시다.』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젊은 내외는 지극 정성으로 간병을 했다. 젊은이의 아내는 약으로 효험을 얻지 못하자 문득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어릴 때 목욕재계하고 기도하시던 친정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아내는 마치 훌륭한 영약이라도 얻은 듯 얼른 남편에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그것 참 좋은 의견이구려. 왜 진즉 그 생각을 못했을까?』
젊은 부부는 매일 새벽 몸을 단정히 하고 관음기도를 올렸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내외는 마치 합창을 하듯 한마음 한목소리로 아버지의 회복을 기원나간 남편 점심을 챙기고 있는데 밖에서 목탁소리가 들렸다.
부인은 가난했지만 정성껏 쌀 한 되를 들고 나가 탁발 나오신 노스님께 공손히 절을 하고는 스님 바랑에 쌀을 부었다. 쌀을 받아 넣은 스님은 막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려는 젊은이의 아내를 불렀다.
『부인,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데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지요?』
『네, 저의 시아버님께서 벌써 여러 달째 병환으로 고생하시고 계십니다.』
『거참 안되었구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있는데….』
스님은 무슨 말인지 하려다 그만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스님, 방법이 있으시다구요?』
『글쎄, 있긴 있으나 그게 너무 어려운 일이라서….』
『아버님을 구하는 일인데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알려만 주시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이 집 내외가 효자라는 소문은 들었으나 좀처럼 쉽지 않을 텐데….』
부인의 청이 하도 간곡하여 스님은 망설이면서 방법을 일러줬다.
『당신의 아들을 물에 삶아 아버님께 드리면 곧 일어나실 게요.』
『아들을요?』
놀라는 부인을 남겨둔 채 스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젊은 아낙은 잠시 꿈을 꾼 듯싶었다. 정신을 가다듬은 그녀는 남편 점심을 담은 함지를 이고 들로 나갔다. 그녀는 논둑길을 걸으면서 아버지를 위해 아들을 희생키로 결심했다.
다른 날보다 점심이 늦은 데다 아내의 안색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남편은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어디가 아프오?』
『아니에요.』
아내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말하고 싶었으나 남편의 점심식사가 끝날 때까지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여보,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나 본데 어서 이야기해 보구려.』
아내로부터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놀랄 뿐 아무 말도 못했다.
『여보, 아버님 병환을 고치는 일인데 주저할 일이겠어요? 아들은 또 낳을 수 있으나 부모님은 한번 돌아가시면 다시 뵐 수 없잖아요.』
아내의 결심이 고맙긴 했으나 남편은 차마 승낙을 못하고 하늘만 쳐다봤다.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날 밤 일을 치르자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 칠성이는 그날도 밖에서 놀다가 들어와 저녁을 먹고는 곤하게 잠이 들었다. 잠든 아들을 끓는 물 속에 넣는 젊은 내외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근라 밤. 노인은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며느리가 떨리는 손으로 들고 온 약을 먹기가 좋다며 두 그릇이나 마셨다.
이튿날 아침 노인은 언제 아팠느냐는 듯 거뜬히 일어났다.
젊은 내외에게 아버지 병환이 쾌차한 기쁨은 잠시였다. 아들을 생각하면 마냥 눈물만 쏟아질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저녁 무렵, 밖에서 칠성이가 「엄마」를 부르며 뛰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아내는 헛것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엄마, 어젯밤에는 서당에서 공부하다 늦어서 그만 훈장님과 함께 자고 왔어요. 용서하세요.』
부부는 아무래도 꿈만 같았다. 그러나 눈앞에 서 있는 사내아이는 분명 자신들의 아들 칠성이었다.
엄마 아빠가 반기기는 커녕 오히려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 칠성이는 이상했다.
『엄마, 왜 그러세요. 저 때문에 걱정하시다 화나셨어요?』
『아…아니다.』
넋 잃은 사람들처럼 제 정신을 못 가누고 있는 내외 앞에 이번엔 어제 다녀간 노스님이 나타났다.
『너무 놀랄 것 없소. 그대들의 효심이 하도 지극하여 부처님께서 산삼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내외는 즉시 부엌으로 달려가 솥뚜껑을 열어보았다. 솥 속엔 정말 커다란 산삼 한 뿌리가 들어있었다.
젊은 부부는 기뻐서 눈물을 흘리며 스님을 향해 합장을 했다. 그러나 스님은 어느새 간 곳이 없었다.
칠성이네 집에는 그날부터 다시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은혜 갚은 소 <계룡산 공우탑>
지금으로부터 약 4백 년 전. 이 땅에 침입한 왜구들은 많은 절에 불을 지르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노략질해 갔다. 왜구의 불길은 의상대사가 화엄대학지소를 열었던 계룡산의 천년 고찰 갑사에까지 옮겨져 천 여 칸의 화엄대찰이
일시에 잿더미로 화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왜란이 평정된 후 뿔뿔이 흩어졌던 스님들은 폐허가 된 절을 찾아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보게, 학인들이 이렇게 찾아드니 아무래도 중창불사를 시작해야 할 것 같네.』
『시중 살림도 살림이지만 마을 신도들도 난리에 시달려 모두 생활이 어려운데 불사가 여의할까?』
난을 피해 피난을 가지 않고 절을 지킨 인호, 경순, 성안, 병윤 네 스님은 갑사를 다시 중창하여 지난날처럼 많은 학인 스님들이 공부할 수 있는 도량을 이루기로 의견을 모으고 모두 탁발에 나섰다.
어느 날 해질 무렵, 동쪽으로 길을 떠난 인호 스님은 어디선가 절박한 듯 울어대는 소 울음소리를 들었다.
『저 울음소리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군.』
인호 스님은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가까이 가보니 고삐가 소나무에 칭칭 감긴 어미소가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에 이르렀고 옆에는 송가지 한 마리가 어미소의 아픔을 안타까워하는 듯 「음메에∼」거리며 소나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스님은 소의 고삐를 잘라서 소를 구해 주었다.
『자 이제 시원하지? 마음 놓고 풀을 뜯어 먹어라.』
소를 구해준 후 스님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스님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탁발하기 어느덧 7년. 인호 스님을 비롯한 네 명의 스님들은 고픈 배를 주리며 비바람 풍랑 속에서 구한 시주금을 한데 모아 대웅전 건립 불사를 시작했다. 목수의 손길이 바빠지면서 법당이 제법 그 모양새를 드러내게 되자 스님들은 흐뭇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 기쁨은 일시적이었다. 서까래를 얹어야 하고 아직도 법당이 완성되려면 돈이 더 필요한데 계획한 공사금이 예산보다 훨씬 부족했다. 스님들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불사를 중단하고 다시 시주에 나선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인호 스님은 소 한 마리가 절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인부들이 못 들어오게 내몰았으나 소는 막무가내로 들어와 인호 스님 앞에 멈췄다.
『스님, 너무 상심치 마십시오. 저는 스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이렇게 왔사옵니다. 법당 건립 불사를 제가 도와드릴 것입니다.』
소는 이렇게 말하고는 느릿느릿 절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잠을 깬 인호 스님은 꿈이 하도 생생해서 다시 꿈 속의 소를 되살려 보았다.
『아, 바로 그 소였구나!』
인호 스님은 몇 년 전 시줏길에 구해준 소 생각이 떠올랐다. 스님이 문밖으로 나서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꿈에 본 소가 스님을 기다리기나 한 듯 문밖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소는 스님을 쳐다보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는 3일 후 서까래를 한 마차 싣고 왔다. 다시 3일 후, 이번에는 기와를 가득 싣고 왔다. 소의 도움으로 대웅전 불사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제 마지막으로 법당 마루만 깔면 불사는 완공을 볼 수 있었다.
『마루는 단단한 향나무가 좋은데…』
『향나무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번번이 소한테 신세만 질 수 없으니 이번엔 우리들이 직접 탁발에 나서도록 하세.』
엣부터 울릉도 향나무와 백두산 향나무가 유명하다는 말을 들은 스님들은 2명씩 짝을 지어 한편은 백두산으로 다른 한편은 울릉도로 떠났다.
백두산에 도착한 스님들은 향나무를 구하긴 했으나 운반할 일이 걱정이었다.
인호 스님과 경순 스님이 서로 궁리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미풍이 일더니 그 바람을 타고 온 듯 갑자기 소가 나타났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운반해 드릴 것입니다. 어서 이 나무를 제 등에 앉으세요.』
소는 마치 무쇨로 된 듯 그 무거운 나무를 지고도 끄떡없이 훌쩍 가버렸다. 절에 와 보니 소는 어느새 향나무를 절에 실어다놓고 또 나가는 것이었다.
소는 다시 울릉도에 나타났다. 향나무를 등에 진 소는 바다를 헤엄쳐 건너갔다.
무쇠 같던 소도 여러 차례 걸쳐 바다를 오가며 향나무를 운반하더니 지쳤는지 입가에 흰 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스님들이 먹이를 주었으나 소는 먹지도 않고 여러 차례 쓰러지면서도 쉴새없이 울릉도 향나무를 뭍으로 옮긴 후 계룡산 불사의 현장까지 무사히 운반을 마쳤다. 필요한 향나무가 다 마련되자 목수들은 나무를 켜고 다듬어 법당 마루를 깔았다. 법당 안에는 은은한 향내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향나무 운반을 마친 후 지쳐 쓰러진 소는 영 일어나질 못했다. 법당 불사가 완공되던 날, 인호 스님 등 네 명의 스님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소에게로 갔다. 소는 큰 눈을 껌벅이며 스님들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제 할일을 다 했다는 듯 스르르 눈을 감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스님들은 눈물을 흘리며 소으 ㅣ무덤을 잘 만들어준 후 왕생극락을 빌었다.
『아무래도 소는 우리 절과 전생부터 깊은 인연이 있었을 걸세. 그리고 그 소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법당을 중창할 수 있었겠나. 후세에까지 소의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해 탑을 세우세.』
스님들은 절 입구에 소의 공을 칭송하는 3층탑을 세우고 「공우탑」이라 명했다. 지금도 갑사로 오르다 보면 중창리에 석탑이 하나 서 있으니 이 탑이 바로 공우탑이다.
시냇가의 아이들 <논산 관촉사>
고려 제4대 광종 19년(968). 지금의 충남 논산군 은진면 반야산 기슭 사제촌에 사는 두 여인의 산에 올라 고사리를 꺾고 있었다.
『아니 고사리가 어쩜 이렇게도 연하면서 살이 올랐을까요?』
『정말 먹음직스럽군요. 한나절만 꺾으면 바구니가 넘치겠어요. 호호….』
두 여인은 정담을 나누며 고사리 꺾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때였다. 어디선가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산중에 웬 아기 울음소리일까요?』
『글세 말이에요, 어디 한번 가볼까요?』
『그러지요.』
두 아낙은 어린아이 울음 소리를 따라가 보았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어린아이는 보이지 않고 갑자기 땅이 진동하면서 눈앞에 거대한 바위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에그머니나, 이게 무슨 조화람.』
『큰일났어요. 빨리 마을에 내려가 관가에 알립시다.』
신비롭고 괴이한 풍경에 놀란 두 아낙은 황급히 마을로 돌아와 관가로 가서 고을 원님께 이 사실을 고했다.
『거참, 괴이한 일이로구나.』
이야기를 다 들은 원님은 나졸들을 보내어 사실을 확인했다. 이 소문은 곧 임금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다.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임금은 조정 대신들을 불러 이 일을 논의했다.
『상감마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는 필시 하늘이 내려주신 바위일 것이니 불상을 조성하여 예배토록 함이 옳을 듯하옵니다.』
『그러하심이 옳을 듯하옵니다.』
조정 대신들의 의견이 한결같자 임금은 명을 내렸다.
『금강산 혜명대사를 모셔다 그 바위로 불상을 조성토록 해라.』
혜명대사는 1백 명의 석수를 이끌고 바위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바위를 본 순간 스님은 잠시 뭔가 골똘히 생각했다.
「음, 예사 바위가 아니로구나. 후세불인 미륵불을 대형으로 조성하여 세세생생 이 민족의 기도처가 되도록 해야지.」
마음을 굳힌 스님은 작업을 지시, 대역사를 시작했다.
석공들은 솟아오른 큰 바위로 부처님 전신을 조성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스님은 그 바위에 부처님 전신을 조성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스님은 그 바위에 부처님 하반신을 조각토록 했다.
『스님, 이 바위도 큰데 얼마나 큰 부처님을 조성하실 건가요?』
석수들이 의아한 듯 연방 물어오나 스님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할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부처님 하반신이 조성되자 혜명 스님은 그곳에서 약 30리쯤 떨어진 이웃마을 연산면 우두굴에서 큰 돌을 옮겨와 다시 머리와 가슴 부분을 조성했다. 이때 동원도니 역군은 무려 1천 여 명. 정으로 쪼고 갈고 깎아 부처님 조성하기 여러 해가 바뀌면서 웅장한 미륵불상이 완성됐으나 세 부분으로 나눠진 부처님 몸체를 맞추는 일 또한 예삿일이 아니었다. 웬만한 무게라야 들어올릴 텐데, 신통한 묘안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궁리에 골몰하던 혜명 스님이 사제촌 냇가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몰려오더니 흙으로 삼등불상을 만들어 세우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심코 바라보던 혜명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옳지」하는 탄성을 발했다.
아이들은 먼저 평지에 미륵불상을 세운 다음 그 주위를 모래로 경사지게 쌓아놓고 가슴 부분을 굴려 올려서 맞추어 세우고 있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혜명 스님은 곧장 작업장으로 달려가 공사를 지시하고 다시 시냇가로 왔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마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재미있게 떠들며 놀던 아이들은 간 곳이 없었다.
이는 혜명 스님 정성에 감탄한 문수보살이 스님에게 불상 세우는 법을 알려주려고 현신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삼등불상을 무난히 세워 미륵불이 완성된 때는 고려 제7대 목종 9년(1006). 무려 37년만에 높이 18.12.m, 둘레 11m, 귀의 길이가 3.33m나 되는 동양 최대의 석조불 은진미륵을 봉안케 도니 것이다. 그로부터 21일 동안 1.8m나 되는 미간의 백호 수정에서 찬란한 빛이 발하여 중국 송나라에 이르니 그곳 지안대사가 빛을 따라 찾아와 배례한 뒤 그 광명이 촛불 빛과 같다 하여 절 이름을 관촉사라 했다 한다.
또 은진미륵이 완성된 지 얼마 후 북쪽 오랑캐가 쳐내려왔다. 파죽지세로 내려오던 오랑캐들이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어디선가 가사를 입고 삿갓을 쓴 한 스님이 나타나 태연히 압록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길을 찾던 오랑캐들이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어디선가 가사를 입고 삿갓을 쓴 한 스님이 나타나 태연히 압록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길을 찾던 오랑캐들은 『옳지, 저 스님을 따라가면 되겠군』 하면서 스님 뒤를 따라 강물로 뛰어들었으나 물 위를 걸을 수 없는 오랑캐들은 그만 모두 압록강에 빠져 죽고 말았다.
부하를 잃은 오랑캐 장수는 화가 치밀어 다시 강을 건너온 스님을 칼로 내리쳤다. 그러나 장수의 칼은 스님의 삿갓 한쪽 끝을 스쳤을 뿐 스님은 어디 한 곳 다치지 않아 명장의 칼을 무색케 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스님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현신한 은진미륵이라 한다. 마치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금도 관촉사 은진미륵은 3.94m의 큰 관의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꿰맨 자국을 볼 수 있다.
은진미륵은 보물 제218호. 불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관촉사는 몰라도 은진미륵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경내에는 미륵불 외에 보물이 또 한 점 있다. 우리낙라 석등의 기본형인 8각형과 달리 4각형 화사석에 불을 켜도록 만든 큰 기름단지 석등(보물 재232호)이 그것이다. 이 석등 앞에 5층 석탑이 있고 그 옆에 8엽연화 3개가 연가지에 달린 듯 실감나게 조각된 화강암 배례석이 있다. 이 배례석은 은진미륵 앞에 제물을 차리는 데 쓰인다.
구렁이 아들 <부여 가장굴>
충남 부여군 임천면 가장굴이란 마을에 천석꾼 조씨가 살고 있었다. 재산이 많은 데다 늘그막에 기다리던 아들까지 보게 된 조부자 내외는 더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한 스님이 조부자 집 문간에 서서 염불을 하고 있었다. 마을 뒤편 무재산 보광사에서 탁발하러 내려온 천수 스님이었다.
『아이구 보광사 스님이시구먼유.』
『예, 그렇습니다.』
천수 스님은 합장한 채 공손히 인사를 했다.
『시주를 드릴 터이니 염불은 그만하시고 어서 딴 집으로 가 보셔유.』
조부자 아내는 몇 줌 안되는 쌀바가지를 내밀었다. 스님은 메고 있던 바랑에 쌀을 받으면서 말했다.
『염불을 좀더 해야겠습니다.』
조부자 아내는 내심 거추장스러웠지만 정중하게 인사했다.
『감사하오나 지금 저희집 3대 독자가 안방에서 곤히 낮잠을 자고 있슈. 하도 귀한 아들이라 깰까 조심스러워 부탁드리는 거예유.』
스님은 좀 언짢았지만 조용히 대답을 했다.
『허나 소승이 염불을 더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귀한 아드님으로 인해 장차 이 집안에 일어날 액운을 소멸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원 별말씀 다하시네유. 애지중지하는 남의 집 아들 보고 액운 운운 하시다니….』
『미리 막지 않으면 평화스런 귀댁의 화가 미칩니다.』
『화라구요?』
『화가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화의 근원이 무르익었습니다.』
『스님, 그렇게 뜸들이지 말고 무슨 곡절인지 속 쉬원히 알려주셔유.』
아까와는 달리 조부자 아내는 스님에게 간곡히 사정했다.
『소승이 일러주는 대로 하시면 액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밤으로 막걸리 50말을 장만하여 온 동네 사람들을 집 마당에 청해 술잔치를 베푸십시오. 단, 오는 사람마다 숯 한 포씩을 가져오게 해 마당 가운데 숯불을 지피고 풍악을 올리십시오. 그럼 소승 이만 물러갑니다.』
조부자 아내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다 싶으면서도 천수 스님의 말을 묵살 할 수 없었다. 도에 통달해서 용하기로 이름난 보광사 스님이 허튼소리를 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었다.
그날 저녁, 조부자 아내는 스님이 일러준 대로 막걸리 50말을 준비하고 술잔치를 벌였다. 동네 사람들이 가져온 숯불이 벌겋게 달아올랐을 때였다. 방 안에서 아들이 「앙앙」목을 놓고 우는 것이 아닌가. 조부자 아내는 풍악이 울리고 사람들이 웅성거려 놀라서 그러는 줄 알고 어르고 달랬으나 막무가내였다.
오만상을 찡그리며 마구 울어대는 아들을 보자 조부자 아내는 울화가 치밀었다.
『뭔놈의 액이 온다고 일러주어 남의 귀한 아들만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네.』
부인은 천수 스님을 원망했다. 그때였다.
『보살님!』
천수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님이 나타나자 풍악도 멈추고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잠잠해졌다. 스님은 이상하게도 작은 관 하나를 어깨에 메고 왔다.
『아니 스님, 그 관은 왜 들고 오셨슈?』
『예, 우선 그 아이를 이리 내려 놓으세요.』
부인은 안고 있던 아들을 스님 앞에 내려놓았다. 아기는 더욱 소리 높여 울면서 쪼르르 엄마에게 달려가 치맛자락을 잡았다. 순간 천수 스님은 일언반구도 없이 아기를 나꿔채더니 관 속에 집어넣었다. 아기는 숨이 넘어갈 듯 울어댔다.
그러자 부인은 마치 실성한 듯 스님의 장삼을 쥐어 잡아뜯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스님은 태연하게 부인을 떼어놓고 관을 숯불위에 내동댕이 쳤다.
사태가 이쯤되자 사랑방에 은인자중 앉아 있던 조부자도 뛰어나왔다.
『여보, 칼 가져와. 저 중놈의 배를 갈라 버리게.』
조부자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칼을 찾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불 위에 던져진 관은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관의 형태가 완전히 사그러지자 마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칼을 찾던 조부자도 놀란 눈으로 관이 타버린 숯불더미 위의 광경을 바라보며 경악했다. 응당 있어야 할 아들의 시신 대신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뜨거움에 못 견뎌 꿈틀거리고 있지 않은가.
『아니, 우리 아들은 어디로 가고….』
조부자 내외는 천수 스님을 바라보며 외쳤다.
『저게 댁의 아드님입니다.』
구렁이를 가리키며 조용히 말문을 연 천수 스님은 이렇게 물었다.
『혹시 아기를 가질 무렵 구렁이를 죽이지 않으셨는지요?』
『글세요…. 아, 생각납니다. 토끼에게 풀을 먹이고 있는데 풀 속에서 구렁이가 나타나 토끼를 잡아먹으려 하길래 들고 있던 낫으로 찍어 죽인 일이 있어요.』
『낫을 가져와 보시지요.』
조부자가 부러진 낫을 가져오자 천수 스님은 구렁이 뱃속에서 꺼낸 낫끝과 맞추어 보았다. 신통하게도 꼭 들어맞았다. 보고 있던 동네 사람들까지 어안이벙벙했다.
『큰일날 뻔했습니다. 구렁이가 조금만 더 자라면 내외분뿐 아니라 동네분들까지 모두 화를 입었을 것입니다. 정말 천만다행입니다.』
이때였다.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밀어닥치더니 천둥 번개와 함께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리고 빗속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천수야 이놈, 내 철천지 원수를 못 갚게 방해한 널 그냥 두지 않을테다.』
소름이 끼칠 만큼 앙칼진 소리였다.
천수 스님도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그래, 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여러 사람 앞에서 원수를 갚을 것이다.』
『어림없는 수작 말고 썩 물러가거라.』
순간 구렁이는 독기를 내뿜었다. 스님은 재빨리 합장을 하고 염불로 대항했다. 구렁이의 독기는 스님의 염불 속에 그만 사그러지고 말았다.
『허, 고얀 놈 같으니라고….』
천수 스님은 옷깃을 가다듬으며 유유히 절로 돌아갔다.
무심천의 칠불 <청주 용화사>
조선조 광무 5년(1901). 내당에서 잠자던 엄비는 참으로 이상한 꿈을 꾸었다.
갑자기 천지가 진동을 하며 문풍지가 흔들리는 바람에 엄비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보았다.
순간 엄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색영롱한 안개 속에 칠색의 선명한 무지개가 자신의 처소인 내당을 향해 뻗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엄비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옷매무시를 가다듬고는 방으로 들어와 정좌한 후 밖을 보았다. 이번엔 아름다운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일곱 미륵부처님이 일곱 선년의 부축을 받으며 내당을 향해 오고 있었다.
엄비는 얼른 일어섰다. 주위에는 온갖 나비와 새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춤을 추고 있었고 하늘에선 꽃비가 내렸다.
부처님 일행이 내당에 도착하자 엄비는 합장 삼배를 올렸다.
『그대가 바로 불심 지극한 엄비요?』
『예, 그러하옵니다.』
엄비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답했다. 방금 엄비임을 확인한 키가 제일 큰 부처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부탁이 있어 이렇게 왔소. 우리는 매우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오. 하루 속히 우리를 구하고 절을 세워 안치해 주길 간곡히 당부하오.』
부처님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따.
『어느 곳에 계시오며 무슨 사연인지 알았으면 합니다.』
『그 내용은 청주 지주(요즘의 군수)가 잘 알고 있소.』
이렇듯 간곡히 당부의 말을 남긴 미륵부처님들은 영롱한 안개를 일으키며 서쪽 하늘로 사라졌다.
합장한 채 부처님이 사라진 쪽을 한동안 바라보던 엄비는 부처님을 하루 속히 구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힘드시고 다급했으면 저토록 눈물까지 흘리시며 당부하셨을까.」
『마마,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여느 날과 달리 오늘따라 기침 시간이 늦어지자 엄비 처소의 시종 삼월이는 아무래도 이상하여 엄비의 늦잠을 깨웠다.
부처님을 친견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엄비는 나인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거참 이상한 꿈이로구나.』
엄비는 마치 꿈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문밖으로 나와 일곱 부처님이 사라진 서쪽과 무지개가 피어오르던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떤 흔적도 남아 있을 리가 없는 하늘이었다.
아무래도 가만히 있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엄비는 간밤 꿈 이야기를 왕에게 고하고는 청주에 사람을 보내달라고 청했다.
『광인의 생각도 그러하오. 내 곧 청주 지주에게 사람을 보낼 것이니 하회를 기다리도록 하오.』
엄비는 그날부터 새벽이면 목욕재계하고 염불정진을 시작했다.
한편 엄비의 꿈 이야기와 함께 아는 대로 상세히 조사하여 고하라는 어명을 받은 청주 지주 이희복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사흘 전 내가 꾼 꿈과 흡사한 꿈을 엄비마마께서도 꾸시다니….』
엄비가 일곱 부처님을 꿈에서 친견하던 날 밤, 청주 지주 이희복은 깊은 잠 속에 스르르 방문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장삼이 온통 흙탕물에 젖은 스님 한 분이 바로 옆에 와서 앉는 것이었다. 놀란 이희복은 스님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이마에선 피가 흘렀고 목에는 이끼가 끼어 있었다.
『너무 놀라지 마시오. 내 지금 서쪽 깊은 늪에 빠져 헤어날 길이 없어 도움을 청하려 이렇게 왔으니 귀찮게 여기지 말고 힘껏 도와주시오.』
말을 마친 스님은 홀연히 서쪽으로 사라졌다. 이희복은 서쪽을 향해 합장하며 머리를 조아리다 그만 잠에서 깨어났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게 생각하던 중 어명을 받은 이희복은 그날로 사람을 풀어 서쪽 큰 늪을 조사하도록 했다.
그날 오후 조사하러 나갔던 나졸들은 큰 발견이나 한 듯 지주 이희복에게 고했다.
『서쪽으로 가 보니 「무심천」이라 부르는 황량한 개울이 있는데 그 주변에 머리 부분만 밖으로 나와 있는 돌부처 한 분이 흙과 잡초에 묻혀 있습니다.』
이희복은 급히 무심천으로 달려갔다. 가 보니 낚시꾼들이 석불을 의자삼아 걸터앉아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희복은 호령했다.
『아무리 흙에 묻혀 있을지언정 부처님이시거늘 그토록 무례할 수가 있는가.』
『살펴보지 않아 미처 몰랐습니다. 금후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오니 한 번만….』
얼굴이 붉어진 낚시꾼은 무안하여 도구를 챙겨든 채 자리를 옮겨갔다.
이희복은 부처님을 조심스럽게 파내었다. 석불은 이마 부분이 손상되어 있었다. 그날부터 이희복은 사람을 동원하여 무심천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7일을 퍼내니 무심천에선 모두 일곱 분의 미륵부처님이 출현했다. 이희복은 너무 기뻐 급히 왕실에 상고문을 올렸다.
왕실에서는 신기한 사실에 엄비의 불심을 높이 칭송하는 한편 청주 지주 이희복에게 많은 재물을 내려 절을 세우고 칠불을 모시도록 했다.
그 절이 바로 오늘의 청주시 사직동 무심천 변에 있는 용화사다. 신라 선덕여왕대에 창건됐다가 대홍수로 인해 부처님이 개울에 묻힌 지 천 여 년만에 다시 복원된 것이다.
용화사 복원 이후 청주 지역엔 자주 있던 홍수 피해가 없어졌다고 한다. 현재 미륵칠불은 지방문화재 제14호로 지정돼 있다. 「무심천」은 부처님의 흔적을 찾지 못한 채 무심히 세월만 흘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정진스님의 예언 <문의 대청댐>
『법일이 게 있느냐?』
『예, 여기 있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이 길을 떠날 터이니 자기 전에 준비하도록 해라.』
『예, 스님.』
중국 당나라 곡산의 도연 스님에게서 진성을 닦고 귀국하여 광주 백암사에 오랫동안 주석해온 경양 정진선사(878∼956)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30년 가까이 법석(法席)을 펴온 광주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정진선사는 대중에게 인사를 했다.
『츨가 사문이란 본래 운수납자라 했거늘 내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소. 오늘부터 발길 닿는 대로 길을 떠나 법을 펴야 할 자리가 보이면 다시 그곳에 터를 잡아 불법을 전하려 하니 백암사는 여러 대중이 합심하여 법을 널리 펴고 가람을 수호토록 하시오.』
『스님, 그렇다고 이렇게 불쑥 떠나시면 저희들은 어떻게 합니까?』
스님은 대중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상좌 법일을 데리고 만행에 나섰다.
정진 스님의 발길을 자신도 모르게 충청도 땅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 고향이 공주인 탓인지도 모른다.
『스님, 오늘은 이 마을에서 하룻밤 묵어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될 것 같구나.』
백암사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던 정진선사는 충북 청원군 문의면 남계리에 있는 해발 약 80m의 나직막한 고개 아랫마을에서 하룻밤을 쉬어 가게 됐다.
『주인장 계십니까?』
『뉘신지요?』
『지나가는 객승입니다. 길가다 날이 저물어 그러하니 댁에서 하룻밤 묵어 가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시지요.』
고개 아래 조그마한 초가집 주인은 친절했다.
『옥분아, 스님들이 하룻밤 쉬어 가실 것이니 아랫방을 말끔히 치우도록 해라.』
초가집에는 안주인이 없는 듯 장성한 딸 옥분이와 그 아버지만이 살고 있었다.
옥분이는 다시 밥을 짓고 소찬이나마 정성껏 마련하여 스님에게 저녁 공양을 올렸다.
그날 밤, 편히 잠자리에 든 정진 스님은 참으로 이상한 꿈을 꾸었다. 장마철도 아닌,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철인데 남계리 마을에 큰 장마가 진 것이었다. 물은 삽시간에 온 마을을 덮었다. 마을 사람들은 가재도구를 챙겨 피난처를 찾았고 소, 돼지, 닭 등 가축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등 마을은 온통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스님은 초가집 바로 뒤에 이쓴 언덕으로 올라 동리를 향해 소리쳤다.
『여러분! 가구나 집안 살림 그리고 재산에 연연치 마시고 모두 삽한 자루씩만 들고 이 고개로 올라오십시오. 만약 재물에 연연하게 되면 목숨을 잃게 되니 제 말을 들으십시오.』
망르 사람들은 갑작스런 폭우 속에 낯선 스님이 나타나 소리를 치니 모두 스님의 말에 따랐다.
스님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흙을 파내 물꼬를 터서 무사히 수마를 이길 수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스님께 합장하며 감사했다.
이튿날 아침 꿈에서 깬 정진선사는 간밤 꿈이 하도 이상하여 폭우를 피했던 고개에 올라가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곳엔 흙을 파냈던 자리가 역력하게 남아있으며, 물이 괴었던 자리가 뚜렷했다.
『이곳이 바로 법당을 세울 명당이로구나. 그러나 천년 후에는 물에 잠길 염려가 있으니….』
그 고개에 절터를 잡으려던 정진선사는 도력으로 천년 후를 내다보고는 다시 길을 떠나 그곳서 멀지 않은 진천 고을에 절을 세우고 법을 폈다.
스님이 떠나고 난 후 이 마을에서는 물이 넘친 곳이라 하여 이 고개를 「무너미고개」, 「수월치(水越峙) 」, 「수여(水餘)」라고도 불렀다.
그 후 천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선사가 묵었던 마을은 「대청댐」이 생기면서 물 속에 잠기게 됐다. 또 무너미고개에는 직경 4m의 도수터널이 뚫려서 대청호의 물을 청주로 흘려보내고 있다.
문의면도 무너미에서 유래된 지명.
정진선사는 신라 경애왕으로부터 봉종대사의 호를 받았으며 그 후 고려 태조와 광조에게 법요를 가르쳤고 광종 2년에는 사나선원에 있으면서 왕으로부터 증공대사란 존호를 받았다.
왕비의 기도 <영동 영국사>
홍건적의 침입으로 송도를 빼앗긴 고려 공민왕은 피난 길에 올랐다.
왕비(노국공주)는 물론 조정의 육조 대신들과 함께 남으로 내려오던 공민왕 일행이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을 지날 때였다.
「디∼잉」「디∼잉」
어디선가 아름다운 범종소리가 울려왔다. 신심돈독한 왕은 행차를 멈추게 하고 말에서 내렸다.
해질녘 인적 드문 계곡에 메아리치는 범종소리는 마음이 착잡한 공민왕을 더욱 숙연케 했다.
『오! 참으로 성스러운 종소리로구나. 어디서 울리는 소리인지 알아보도록 해라.』
『저 종소리는 아마 인근에 위치한 국청사에서 울려오는 소리인 듯 하옵니다.』
『국청사란 어떤 절인고?』
『일찍이 신라 진평왕 30년 원광법사가 창건한 절로 대각국사 의천 스님께서 천태교학을 강하고 교선일치를 설파한 절입니다.』
공민왕은 문득 대각국사가 주석했던 국청사에 가서 위기에 처한 나라의 안녕과 백성들의 평안을 기도하고 싶었다.
『짐은 이 길로 국청사에 들어가 기도를 올릴 것이니 행선지를 돌리시오.』
『국청사가 있는 마니산 쪽으로 가려면 큰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가마를 메고 강을 건너기는 어렵습니다.』
『내 꼭 저 종소리가 울리는 절에서 기도하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없겠소?』
『전하의 뜻이 정 그러하시다면 강의 양쪽에 누대를 짓고 밧줄로 임시 다리를 놓도록 하겠습니다.』
대신들은 신하들을 시켜 독 칡넝쿨과 가죽을 섞어 튼튼한 밧줄을 꼬게 했다. 양쪽 강가를 이은 밧줄다리가 놓아지자 임금이 탄 가마를 밧줄에 매단 다음 가마를 끌어 당겨 무사히 강을 건넜다.
이 일로 인하여 누대를 높이 세우고 다리를 놓았다 하여 지금도 이 강마을을 누교리라고 부르며 또 육조대신이 ㅜ시었다 하여 육조동이라 부른다.
국청사에 도착한 왕은 옥새를 왕비에게 맡긴 후 절 건너편 망탑봉과 마주한 팽이처럼 뾰죽한 봉우리에 왕비를 기거케 했다. 그 봉우리는 경사가 심해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없었다. 그러나 왕비를 몹시도 사랑했던 공민왕은 하루도 왕비를 안 보고는 지낼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왕은 소가죽을 이용하여 망탑봉과 왕비가 있는 봉우리를 왕래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게 했다.
공민왕은 왕비가 보고플 때면 언제든지 가서 만날 수 있도록 해놓은 후 육조 대신들과 함께 백일기도에 들어갔다. 왕비도 처소에서 기도입재를 하고는 나라의 안녕을 간곡히 기원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시여! 부처님의 크신 가피력으로 북쪽의 오랑캐를 물리치시어 이 나라 백성들이 평안케 하여 주옵소서. 나무 관세음보살.』
공민왕도 왕비도 육조 대신 그리고 신하들까지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왕은 왕비가 잘 있는지 궁금할 때면 왕비의 처소를 찾아가 간곡히 기도하는 왕비의 모습에 감탄하곤 했다.
『마마, 이곳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되오니 너무 심려치 마시고 기도에만 충실하옵소서.』
『고맙소. 잘 지낼 줄 알면서도 과인의 마음이 놓이질 않아요. 이렇게 눈으로 확인하고 가야만 기돋가 잘되는 걸 어찌하겠소. 내 오늘부터 기도가 끝날 때까지 중전의 말대로 해보리다.』
그렇게 하여 백일기도가 끝나는 날 밤. 왕비의 꿈에 대각국사가 나타났다.
『중전마마의 극진하신 기도에 부처님께서 감동하시어 오랑캐를 물리쳐 주시겠다는 수기를 내리셨습니다. 대왕마마와 중전마마께서는 북쪽 오랑캐가 쳐들어온 곳을 바라보시면서 염주를 한 알씩 돌려 주십시오.』
붉은 가사를 입은 대각국사는 큰 단주를 굴리며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정중히 아래고는 왕비의 손에 염주를 들려줬다. 왕비는 손에 들려있는 염주를 돌리면서 북쪽을 바라보았다. 아,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마치 콩알이 손톱에서 튕겨나가듯 염주를 돌릴 때마다 홍건적이 한놈씩 한놈씩 북쪽의 구름 속으로 튕겨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왕비는 너무 기뻐서 꿈 속에서 열심히 염주를 돌리며 북쪽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홍건적이 다 물러가고 기쁨을 감추지 못해 왕의 손목을 잡는 순간 왕비는 꿈에서 깨었다.
기도를 마친 왕은 회향식이 끝나자마자 왕비에게 달려왔다. 왕비는 간밤 꿈 이야기를 왕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왕은 기뻐하면서 말했다.
『중전, 참으로 고마운 일이구려. 틀림없이 부처님께서 이 나라를 지켜주실 징조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그 길로 공민왕은 정세운을 총지휘관으로 삼고 홍건적을 토벌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때 혼건적은 개경을 포위하고는 눈이 많이 와서 더이상 쳐들어오지 못하고 방비가 해이해져 있었다.
『장군님, 적병들의 방비태세가 아주 허술한 상태입니다.』
『음, 수고했다.』
적의 형세를 염탐한 정세운은 그날 새벽 사방에서 일제히 적을 공격하는 작전으로 홍건적을 물리쳤다. 「설마」하는 생각조차 못할 만큼 고려의 군사력을 얕본 홍건적은 잠자리에서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도망치다 대부분 얼어 죽었다. 압록강을 제대로 건너간 적병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난이 평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공민왕은 한없이 부처님께 감사드렸다. 왕비를 대동하고 다시 환궁을 서두르던 왕은 국청사 부처님 가피로 나라가 위기에서 벗어나 평군안민케 되었다 하여 절 이름을 국청사에서 「영국사」로 바꾸도록 하고는 친히 편액을 써서 내렸다.
그 후 왕비가 거처하던 봉우리는 옥새를 무사히 보관한 곳이라 하여 옥새봉이라 불리우고 있다.
도승과 말세 우물 <괴산 사곡리>
세조가 왕위에 오른 지 몇 해가 지난 어느 해 여름. 오랜 가뭄으로 산하대지는 타는 듯 메말랐다. 더위가 어찌나 기승을 부렸던지 한낮이면 사람은 물론 짐승들도 밖에 나오질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지금의 충청북도 사곡리 마을을 지나며 우물을 찾았다 더위에 먼 길을 오느라 갈증이 심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스님의 눈엔 우물이 보이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스님은 어느 집 사립문을 밀고 들어섰다.
『주인 계십니까? 지나가는 객승 목이 말라 물 한 그릇 얻어 마실까 합니다.』
『대청마루에 잠간 앉아 계세요. 곧 물을 길어 올리겠습니다.』
주인 아낙은 길어다 놓은 물이 없다며 물동이를 이고 밖으로 나갔다.
스님은 아낙의 마음씀이 고마워 대청마루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그러나 물길러 간 아낙은 몇 시간이 지나도 오질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스님은 목마른 것도 바쁜 길도 잊은 채 호기심이 생겨 아낙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저녁 무렵, 아낙은 얼마나 걸음을 재촉했는지 숨을 몰아쉬며 한 손으로 구슬땀을 닦으면서 물동이를 이고 왔다.
『스님,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낙은 공손히 물을 떠 올렸다. 우선 시원한 물을 받아 마신 스님은 궁금증을 풀 양으로 아낙에게 물었다.
『거, 샘이 먼가 보군요.』
『이 마을엔 샘이 없습니다. 여기서 10리쯤 가서 길어온 물입니다.』
아낙의 수고를 치하한 스님은 무슨 생각에선지 짚고 온 지팡이로 마당을 세 번 두들겨 보았다.
『과연 이 마을은 물이 귀하겠구려. 마을 땅이 층층이 암반으로 덮였으니 원… 그러나 걱정마시오. 내 주인 아주머니의 은공에 보답키 위해 좋은 우물 하나를 선사하고 가리다.』
이 말을 남긴 스님은 그 집을 나와 마을 구석구석을 살폈다.
동네 한복판에 이른 스님은 큰 바위에 다가서서 역시 지팡이를 들어 세 번 두들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우물을 파다가 도승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청년들에게 일렀다.
『이 바위를 파시오.』
『스님, 여기는 바위가 아닙니까? 물이 나올 리 만무합니다.』
청년들이 믿기 어렵다는 듯 말했으나 스님의 표정은 태연자약할 뿐아니라 엄숙하기까지 했다.
『자, 어서 여길 파시오. 겨울이면 더운물이 솟아날 것이고 여름이면 냉차 같은 시원한 물이 나올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장마져도 넘치지 않을 것이오.』
청년들은 도승의 말에 위압당한 듯 어안이벙벙했다. 이때 한 청년이 앞으로 나서더니 스님의 말씀을 믿고 한번 파보자고 제의했다.
장정들이 밤낮으로 사흘을 파도 물줄기는 보이질 않았다. 스님은 계속 팔 것을 명했고, 청년들은 내친걸음이니 시키는 대로 해보자며 작업을 계속했다. 닷새쯤 팠을 때다. 바위 틈새에서 샘물이 솟기 시작했다. 맑고 깨끗한 물이 콸콸 흘러 금방 한길 우물 깊이를 채웠다. 청년들은 기쁨을 감출 수 없어 서로 부여안고 울며 춤을 췄다.
샘물이 솟는다는 소문에 온 마을이 뒤집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물을 구경하러 모여들었고 물을 마시며 기뻐했다. 그들에겐 생명의 샘이나 다름없었다. 이 모습을 아무 표정없이 지켜보던 스님이 입을 열었다.
『자, 조용히 하고 소승의 말을 들으세요. 앞으로 이 우물은 넘치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 우물이 넘치는 날에는 나라에 큰 변이 있을 것입니다.』
망르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님은 들은 체도 않고 말을 이었다.
『니난날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 임금을 폐하고 왕위에 올랐지만, 만약 이 우물이 넘치는 날에는 그보다 몇 배 더 큰 변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스님, 이 우물이 그렇게 무서운 우물이면 차라리 지난날처럼 10리밖 개울물을 길어다 먹고 살겠습니다.』
『너무 걱정들 마시오. 이 우물이 세 번 넘치는 날이면 이 세상은 말세가 되니까, 그때 여러분은 이 마을을 떠나시오.』
이 말을 남긴 스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표연히 자취를 감췄다.
마을 사람들은 기쁨도 컸지만 한편으로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 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비슷한 말을 주고 받았다.
『평생 숙원인 우물이 생기긴 했네만….』
『과연 기이한 일일세그려.』
『그 도승의 말을 너무 염려할 것은 없을 것 같으이.』
그러나 「우물이 세 번만 넘치면 말세가 온다」는 소문은 차츰 멀리 퍼져나갔다.
『과연 우물이 넘칠 것인가.』
사람들의 입에서 화제가 되는 동안 세월은 어느덧 몇 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물 길러 나간 아낙 하나가 우물가에서 기절을 했다. 우물이 철철 넘치고 있었던 거이었다. 이 말은 삽시간에이웃 마을까지 펴졌다. 사람들은 무슨 변이 일어날지 몰라 안절부절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왜구가 쳐들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이 난이 곧 임진왜란이었다.
또 한번 이 우물이 넘친 것은 1950년 6월 25일. 그날도 이 우물은 새벽부터 철철 넘치고 있었다 한다. 6·25의 민족적 비극을 알리기 위한 우물의 충정이었다고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말하고 있다.
아무 일 없이 정량을 유지한 채 조용히 샘솟고 있는 이 우물이 과연 또 넘칠 것인가. 그리고 스님의 예언대로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인가.
약 50호의 농가가 평화롭게 살고 있는 충북 괴산군 증평읍 사곡리 마을의 말세우물. 아무리 많이 퍼 써도, 또 가물거나 장마가 들어도 한결같이 줄지도 늘지도 않은 채 그 깊이 만큼의 정량을 유지하고 마을 사람들의 식수가 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우물이 지닌 전설을 자랑으로 여기며 부처님 받들 듯 위한다고 한다.
한 스님의 신통력과 예언은 후세인들에게 신비의 전설로서 뿐 아니라 자비의 뜻과 삶의 정도를 일깨워 주고 있다.
첫댓글 ㅎㅎㅎㅎㅎ_()_
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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