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를 가다
전국을 황사가 뒤덮었다. 매주 화요일에 떠나는 답사도 길을 잃은 듯했다. 건강을 위한 걷기인데 황사를 마시면서 걷는 것은 아닌 듯싶었다. 그래도 걸을 수 있는 지역을 검색했다. 영동지역이 그나마 황사와 미세먼지 강도가 약했다.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속초’지역의 숙소도 찾아보았다. 자주 이용하던 ‘더 클래스 300’의 숙박비가 평소보다 저렴했다. 인터넷 예약사이트를 클릭했다. 그렇게 갑작스런 ‘속초’여행이 시작되었다.
‘속초’는 어느 지역보다도 익숙하면서도 많은 사람들과의 추억이 담긴 장소이다.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친구의 고향이 ‘속초’라는 기억에서 속초를 헤메다 결국 그의 고향이 바로 옆, ‘양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S와의 여행 뿐 아니라 그녀가 마지막으로 건강의 희망을 갖고 입소했던 설악산 입구 이상구 박사의 ‘뉴스타트’ 운동의 숙소가 있기도 하였다. 그녀가 건강했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었던 장소였다. 동료 교사들이 짝을 지어주려던 여자 후배가 결혼한 후에 전화를 했던 장소도 이 곳이었다. M과 함께 걸었던 속초의 해안과 함께 갯배 해변의 식당도 기억난다.
속초는 그렇게 익숙한 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갑작스런 추억을 충동시켜 나를 부르는 곳이다. 최근 해안가와 호숫가의 난개발 때문에 호적하고 낭만적인 속초의 모습이 사라져가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그래도 속초는 아름다운 고장임에는 분명하다. 이번 여행은 부분적으로만 기억되었던 속초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낼 수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부분의 기억이 쌓여 전체의 이미지가 완성된 것이다.
1. 속초의 해안가를 걷다
숙소인 <더 클래스 300>에서 해안가로 이동하면 ‘외옹치항’이 나타난다. 거기에서부터 물길을 따라 ‘장사항’까지 이동했다. 하늘이 청명했고 바람은 시원했으며 공기는 상쾌했다. 황사와 미세먼지로부터의 탈출이 성공한 것이다. 이 코스의 일부분은 지난 번 M과 함께 걸었던 ‘해파랑길’이기도 하다. 평일임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에 나와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언제라도 가볍게 멋진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속초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이었다.
이번 걷기의 차이점은 ‘청초호’ 답사였다. 갯배가 오가는 아바이 마을을 지나 아름다운 호숫길을 따라 걸었다. 주변에는 높은 숙소들이 연이어 건설되고 있었다. 상업적인 관광시설로 바뀌고 있지만 호수는 잘 개발되어 속초 시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지난 번 ‘영랑호’ 답사와 함께 속초의 대표적인 두 개의 호수를 걷게 되자 속초의 물길이 이제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갯배가 오가는 청초호도 빙 돌아서 갈 수 있는 연결된 길임을 알 수 있었다.
속초가 시작되는 ‘해맞이 공원’에서 속초와 고성의 경계 지역인 ‘장사항’까지의 ‘해파랑길’은 약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여유롭게 천천히 걸어도 4시간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였다. 어떤 지역보다도 세련된 해안가의 모습과 새롭게 만들어지는 시설 속에 노동자들의 활기찬 모습은 해안의 생명력을 확장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속초는 익숙하면서도 친근하게 전체적인 얼굴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2. 설악산 ‘울산바위’를 오르다
술을 마시지 않고 일찍 잠에 들어서인지 아침이 짧아졌다. 숙소에서 머물기보다는 빨리 속초의 자연을 만나고 싶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설악산 ‘울산바위’를 오르기로 결정했다. 아침 8시 전에 설악산 입구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은 적었다. 청명한 하늘과 함께 웅장한 설악의 봉우리들이 시선을 압도했다. 멀리 ‘울산바위’의 기묘한 형상도 눈에 들어왔다.
울산바위는 1982년 대학간부 수련대회 때 간 이후로 오르지 않았다. 항상 사람들이 많았고, 때론 술을 많이 마셔 컨디션이 좋지 않게 설악산을 찾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맑은 정신으로 ‘울산바위’와 접할 시간이 되었다. 40년만의 만남이다. 천천히 봄이 오고 있는 설악산의 내부로 들어간다. 갑작스런 선택이었지만 최고의 선택이었다. 익숙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속초’를 만나게 해주고 있었다.
입구에서 울산바위까지는 약 4km정도라 안내하고 있다. 초반에서 흔들바위가 있는 장소까지는 완만하면서도 평안한 길이 지속되었다. 흔들바위 주변은 석굴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과시한 수많은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이제 ‘울산바위’까지는 1km만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산을 오를 때, 특히 경사가 심한 길을 오를 때, 1km의 거리는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제법 힘이 들었다. 200m마다 서있는 안내판은 지친 사람들을 격려해주는 문구 같기도 하였다. 숨을 참으면서 약 30분 정도 걸어 정상에 올랐다. 시야가 환해졌다.
이제야 제대로 설악산과 만나는 시간인 듯하였다. 과거 올랐을 때는 철없던 시절이라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장난스럽게 관찰도 없이 올랐기 때문이다. 울산바위에는 세 군데의 전망대가 분리되어 있었다. 각각 어느 곳이든 멋진 설악산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속초의 전경도 한 눈에 들어왔다. 해안가와 호숫가를 걸으면서 파악한 속초의 전체를 울산바위 정상에서 다시금 확인하였다. 바닷가와 호숫가 그리고 그 사이에 점점이 놓여있는 건물들이 하나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울산바위 옆 미시령으로 넘어가는 도로도 눈에 들어왔다. ‘양양 고속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이용자들이 줄어든 미시령길은 오히려 줄어든 사람들 때문에 드라이브하기에 좋은 길이 되었다.
다른 전망대에 가니 설악산 봉우리에 대한 안내 그림이 보였다. 대청봉, 공룡능선, 권금성, 토왕성 폭포 등 이름만 알고 있는 설악산의 실체와 그 관계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번 등산으로 쉽지 않은 등반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한 번은 제대로 도전해야 할 봉우리라는 점을 확인했다. 조만간 저쪽 ‘대청봉’에서 ‘울산바위’를 바라보아야겠다. 또 다른 매력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설악산’의 규모와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부분이 연결되어 전체가 되었을 때만 우리는 대상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 위해서는 부분에 대한 치열한 탐색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이든.
* 이번 속초 여행 음식은 ‘오징어 순대’와 ‘감자전’이었다. 장사항에서 먹은 ‘오징어 순대’는 양도 적고, 평범했다. 속초에서 ‘오징어 순대’는 대부분 공장에서 만든 것을 해동하여 파는 형태이다. 울산바위에서 내려온 후 먹은 ‘감자전’은 맛은 밋밋했지만, 감자를 많이 사용해서 제법 풍미가 있었다. 다른 산행에서 먹은 감자전보다는 괜찮았다. 하지만 과거 S와의 여행 때 마이산을 오르고 내려온 후 먹은 막걸리와 감자전의 기억을 넘을 수 있는 음식은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음식은 음식 자체뿐 아니라 같이 먹었던 사람과의 기억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여행은 음식으로도 기억된다고 한다. 혼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은 제한되지만 그 속에서도 특별한 음식과 만나고 싶다.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밥상을.
첫댓글 속초와 설악산 그리고 동해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