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국가들의 동시다발적 '봉쇄 작전'에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일본에 이어 17일(현지시간) 독일 정부까지 화웨이 제재 방침을 정한 데 이어 같은 날 영국 옥스퍼드대는 "화웨이의 기부금과 연구보조금을 받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전날에는 미국 의회가 화웨이 등 중국 통신장비업체에 미국산 반도체칩 등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며, 미국 연방검찰의 화웨이 기소도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서방 국가들의 화웨이 봉쇄 작전이 날이 갈수록 강도가 세지고 압박 전선이 넓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17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독일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통신 기간산업 분야에서 화웨이 장비 도입을 막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재는 차세대 5G 네트워크 장비의 보안 요건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독일 정부 관계자는 "5G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있다"고 WSJ에 말했다. 독일은 화웨이가 가장 중요시하는 해외 시장 중 하나로, 화웨이 유럽 지사가 독일 뒤셀도르프에 위치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소관 부처들이 보안 요건을 강화하는 방식을 철저히 분석하고 있다"며 "통신부터 자율주행차 등 (5G와 관련한)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화웨이에 대한 독일 정부의 방침은 불과 두 달 만에 180도 뒤집혔다. 지난해 11월 독일 정부는 화웨이 장비 금지에 대한 의회의 질의에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며 유보적 의견을 밝혔다.
독일이 태도를 바꾼 것은 화웨이의 '스파이' 논란이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다. 화웨이 등 중국 통신기업은 자사 제품을 이용해 각국 기밀을 빼돌려 중국 정부에 제공한다고 의심받고 있다.
WSJ는 "최근 수개월간 화웨이 장비에 대한 우려가 고조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13일 폴란드 방첩 기관은 화웨이 중북부 유럽 판매 책임자인 왕웨이징과 그와 협력한 자국인 등 2명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 이 가운데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옥스퍼드대가 일부 학생에게 "화웨이의 기부자·연구 후원자 자격을 중단한다"는 이메일을 보냈다고 18일 보도했다.
스티브 창 영국 세인트앤서니대 중국연구소장은 "영국 주요 대학에서 기부자의 기부를 금지하는 것은 꼭 그래야만 하는 불법적이고 명백한 증거가 있다는 방증"이라며 옥스퍼드대가 화웨이 혐의를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화웨이 측은 "우리는 2001년부터 영국에서 영업하면서 1500명을 고용했다"며 "이번 결정에 대한 확고한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일련의 흐름을 두고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미국과 우방들의 화웨이 압박 전선이 넓어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은 지난해 8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공기관의 화웨이·ZTE 등 제품 도입 금지가 포함된 국방수권법에 서명하면서 화웨이 제품 금지 조치를 주도했다. 영미권 국가의 첩보 동맹인 '파이브아이즈'(미국·캐나다·영국·뉴질랜드·호주)에 속한 호주와 뉴질랜드도 지난해 화웨이의 5G 네트워크 장비 공급을 차단하겠다고 밝혔으며, 일본 역시 지난해 12월 정부기관 통신장비에 화웨이 등 중국산 제품을 사실상 금지하는 내규를 개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에는 미국의 요청을 받은 캐나다가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미국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독일이 제재에 동참한 것이다.
화웨이는 언론 노출을 꺼리는 창업자까지 사태 진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 17일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 회장은 인민일보 등과 인터뷰하면서 "화웨이는 외부에서 상상하는 것만큼 걱정하고 있지 않다"며 "미국의 동맹국을 중심으로 화웨이 5G 통신장비를 거부하고 있지만 세계는 무척 넓고 아직 많은 지역에 우리의 5G 장비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런 회장은 보안 우려와 지식재산권 탈취 문제 주장에 대해 "화웨이는 지난 30여 년 동안 170개국 30억명에게 안정적인 통신망을 제공했으며 중국 정부에서 부당한 정보 제공 요구를 받은 적도 없다"고 설명했다.
런 회장은 1987년 화웨이를 창업한 이래 생애 첫 인터뷰를 2013년 5월 뉴질랜드에서 진행할 만큼 좀처럼 언론 노출을 꺼리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지난 15일 외신에 이어 17일 중국 현지 기자와 만나 인터뷰한 것은 현재 사면초가에 몰린 화웨이 상황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 측도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날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미국이 화웨이에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다"며 "미국은 기술 발전에 매진하고 있는 화웨이로부터 정치적으로 멀어질 수 있는 권리를 앗아가고 오히려 화웨이와 ZTE에 정치색을 입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환구시보는 또 미국이 주도하는 화웨이에 대한 박해를 '하이테크 기술 영역에서의 매카시즘'이라고 표현했다. 매카시즘은 1950~1954년 미국을 휩쓴 반공산주의 운동을 의미한다.
환구시보는 이어 "화웨이는 전 세계 통신업계의 발전을 이끈 공신이자 발전도상국에서 우뚝 일어선 글로벌 일류 통신회사"라며 "미국은 화웨이 성장 배경의 의미를 살펴보지 않고 자국 이익에만 골몰해 대국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이기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료 : 매일경제 [베이징 = 김대기 특파원 / 서울 = 류영욱 기자] 2019-01-18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