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소금
나는 유달리 밥심으로 일을 하는 편이다. 배우들 중에는 얼굴이 부을까봐 저녁은 조금만 먹고 아침은 아예 간단히 샐러드로 떼우는 경우도 많은데 나는 무조건 밥부터 먹고 본다.
영화 분신사바를 촬영할때는 내가 먹는 양이 영화 제작비의 5% 라고 우스개 소리를 할 정도로 잘 먹는다고 소문이 났다. 한창 촬영 하던 중 감독님께 크게 혼이나 내가 우울해하면서 촬영장을 빠져나갔는데, 마침 식사시간이 되어 다른 스텝들이 걱정이 되어 나를 찾다보니 내가 가장먼저 식당에 도착해 "밥 같이 먹자 " 며 해맑게 웃고 있더라는 것이다.
드라마 대장금 촬영 때엔 대기시간도 촬영시간도 긴 사극 촬영이다 보니 더욱 든든히 잘 챙겨 먹었던것 같다. 그 당시 나와 메니져, 코디까지 총 3명의 인원이 한팀으로 다녔는데, 항상 식당에 가서는 5인분씩 시켜 먹다보니 회사 에서는 정말 세명이 다니는 것이 맞냐, 네명이나 다섯명이 아니냐고 결제일 때마다 물어봤다고 한다. 셋트 촬영이 있는 날은 24시간을 넘겨 촬영하기 일쑤여서 밤 12시에서 1시쯤 방송국 지하식당에서 드라마팀을 위해 야식으로 라면이나 간단한 요기거리를 만들어주곤 했는데, 많은 배우들이 잠을 보충하는 그시간에 나는 항상 지하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서 있었다. 연출가이신 이병훈 국장님은 그당시 나를 보실때마다 "열이 (극중이름) 는 다음 장면에 얼굴 부을까봐 걱정도 안돼나봐 .야식먹을때 한번도 안빠지네 . " 하고 웃으시곤 하셨다.
내가 이렇게 잘먹게 된 데에는 나름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나는 할머니와 같이 살았고 형제는 위로 오빠 둘 뿐이라, 어머니는 항상 매 끼니 푸짐하고 정성스럽게 상을 차려 내셨던 것 같다. 할머니 의 건강을 생각해 요즘식으로 '유기농' 메뉴가 대부분이었고 아버지와 한창 자랄때의 오빠가 둘이나 있으니 식탁 위는 소위 말하는 ' 농부밥' 처럼 푸짐했다. 독서실을 갔다가, 한창 축구며 농구며 뛰고 들어온 오빠들 앞에 간식상이 차려질때도 나는 늘 함께엿다. 두 아들만큼 잘먹고 컸으니, 남들이 보기엔 ' 아들처럼' 잘먹을 수밖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십대 초반부터 연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한 나를 염려해 어머니는 멀리 촬영을 떠날때마다 늘 도시락을 싸주시곤 하셨다. 지방으로 떠나야 할때면 도시락에 편지를 넣어주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나는 차안에서 도시락을 열어보다가 어머니의 편지를 우연히 발견하고 마음이 짠해져 울기도 여러번 이었다.
어떤때에는 소풍가는 학생마냥 과일까지 푸짐하게 싸가기도 하며, 그렇게 몇해를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왠지 어머니도 피곤하실것 같았고 점점 한해한해 지날수록 아들도 아니고 딸이 되어서 도시락만 얻어먹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이젠 직접 간단한 과일만 좀 챙겨다니며 어머니의 수고를 들어드려야 겠다 생각하고 또 몇해를 그렇게 보내다, 최근 다시 어머니의 도시락 신세를 지게 되었다. 연기를 시작한 이후, 아니 태어나서 처음 연극 무대를 밟게 되었는데, 공연 시작하자마자 심한 감기몸살로 고생하게 된 것이다. 무대위에 올라야 하는데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한여름인데 열이 올라 나는 긴팔밖에 입지 못하고, 공연직전 시켜먹는 음식도 맞지 않아 고생해야했다. 보다못한 어머니가 다시 학생때나 보던 보온도시락통에 밥과 국물을 정성껏 싸주시겠다고 하신다. 이제 도시락 정도는 얼마든지 혼자 싸고도 남는 나이의 나지만 감기 핑계를 대며 도시락 싸달라고, 할수 있는양껏 왠지 어린양도 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힘 나는데 도움이 되라고 그날 뜨끈한 국물을 싸주셨단다. 대기실 화장대 앞에 앉아 보온 도시락통을 여는데 툭 하고 잘접힌 종이쪽지 같은 것이 떨어졌다. 이게 뭐지 편지인가 하고 열어보는데, 얇은 종이에 정성껏 쌓여진 것은 고운 소금 이었다. 국통을 열어보니 삼계탕이 들어있다. 도시락으로 삼계탕을 싸주시며, 간에 맞춰 먹으라고 소금을 따로 종이에 싸 넣어주신 것이다. 이 나이 먹고 어머니 덕에 도시락으로 삼계탕을 먹는 것만 해도 어디인데, 그깟 소금좀 없으면 어때서. 금새 눈물이 고였다.아무렇게나 소금을 넣으면 젖어 엉망이 될까 싶어 소금을 싸기 위해 알맞은 종이를 찾아 약 짓듯이 깨끗이 접어넣으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그게 뭐 별거냐는 듯 그날 밤 대수롭지 않게 '싸간 밥은 안남기고 다 먹었니' 라고만 물으신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음이 정말 별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어머니의 소금
난 언제쯤 어머니께 소금같은 정성을 전할수 있을까? 그런 깨알같은 정성 반만이라도 전해드릴수 있다면.
첫댓글 글솜씨는 모자라지만 세은이는 "월간 에세이 " 와 "사과나무" 2권에 매달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읍니다..
이글은 월간 에세이 9월호에 실린건데 올려봅니다...
명수 아우님은 복도 많으셔요.
천사처럼 이쁜데다 마음씨까지 고와서,엄마의 정성과 사랑을 다 느끼고 알고 있네요.
며느리는 며느리일뿐 결코 딸이 될 수 없다는 진리 앞에서,딸이 없는 사람은 그저 많이많이 부럽네요.
글솜씨까지 이렇게 좋을줄 몰랐는데,역시 부모님 닮아서 그렇겠지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천사처럼 이쁜데다 마음씨까지 고와서....선배님의 과찬앞에 제속으로는 벌써 딸내미 흉보고싶어 입이 근질거리지만 공개된 카페라 ㅋㅋㅋ . 엄마와 딸은 가끔은 아주 적대적일때도 있을수 있거든요...ㅎㅎㅎ 선배님이 연극보시고 장기공연할것 같다고 쓰시더니 진짜로 "오픈 로드"라고 완전 장기공연으로까지 한답니다. 연극을 처음 시작한 세은이에게는 아주 좋은일이지요. 다음에도 연극을 하게되면 선배님께 보여드리고 평가를 받아야 겠어요...
한번도 못봤지만 재경덕에 연예인 딸 얘기를 들었고
지난번 연극후에 올려진 사진으로 미인인 따님의 모습을 보니
일반연예인과는 다른 알찬 연예인이라 부모님이 걱정치 않아도
될것같습니다.
가끔씩보는 명수님이 전해주는 세은따님의 성미를 짐작하니 정말 얼굴처럼
예쁜 따님인것 같습니다.
수험생도 아닌 다 큰딸 도시락을 국까지 곁드려 소금넣어 보내주시는
엄마의 사랑이 반찬이 되어 예쁜마음을 지닌 세은이가 된줄 압니다.
인물만이 아닌 성품과 지혜까지 엄마닮아 갖춘여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회가 되면 위의 책을 구해볼께요 명수씨 미국언제오세요?
선배님 건강하시지요? 항상 감사합니다..미국은 올해는 못가겠네요...
세은양의 다재다능함이 정말 이뻐 보입니다.연극을 보지 못해 아쉽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겠지요.명수님 사는 보람에 세은양의 발전과 효도가 톡톡히 한몫이겠네요.부러버라.ㅎㅎㅎ
다음에 시간을 좀 내주세요...
어머니의 정성을 이렇게 예쁜글로 표현하는 세은양이 정말 마음도 곱고 얼굴도 이쁜 따님입니다.명수님은 따님복도 많으십니다.
말리는 연예계 생활을 해서 늘 저를 좀 신경쓰이게 하는 애인걸요..ㅎㅎ
얼굴도 예쁘고 연기도 잘하고 글도 잘 쓰네.방긋 웃는 미소가 정말 예쁜데 하는짓 모두가 맘에드네.진작 부터 세은이의 팬 이라고 했지만...어머니의 정성이 오늘의 세은양이 되었나봐.
선배님의 감각에는 두손 두발 다 들겠어요.....원래 세은이 팬이셨다고 해서요...
어머니의 정성을 깊이 느끼고 이렇게 글로 표현할줄 아는 예쁜 세은이가 철도 들고 다 컸습니다.시집보내면 인사듣고 엄마닮아 칭찬 많이 들을테니 시집 보내도 되겠으니 자 ㅡ 여러분 일등신부 중매합시다....
맞습니다 맞고요....시집 좀 보내봅시다...ㅋㅋㅋㅋ
엄마정성도 대단하지만 그걸 알아주는 세은양도 정말 기특함니다.
글까지 잘 쓰는 다재다능한 세은양의 앞날이 기대됨니다.
감사합니다...중학교때 부터 소설도 쓰고해서 저는 대학도 국문과를 갔으면 했거든요...
세은양 인물도 예쁜데 마음까지 예쁘네요. 다정다감한 엄마에게 배운 딸이니 어찌 안그러겠어요 그엄마에 그 딸이지요.대장금에서 특출나게 고운 모습을 기억했는데 알고보니 후배님 딸이라 많이 기대하고 있답니다.내건강하게 많이 챙겨 먹고 엄마의 효녀 되세요.
항상 뵈올때마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선배님. 그림도 열심히 그리시고 요즘은 다이어트도 잘하셔서 아주 좋아보이시던데요...언제 시간 좀 내셔서 대학로로 고우 고우 합시다....
모녀간에 엘렉트라 컴플랙스가 있을 수 있는데 이 모녀는 정말 정다운 모녀입니다. 대장금 때는 열이인줄 몰랐고 야인시대에서는 대성할 배우라 눈여겨 보았고 연개소문에서는 명수님의 딸인줄 알고 더 친근감이 들었지요. 연극으로 연기가 더 성숙하고 발전하기를 빕니다. 글까지 정말 잘 쓰네요.
감사합니다,,,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