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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 연합 산행기
대한 건축사 등산 동호회 주관으로 행하는 완주 모악산 산행에 참가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평소 시간이 나면 가급적 이런 산행에 빠지지 않으려 하지만 요새는 여러 가지가 겹쳐 시간 내기가 더 어렵다. 학기말이라 더욱 그렇다. 그래도 이번에 가는 모악산은 고향에 있는 산이기 때문에 빠지지 않으려고 일찌감치 신청했었다. 모악산을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산에 속해 있는 금산사를 여러번 다녀왔으니 다녀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정상 산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번 강천산 산행 때 지각했던 적이 있어 좀 더 서둘러 나서서 출발 10분 전인 6시50분 교대역 1번 출구에 도착했다. 대기중인 버스를 보며 걸어가니 회원들이 길가에서 한가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는데로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타니 두어 분의 회원과 사모님들이 앉아 계셨다. 차 안에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미리 배낭을 올려놓아 자리를 잡아 놓고 있었다.
옆에 배낭이 놓인 앞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출발 시각이 되어 밖에 있던 일행이 차에 올라 자리에 낮았다. 가장 연장자이신 윤원석 건축사님이 옆 좌석에 놓인 배낭을 들고 좌석에 앉으셨다. 바닥이 돌출되어 있는 곳인데 그 분은 다리를 받쳐주어서 이런 자리가 좋다고 하셨다. 송승원 사무총장이 출발 시간이 되었지만 정병협 서울 등산동호회 부회장이 거의 다 오고 있으니 조금 더 기다리자고 했다. 잠시 후 정부회장이 도착해 차에 올라와 7시 10분 출발했다.
황선욱 건축사가 지난번 사량도 산행 때 나누어 주었던 돗자리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오늘은 회원 모두에게 배낭을 선물한다고 하면서 휴대하기 어려울테니 돌아오는 길에 나누어 주겠다고 했다. 송승원 사무총장이 그 말을 받아 “배낭 때문인지 많이 참석했다” 고 하면서 흐뭇해했다.
버스가 판교 오산근처를 지나자 들녘이 보였다. 하지만 그 배경에 아파트 숲도 나타나서 농촌이 한가로움은 느낄 수 없었다. 전에는 서울을 벗어나면 한가한 교외를 느낄 수 있었는데 나날이 이 지역이 도시화되고 있었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로 접어들고부터 주변에 밤 단지가 너르게 조성되어 있었다. 8시 22분 정안 휴게소에 들렸다. 박기현 회장이 집결지까지 가는 시간이 촉박하니 화장실만 다녀와서 30분에 출발하자고 했다. 그러나 회원들이 일찍 돌아왔는데 정작 기사가 타지 않아서 잠시 더 기다리다 출발했다.
다시 주변에 밤꽃이 만발해 있었다. 그 곳은 공주권인데 공주밤이 유명하다. 조금 지나자 다시 들녘이 나타났다. 들녘을 가로 질러 흘러가는 강뚝과 드문드문 평야지대의 밋밋함을 보완하듯 야트막한 산들이 배경으로 보였다. 그 들녘의 작물과 산의 나무숲에서 짙은 녹음이 느껴졌다. 인간의 세월이 아니라 초목의 일생이 더욱 실감나는 때이다. 땅에서 자라는 작물들은 심어 놓으면 자연의 힘으로 자라면서 이맘때는 한 없이 무성해지는 계절이다. 그리고 그 결실의 끝까지 세월이 아늑히 느껴지기도 한다.
너른 들녘을 바라보며 지나서 9시 9분 논산IC를 지났다. 다시 잠시 후 접어든 호남 고속도는 예전보다 한산했다. 서울로 가는 큰 도로였다. 내가 서울을 갈 때도 이 길을 이용했다. 그런데 지나온 천안-익산 고속도로가 생긴 다음부터 이곳을 더 많이 이용하게 되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9시 22분 전주가 13km 남은 이정표가 보였다. 주변의 산천과 들녘은 변화 없는 모습이었다. 특유의 시골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뉴타운 같은 개발과는 거리가 먼 세상이다. 고개를 넘자 다시 너른 들녘이 보였다.
9시 33분 전주 IC에 당도했다. 외곽으로 길을 벗어나 갔는데 내가 고향을 떠나온 후 개발된 효자동, 신도시 지역이라 잘 모르는 곳이었다. 택지를 개발하여 도로가 닦여 있고 다세대 주택지와 아파트 단지도 보였다. 전북도청도 인근에 보였다.
한참 가다 길을 잘 못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명색이 고향이라면서 길을 조언해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지도를 보며 기사에게 조언해 주어 27번 국도를 찾아 갔다. 길이 전주천을 가로 질러갔다. 서울에서는 하천 복원이라 하여 청계천, 성북천, 정릉천 같이 덮었던 곳을 다시 뜯어 물길을 찾기가 한창인 마당이어서 그대로 있는 것이 더 소중해 보였다
차가 시 외곽으로 빠져나가서 다시 너른 들녘이 보이고 삶 내음이 풍겨 나왔다. 그야말로 땅에 의지해 살아가는 풍경이었다. 농사짓는 집에서 자라나 나의 인식에 자리하고 있는 근원적 환경에 들어서자 퍽 살갑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런 풍경을 느끼며 지나가니 잠시 후 모악산이 가까이 보였다.
10시 8분 모악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위쪽에 전국의 건축사 등산동호회 프랭카드가 걸려 있고 그 주위에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오는 일행이 아직 다 도착하지 않은 듯 바로 산행을 시작할 것 같지 않은 분위기여서 주변을 서성이다 도로변에 나가 구경을 하다 오이를 4개를 사고 다시 돌아오니 명찰을 나누어 주었다. 모두들 명찰을 차고 보니 더 소속감이 느껴졌다.
오늘 행사에는 대한 건축사협회 한명수 회장도 참석한다고 했다. 박기현 서울 건축사 등산동호회 회장이 단체 사진을 찍자고 해서 구이 저수지가 시원하게 보이는 곳에 모여 사진을 찍었다. 한 회장을 기다리다 늦게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산행을 시작했다.
10시 50분 모악산 정상을 향해 출발하였다. 상가 옆을 지나 올라가는데 무슨 일이 있는지 뒤에서 멈추라고 했다. 하지만 회원들이 밀물 같은 기세로 가고 있어 전달이 잘 되지 않아 그냥 가게 되었다. 선두 그룹은 벌써 저만큼 앞서 갔을 것 같았다. 모악산 표지석을 향해 걸어가는데 옆에서 걷고 있던 경남 신종복 건축사님이 인사말을 건냈다. 회의 카페에 올리는 읽어 보고 있다고 했다. 내가 모악산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 찍어주었다.
입구를 지나 급경사 길을 땀을 흘리며 한동안 올라갔다. 모악산은 큰 산이라는 뜻의 엄뫼가 의역해서 모악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모악산은 그 이름에서 어머니 품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포근함이 연상된다. 또 모악산은 여러 종교에서 성지로 여기고 있어서 더욱 발길을 끌고 있다.
11시 5분 약간 완만해진 구간을 걷는 동안 숲 너머로 정상이 보였다. 눈에 정상이 보여서 빨리 그 곳에 당도할 것 같았다. 앞에서 오던 사람이 많은 일행이 온 것이 신기한 듯 “정상까지 1분 남았어요” 라고 농담을 하며 지나갔다. 다시 경사가 심한 길을 걷게 되어 땀이 많이 흘렀다. 가다보니 맨 앞쪽에서 걷고 있었다. 앞서 오르던 대구,경북의 김봉두 건축사가 뒤를 돌아보아 제일 잘 간다고 하니까, 몇 명은 더 앞서 갔다고 했다. 주변의 다른 일행이 "서울 사람들은 고유가 시대라 고층 건물 들을 걸어 다녀서 잘 다니나 보다" 고 했다. 잠시 후 강준규 건축사가 땀을 흘리며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인사를 나누고 갈리진 우측 길로 먼저 올라갔다. 급경사지여서 묵묵히 걸어 올라갔다.
11시 15분 완만해진 길을 걸었다. 숲을 뚫고 온 태양이 흙길에 점점이 수를 놓은 듯 보였다. 너무 앞서가는 듯 하여 선두 반보소리를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옆에 있던 회원이 군대 같으면 “5분간 휴식 하면 바로 쉬는데...” 했다.
11시 17분 완만하게 내려가다 다시 완만하게 오름길을 걸었다. 큰 산세 너머 있는 모악산이 정상은 산 너머 산으로 되어 있어서 아까 주차장에서는 실제보다 낮게 보인 듯 했다. 잠시 후 내려오는 여자분에게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어보니 절반정도 왔다고 하며 지나갔다.
계속해서 급경사 길을 걸어 올라갔다. 나와 마찬가지로 옆에서 함께 오르는 회원들도 구슬 같은 땀방을을 흘리고 오르고 있었다. 마산,청원의 권영찬 건축사가 위에서 맨발로 오는 사람을 보자 “기를 많이 받겠다”고 했다. 선두 그룹에 마산,청원지역 회원이 많이 보였다. 요새 등산동회가 활발한데 사람이 적더라도 무조건 출발한다고 했다.
11시 29분 급경사지 길이 끝나 평평한 곳에 도달하니 회원 몇 분이 쉬고 있었다. 나도 함께 쉬면서 간식을 나누어 먹었다. 요새 함께하고 있는 강남건축사 등산동호회 이명철 건축사 등 몇 명이 앞서 출발하여 나도 함께 올라갔다. 아까보다 경사가 완만한 길을 좌로 돌며 올라가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내리막길을 걷다 다시 오르막길을 걸어가니 11시 37분 수왕사 이정표가 보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작은 봉우리를 넘어 다시 완만한 오름길에 접어드니 좌측으로 정상부근인 듯한 큰 능선이 보였다. 앞서가는 채건축사가 안전진단 등, 일 예기를 하며 갔다. 건축사로써 그런 에기가 자연스럽게 일상의 화제가 되고 있었다. 뒤에서 사진을 찍다보니 앞서 걷던 일행이 보이지 않아서 혼자 걷게 되었다.
나는 이번 모악산 산행에 참가하면서 나의 삶과 연관된 장소를 찾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는 지난 세월이 모진 풍파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산을 가면서 나의 그런 추억들이 다 씻겨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걸었다.
아까 주차장에서 볼 때는 바로 정상이 올려 보이고 송신탑 같은 구조물도 있어 어떻게 이곳이 소문으로 전해진 성스러운 산인지 의문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휘돌아가며 길에 오르는 동안 점차 그 너른 품이 느껴지고 넉넉한 산으로 인식되어갔다. 길가의 나무들 잎이 진녹색으로 변하며 무성해지고 있어서 맑은 날씨에 내리쬐는 태양빛을 가려 시원한 숲길을 이루고 있었다.
11시 39분 좌측으로 시선이 트여 바라보니 허공을 바라보는 위치에 바위가 놓여 있었다. 직감적으로 전망이 좋을듯하여 길을 벗어나 그 곳에 오르니 있어 깜짝 놀랄 만한 경치가 보였다. 너른 주변이 휜이 트여 보였다. 구이 저수지와 그 너머 산세가 이쪽 산세와 연관되어 보였다. 호수가 있어 그야말로 산수가 어우러진 풍경을 자아냈다. 앞의 일행은 그냥 지나쳤는지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두번씩 이 산을 오른다는 아주머니 두 분이서 이곳이 조망이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다.
머무르며 스케치를 하다 보니 서초 건축사 회원들이 올라오면서 나를 보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그들을 보고 반가워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앞서 간 일행을 의식해 먼저 올라갔다. 조금 경사가 급한 길을 걸어가다 작은 산봉우리에 당도하니 충북 건축사 회원들이 그 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거기서 모악산 정상부를 스케치를 하고 있는데, 충북 건축사 등산동호회 오긍균 회장이 쌈을 한입 싸 갖고 와서 입에 넣어 주었다. 갖은 양념이 된 비빔밥을 풋풋한 상추에 싸서 입 안에서 여러 가지 진미가 느껴졌다. 좀 미안하게 여겨지면서도 그런 마음이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박성식, 이진희, 공유성 건축사 등 낯 익은 얼굴이 많이 보여 더 친근한 느낌이었다. 스그리고 부인들도 많이 참가하였다. 지난번에는 자녀들도 많이 왔었는데 지금은 커서 잘 오지 않는다고 했다. 월악산에서는 이진희 건축사님 아들과 함께 정상에 오르고 사진도 같이 찍었었다.
내가 올린 백두대간 산행기에 댓글을 단 최동철 사무국장님도 얼굴을 직접 보게 되었다. 그 분은 체격이 우람하였다. 전에 월악산과 북한산으로 서울과 연합 산행을 하면서 충북 회원들을 알게 되었는데 마음이 진설하고 정이 많은 분들이어서 산행에서 볼 때마다 어느 단체보다 유독 단란함이 느껴지는 분들이다.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그 곳은 무제봉이었다. 모악산 주변 마을 사람들이 무우제 (舞雨祭= 祈雨祭)를 올리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모악산 산봉 바로 밑 오른 쪽에 보이는 장군봉 풍수지라상 명산이라 하여 묘를 써 왔다고 하는데, 유독 장군봉 줄기에 묘를 써 놓으면 가뭄이 계속되므로 장군봉에 묘를 쓰지 못하도록 입산금지령까지 내렸다고 한다.
12시 15분 한명수 본 협회 회장이 올라와 충북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잠시 머무르다 다시 다른 일행들을 만나기 위해 앞서 출발했다. 나는 스케치를 마치고 가까이 다가가 함께 식사를 했다. 그리고 준비해간 더덕주를 꺼내 놓으니 얼음물에 넣어 반갑게 나누어 드셨다. 산행을 통해 알게 되어 정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이 좋았다.
12시 50분 경사 길을 올랐다. 뒤에서 여자분이 힘들다고 예기하자 앞서 걷던 남자분이 막대기를 내밀며 잡고 매달려 오르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힘들만큼 버티면서 올라오라고 했다. 뒤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여자를 행한 남자의 마음은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시 59분 모악산 정상 바로 아래 지점 전망바위에 도착해 다시 주변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었다. 명찰을 단 사람들이 있어 인사를 하니 대전의 석종구 부회장과 최재인, 강성중, 주연인 건축사 등 네분이었다. 그 중에 최재인 건축사님은 평소 이름을 알고 있었다.
거기서는 아까보다 주위가 더 너르게 조망되었다. 전주 시내 쪽이 더 트여 보여 고향의 입지를 알 수 잇게 했다. 산세에 면한 너른 터는 도읍으로서 정할 만했을 것이다. 그 모습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니 고등학교 친구인 승규였다. 그는 혼자 올라왔다고 했다. 모악산에서 친구를 만나니 정말 고향을 찾아온 느낌이 들어 반가운 마음에 옆에서 팔고 있는 막걸리를 사서 함께 마셨다. 약간 녹두빛 빛깔을 띠고 있었는데 인삼을 넣어 빛은 것이라고 했었다.
친구와 헤어져 올라가니 뒤로 보이던 정상부가 건물로 되어 있었다. 건물을 옥상까지 등산로처럼 오르도록 해 놓았다. 행사 안내 게시판에서 정상부가 시설이 되어 있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불만일 수 잇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위를 올라보니 일행이 보였다. 건물이지만 정상부를 올라갈 수 잇다는 것 만해도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오르는 길옆에 “위험하니 20명 올라가지 말라”는 안내판이 쓰여 있었다.
1시 13분 모악산 정상(건물)에 도착했다. 그래도 그곳에 서니 정상부로서 감회를 갖게 했다. 모악산은 여러 종교에서 성지로 삼고 있다. 원불교의 모태이고 대순지리교의 강증산은 이곳에서 크게 깨우쳤다고 한다. 옥상에는 트랩처럼 돌며 주변을 바라볼 수 잇게 해 놓았다. 거기서도 주변이 조망은 잘 되었지만 건물 옥상이라 그런지 시선의 맛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전주 시내 쪽이 더 트여 보여 고향의 입지를 알 수 있게 했다.
전주를 둘러선 큰 산은 별로 없고 이 곳 모악산이 가장 큰 산이다. 모악산은 산의 권속들을 거느린 것처럼 느껴진다. 대개 도읍의 입지는 큰 산세로부터 흐름을 중시하는데, 고행에 잇을 때는 전주와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서인지 관계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여기서 보니 전주 배후의 산세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곳서 보이는 전주 지역은 평소 낮은 곳에서 볼 때보다 더 기름지고 너르게 보였다. 견훤도 모악산에서 보이는 전주지역 모습에 감탄하여 도읍을 정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산세에 면한 너른 터는 도읍지를 정할 만 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소출이 나는 들녘보다 소출이 나지 않는 산을 더 성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모악산은 서남쪽에 위치하며 백두대간 줄기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그리고 독립된 지형의 중심을 이루고 이다. 큰 산줄기로부터 뻗쳐온 것이 아니라 대지로부터 기운이 응축된 양상인데 이 지역에서는 그 기운의 정점에 모악산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김제 평야가 펼쳐져 있다. 그러나 모악산 인근에서 삶터로서의 중심은 역사가 깊은 전주로 인식되고 있다.
정상에서 보니 저 앞쪽 봉우리 위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우리 일행인 것 같아 내려와서 그 방향으로 진로를 삼아 내려가니 잠시 후 헬기장이 나왔다. 거 바로 못 미쳐 있는 곳에 길이 갈라지는 곳 있는데 거기서 좌로 난 계곡길이 A코스이고 헬기장을 지나가는 곳이 B코스였다.
1시 21분봉우리 위로 올라가니 일행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김의중 회장이 다가오는 나를 보고 어서 오라며 얼음 막걸리를 한잔 권해서 시원하게 마시고 잔을 돌렸다. 자리에 모여 있는 모든 참가자들의 얼굴이 즐거운 표정이고 화기애애했다. 말 그대로 속세 시름을 다 잊은 듯 했다. 오늘은 특히 한명수 대한 건축사협회 회장이 참석해서 행사 분위기가 더 돋궈진 느낌이었다. 그러나 오늘 주관은 전국 건축사 회장인 오경진 회장이었다.
요새 등산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서 산행 인구가 천만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각자 건강을 위해서 신경을 쓰는 추세에서 산행만큼 간편하고 건강에 좋은 일이 없을 듯하다. 그래서 본회 회장을 보니 협회 주관하에 산행을 한번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 서서 방울토마토를 집어 입에 넣는데 앞에 앉은 황선욱 건축사 부인이 수박 한쪽을 포크로 찍어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지난 번 산행에서 보았던 아들 예기도 했다.
다시 모악산 정상을 바라보며 스케치를 하는 사이 일행이 얼추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떠날 차비를 했다. 평소 알고 지낸 이종정 본회 감사님을 보게 되어 인사를 했다. 평소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내가 올린 산행기 예기도 하시곤 했었다. 내가 여기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는게 좋겠다고 했더니 정병협 부회장이 모악산을 배경으로 서라고 했다. 많은 인원이 모여서 앞줄은 앉고 중간 줄은 다리를 구부리며 포즈를 취했다. 첫 컷을 찍은 다음 구호를 위치며 다시 사진을 찍고 하산 산행의 채비를 했다.
거기서 일행은 당초 계획대로 A코스, B코스로 나누어 가기로 했다. B코스는 매봉을 돌아가는 길이다. 내가 B코스로 가겠다고 하니 박기현 회장이 2시간 반이나 걸리는 먼 거리라며 만류하는 눈치였다. 나는 빨리 가겠다고 하며 1시 55분 길을 나섰다. 최찬용 서울 건축사 등산동호회 감사, 이승훈, 오세창, 이철호, 안치규, 양옥경 건축사 등이 함께 그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B코스는 금산사를 좌측에 두고 빙 둘러가는 코스였다. 식사하던 장소에서 내리막 숲길로 접어들었다. 그 코스는 아까보다 사람 발길이 뜸했다. 옆에서 사람 없는 산이 가장 좋다고 했다. 선두에 섰던 오세창 회원이 신발끈을 매면서 앞서가라고 했다. 앞에서 길을 확인하며 걸었다. 잠시 후 뒤에서 “선두 반보”소리가 했다. 오회원이 잠시 후 뒤따라 나타나며 “신발 끈 매고 나니 금방 사라져 버렸어” 라고 말했다. 평온한 길에 접어들었다. 좌측에 금산사 영역을 중심에 두고 우측으로 돌아가는 형국이었다.
2시 7분 매봉에 도착해 그 길로 가는 일행이 함께 사진을 찍으며 잠시 쉬었다. B코스에서는 매봉이 중요 목표지점이었다. 그 코스의 길은 완만해 걷기에 편하고 즐거웠다. 마치 한가로이 걷는 산보길 같았다.
다시 완만한 길을 걷다 2시 15분 우측에 봉우리가 있어 올라서니 제법 너르게 닥아 놓은 헬기장이었다. 뒤의 일행이 모두 뒤따라 올라와 그곳을 보고 다시 길을 걸어갔다. 완만하고 녹음이 우거진 길이어서 좋은 기운이 깃든 곳을 걷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기분으로 산길 구간을 한동안 걸어가다 좌로 좀 더 틀어진 지점에서 뒤로 모악산 정상이 반대 위치에 보였다.
2시 32분 갈림길 이정표가 나왔다. 금산사 3.6km 금산사 주차장은 2.6km 거리였다. 금산사 방향으로 앞서 가다보니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차장 방향으로 리본이 매여 있는 것을 가리키며 이쪽으로 가야 맞을 것 같다고 했다. 뒤의 일행을 기다려 함께 쉬면서 생각하다, 당초 금산사를 들러 가려던 대로 하려고 일행에게 이야기를 하고 금산사 표지 방향으로 갔다.
거기서 난 길은 완만하게 금산사를 빙 둘러가는 양상이었다. 2시 35분 낙엽송 지대를 걸었다. 벼랑에 난 길이지만 흐름은 완만하다. 맞은편에서 여자분이 걸어와 금산사에서 오느냐고 묻고 시간이 얼마나 갈리느냐고 하자 “길이 편해서 얼마 안 걸린다”고 했다. 다시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하자 2시간도 안 걸린다고 했다. 2시간이면 먼 거리인데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마음이 닦인 사람인 것 같았다. 길을 물었던 분 말대로 길이 좋아서 내 느낌상으로는 빨리 당도할 것 같았다.
혼자 걸으니 고요한 숲내음이 차분히 느껴져 그 곳에 있는 도량의 분위기와 일치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인적이 없어 새소리, 물소리가 들려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저 아래 당도할 금산사의 도량의 맑은 분위기가 이 숲으로부터 이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2시 58분 개울이 나타나 맑은 계곡물을 들여다보고 지나갔다. 숲에서 맑은 새소리가 들렷다. 한동안 내려가다 보니 아까 같이 걷던 세 사람이 보였다. 이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걸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채한배 건축사가 연리지 나무 좀 보라고 했다. 어디서 들어본 소리라고 생각하면서 바라보니 신기하게 두 그루 나무줄기가 서로 붙어 있었다. 옆에 설치해 놓은 안내 표지판에 연리지란 서로 다른 나무 가지가 이어져 한 몸이 되어 잇는 것을 말하는데 거기에 쓰인 말 그대로 두 그루에서 각기 나온 가지가 한 몸처럼 붙어 자라고 있는 것이 신기해 보였다. 표지판에는 이 나무에 빌면 세상의 모든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써 있었다.
그 아래로 이어진 길로 나서니 A코스위에 재려오는 길과 만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지점에 새워 놓은 이정표를 보니 금산사가 0.8KM 남아 있었다. 합류된 길을 따라 내려갔다. 좌측 동산처럼 꾸며진 곳에 에 큰 소나무를 이식해 심어 놓은 모습이 보였다. 길가에서 아주머니 두 분이 버찌를 따 먹고 있었다. 누군가 무리해서 따려다 부려뜨렸는지 큰 가지가 부러져 있었다. 나도 버찌를 한개 따서 맛을 보니 특유의 씁쓰름한 맛이 났다. 조금 아래로 예전에 와 보았던 부도전이 나타났다. 그 곳에 있는 혜덕왕사의 진흥탑비는 뛰어난 조각솜씨로 유명하다. 그런데 전과 달리 그 부도에 가림시설을 해 놓아서 분위기상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곳을 보고 있으니 박기현 회장의 큰 음성이 들려 길 쪽을 보니 한명수 회장과 박기현회장 등이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긴 B코스로 온 내가 먼저 내려온 것이었다.
부도전을 나와 그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앞서 걸어갔다. 잠시 후 우측으로 금산사 요사체 영역이 나타났는데 두개의 건물을 새로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려가니 입구가 나왔다. 입구 근처 개울 건너에는 숲에 쌓인 찻집이 주변 정취를 돋우고 있었다. 3시 15분 금산사 경내에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건축하는 사람들이라 직업적으로 관심을 갖고 각기 흩어져 보고 있었다.
오늘 정상부에서 그 곳을 품고 있는 모악산의 기세를 알고 와서인지 오늘 따라 금산사가 정신적 도량으로 느껴졌다. 금산사는 우리나라 미륵도량의 본산처럼 여길 만한 곳인데 대적광전도 함께 조성되어 있어서 미륵전과 직각으로 놓여 있다. 그렇게 다른 교리가 함께 있는 것을 조선시대에 사찰이 통불교(通佛敎)화 되어진 과정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이 곳에서는 역사적으로 미륵도량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고 여겨진다.
그 미륵신앙은 특히 후삼국시대에 유행했는데, 그런 신앙이 발달한 것은 신라 말기에 발달된 선종의 영향도 있다고 하고 있다. 즉 누구나 닦으면 부처가 된다는 선종사상이 지방 호족 세력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 지도자들은 다시 미래 세상을 밝힌다는 미륵신앙을 신봉하며 스스로를 미륵이라 칭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곳에는 대적광전 말고도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에 있는 적멸보궁도 있다. 미륵 전 우측에 높게 쌓여진 석축위에 금강계단을 만들고 그 곳에 진신 사리를 모셔서 그 앞에 적멸보궁을 지어 놓았다. 적멸보궁은 그처럼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은 사리가 부처의 본체이기에 따로 불상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고 보고 불상을 모시지 않는 대신 사리탑을 행한 문을 열어두고 경배를 올리게 한다.
금산사에는 그 뿐 아니라 다양한 건축적 양식이 있고 여러 가지 다른 시대와 형태의 탑들이 있어서 볼거리가 많은 절이다. 대장전은 특이하게 용마루 중앙부가 탑 모양처럼 돋아 있고 미륵 불상을 모신 거대한 미륵전은 국내에서 유일하며 우리나라 불전 가운데 가장 길이가 긴 대적광전은 모든 부처가 다 모셔져 있다.
이곳은 초겨울에 감이 매달린 풍경이 유명하지만 마당에 서니 감나무는 보이지 않고 가운데 보리수나무가 있었다. 나는 그 곳을 한바퀴 돌본 후 마당의 큰 나무 주변에 둘러 쳐 놓은 돌에 앉아 미륵전을 바라보며 스케치를 하고 4시 30분 경내를 나섰다.
조금 나서니 삼국시대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전하는 성문이 보였다. 금산사는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유폐된 굴곡진 역사도 갖고 있다. 다시 일주문이 보이고 그 너머로 좌측에 야영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입구로 나오니 우측으로 계곡이 보였다. 거기서 뒤돌아보니 입구에 모악성지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있었다. 그리고 지나온 금산사 뒤로 멀리 모악산이 보였다.
4시 55분 식당 가까이 이르러 강남의 박남재 건축사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최근 100대 명산을 마친 것을 축하하는 말을 건냈다. 그는 부인과 함께 자가용으로 와서 다시 따로 가겠다고 해서 작별인사를 하고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오늘 행사 뒤풀이를 한 식당은 너르고 큰 식당이었다. 거기서도 모악산 정상이 올려다 보였다. 식당에 들어서니 일부는 식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난 자리에 앉자 옆에 앉은 이명철 건축사가 맥주와 소주를 시켰다. 그리고 술이 나오자 대간 산행을 마치고 나서처럼 맥주와 소주를 시켜 조제를 하여 잔을 돌려 주변 분들과 함께 건배를 했다. 안쪽에 잇던 남상길 건축사도 바라보고 눈인사를 해 주었다. 서초 건축사 등산 동호회와 산행을 하면서 자주보아 친분을 갖게 되었다. 부인들과 두 아들 성우, 연우도 많이 참석하여 다 알게 되었다.
옆 좌석에 앉은 사람끼리 건배를 하고 나니 앞에 있던 박기현 회장이 자리로 와서 함께 건배를 제의하여 “위하여“를 세 번 크게 외쳤다. 이어 주문한 식사가 나왔다. 맛의 고장이라 불리는 곳답게 더덕, 미역국, 된장찌개 등 모든 반찬이 맛이 좋았다. 그리고 비빔밥도 많이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타고 온 차가 지방별로 각기 달라서 형편대로 헤어지게 되었다. 서울 일행도 차편이 다른 사람이 있어 헤어지기 전에 단체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상가 사이 골목을 걸어나오니 주차장에 일행이 타고 내려온 버스가가 보여 다가가 올라탔다. 일행이 차에 오르자 사무총장과 황선욱 재무가 배낭과 양말을 나누어 주었다. 배낭은 파란색과 오랜지색 두가지인데 파란색이 인기가 좋아 옆 좌석의 윤 건축사님도 그 것으로 하나 갖다달라고 했다.
5시 25분 주차장을 출발해 서울로 향했다. 차 안에서 박기현 회장이 이번에 처음 참석한 회원의 소감을 청하자 오세창 건축사가 나와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 나온 황근욱 건축사는 안산즐산 해서 좋았고, 지금 하고 있는 사당 건축 사례를 보아서 일석이조였다고 했다.
박기현 회장이 오늘 행사의 주관을 맡은 오경진 대한 건축사 등산동호회 회장에게 인사말을 청하자 “무탈하고 즐겁게 산행을 마쳐서 감사하다” 고 했다. 유난히 얼굴 혈색이 좋아보여서 훨씬 젊어 보였다. 다시 강희달 화장에게 인사말을 청하자 통로 중앙에 서서 막걸리 기운이 아직 얼얼하다고 하면서 “체력에 맞는 즐거운 산행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갖고 온 보드카 두병을 선물했다. 이어 선물로 갖고 온 모자를 추첨해 권세경 건축사님이 당첨되었다. 그리고 로또 두장을 추첨해서 내가 당첨되었다. 경품에 당첨 된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차가 여산 휴게소에 도착하자 서초건축사회 김의중 등산동호회 회장과 회원 일부가 혼자 올라가는 조병섭 건축사 차를 기다려 타고 가겠다고 하면서 내렸다. 다른 일행도 잠시 휴식을 갖고 다시 출발해 7시 30분 천안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려 쉬었다. 오산 부근에 이르니 승용차 차선이 심하게 정체되고 있었지만 우리가 탄 버스는 전용차선을 이용해 지체되지 않고 8시 25분 서울 교대역에 도착해 각자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080614)
첫댓글 한편의 등정드라마같은 산행기 잘읽고 갑니다...
생각치 않게 직접 만나뵈어 반가웠습니다. 졸고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체력이 대단합니다'''같이 비코스로 산행 하다가 금산사로가시고 우리비팀 몇명은 지도대로 산행 완료 하였읍니다'''^^
기왕 금산사를 품은 산에 왔으니 절에 들러 평소 관심 있던 것들을 다시 보고 가려 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굿굿하게 산행 중 그림까지 그리시니 부럽습니다. 대단합니다.
사진 잘 감상했습니다. 정부회장님 덕분에 추억의 모습을 잘 간직할 수 있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산행기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호남아의 좋은 인상을 풍기는 김건축사님, 지난번 올리신 사진 보니 사진을 아주 잘 찍으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