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과 혼 생명과 자아에 대하여(4-2)/ † 자아(自我)의 처리(눅9:23-25)
<혼이 바로 자아이다>
누가복음 9장 23-25절은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제 혼을 잃으면”(16:26절)이라고 말하고, 누가복음에서는 “자기를 잃으면”(9:25)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혼이 바로 자아임을 증명한다. 구약도 우리에게 혼이 자아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레위기 11장 43절은 “너희는 너희 혼을 기는 바 기어 다니는 것으로 가증하게 되게 말며 너희 자신을 그런 것들로 더럽혀 부정하게 되게 말라”고 말한다(원문 직역).
또한 레위11:44절은 “… 땅에 기는 바 기어 다니는 것으로 너희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고 말한다. 44절에 있는 “너희 자신”은 43절에 있는 “너희 혼”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혼을 부인해야 함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혼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그 영(성령)의 일들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을 포기하고 거절하고 부인해야만 한다.
<혼,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부인함>
혼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부인한다면, 영밖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자아는 사라진다. 당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포기하는 것은 단순히 당신 자신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 자신을 부인하는 것은 당신 자신의 생각과 의견과 사상과 이념과 관념과 사랑과 원함과 의지와 결정과 선택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부인하는 것이 바로 자아를 부인하는 것이다. 생각에 속한 사람은 혼에 속한 사람이다. 감정에 속한 사람도 혼적인 사람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어디에 속했다고 보는가?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벽으로 곧장 걸어간다면 그 사람의 몸에서 벽과 부딪치는 첫 부분은 가장 튀어나온 코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일 당신이 감정적인 사람이라면 어떤 경우에서든지 당신의 감정이 제일 먼저 부딪힐 것이다. 만일 당신이 생각에 속한 사람이라면 당신의 생각이 제일 먼저 나온다. 만일 당신이 의지에 속한 사람이라면 당신의 의지가 제일 먼저 나올 것이다.
대부분의 자매들은 감정이 아주 강하고, 대부분의 형제들은 의지가 매우 강하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의지가 강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혼적인 사람임을 시인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많은 때에 매우 감정적이고 생각이 많으며 완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아, 곧 혼의 감정과 생각과 의지를 부인하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
자아를 부인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부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아를 부인한 후에야 영을 갖는다. 만일 우리가 감정과 생각과 의지를 부인한다면 우리는 영에게 기회와 근거를 주게 된다.
그러므로 자아에 대하여 죽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삶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우리의 체험에서 우리가 자아에 대하여 죽지 않는다면 영적 생활에서 어떤 참된 진보도 이룩하지 못한다(마26:39).
<자아를 부인하기를 실행함>
만일 당신이 타고난 생각을 부인한다면 당신 안에 있는 영은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거의 언제나 혼 안에,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 사람의 영이 어떤 것을 할 기회와 근거를 갖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부인하는 것을 계속해서 실행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내가 한 형제를 매우 사랑한다고 할 때 그것은 타고난 사랑이다. 만일 내가 그 사랑을 포기한다면 나의 영은 주님의 어떠함을 표현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만일 내가 내 혼의 어떠함을 포기한다면, 나의 영은 주님의 어떠함을 표현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 거듭난 사람들은 또 다른 부분인 우리의 가장 속 부분, 곧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소생되고 거듭난 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혼을 부인해야 하며, 우리의 혼을 잃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우리 존재의 이렇게 놀라운 부분, 곧 영적인 부분, 살아 있는 부분, 소생된 부분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아직 그 부분을 모르고 있다.
그 부분에게, 곧 우리의 영에게 어떤 것을 할 기회나 근거를 주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어떤 형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자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자신을 부인한다면, 당신은 그 형제를 매우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어떤 형제를 매우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단지 당신의 감정 안에, 혼 안에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감정을 부인하고 자아를 부인한다면 그 형제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혼의 사랑, 곧 타고난 옛사람의 사랑으로부터 영의 사랑으로 변화될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생명을 체험하기 위해서 배워야 할 것은 혼을 부인하는 길이다. 앞에서 계속 설명한 바와 같이 혼과 혼 생명과 자아는 표현은 다르되 의미는 같다.
혼은 자아이며 자아는 세 가지,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이루어져 있다. 혼을 부인하는 것은 당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부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는 것은 바로 혼 생명을 잃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가 바로 혼의 뜻이 파쇄될 때이다.
<타고난 생명을 포기함과 영 안에 삶>
타고난 생명, 곧 혼의 생명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갈2:20). 이제 우리는 주님을 우리의 생명으로 취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타고난 생명, 곧 옛사람인 혼의 생명을 포기하고 영 안의 주님을 우리의 생명으로 취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우리 혼의 기능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혼의 생명과 혼의 기능은 다르다. 우리 혼의 모든 기능은 여전히 영 안에 계신 주님께 사용되는 기관들로 남아 있는 것이다. 혼 생명은 십자가에 못 박혔으되, 혼의 기능, 곧 생각, 감정, 의지는 이제 영의 생각, 영의 감정, 영의 의지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 안에서 살아야만 한다. 갈2:20절은 “…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라고 말한다. “나”는 “자아”이고, “자아”는 “혼(혼 생명)”이고, “혼”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내가 아니요”란 더 이상 내 생각이나 감정이나 의지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것”을 의미한다.
딤후4:22절은 “주님께서 그대의 영과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라고 말한다. 곧 그리스도는 내 안에, 내 영 안에 사신다. 우리는 “나”인 “자아”, 곧 혼을 부인하고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의해 살기를 배워야 한다.
<주님을 생명으로 취함과 영 안의 기름부음>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거절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을 거절하고 주 예수님을 우리의 생명으로 취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영으로 돌이켜서 어떤 문제에 있어서든지 그 느낌이 어떠한가를 감지함으로써 주 예수님을 당신의 생명으로 취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취해야 할 올바른 길이다.
언제나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행동하는 길은 타고난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부인하고, 주 예수님을 우리의 생명으로 취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속 부분의 느낌이 어떠한가를 느끼기 위하여 그곳으로 돌이켜야 한다. 당신이 이렇게 한다면 당신의 영과 그 안에 거하는 성령은 당신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하기 위하여 일어날 것이다.
그때 당신은 분명한 이해를 가질 것이다. 당신의 영은 일어나고 솟아오를 것이며 생수가 다른 이들에게 흘러 나갈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계속해서 우리 영 안의 기름 부음과 안의 제한과 안의 느낌과 안의 감각과 안의 의식을 주의하기를 배워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이 기름 부음과 함께 나간다면 우리는 영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때 혼의 모든 기능은 새롭게 되고 변화되고 소생되고 강화되고 증진될 것이다. 혼의 생명은 못 박히고 포기될 것이지만, 혼의 기능들,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고상해질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영 안에 있는 무언가를 느끼기 위하여 당신의 영을 사용해야 한다. 그때 당신은 당신 자신의 느낌과 관계없이 당신의 영으로부터 무언가를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사용하지 않고 주님의 어떠함을 느끼기 위해 영을 사용함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을 배우고 체험해야 한다. 당신의 생각을 사용하지 말고, 당신의 영 안의 생명을 느끼기 위하여 당신의 영을 사용하라.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 안에서 주님을 위하여 행하고 섬기게 하는 바르고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