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고전부터 사회·경제·과학까지 분야별로 청소년 시기에 읽어두면 삶의 지표가 될 만한 좋은 책들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분량이 방대하거나 내용이 어려워 선뜻 손에 잡기가 쉽지 않다. 평소 독서를 즐겨하지 않았다면 더욱이 그런 책에 독서 의욕이 생길 리 없다. 전문가들은 같은 원작이라도 중학생 눈높이에 맞춰 구성을 달리한 책을 먼저 읽어보라고 권한다. 다만 지나친 축약과 윤색으로 원작의 본의를 왜곡한 책은 피해야 한다.
같은 원작, 다른 구성의 책을 어떤 기준으로 고르고,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알아봤다.
취재 백정은 리포터 bibibibi22@naeil.com 도움말 이은애 교사(경기 이목중학교)·전종옥 교사(서울 마곡중학교) 참고 민음사·푸른숲·와이즈베리·미래엔
같은 원작 다른 구성, 어떻게 고를까?
원작의 재미, 감동 잘 살린 책으로 선택해야
청소년 시기에 읽어야 할 책들 중 출판사에 따라 구성과 난도의 차가 가장 큰 분야가 바로 세계 명작 고전이다. 대개 원전의 분량이 방대하고 내용도 어려워 성인이라도 완독하기가 쉽지 않다. 중학생 대상 권장 도서 목록에 빠지지 않는 <돈키호테>의 완역본은 분량이 1천700쪽에 달한다.
서울 마곡중 전종옥 교사는 “원전을 읽는다고 해도 중학생의 언어 수준과 감수성으로 제대로 이해하고 감동을 느끼기는 어려울 수 있다. 책이 두껍고 어려워 자칫 독서 의욕이 꺾일 우려도 있다. 이럴 때는 청소년용으로 구성된 책을 먼저 접하는 것도 괜찮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원전 대신 읽을 책을 선택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원작이 유명할수록 구성을 달리한 책의 종류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초등용 동화책, 청소년용, 완역본까지 줄잡아 수십 권의 책이 뜬다. 다른 명작 고전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중 어떤 기준으로 책을 선택해서 읽으면 좋을지 알아봤다.
전문가들은 줄거리 위주로만 축약된 책은 원래 작품이 가진 문학적 재미와 감동을 크게 떨어트리고, 그 안에 담긴 본래 의미가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 교사는 “중요한 장면들은 자세하게 끌고 가면서 원전의 맛을 최대한 살리고, 지루함을 줄 수 있는 세밀한 배경 묘사 등은 줄이는 정도로 재구성된 책이라면 적절하다”고 추천했다.
경기 이목중 이은애 교사는 “학령에 맞는 적절한 수준의 책을 선택하고, 자신의 눈높이에서 술술 잘 읽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책의 중간 부분을 펼쳐서 10쪽 정도 미리 읽어보면 좋다. 이때 문장의 어법이나 호응이 자연스러운지, 이야기의 흐름이 부자연스럽지는 않은지 등을 점검해서 잘 안 읽히는 책은 피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책의 내용을 일일이 살펴보기 어렵다면 공신력 있는 출판사나 번역자의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이 교사는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원전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할 만한 책을 고르는 게 중요하다. 전 교사는 “독서 토론 수업을 할 때 중학생 눈높이에 맞는 쉬운 구성의 책을 선정하지만 두꺼운 원전을 가져가서 직접 보여주고, 나중에 시간을 내서 꼭 읽어보라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물론 독서가 쉽게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작업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독서보다 더 재미있는 일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시작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독서의 재미를 느낄 때까지 끈기있게 시도해나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α 책에 딸린 작품 해설, 먼저 읽어도 될까?
어려운 책을 읽다가 무슨 내용인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을 때 서평이나 해설을 찾아 읽으면 어느 정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책을 제대로 읽기 전에 정제된 형태의 서평이나 작품 해설을 접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 교사는 “책을 한두 번 읽은 후 해설을 보면 놓쳤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사고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작품보다 해설을 먼저 보면 자칫 사고가 갇히고, 고정될 수 있다. 작품을 날것 그대로 부딪혀보고, 자기 나름대로 의미를 획득해가는 과정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전 교사가 쓴 평설 <동물농장 제대로 읽기>.
작품의 직접적인 배경이 된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고, 조지 오웰의 또 다른 대표작 <1984>에 대한 해설도 곁들였다.
문학을 통해 사회를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줄 내용들을 다뤘다.
같은 원작 다른 구성, 들여다보기
원작은 같지만 대상에 따라 구성을 달리한 책들을 비교해보고, 각각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사례를 통해 알아봤다.
ZOOM IN 1 민음사 <동물농장> VS 푸른숲 <동물농장>
독서력에 따라 적절하게 골라 읽기
<동물농장>은 원전의 분량이 많지 않고, 우화 형식으로 쓰여 청소년용도 내용면에서는 완역본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청소년 대상의 책은 군데군데 삽화가 있고, 문장과 어휘를 쉽게 풀어써 독서력이 낮아도 부담 없이 접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예를 들면, 완역본의 “갈짓자 걸음으로”는 “비틀거리며”로 풀어썼고, ‘장원’ ‘미들 화이트 종’ ‘산탄’ 등 낯선 어휘에 대해서는 바로 옆에 풀이를 덧붙였다. 완역본에는 ‘자유와 행복’ ‘나는 왜 쓰는가’ 등 작가의 에세이가 실려 있어 작가의 사상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 독서 수준이 높은 학생이라면 시도해볼 만하겠다.
ZOOM IN 2 <정의란 무엇인가> VS <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
쉬운 구성의 책, 원작과 함께 읽으면 시너지 효과
사회과학 도서(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과학적·체계적으로 연구한 내용을 담은 책)는 생각의 폭을 넓히고, 사회 비판의 식을 기르는 데 도움이 돼 청소년, 성인 모두의 필독서로 꼽힌다. 전문 용어가 나오고, 분량이 많아 중학생 수준에서는 접근이 쉽지 않지만 <청소년 부의 미래> <만화 마키아벨리 군주론> 등 쉬운 구성의 책을 먼저 읽어두면 나중에 <부의 미래> <군주론> 등 원전 번역판을 접했을 때 비교적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이 축약이 많이 된 경우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해당 내용을 찾아 읽으면 원전의 날카로운 통찰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