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계곡 탐방기(09-26)
-경남 함양군 마천면 한신계곡을 다녀와서-
그러니까 7월 첫째 주 완도 삼문山을 다녀온 후, 4주 만에 가는 산행이라 왠지 기분이 서 먹 거리기도 했고,
부픈 기대감에 은근히 마음 한구석엔 들뜬 기분도 들었다.
하늘은 이런 내 기분을 알기나할까?
그러나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았다는 고집스런 얼굴로 잔뜩 찌푸린 하늘은 금방이라도 한 줄금 비를 쏟아 내릴 기세다.
아, 하루라도 기분 좋게 보내주면 어디가 덧날까, 왜 좁쌀영감마냥 심통을 부리실까?
돌이켜보면 지난 한달 동안 계속된 장맛비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던가.
사람이 죽고, 산사태가나고 주택이 침수되고, 도로가 유실되고, 가축과 농경지가 매몰되는 피해를 입었고,
경제적 손실만도 수백억에 달했다.
그래도 기간 동안에 절기상으로는 소서와 대서가 있었고, 삼복중 초복과 중복도 지나갔으니,
한 주일만 지나면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추가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평소보다 서들은 탓인지 광주역에 도착하니 일곱 시도 못 되었다.
역 광장에는 한솔산악회버스가 대기 중이었고 안면 있는 몇 사람이 인사를 건넨다.
오늘은 장마후유증 탓인지 옛날처럼 대기하고 있는 산행버스가 별로 없었으며,
금광산행버스는 일곱 시 삼십분쯤에 도착을 했다.
“오래만입니다, 반갑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시지요?”
항상 변함없이 반겨주는 양동매씨들의 환한 미소가
날씨 때문에 움 추려있던 내 마음을 순식간에 즐거움으로 바꿔주고 있다.
그래, 오늘 날씨는 저 양동매씨들의 얼굴마냥 활짝 겔 거야!
우리는 그냥 출발하면 되는 거야.
산행버스는 88올림픽고속도로를 타고 함양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좌회전한 뒤
수동검문소 못 미친 지점에서 다시 우회전하여 직진하더니 백무동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오늘은 지리산 4대 계곡중의 하나인 경남 함안군 마천面 강천里에 있는 한신계곡을 탐방하는 날이다.
(4대 계곡=피아골, 뱀사골, 칠선, 한신계곡)
한신계곡은 깊고 넓은 계곡으로, 한여름에도 한기(寒氣)를 느끼게 하는 계곡이라는 뜻으로,
계곡의 물이 차고 험하며 굽이치는 곳이 많아 한산하다고 해서 부르던 이름이 한신(寒新)이 되었다고도 하고,
또는 옛날에 한신(韓信)이라는 사람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죽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백무동주차장에서 내려 산행준비를 하고 계곡을 향해 떠났다.
오늘코스는 백무동에서출발 -첫나들이폭포 -가네소폭포 -오층폭포 -한신폭포를 되돌아 내려오는(왕복7.4km)
약4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백무동에서 세석평전까지는 10㎞ 거리로 여러 개의 폭포가 집단을 이루면서 흐르고 있는데,
백무동에서 세석까지 흐르는 본류(本流)외에도,
덕평峰 북쪽에서 발원하는 바른재골, 칠선峰 부근에서 내려오는 곧은재골, 장터목 방향에서 흐르는 한신지溪谷 등
4갈래의 물줄기가 백무동계곡을 만들어, 엄川으로 흘러가 남江상류를 이룬다고 했다.
본류는 촛대봉과 영신峰 사이의 협곡을 흘러 가네소폭포에서 한신지계곡과 합류한다.
지리산 계곡 가운데 폭포를 가장 많이 끼고 있으며, 지리산 등반코스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날씨는 장마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인지, 비구름은 사라지고 없지만 하늘은 그 얼굴을 드러내기를 거부하고,
이상저온현상으로 복더위마저 체감할 수 없는 산행하기에는 최상의 날씨인데,
오늘은 말 그대로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낀다는 한신계곡이 아닌가.
매표소를 지나는데 관리소직원이 입산자명단을 작성해달라고 해서,
엉겁결에 금광산악회40명이라고 기록하고 서명을 했다.(대표도 아니면서, 죄송합니다)
회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계곡을 올라가고 있었고, 느티나무집을 지나 上백무에이르니,
장터목대피소와 세석대피소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계곡과 절벽 사이로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을 한시간정도 올라가니 20여 개의 물줄기가 흐르는
첫나들이폭포(바람폭포)가 나왔다.
숲길을 걸어가는데 나무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는 멀고, 가까운 계곡과 흐르는 물소리가 마치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들리기도 했고, 어느 곳에서는 짓궂은 동네아이들의 장난기어린 떠드는 소리로도 들렸다.
포말을 만들며 쏟아지고 부서지는 물줄기는 하얗다못해 형광의 빛을 발하며
거품으로, 거품으로 계속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제다리 아래보다 위로 바라보는 폭포수는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등산로만 따라가다 놓치기 쉬운 폭포수가 바람처럼 물방울을 흩날리고 물안개를 피어 올리는 장면은
가히 환상적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포효하는 군중의 함성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억만년을 쉼 없이 흘러내렸을 무한 광대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심한 현기증을 일으켰다.
철제다리를 지나 등산로를 따라가니 곧장 철다리 3개를 더 만날 수 있었는데,
출렁이는 다리위에서 내려다보는 계곡流도 일품이며,
이름 없는 폭포와 널따란 반석과 바윗돌은 바디 크림을 바른 듯 매끄럽고,
울창한 수림은 바로 신선들이 사는 선경의 세계였다.
크고 작은 바윗돌들은 제각각의 자세로 누어 물과 어울려 놀고 있고,
이름 모를 설치작가가 세워놓은 듯 바윗돌 하나가 예술의 혼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것 좀 보아라!
넓은 바윗돌 한가운데서 자라고 있는 물푸레나무 한 구루를, 어른팔뚝만큼 자란 줄기가 바위를 뚫고,
이제는 바윗돌이 견디지 못해 금이 가고 틈새가 부서지고 있지 않는가!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의 힘 앞에 경배를 올려야한다.
폭포자연탐방로란 리본이 달린 줄 따라 다시 1㎞쯤 더 올라가니
폭포수와 넓은 반석, 울창한 수풀이 어우러져 계곡의 절정을 이루는 가네소폭포가 나왔다.
이 폭포는 15m 높이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며,
사철 변함없는 수량을 자랑하는 검푸른 50여 평의 소(沼)를 만들고 있어,
그 웅장함에 압도당하기도 하지만 이곳은 기우제장소로도 유명하다고 했다.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영험 있는 곳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부녀자들이 홑치마바람으로 앉아 방망이를 두드리면 방망이소리가 통곡으로 들려 지리산 山神인 마고할매의 통곡을
유도해내 그 눈물이 비가 되어 속세를 적시게 한다는 주술적방법과,
또 하나는 돼지를 잡아 피를 바위에 뿌리고 머리는 가네소에 던졌는데,
이는 山神이 더럽혀지면 씻어내기 위해 비를 뿌릴 것으로 믿었던 토속신앙에서 전래되는 것이었다,
가네소폭포에서 왼쪽으로 흙 비탈길을 올라가다보면 계곡을 맞나 건너게 되는데,
계곡주변 숲길을 가다보면 폭포가 5층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는 오층폭포(오련폭포)를 만나게 된다.
여인의 속살보다 더 희고 윤기 나는 암반 위를 흘러가는 무량수(無量水),
그것은 끝없이 사랑을 베풀어주는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풍요롭고 자애로움이었다.
오층폭포에서 山竹과 잡목터널을 따라 다시 계곡을 건너 탐방로를 따라가다 보면 계곡의 상징인 한신폭포가 나온다는데,
안내판도 없고 접근로가 없어 폭포를 찾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우리는 계곡 옆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계곡물이 어찌나 차가운지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도 없었으며
찬 기운이 몸속으로 스며들어 모두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여기서 1㎞쯤 더 가면 유명한 세석평전이라 했다.
되돌아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보다 더 힘이 들었는데.
비가 온 뒤라 돌길이 미끄럽고 계단 폭이 높아 조심한다고 했어도 두 번이나 미끄러졌다.
오늘산행에는 회장님과 상섭회원 그리고 山에살고파님이 부부동반으로 참여를 해줘
가족 산행의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나목(裸木)에 대하여
-팡팡-
저 무성한 나뭇잎들은 알고 있을까?
살을 에는 추위와
눈바람
그리고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온
지난겨울의 일들을
별들도 차갑게 보이는 밤
모진 눈바람 불어오는
겨울의 정점에 서서
슬픈 연가를 불러야했던
裸身의 여인이여,
나목이여!
고운 옷 송두리째 벗겨지고
삭막한 대지위로 버려진
여인의 심정 같은 날들을
하늘은 해맑고 바람 시원해
칠월의 나뭇잎들은 알 수 없을 테지
죽은 듯 살아온 사랑과
희생으로
칠월의 나뭇잎들이
삶에 환희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2009년 7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