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새해벽두에 그것도 신춘문예 2관왕을 첫소식으로
알리게 되어 반갑고 고맙습니다.
수필창작대 14기를 수료하시고
에세이포럼에서 수차례 수필쓰기를 연마하신
손훈영 문우님께서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습니다.
당선작은 매일신문은 '비를 기다리는 마음'
전북일보는 '이중주' 입니다.
손문우님의 글쓰기는
속절없이 흘러가 버린 세월에 대한 저항이며,
이제 더 이상 그냥 그대로 흘러 가 버리게 두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실천이었다고 합니다.
쓸 수 있을 때도 쓰고 쓸 수 없을 때도 썼으며,
쓸 수 있을 때는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썼고,
쓸 수 없을 때는 왜 쓸 수 없는지, 그 답답한 마음에 대해 썼다는
손훈영 문우님.
그리고 증오와 고통의 거친 누더기를 벗어던지고
글쓰기를 통하여 이제
평온이라는 깨끗한 순면 옷으로 갈아입게 되셨다니
이것이야말로 '문학은 치유'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손훈영 문우님!
그간 몸의 반란으로 아픔과 고통을 많이 겪으셨으니
이제 절대 아프지 마시고
새해 병신년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풍성한 글밭이루시길 기원합니다.
다시한번 매일신문과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그리고 문우님들!
새해 건강하시고 병신년 내내
다복이랑 만복이랑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수상작 아래 첨부)
Its a Dream Come True (꿈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비를 기다리는 마음 (매일 신춘 당선작)
두툼한 먹구름이 빠르게 이동한다. 하늘의 허파가 용트림을 하며 짧고 강한 바람을 쏟아낸다. 번갈아 쉬는 들숨과 날숨 사이로 당장이라도 엄청난 비를 퍼부어 댈 것 같다. 비의 숨냄새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비만 오면 내 안 깊숙한 곳에서 정체불명의 힘이 솟아난다. 드물게 몸과 마음이 활력으로 탱탱해진다. 오늘은 비의 예감만으로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달릴 채비를 한다. 막힘없이 달려보기에는 고속도로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가까운 IC로 차를 올린다. 목적지는 없다. 실컷 비를 맞으며 달리다 그만 달리고 싶을 때 돌아오면 된다.
‘비 탄다’라는 말이 있다. 맑은 날과 비교해 비오는 날 심리상태가 유난히 다른 사람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스탕달의 ‘적과 흑’에는 ‘습기에 특별히 민감한 사람들’이 등장 한다. 그들은 다른 이들이 흘려 넘겨 버리는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쉽게 상처를 입는다. 꿈속에서도 줄곧 비가 내리고 찬란한 햇빛 아래서는 현기증을 느낀다.
빗줄기가 사다리처럼 하늘까지 이어진 날, 그런 날은 모든 것에 조금 더 너그러워 진다. 쨍한 햇살아래서 악착같아지던 마음과는 대조적이다. 닿을 듯 가까워진 하늘이 강퍅하던 마음을 위무하고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기 때문인가. 아무려나 팍팍한 마음보다는 너그러운 마음일 때가 더 평화와 가깝지 않겠나.
거침없이 자동차는 달린다. 드디어 전면 창으로 빗방울이 투덕거린다. 아스팔트가 거뭇하니 젖어온다. 내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내 안의 물방울들은 저절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에게 이끌린다. 오랜 그리움 뒤 연인과의 해후처럼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고 가슴전체가 따뜻해져온다.
대기를 장악한 빗방울들의 드라마가 풍성하다. 와와 쏠리듯 다가와 파열하듯 장렬히 부서져 내린다. 녹음을 머금은 진초록 유리창 위로 방울방울 사념들이 매달린다. 온 몸을 에워싸는 빗방울이 혈관에 주입되는 링거액처럼 메마른 정신을 빠르게 타고 돈다.
맑은 날 보다는 어둑시그레 비오는 날이 더 좋은 것은 오랜 세월 변하지 않는 몇 가지 정서중 하나다. 두 날의 심리적 대비가 너무 도드라져 한 때는 런던이나 파리, 뮌휀 같은 곳에서 살고 싶기도 했다. 늘 낮게 구름이 드리우고 자주 가랑비가 오락가락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럽의 그 도시들을 동경해 보기도 했다.
빗줄기가 거세질수록 가로수의 춤은 더 격렬해진다. 서서히 타이어에 들러붙는 아스팔트의 질감도 달라진다. 차체와 도로가 한 덩어리로 밀착되며 어느덧 속도감마저 사라진다. 점차 우주적 진공 같은 것이 느껴진다. 자질구레한 잡념들이 빠르게 무화되면서 마침내 나는 느낌표 하나로 존재한다.
조화로운 음악과 감동적인 영화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만큼 비도 그렇다. 훌륭한 영화가 마음의 고양감을 주듯 비도 정신과 영혼을 한 단계 상승시켜준다. 얼어붙은 내면의 바다를 깨는 도끼와도 같은 영화를 보고 났을 때, 우리는 그 이전과 달라진 자신을 느끼지 않는가. 그때의 고양된 느낌은 욕망으로 얼룩진 우리 존재를 정화시킨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빗줄기를 오래도록 바라보노라면 와이퍼가 지나간 유리창 마냥 말간 마음이 된다. 유난히 ‘비를 탄다’는 것은 남다르게 마음정화가 필요하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정화에의 요구가 유달리 강하기에 마음을 씻어 낼 수 있는 비오는 날에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마음 정화의 욕구가 남다르다는 것은 또한 그만큼 상처 받기 쉬운 마음의 소유자라는 말이기도 하다. 존재하느라 으깨어진 상처의 파편들이 누구보다도 많기에 그것들을 걸러내는 작용이 더 자주 요구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오는 날 홀로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문득 삶과 죽음에 대한 감각이 환해져온다. 동그란 핸들에 목숨을 얹고 어둑한 하늘을 향해 질주하노라면 복잡하던 머릿속이 단순하게 정리되며 많은 것들에 초탈한 심정이 된다.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미약하고 가뭇없는 존재들인지가 뼛속깊이 느껴진다. 풀과 같이 약한 생명이기에, 그렇기에 지금, 살아, 힘차게 뛰는 내 심장에 대해 그만 숙연해지고 만다.
물세례를 퍼부으며 거대한 덤프트럭이 바짝 비켜 지나간다. 움찔하며 핸들을 다잡는다. 그렇다. 비오는 고속도로는 삶에 대한 강한 애착과 확실한 긍정을 확인하게 해주는 공간이다. 시속 백 키로의 속도감으로 펼쳐지는 비 젖은 도로는 좀 더 본질적으로 살아 갈 힘을 재생시켜준다. 생명만이 진실이기에 누추한 욕심들이 떨어져나가고 검박하고 평화로운 삶을 향해 애틋한 마음이 된다. 비를 뚫고 도로를 가로질러 천천히 날아가는 흰 새를 보노라면 불현듯 하늘에 닿는 문장을 쓰고 싶어지기도 한다.
플랫폼에 서서 기차를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비를 기다린다. 햇빛 화창한 날에도 무슨 부적처럼 우산을 챙겨들고 간절히 비를 기다린다. 비는 보이지 않는 실존적 물음에 마음껏 탐닉할 수 있게 해준다. 삶이 무엇인지, 답 없는 답을 찾기 위해 영화관을 찾고 도서관을 들리며 온 몸에 비의 지문을 찍으며 거리를 헤맨다. 예리한 비의 지문은 머릿속 부식된 붉은 녹들을 벗겨내고 가슴 속 두터운 지방질을 뚫어 초록의 생명 감수성을 일깨운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은 지속된다. 나날의 상처와 황폐함도 이어질 것이다. 폭력과 무관심이 도처에 횡행해도 불친절한 우리의 하루는 안이하게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 위로 오늘도 비가 내린다.
◆심사평…읽고 나면 삼빡한 뒷맛…탄탄한 문장 돋보여
문학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신춘문예에 도전해 본다. 더러는 재수`삼수`사수를 마다하지 않는다. 열정 때문이다. 신춘문예를 통해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문학에 대한 꿈을 실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매일신문의 신춘문예는 ‘작가의 꿈’을 실현하는 관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였을 뿐 아니라 그 역사와 전통 또한 오래되었다.
문학은 언어를 표현 수단으로 하는 예술이다. 마땅히 낱말을 부리고 문장을 다듬는 기술을 터득함으로써 개성 있는 작가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문단의 구성과 내용의 효과적 전개, 주제의 설정과 형상화, 그리고 사람살이의 지혜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 거기다 신인다운 참신성을 겸비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응모작품 가운데 태반이 신변잡기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수필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성찰하는 글쓰기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타인의 이야기를 할 때가 있고, 주체 밖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현상에 관해 서술할 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작가 개인의 자잘한 신변사를 글감으로 삼기 마련인데, 자칫하면 무늬 없는 평범한 작품에 머무르기 십상이다. 수필은 산문으로 쓰인다. 그러나 같은 산문이라도 소설이나 희곡에 비해 운문적 성격이 강하다. 이를테면 치밀한 묘사나 장황한 서사적 언어보다는 간결하고 여운이 있는 문장이 돋보인다.
심사 대상 작품은 총 436편이었다. 먼저 수필로서의 기본에 미달하는 작품을 걸러내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20여 편을 가려 뽑았고, 다시 읽고 추린 결과 5편의 작품이 끝까지 남았다. 김승연의 '꿀꿀이바구미애벌레', 김정선의 '매화육궁, 피어나고', 김학철의 '달챙이 숟가락', 박창경의 '죽음의 무늬', 그리고 손훈영의 '비를 기다리는 마음'을 놓고 토론하였다. 고심 끝에 '비를 기다리는 마음'이 완성도나 문학성이라는 면에서 다른 작품들보다 돋보인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래서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여러 작품 가운데서 한 편을 가려 뽑는 작업은 힘들면서도 즐거운 일이다. 당선작은 낱말의 부림이나 문장의 구성이 탄탄하다. 부족할 것도 넘칠 것도 없이 필요한 만큼의 언어가 사용되었다. 주제를 형상화하는 솜씨 또한 예사롭지 않다. 수필을 머리로 읽는 글과 가슴으로 읽는 글로 나눈다면, 당선작은 가슴으로 읽는 글에 해당한다. 그만큼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읽고 나면 뒷맛이 삼빡하다. 당선,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만하지 말고 정진하여 꽃을 활짝 피우기 바란다.
심사위원 김종욱(수필가), 허창옥(수필가)
◆수상소감
서설이다. 질척이던 진눈깨비가 포근한 눈송이로 바뀌는 찰나, 순백의 허공을 뚫고 신의 특별한 전언이 날아든다. 한 장의 호외가 내 앞에서 꿈결같이 나부낀다. 재능에 대한 의심으로 황량하던 나에게 호외가 뿌려주는 황홀함은 아스피린과도 같이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그동안 생활인으로서 실격에 가까웠던 내 아웃사이더적 행각이 당선이라는 소식 앞에서 이해되고 정당화된다.
아무도 나에게 프로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프로적으로 쓰고자 했다. 쓸 수 있을 때도 쓰고 쓸 수 없을 때도 썼다. 쓸 수 있을 때는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썼고 쓸 수 없을 때는 왜 쓸 수 없는지, 그 답답한 마음에 대해 썼다.
글 心을 돋우기 위한 가장 좋은 자가발전 조치는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는 것이었다. 글 쓸 힘이 나지 않고 마음이 바싹 말라있을 때, 그보다 더 좋은 비책은 없었다. 그러므로 쓰고 또 써야했다.
자판에 글자를 찍을 수 있는 이상 완전히 절망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에게 쓴다는 행위는 속절없이 흘러가 버린 세월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냥 그대로 흘러 가 버리게 두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실천이었다. 흐르는 시간에의 저항은 그 시간을 응시하는 것이었고 그 응시는 기록이라는 실천으로 남았다. 응시와 기록은 적어도 더 이상 후회라는 괴물이 나를 조롱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게 해 주었다. 더 이상 후회할 시간이 없었기에 응시와 기록은 내내 현재진행형이었다.
한 편 두 편 글을 써서 내 보일 때면 찢어진 천막처럼 펄럭이던 마음이 고요해졌다. 세상을 향해 굳게 닫은 문을 조금 열고 깨끗이 빤 빨래하나 내 거는 심정이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어둡고 음습하던 무의식의 오지를 구석구석 훑고 쓰다듬어 나가는 시간이었다. 불안을 종식시키는 자가 치유의 시간이며 시커멓게 죽어가는 의식을 도려내는 정신분석의 시간이었다. 누구와 힘을 합쳐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할 수 있었다. 혼자라면 자신 있었다.
글 판 깊숙이 발을 담그기가 두려웠던, 그저 그 언저리를 맴도는 주변인일 뿐이었던 나를 ‘발견’해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하다. 기쁨도 슬픔도 없이 매일 조금씩 글을 씀으로써 그 고마움을 갚겠다. 수필사랑 문우들과 두 분 선생님, 오래 같이 가고 싶다.
*이중주 (전북일보 신춘 당선작)
눈부시게 환한 햇살이 초록 숲 위로 투망처럼 드리워져 있다. 베란다 창 앞으로 바투 다가와 있는 산은 이제 마악 여름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창을 열어두고 다가오는 여름을 바라본다.
팡, 팡. 열어 둔 창으로 테니스공이 라켓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공 부딪히는 소리 사이사이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섞여든다. 힘껏 내리친 공이 빗나갔는지 안타까운 탄식이 터지기도 하고 아슬아슬하게 공을 받아쳤을 때의 환호성이 높다랗게 들려오기도 한다.
베란다로 나가 테니스장을 내려다본다. 높푸른 히말라야시다의 호위를 받고 있는 테니스장은 치외법권 지역인양 아늑하다. 알맞게 다져진 맨 흙바닥이 정갈하고 높다란 심판석 의자의 진초록 덮개가 새뜻하다.
연두색 공들이 네트 위를 빠르게 오간다. 황토빛 흙을 박차고 하얀 운동복이 튀어 오른다. 튕겨 오르는 공을 따라 공기를 가르는 사람들의 그을린 허벅지 위로 햇살이 작열한다. 약동하는 생명력이 라켓 한복판에서 전율하고 터질 것 같은 율동성이 코트를 가득 메우고 있다.
운동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소리로 흥건한 테니스장을 벗어나 시선을 조금 오른편으로 옮긴다. 봉긋한 봉분 세 개를 감싸 안고 있는 야트막한 동산이 보인다. 조밀한 숲을 병풍처럼 두른, 나무 없는 낮은 구릉은 푸른 풀들이 융단을 깐 듯 부드럽게 펼쳐져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공기 중에 보랏빛 풀꽃들이 고요하다. 이따금 비롱비롱 산새소리만이 적막을 깨고 날아든다.
투명한 햇살 아래 둥그렇게 누워있는 봉분은 고즈넉하고 평화롭다. 생로병사의 긴 여로를 마감한 삶은 이제 비로소 진정한 안식이다.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훼손시킬 수 없는 견고한 평화다. 살면서 늘 갈구하던 그것을 이윽고 품안에 안고 흔들림 없는 침묵으로 고요하다.
봉분은 하나의 메시지다. 비등점에 이를 때까지 열렬히 살라고, 그리하면 마침내 이런 확실한 것 하나 안겨 주겠다는 신의 약속이다. 약속은 적요한 햇살 아래 명확하게 빛나고 있다. 저 약속들은 이미 도처에 새겨져 있었다. 다만 두려워 우리들이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네 삶의 공간으로부터 멀리 추방시켜 놓았었다. 죽음에 등을 기대고 살아가지만 삶이 죽음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어야만 우리들은 살아갈 수 있었다.
얼마 전 중병을 선고받음으로써 죽음과 좀 더 밀접한 관계가 되었다. 투병의 시간이란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들이다. 나와는 별 상관이 없던 그것이 이제 불가분의 관계로 가까워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어둠이 더 무서워지듯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죽음을 바로 볼 수밖에 없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바로 죽음이다. 죽어있는 상태로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갈 수는 없다.
그런 마음이어선지 요즘 들어 잔치에는 잘 가지 않아도 죽음의 장소는 열심히 찾아다닌다. 가까운 친인척 장례식에는 빠짐없이 참석하고 요양병원에 누워있는 먼 친척까지 문안을 간다. 정기 진료일이면 병원 장례식장을 서성대다 오기도 한다. 쇠락의 냄새와 죽음의 기미에 점점 익숙해지고 마침내 그것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무엇으로 내 일상에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며칠 전 시백부 상을 치렀다. 입관을 지켜보았다. 입관실은 삶과 죽음이 아무런 갈등 없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주검 옆에 싱크대와 세제가 천연덕스럽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눈에 익숙한 세제와 핸드크림이 삶과 죽음과의 거리를 빠르게 단축시켜주었다.
전통적 예법에 준한 절차로 구순을 넘긴 백부는 봉인되었다. 딸들의 흐느낌이 백부의 감긴 눈 위로 흩어졌다. 차가운 테이블 위에 일자로 누운 백부의 한 줌 몸뚱아리를 겹겹이 싸매고 묶는 절차가 당연한 수순을 밟는 듯 자연스러웠다.
장례관리사들의 일상적인 표정과 직업적 몸짓이 한 사람의 죽음에 압도당해 있는 우리들로 하여금 그럴 거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살아있음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죽음이 저 먼 곳에 있는 무엇이 아니라 누수로 얼룩진 천장이나 수도꼭지만큼이나 우리들 삶 속에 가까이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과실 속에 씨가 들어있듯 삶이 시작될 때 이미 죽음도 함께 잉태되었다’는 릴케의 말이 생각났다. 삶 속에 죽음이 있다는 말이 하나의 관용어구가 아니라 생생한 느낌으로 피부에 와 닿았다.
삶과 죽음은 서로 동떨어진 무엇이 아니라 표면과 이면이었다. 삶이 끝난 다음에 비로소 죽음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시작되면서 죽음도 함께 시작되었다. 삶이 무르익으면 죽음도 함께 무르익었다. 사람은 삶만 사는 게 아니라 죽음도 함께 살아야 했다. 결국 잘 산다는 것은 잘 죽는다는 것이었다. 잘 죽을 수 있으려면 잘 살아야 함이 전제되었다.
죽음의 절차를 지켜보며 살아갈 일을 생각하는 나를 보았다. 죽은 자를 보내는 시간 속에서 산 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생각했다. 그것은 어떤 진실한 약속 하나를 하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떠나는 자에게 남아있는 자가 할 수 있는 약속은 무엇일까. 당신 곁으로 갈 때까지 더 멋지게 살아가겠다는 새김질이 아닐까.
막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는 자에게 하는 약속은 신에게 하는 약속이나 진배없었다. 혹 이것이 죽은 자에 대해 산 자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조문행위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염을 하고 입관을 하고 성복제를 지내는 의식들이 이어지는 그 시간만큼 나 자신이 삶에 대해 열렬해지던 때가 또 있었을까. 명확한 죽음 앞에서 삶도 명확해졌다.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자의 육신을 눈앞에 두고 삶에 대해 열심을 다짐하는 오롯한 시간이었다. 내 다짐이 더 뜨겁고 간절할수록 장례의 의미는 깊어지고 죽은 자와의 관계는 더 두터워졌다.
우리 집 베란다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전망을 안고 있다. 왼편 테니스장은 살아있음을 음미하기에 좋고 오른편 봉분은 죽음을 명상하기에 더 할 나위 없는 풍경이다. 생사가 원래 같이 가는 것이라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삶의 충동인 테니스장과 죽음의 집인 봉분이 환한 햇살 아래 거리낄 것 없이 어우러지고 있다. 귀를 열면 약동하는 생명의 환호성을 들을 수 있고 눈을 돌리면 언제나 고즈넉한 봉분을 마주 볼 수가 있다. 삶과 죽음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전망이 이 공간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 십년 넘게 이 집을 지키고 있다.
산책길일까, 테니스장과 야산 사이의 작은 오솔길로 초로의 할아버지와 예닐곱 손자가 손을 맞잡고 올라간다. 호기심 많은 손자의 해찰에 할아버지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호흡을 고른다. 그들 속에 삶이, 또한 죽음이 있다. 삶과 죽음의 두 얼굴이 사이좋게 그들의 등 뒤를 따르고 있다.
첫댓글 무슨 일이나 즐기는 사람을 못 당한다고 하더니 글쓰기를 즐기시는 손문우님의 이런 결과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새해벽두에 이 기쁨과 행복함을 년말까지 쭈욱 가져가세요.
다시한번 축하합니다.
발행인님,
이쪽저쪽 올리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2관왕!
훈영언니, 축하, 축하드려요.
수필문단의 별이 될 거라 믿습니다...
등단 경로 제 일순위였던
매일신춘으로 등단했다는 사실이 새삼 믿기지 않습니다.
꿈이란 이루어지지 않아 꿈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이루어지고 나니...
이제 멋진 글쓰기만 남았는데.
이제부터 진정한 시작이 시작되는군요.
희자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빰빠라 빰~
2관왕!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모두의 기쁨입니다~
이제 순면옷으로 갈아입고 평온함을 찾았다니
그 또한 축하드릴 일입니다.
교수님께서도 참으로 흐뭇하시겠습니다.
축하글 올리는 발행인님도 어께춤을 추셨을듯 합니다.
예, 옥례샘,
함께 기뻐해주시는 마음,
진정 고맙습니다.
우리, 열심히 좋은 글 많이 씁시다.
손훈영 선생님, 신춘문예 2관왕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대단하고 멋지십니다!
거듭 거듭 축하 드려요!!!
이지원님,
지켜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따로, 또 같이, 걸어가봐요.
기어이 큰일을 해내셨습니다.
축하에 또축하를 드립니다.
2관왕이 되신 훈영선배, 너무 멋지셔요. 님의 비 이야기를 처음 읽었던 그날의 감동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려옵니다.
<비를 기다리는 마음>은
쓰고 나서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18,9매가 되었지요.
과감하게 추렸는데(14매로)
문득 아, 이제 됐다 싶은 어떤 느낌이 다가왔어요.
희열감 비슷한?
그러네요. 자신에게 흡족했던 작품은
다른 이들에게도 어렵지않게 다가갈 수 있었나봅니다.
재순씨, 늘 고마워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는군요.
큰일 낼 줄 진즉 알았습니다.
멋져요. 손샘, 축하합니다. 곱배기로
선생님,
진심어린 축하 말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매일 신춘 소설 당선자의 마지막 멘트가 마음을 울렸습니다.
'헛되이 탕진 않겠다. 사는 대로 쓰고 쓴 대로 살겠다'
이 말로 선생님의 진심에 보답하겠습니다.
당선작에서
작가의 깊은 사유로 가득 찬 내면을 보았습니다.
큰 박수를 보냅니다.
회장님,
축하인사는 여러번 받아도 그저 좋은 것이군요.
작품 읽어주시고 멘트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대단하시네요. 훈영샘!
내공은 진작에 알았지만 이렇게 좋은 일이 곱배기로...
왕축하 드려요!!!
영희 선배, 고마워요~
정진하고 계시지요.
글로써 맺어진 우리 도반들,
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매일신문에 실린 당선소감이 당선작만큼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선배님과 함께했던 에포수업이 생각납니다.
축하 또 축하드립니다. 진심으로요.
곧 당선소감과 심사평도 올리겠습니다.
후배님의 관심이 있어
지속적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마도 진실일 겁니다.
고맙습니다.
손훈영샘~~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문운대성하셔서 좋은 글 많이 읽게 해주세요~~
권혜민님,
<외줄>은 아직도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에포에서 한 번 뵜었지요.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쓰는 한해되세요.
올해는 아마 님의 해인것 같습니다 축하드려요.
고맙습니다, 선배님.
이 길을 오래 함께 걸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해 마지막날까지 잠잠해서 아쉽더니 이리 단비 같은 소식이 있네요.
큰 일 하셨습니다. 이제 즐기는 글쓰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이 마이 축하해요^_^*
공모전 따위 이제 신경쓰지 않고
쓰고 싶은 글 마음껏 쓸 수 있다 생각하니
글쓰기가 더 즐거워 질 것 같습니다.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니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미모도 아름답지만 등단도 아름다워 축하드립니다.
미모? ㅎㅎㅎ 오래된 농담이군요.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더 열심히 글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손훈영
내가 말하는 美貌입니다. 먼저 자기를 사랑하고 아름답게 하십니다.
평소에 그렇게 하여 왔음으로 정상을 정복하고 빛내주는 것이라 봅니다.
열정은 자기가 전문적으로 집념하는 곳에 촛점 맞춰 투시하면 소통하게 됩니다.
앞으로도 계속 통통통 하시어 일맥상통 의사소통 만사형통하도록 맥락을 발견하십시요.
사유의 깊이가 대단하십니다. 축하드립니다. 새해 벽두에 오래만에 귀한 글을 접하는 기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면식도 없는 저에게,
이리 달아주시는 축하댓글은,
무엇보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이 까페 정회원으로 등업하신 분이시네요.
서울, 남, 59세.^0^
이용재씨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전부입니다.
축하인사, 너무 고맙습니다.
손훈영선생님!
함께 에포를 하면서 팡세같은 문우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좋은 결과인 2관왕이네요. 너무 너무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오늘도 머리를 감고 가지런히 빗어 넘기셨겠지요.
선생님의 지난해 작품,
<머릿발>은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무엇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건강하시고 건필하십시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범상치 않은 내공을 가지신 분인 줄이야 진즉에 알고 있었습니다만 당선작을 읽으며 다시 한 번 감동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혜경 문우님, 축하 고맙습니다.
공모전이라는 것이 소리없는 암투장 같은 곳인데
비교적 공정한 전쟁(?)을 치르고
마침내 그 전쟁터를 떠날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적은 이제 오로지 나일뿐,
열심히 쓰고 확고히 살겠습니다.
멀리 울산에서 축하드려요.. 어찌나 기쁘던지요 . 글을 읽으니 손샘이 막 느껴지고 흠뻑 같이 젖었어요. 앞으로도 더 멋진글로 수필계를 빛내주세요...
찬임씨, 고맙습니다.
우리가 에포에서 함께 하던 때로부터
어언 1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렸군요.
빨간 손수건은 잘 쓰고 있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선소식을 진작 알았는데 오늘에야 내집, 내컴 앞에 앉았답니다.
요즘은 떠돌이 생활을 하느라 ㅎㅎ
열심히 하는 언니, 언젠가는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 확신을 했지요. 축하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글을 썼다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하고 있네요.
긴 얘기는 만나서...축하해요.
당분간 그런 생활이시겠네요.
건강 챙겨 하세요.
올해는 소희씨 차례가 되기를 빕니다.
신춘문예 2관왕. 으와 대단하십니다.
겹으로 당선하심을 축하드리며 좋은 작품 많이 창작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조선생님,
추운 날씨에 건강하신지요.
올해는 좀 자주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축하, 고맙습니다.
많이 축하드립니다.
손훈영 님의 시원스런 글발에 이끌려 이곳까지 따라왔네요.
카페 회원이면서도 오랜만의 방문입니다.
최영남님,
반갑습니다.
제가 모르는 분의 댓글은
반가움이 배가 됩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까페에 자주 들러 주세요^^
이제 보게 되었습니다.
훈영님!
귀한소식 듣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그때 잘 쓰신다 여겼는데
이런 영광 안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
선배님,
반갑습니다.
볼 때마다 선배님의 공들인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었는데
잊어버리게 전에 얼굴 한 번 보여주세요^^
축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