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FF에 가슴을 살짝 설레게 하는 제목의 영화 한편이 등장했다. 제목은 <연애>. 포스터를 보니 한 여자가 활짝 웃으며 보는 이를 응시한다. 제목과 포스터의 분위기를 미루어봤을 때, 이 여자는 사랑에 빠진 게 틀림없다. 그렇다. 연애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의 감정을 키워가는 것. 이 세상에 그것만큼 좋은 건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알고 보면 <연애>는 마냥 설레는 영화가 아니다. 가슴 속 두근거림은 2할에 불과할 뿐, 나머지 8할 속에는 인생의 씁쓸한 단면들이 담겨져 있다. 남루한 일상과 손잡고 연애를 시작하는 한 여자의 삶이 담담히 그려져 있는 것이다.
싸이더스는 그간 마냥 행복한 로맨스에 찬물을 끼얹고 연애의 이면을 까발리는 작품들로 주목 받아왔다. <연애>는 바로 그 싸이더스가 제작한 작품.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 <연애의 목적>에 이어지는 '연애 3부작'의 마지막 주자다. <101번째 프로포즈>의 오석근 감독이 12년 만에 카메라 뒤로 돌아와서, 전미선이 연기생활 15년 만에 첫 주연을 맡은 영화라 더 큰 기대를 모으는 영화 <연애>. 지난 10월 8일 해운대에서 영화의 세 주역 오석근 감독과 전미선, 장현성을 만났다.
Q. 어제 영화를 봤다. GV 때 사람들 반응이 정말 좋더라. 질문도 많이 나오고. 기분이 어땠나.
전미선 아직 잘 모르겠다. 어떻게 봐주셨는지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와 닿겠지만 지금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PIFF에 초청된 것만큼은 기분이 좋다. 개봉 전 영화를 먼저 보는 자리인데, 나한테는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자리가 될 듯 하다.
장현성 어제 처음 봤다. 촬영한지가 1년 전이라 이야기의 얼개 정도만 기억났다. 설레는 마음으로 봤는데, 나 스스로는 영화가 참 재미있게 느껴졌다. 내가 느낀 감정을 객석에서도 똑같이 보여주시니까 기쁘고. 영화제 다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
Q. <101째 프로포즈> 이후 휴지기가 너무 길었다. 늘 'PIFF 사무국장'이란 직함으로 영화제를 찾다가 감독의 입장으로 초청돼 감회가 남다를 듯 한데.
오석근 감독 전혀 그렇지 않다. 영화제야 1-4회까지 함께 한 거고. 영화제에서 함께 했던 식구들이 전부 관계가 오래돼서 한 식구 같다. 새롭다기 보다는 영화제에 거들 일이 아직도 있어서. 어쨌거나 난 (초청해줘서) 반갑고 고맙다.
Q. <연애>는 부산에서 90%이상 촬영이 진행됐다. 작업하며 어땠나.
오석근 감독 부산 그러면 항구도시니까 뱃고동 소리를 생각하게 될거다. 그로부터 느껴지는 여러가지 이미지들, '이별, 아련함, 추억'. 그런 면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전반적인 테마와 같다고 생각했다. 뱃고동 소리로 대변되는 부산의 이미지와 이 영화의 전반적인 스타일, 주인공의 감정의 흐름들이 부산과 잘 맞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취지에서 찍었고 그렇지 않아도 부산에서 찍으려고 생각을 했다. 로케이션 선정에 있어서 여러가지 것들이 좋았다.
Q. <연애>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연애의 목적>에 이은 싸이더스의 연애 3부작 중 한편이다. 3부작을 관통하는 공통점 혹은 연애에 대한 차별화된 관점이 있다면.
오석근 감독 그건 생각 안 했다. 연결이 된다고 하면 그렇게 전달이 되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연애의 목적>과 같은 맥락이란 건 차후에 생각했다. 이 영화는 독립적 개체로서 의미를 지닌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기획적인 측면에서 자연스레 일맥상통하면 괜찮겠다 생각한다.
Q. <연애>를 보면 아이들과 주변의 인물들은 사투리를 쓰지만, 주인공 어진과 민수, 김여사 등은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이질감이 좀 많이 느껴졌다.
오석근 감독 의도 아닌 의도가 됐다. 사투리를 어색하게 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부산 사는 사람이 모두 사투리를 쓰는 건 아니잖나. 부산은 사연 있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니 그렇게 설정을 해도 드라마에 흠이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Q. 차승재 대표는 어진 역이 전미선씨와 잘 어울릴 거라며 시나리오를 건내줬다고 하는데, 본인 생각에도 어진과 자신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전미선 캐릭터가 나와 닮았다. 원래 나는 감정을 잘 표현하는 성격이 아니다. 세월이 흘러서 이 정도가 됐지. 그 부분이 가장 닮은 것 같다. 사실상 감독님도 도움이 됐다. 어진이 성격이 나 말고 감독님도 비슷해 힐끗 보고 배워가는 경우도 있었다.
Q. 시나리오를 읽고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전미선 어진이라는 캐릭터는 뚜렷하게 어떤 여성이라 말할 수 없다. 강한 면과 여린 면 모두를 내포한다. 뭔지 모르겠는데 끈끈하게 남는 매력이랄까. 그 점이 끌렸다.
Q. 극중 '어진'이란 인물은 결코 연기하기 쉬운 인물이 아니다. 힘들었겠다.
전미선 그렇다. 뭐든지 절제해야 했으니까. 내 표정 하나로만 모든 걸 보여줘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할까 걱정을 했다. 내 나름으로 생각한 건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내가 처음 가졌던 느낌, 그걸 잃지 않고 끝까지 가져 가려는 노력이었다. 어진이란 캐릭터에 빠지면 딴 사람이 될 수 있는데 그걸 잃지 않으려고 중간중간에 시나리오를 아무 사심 없는 느낌으로 다시 보고 처음으로 돌아가곤 했다.
Q.김여사가 남편에게 맞는 장면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김지숙씨가 연극계에서는 워낙 알아주는 분이시니 문제는 되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그 씬을 촬영했을 때 다들 힘들었을 것 같다.
오석근 감독 많이 힘들어했다. 김지숙씨도. 이 영화의 전반적인 인물들 성격이나 상황들은 가공된 부분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현실상황이다. 때리는 남편, 맞는 아내 혹은 그 역으로 때리는 아내, 맞는 남편 등의 여러 가지 상황들이 상식 선에서 이루어지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조금 과하다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 상황이 남편이라는 캐릭터가 원래 그런 캐릭터기 때문에 그렇게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Q.영화 속 남성 캐릭터들은 모두 부정적이다.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 묘사해야만 했나.
오석근 감독 부정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단지 보여지기가 힘든 것일 뿐이다. 술집들을 가 보면 다 그렇다. 술집에서 남자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힘들거나 즐겁거나 그런 감정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그 분들이 항상 그런가. 아니다. 열심히 일한다. 술집 등지에서의 모습은 부정적인 게 아니라 다들 힘들다는 의미다. 삶의 무게 속에서 힘들다는 생각을 갖고 사연이 있다거나 힘들다는 모습들의 표현이 극대화된 것이다. 부정적인 건 아니다.

Q.영화에서 '민수'라는 인물은 분량은 적지만 꽤나 인상적인 캐릭터다. 개봉되면 더 많은 관객들에게 욕을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해할 수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그래도 본인이 연기한 캐릭터로서 '민수'라는 인물을 옹호해보자면?
장현성 옹호하고 싶다기보다 연기하기로 결정한 이후부터 이 사람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나 하는 원인을 찾았다. 말한 것처럼 사람이 무작정 착한 사람만 있거나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자기가 가진 여러 가지 욕망 중 어떤 부분이 좀더 많이 보여지느냐에 따라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눠진다고 생각한다. 가령 일반사람들에게 젠틀하고 쿨하게 대한다고 해도 컴플렉스나 싫어하는 무언가가 있다거나 욕망하는 성취를 이루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비열한 부분들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그 점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곤란하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작가, 감독님이 그럴 수 있다는 말에 설득당했다.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어떻게 보여질지는 모르겠다.
Q. 바로 옆에 계셔서 대답하기 곤란하시겠지만, 오석근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땠나?
전미선 편안하게 작업하는 건 좋은데 그 편안함 속의 침묵이 좀 무섭다. 표현을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면 좋은데 나보다 디테일하시니 그걸 못 따라가면 고민을 하게 된다. 오히려 여성인 나보다 더 디테일하셔서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장현성 나도 비슷하긴 한데 감독님의 이야기하는 방식이 어진이란 캐릭터와 비슷하다. 연기란 명쾌한 단어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이상하다 싶어 감독님께 여쭤보면 감독님은 '음'하고는 30초, 1분 정도를 그냥 계신다. 그게 배우들에게 많은 여지를 주는 것이긴 하지만,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기도 하다. 힘들었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그나마 편했다. 자연인 오석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니 그 사람의 의미가 무엇이겠거니 맞추면 좋고 틀리면 그냥 그렇고 싶었다.
Q.제목은 달콤한데 영화는 씁쓸하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연애'란 무엇인가?
오석근 감독 이 영화에서의 '연애'란 반어법적이다. 처음에 우리가 연애에 있어서 이 영화에 접근한 것이 남녀가 감정을 주고 받는 연애 감정의 높낮이 수위를 표현하려 한 게 아니다. 그것은 말이 연애지, 주인공 어진이가 가진 감정의 내적 진폭을 어떻게 드라마화시키냐 하는 거이었다. 어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톤이다. 우리가 영화를 처음 공부할 때 몽타쥬 얘기를 하는 것처럼 어진이에게 있어서 그 상황들은 몽타쥬적인 느낌으로 와 닿을 것이다. 표정, 미소 하나도 말이다. 연애란 감정을 통해 가지는 작은 디테일들이 내적 드라마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연애라는 일반적인 러브 라인이 아니라 연애라는 감정을 자기 가슴속에 담고 일련의 삶을 살아가는 여주인공의 작고 소중하고 미세한 감정이 보는 이에게 큰 파장을 일으키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의 감동으로 와 닿기를 바라는 취지였던 것이다. 연애를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갈등한다. 배신하고 상처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끝까지 살아야 한다. 낭만적인 생각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나와 상대의 감정을 줄다리기 하며 현실을 놓치게 되는, 이것을 어진이의 삶으로 담아내려 한 것이다. 이해하는 건 관객들의 몫이다.
전미선 연애의 정의를 내리진 못하겠다. 20대나 30대나 40대나 연애할 때 느끼는 감정은 다 똑같다.
장현성 연애가 어쨌든 우리영화는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이야기가 아니다. 열 세 살짜리나 예순 셋 어른들이나 연애의 감정은 다 갖는다. 일상은 피곤하고 숨가쁘지만, 그래도 마음 속의 감정 때문에 희망이 생긴다. 나도 그랬고. 지금은 힘들지만 그 감정이 있기 때문에 나를 돌아서서 웃게 만들지 않나 싶다.
부산 = 심은주 <marty@cine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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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혜령씨 기사 진짜 잼있게 읽었어요.오바 부산영화제때 모습이었어요.
여기서 인터뷰했던곳.. 부산해운대 앞에있는뎅.. 일루라는 바에서 파티한곳 맡죵~~
머리 깎으시니까 더 멋있으신 것 같아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