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까미엄마>
내 이름은 최점희. 가운데가 한자로 점 점(点)자이다.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아 아버지께 항의하듯 여쭌 적이 있다. 왜 하필 이름을 점희로 지었냐고. ㅁ을 ㅇ으로 바꾸면 정희가 되어 얼마나 좋았겠냐고. 그때 소설가 최정희 선생님을 좋아했었는데 받침 하나만 바꿔주지 그랬냐고 따져 물었다. 아버지께서는, 네가 태어났는데 몸에 점이 하도 많아서 이름에 점자를 넣으면 점이 없어진다 해서 그렇게 지었다고 하시며 웃으셨다. 가끔씩 나를 놀리는 친구들은 콩점이, 점쟁이라고 놀렸다.
고등학교 다닐 때였나? 어느 날 외삼촌께서 편지를 보내셨는데 네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시며 호적은 그대로 두고 부르는 이름은 ‘정조’라고 하라고 하셨다. 아니 무슨 여자 이름이 그래? 예쁜 이름도 많은데 하필 정조라니! 그럴바에야 차라리 점희가 낫네요 라며 혼자 투덜거렸다.
컴퓨터를 접하게 되면서부터 이메일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메일을 등록하려면 아이디가 필요했다. 나를 나타낼 수 있는 이름을 지어야 했다. 이름에 불만이 많았던 나는 마음이 설렜다. 어떤 이름을 지을까?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라라’라고 할까, 세례명인 ‘루치아‘로 할까, 이래저래 행복한 고민을 하다 마지막으로 택한 이름이 ’슬픈 왈츠‘였다. 사람들은 왜 하필 슬픈 왈츠냐고, 기왕이면 기쁜 왈츠로 하지 그러냐며 의아해했다.
’슬픈 왈츠’는 핀란디아의 음악가 시벨리우스가 지은 곡명이다. 듣고 있노라면 가슴 저 밑바닥부터 훑어내리는 슬픔이 온몸을 떨리게 만드는 곡이다. 이렇게 탄생한 내 이름 슬픈 왈츠는 아직도 사이버상에서 나를 나타내 주는 이름으로 쓰여지고 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사람들은 나를 ‘은진 엄마’로 불렀다.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나니 ‘루치아’로 불렀다. 나를 나타내주는 이름이 늘어갔다.
살다가 보니 강아지 세 마리를 키우게 되었는데 까미, 누리, 진실이다. 그랬더니 나를 이웃 사람들은 까미 엄마라 불렀다.
늘 부끄러워하고 창피해 했던 내이름 석자, 최점희를 언제부터인가 보듬게 되었다. 늘 쭈빗거리며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겉돌기만 했던 그 이름이 서서히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어린이에서 청년이 되고 결혼을 하고 중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다 보니 모가 났던 마음도 무디어지고 감정을 내세웠던 일에도 고개를 숙이며 이해하게 되는 숙성기를 거치게 되어 그런가? 그렇게 부끄러워할 일도 챙피할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오히려 흔하지 않아 기억하기 좋다고 여기며 당당하게 말하고 내세우게 되었다. 세상에 완벽하게 갖추어진 그 무엇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부족한 대로, 모자란 대로, 덜 갖추어진 대로 그대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사는 일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맏이답게 어른스럽게 행동하며 눈치 빠른 까미, 느긋하면서도 앙칼진 모습이 숨어있는 누리, 겁이 많아 사람들을 피하는 진실이, 아침, 저녁으로 함께 산책하며 나는 세 마리의 강아지들로부터 내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잘 소통하고 양보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일이 녹록치 않겠지만 파도에 씻겨 둥글게 변해가는 몽돌처럼 자신을 다듬어가길 바래본다. 화낼 일도, 소리칠 일도, 마음 아파할 일도 씻기고 씻기다 보면 아무도 봐주지 않는 산속에 홀로 피는 산유화처럼 온유를 누리게 될 것임을 나는 안다. 내 이름을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알아가는 세상 이치이다.
그런데 내가 내 이름 점희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웬일인지 내 몸에도 얼굴에도 점은 더 생겨나고 있다.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께 또 항의하면 뭐라 그러실라나? 점희라고 안지었으면 점이 지금보다 더 많이 생겼을거여 하시며 웃으실까? 사람들은 피부과를 다니며 얼굴에 점을 빼던데 난 그런 일에 관심이 없다.
한 생명이 오는 것은 한 우주가 오는 것이라는 시를 읽은 적이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사람, 한 그루의 나무, 풀, 꽃들이 모두 신비한 우주이다. 내 얼굴에 박힌 점 하나도 우주이다. 나 혼자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과 피조물들을 사랑하며 살다가 가는 일도 생성과 소멸의 이치를 만드는 우주이다. 이 세상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고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고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다가 하늘나라로 돌아갈 때 정갈하게 마침표를 찍으리라. 내 몸에 생겨나는 점(.) 하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