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포로 간 여자 2
소인국 공주가 키우던 꽃이 마당 가득하다. 시멘트 바닥 틈새로 분홍 나팔꽃과 보랏빛 제비꽃 백일홍이 올망졸망 살고 있다. 공주는 바다가 보이는 뒷동산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 것이다. 사진 속공주는 밤이면 마당까지 바다를 들여놓고 서울로 유학 간 아들을 기다리다 가슴에 묻은 자식도 그리워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채송화 같은 딸내미를 생각하며 연분홍 메꽃으로 꽃신을 삼으셨다.
‘후포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산해진미를 다 맛볼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친다. 밥상엔 육해공군이 다 늘어서 있다. 오징어와 전어, 돼지고기볶음, 우족 탕, 상추쌈. 새벽부터 고깃배를 타고 나가서 잡아 온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어도 나는 믿고 싶다. 후포 바다가 아침 밥상에 통째로 올라왔다. 짭짤하고 비릿한 바다 이야기가 목젖에 걸려서 넘어가질 않는다. 유머가 넘치는 제물포 청년과 리기다소나무를 닮은 후포선장, 시처럼 사는 작은 여자, 세 사람이 후포 항에 작은 돛단배를 띄우고 있다.
나를 유혹하던 바다낚시를 떠났다. 고기를 담아 올 주전자가 명품이다. 손잡이도 없고 울퉁불퉁 제멋대로 찌그러진 주전자를 들고 바다로 나선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도 그치고 햇볕도 그다지 따갑지 않은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착한 날씨다. 낚싯대를 매고 주전자를 들고 먹을 것을 담아서 바닷가로 나서는 마음은 날아가는 기분이다. 고기를 잡든 못 잡든 나는 바다에서 폼을 재며 낚싯대를 잡고 서 있을 것이다. 후포의 바람과 하늘과 햇살을 낚을 것이다. 그리고 수평선에 묻어 둔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을 후포 바다에 풀어놓을 것이다.
방파제에서 낚시하는 것은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테트라포드에서 낚시한다고 서 있으니 다리에 쥐가 났다. 파도가 일렁이자 현기증도 났다. 낚시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역시나 후포 선장이 멋지게 한 마리를 잡아 올린다. 어시장에서만 보던 생선을 바다에서 직접 잡아 올리는 광경을 처음 본 서울 촌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붉은빛을 띤 고기가 정말로 아름다웠다. 방파제에서 구경꾼이 카메라를 누르고 있을 때도 나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촌아이가 너무 요란을 떨어서인지 고기가 바다로 다시 돌아갔다. 제물포 청년 하는 말이‘세상에 나가보니 예쁜 동물이 말도 하더라.’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무용담을 털어놓을 것이라며 제물포 청년은 낚싯바늘에 유머를 미끼로 건다.
제물포 청년과 촌아이는 바다낚시가 처음이다. 이래저래 바쁜 사람은 후포 선장이다. 두 사람의 낚싯대를 돌봐야 하니 후포 선장은 오늘 낚시를 포기하는 듯하다. 몇 시간째 ‘후포는 내가 지킨다.’며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는 촌아이에게 보다 못한 용왕님이 고기 한 마리를 주시니 이름하여 놀래미다. 이왕이면 예쁜 여자에게 잡히는 게 행복하다고 제물포 청년은 놀래미를 대신해서 최후의 선택을 말한다. 작은 고기는 바다로 다시 보냈다. 최후의 선택을 마친 놀래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전자에 드러누웠다. ‘역시 회는 놀래미가 최고야!’현란한 솜씨로 회를 뜨는 후포 선장. 한 접시 담아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세 사람이 함께 보낸 후포에서의 하루가 갓바위 전망대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어느 생을 살았을까!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