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龍門山) 용추(龍湫) 설송(雪松)의 시에 차운하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천 길로 높고
절벽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는 만고에 흐르네.
날씨가 추워져서 용이 저 멀리 떠났으니
홀로 선 내 마음은 쓸쓸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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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龍門山龍湫1)。次雪松2)韻。
削壁3)千尋4)峻,飛泉5)萬古6)流。
天寒7)龍去遠,獨立8)我心悠。
騏峰集卷之一
주1) 용문산(龍門山)은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용문면(龍門面)과 옥천면(玉泉面) 사이에 있다. 예로부터 미지산(彌智山)이라고 불렸으나
조선 태조가 등극하면서 용문산으로 불렀다. 본래 이름인 미지(彌智)는 미리(彌里)의 옛 형태고, ‘미리’는 '용’의 옛말인 ‘미르’의 방언이
다.
즉 미지산이나 용문산이나 뜻에서 별 차이가 없다. 용추계곡은 용문산 자락 깊숙이 자리한 숨은 계곡이다. 계곡의 이름처럼, 예로부터 이
곳에는 용이 승천하며 물줄기를 남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참고로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시(洛陽市) 남쪽에도 용문산((龍門山)이
라는 산이 있다.
용문(龍門)이란 우(禹) 임금이 치수(治水)할 때 용문을 뚫어 물길을 인도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회남자(淮南子)』.「수무훈
(修務訓)」편에 우가 홍수의 물길을 강하로 유도할 적에 “용문의 바위를 뚫고 이궐의 길을 열었다.[鑿龍門,辟伊闕.〕”라고 하였다.
주2) 雪松: 누군가의 호인 듯하다. 좀 더 구체적인 것은 고찰이 필요다.
주3) 削壁: 비바람이 깎이어 우뚝 솟은 암벽(巖壁). (깎아지른 듯한) 절벽
주4) 千尋: ‘천(千) 길’이라는 뜻으로, 매우 높거나 깊은 것을 이르는 말이다. 심(尋)은 길이를 계산하는 단위이다.
중국 고대에는 팔척(八尺)을 일심(一尋)이라 하였다.
주5) 飛泉: 절벽(絕壁)에서 곧장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 폭포. 힘차게 솟아오르는 샘
주6) 萬古: 오랜 세월(歲月) 동안. 만고. 오랜 세월. 썩 먼 옛적. 세상(世上)에 비길 데가 없음
주7) 天寒: 날씨가 추움. 날씨가 춥다
주8) 獨立: 홀로 서다. 독자적으로 하다.
부주(附註):
위의 시는 기봉(騏峯) 이시성(李時省, 1598년-1668년) 선생이 지은 것이다. 저자의 자는 자삼(子三), 호는 기봉(騏峯)이며, 본관은 경주(慶州: 月城)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몽윤(李夢尹)이고, 할아버지는 이광복(李光福)이며, 작은 할아버지는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이다. 아버지는 인제 현감 이태남(李泰男)이고, 어머니는 찰방 원영세(元永世)의 딸인 원주원씨(原州元氏)이다. 그는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종손(從孫)이자 문인이다.
그는 1598년 포천현(抱川縣) 마산(馬山: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마산리)에서 태어났다. 저자는 백사 이항복의 종손(從孫)으로서 가학(家學)의 전통을 이었다고 하겠으며, 포천의 마산에 세거(世居)하였으므로 ‘기봉(騏峯)’이라 자호(自號)하였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담백하고 밝으며 글 읽기를 즐겨하였다. 일찍이 이항복에게 나아가 학문을 배웠다.
재주가 뛰어나 모든 글을 폭넓고 깊게 두려 섭렵하며 익혔고, 특히 글짓기에 탁월하여 웅장하고 기품이 있었다. 늦은 나이인 1650년(효종 1년) 증광 문과 병과 18위로 급제하였다. 이후 공조 정랑, 예조 정랑을 거쳐 회양부사를 역임하였다. 1667년(현종 8년) 가승지에 임명되었고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이듬해 졸(卒)하였다. <끝>
국역 및 글> 이상훈(李相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