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웅<우인상(友人象)>
소설 <날개>의 전주곡이 들린다
이 작품은 서산 구본웅(西山 具本雄, 1906~1953) 화백이 1935년에
그의 둘도 없는 친구 이상(李箱)을 그린 (우인상(友人像)이다.
서산이 이상의 파이프를 문 고독한 모습을 분위기 있게 묘사, 그에게
준 것인데 사후에 화랑가로 흘러 나와 1972년에 국립현대미술관이 구
입, 소 장하고 있다.
서산은 1933년 동경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국내에서 작
품 활 동도 하고 신문에 미술평도 썼다.
<우인상>은 현대적 표현주의 기법을 과감하게 시도한 서산의 대표작
이다. 서산은 전위파 문인 이상이 광화문 비각 옆에 차린 '제비 다
방'에 단골 로 드나들면서 그와 의기투합, 그림도 함께 그렸다.
그래서인지 그 다방에는 머리를 잡초처럼 성기게 그린 이상의 자화상
도 걸려 있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길가는 사람이 잘 보이게 아래쪽 창을 맑은 유리로 댄 제비
다 방에 앉아 거울(유리)의 반사 작용을 이용, 치마로 감춘 신여성의
종아리 를 훔쳐보면서 킬킬거리기도 했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이 그림은 이상의 얼굴을 외형적으로 사실 묘사한 것이 아니라 분방
한 붓 놀림과 어두운 색채로 분위기를 돋워 그의 외로운 표정을 강조
한 걸작이 다.
이상이 <조광(朝光>에 대표적 소설 <날개>를 발표하기 1년 전, 그의
타 계 2년 전의 모습이어서 기념비적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서산은 1924년 문을 연 '고려미술연구원' 제1회 연구생으로 이 미술
연구 원에서 당시 중학생이던 청구 이마동(靑驅 李馬銅), 근원 김용준
(近園 金 瑢俊)과 함께 공부했다.
서산은 이때부터 그림 재능을 인정받은 천재 화가였다.
'고려미술회'는 1923년 9월 강진구, 김석영, 김명화, 전규익, 나혜석,
백 남순, 이숙종, 이재순 등 동경 유학을 마치고 온 젊은 서양화가들이
만 든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 그룹이었다.
고려미술회가 창립전을 열고 나서 단우 이용문(丹宇 李容汶)의 도움
을 받 아 옛 반도호텔 자리에 고려미술원을 세웠다.
이 연구원의 지도 교사로는 동양화에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 송은
이 병직(松隱 李秉直), 서양화에 강진구, 이재순, 정규익, 박영래, 데생
은 설초 이종우(雪蕉 李鍾禹), 조각에 정관 김복진(井觀 金復鎭) 등이
있었 다.
늘상 털모자를 눌러쓰고 다니던 서산은 신체 장애자(곱추)였지만 신
체 적 결함을 딛고 인간 승리의 본보기를 보인 개성이 뚜렷한 화가로
평가받 고 있다.
- 이규일의 미술 사랑방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