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Campbell Morgan, from his book The Ten Commandments, pages 11, 12, says:
"The Ten Words of Sinai were not ten separate Commandments, having no reference to each other. They were ten sides of the one law of God. The teaching of Jesus reveals the fact that these commandments are so interrelated that if a man offend in one point he breaks the unity of the law, and therefore of his own manhood. . . . These words embody a perfect law of life for probationary days.
캠벨 모간 (침례교)
십계명 페이지 11, 12
시내산의 십계명은 서로 연결되지 않은 별개의 열가지 계명들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하나의 법의 10가지 면들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들 계명들이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가르치며 사람이 하나를 범하면 그는 율법의 일체를 범하며, 따라서 그분의 인자됨의( 그의 인간성의)… 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이 말씀들은 보호 관찰 기간동안 생명의 완벽한 법을 구현합니다.
The Presbyterians, in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chapters 19, 20, say:
"The moral law doth forever bind all, as well justified persons as others, to the obedience thereof; and that not only in regard of the matter contained in it, but also in respect of the authority of God the Creator who gave it. Neither doth Christ in the gospel any way dissolve, but much strengthen, this obligation."
장로교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9, 20장
도덕법은 영원히 모든 것을 기속한다,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것에 순종하도록. 뿐만 아니라 그 안에 포함된 것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함에서도 그러하다. 그리스도께서 복음에서 어떤 방법으로도 그것을 허무시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이 ( 율법 순종) 의무를 강화하셨다.
The Baptist Church in New Hampshire Confession, article 12, says:
"We believe that the Law of God is the eternal and unchangeable rule of his moral government; that it is holy, just, and good."
침례교 신앙고백- 뉴햄프셔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은 영원하며 변할 수 없는 그분의 도덕정부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 그것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
Matthew Simpson, in his Lectures on Preaching, page 129, wrote:
"There are many preachers who love to dwell on the Gospel alone. They talk sweetly and beautifully of the fatherhood of God. This is well. It is more than well, it is essential. But sometimes they go beyond this, and declaim against the preaching of the law-intimate that it belongs to a past age, a less civilized society. . . . Such a Gospel may rear a beautiful structure; but its foundation is on the sand. No true edifice can be raised without its foundations being dug deep by repentance toward God, and then shall the rock be reached, and the building shall be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he law without Gospel is dark and hopeless; the Gospel without the law is inefficient and powerless."
매튜 심슨(감리교) 설교 129 페이지
많은 설교가들이 복음에만 머물고자 한다. 그들은 달콤하고 아름답게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을 말한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좋은 것 이상이며, 그것은 본질적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들이 이것을 넘어선다, 그리하여 그들은 율법이 과거시대에만 속하였으며 덜 문명화된 사회에 해당된다고 율법에 친근하게 하지 못하도록 그것을 거슬려 주장한다. 그와 같은 복음은 아름다운 구조를 세울 수 있겠으나, 그것의 기초는 모래위에 서있는 것이다 하나님을향한 깊은 회개에 의해 기초를 깊이 파고 들어가서 반석이 도달되어짐이 없이는 , 그리고 건축이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진정한 덕세움은 일어날 수 없다. 복음 없는 율법은 어둡고 희망이 없다, 반대로 율법 없는 복음은 비효율적이며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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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성경 전체는 회개를 유발시키는 것은 율법이라고 가르친다.
죄와 사망은 은혜와 위로의 말씀에 의하여 드러나지지 않는다, 오직 율법에 의해서만 (가능하게 드러난다!)>>
아멘입니다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알지 못하였으리라 롬7:7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8절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9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를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 롬7:13
율법을 선하게 쓰면 율법은 선한것입니다 딤전1:8
<< 죄와 사망은 은혜와 위로의 말씀에 의하여 드러나지지 않는다, 오직 율법에 의해서만 (가능하게 드러난다 >>
이 부분은 심령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주님의 응답하심,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주목하는 삶의 경험이 밑받침되지 않는 한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은혜와 위로의 말씀에 의해서는 죄와 사망이 가능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과연 진리인지 여부를 확인해보기 위해 각자가 대입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죄를 깨닫는 사람이 은혜의 말씀을 들어도 그것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고 정죄의 계명들을 살펴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죄를 깨닫지 못하던 때에는
은혜와 위로의 말씀만 들으면 죄를 자각하지 못합니다. 정죄의 계명들을 자상히 풀어주었을 때 죄를 깨달으며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이 문제는 전도를 해보면 압니다. 그런데 오늘날 정죄에 관하여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은혜나 좋은 일만 자주 나열하는 사람들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조엘 오스틴, 릭 워렌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전도할 때 정죄의 율법과 죄문제를 다루지 않고 하나님이 당신을 축복하시기 원한다고 말하면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죄의 율법과 심판의 진리, 그 심판을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신 사연등을 연결하여 전하면 반대와 여러 반응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자꾸 반복되지만 한 번 더 말씀을 드리자면, 100년 전에 W. Booth 대장이 4 가지로 예언하였듯이 '지옥 없는 천국', '회개 없는 罪 赦함', '거듭남 없는 구원', '성령 없는 교회'가 편만한 오늘 날! 진정으로 거듭난 믿음의 선배들이 (마음으로 깨달은 바를) 문자로 정리해 놓은 각가지 信條며 信仰告白(書) 조차도 그 생명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데 안타까움이 더합니다! 이미 거듭난 자는 (비록 변변치 못하더라도) 더 이상 '율법(도덕)'에는 얽매이지 않습니다! [이 점이 어떤 면에서는 神秘이지요...]
윌리엄 부스가 회개와 거듭남을 강조한 것은 옳았습니다만, 그가 프리메이슨에 가담한 것은 잘못이었으며, 오늘날 구세군이 복음은 없어지고 자선냄비만 남은 것도 큰 오류들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구세군에서 구원이나 성화에 관한 오류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해리 아이언사이드가 구세군에서 있으면서 수없는 고행만 하고 결국에는 거기서 나와 형제모임에 가담하였습니다. 구세군은 여러가지 신약의 교훈들을 무시해버립니다. 이들은 퀘이커 교도와 흡사합니다. 그점에서 복음침례회와 아주 닮은 점이 있습니다. 신약의 여러 실행들은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줍니다.
침례 만찬 성경적 장로제도 연보 예배수건, 형제호칭, 이러한 명백한 교훈도 실천하지 않는 단체가 율법의 심오한 경지를 성령께서 인도하실 것이라고 믿는 것은 지극히 무리한 상상일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재갈을 물릴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너무나 진리를 쉽게 잊어버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실생활에서 빨리 잊고 떠나버립니다. 그런 까닭에 매주일의 만찬 실행이 있고 성경을 상고하며 율법이 점검기준이 되어 우리가 과연 성령을 좇고 있는지를 점검해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매인바 되어야 합니다. 성령님께 매인 사람이 무법주의자로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구세군'이 100년 안 쪽에 오늘 날과 같이 주저앉은 사실에 대하여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모든 개신교 교파들에서 보는 결과(결국)입니다. 모두 처음에는 복음으로 출발을 했으나 얼마 못 가서 변질 되고마는 것은 사탄의 계략도 있겠지만 인간들의 '육신(적 욕망)' 탓도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위의 4 가지 예언이 맞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지 결코 Booth 개인을 추켜 세우려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무릇 2천년 기독교 역사가 그러했듯이...
그에 반하여 형제모임은 그보다 먼저 생겼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급되어 있으면서도 진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큰 차이는 침례나 만찬 성경적 장로제도를 제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형식들을 무시하고 성령세례면 충분하다고 가르치는 교파들은 여럿 있어왔습니다. 퀘이커, 불링거 주의, 구세군들이 그렇습니다. 이들의 결국은 껍데기만 남고 진리는 없는 종교조직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저는 옛날 권신찬 모임이 서울여상에서 모이고, 사업체를 세운다고 할때 진지하게 비교해보았습니다. 순종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하였던 때였습니다. 침례와 만찬등의 예식은 단순한 행사들이 아니라 주님과 그분의 십자가
희생을 기억하게 하고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을 재확인하는 행사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구세군은 구원얻지 못한 사람들로 수두룩합니다. 침례나 머리 수건이 간단한 것처럼 보여도 그것을 실행하는 모임은 다른 여러면에서 순종하며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