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이민생활을 통해서 접한 얘길 다 하려면 한이 없겠지요? 다행히 본인이 그 동안 겪었던 소역사를 책 한권의 분량으로 이미 정리가 되었기에 그중에서 꼭 참조를 할 만한 과제를 골라서 말씀드린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군요. 그리고 <이민과 대한민국 이등병의 공통점> 에서도 많은 분들이 읽으셨다시피, 이런 저런 얘길 사전에 너무 많이 들으면, 참조가 되는 것도 있겠지만, 혼선이 오기도 하고, 또 신선한 각오로 무슨 일을 저지르지 못하게 될 수도있습니다. 이모저모로 따지고 잰다는 얘기지요. 무슨 일이 든지 너무 재다보면, 실행이 안 되고 실행이 안되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결국 1,000,000 x 0 은 0 이 되어 버리는 이치와 같게 될 일입니다.
서론이 길어지지만,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보겠습니다. 본인도 오랜 기간 동안 대학원공부를 한 사람으로, 수 많은 과목을 들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과목을 수 없이 들어도, 매번 고생하기는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모두들 전에 그 과목을 들은 사람을 찾아서 과제는 어떻게 주고, 시험은 또, 그리고 그 교수는 사람은 좋은데 학점 주는 데는 짜 다고 소문이 나있는데 어떠하냐 따위를 물어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전 정보가 선입관념으로 박혀서 눈치만 보게 되고, 크게 도움이 안 되는걸 깨닫게 되었지요. 물론 이런 공부를 떠나서, 직장, 자녀교육, 사업체 매매, 부동산매매 에 관해서는 사전 지식없이 덤볐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여튼, 미리 모든 걸 단단하게 준비를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사실, 시행착오가 좀 나더라도 부딪히면서 해결하는 것이 더 값진 경험을 쌓는 거라 생각하지요.
- 한인사회의 패턴:
한국에 있는 사람 뿐만 아니라 미국인을 포함해서 어느 누구나, 지금 우리보다 더 나은 위치에서 잘 살아 나가기를 바라는 맘에 2세들의 교육에 비중을 두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유난히 한국인들이 자녀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있다는 생각도 국지적인 생각일 뿐이고, 다민족 사회의 미국에서 성공시키기 위해서, 또는 이미 쌓아 올린 명성과 부를 물려 주기 위해서 상류층의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생각치도 못할 정도로, 2세들의 교육에 아주 어려서부터 열을 올리고 있지요. 교육의 질이 많이 떨어지는 대도시 공립학교에 자녀들을 보내는 빈민 계층이나 재력내지는 별 기술력 없이 몸으로 떼운다는 이민초보들과는 비교 대상이 안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런 대도시에서 얼마동안 살아도 자녀교육에 성공할 확률 또한 있으니, 크게 걱정할 일도 아닙니다.
얘기의 범위를 한국동포쪽으로 좁혀보기로 하겠습니다. 미국에의 한인 이민역사가 100년이 되었다는 얘길 하지만, 사실 유럽인들과같이 무더기로 <뉴욕항>으로 들어 온 것도 아니고, 그나마 대도시에 다수가 이민을 오게된 것은 서독에 간호사 및 광부로 떠나간 후로, 70년대초 미국에서도 의료인력의 심각한 부족을 채 우기위해서 제 3국으로 부터, 의사 및 간호사 기술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인이 전에 기고한 글에서도 말씀을 드렸듯이 우리 모두가 가난하였던 시절, 현지 여행사를 통해서 끊은 월부 비행기표에 바퀴달린 큰 가방 두 개, 기껏해야 2천불 미만을 환전해서 신주 단지같은 Work Permit을 움켜쥐고 노스웨스트 오리엔탈 항공사 비행기로 이역만리 타국으로 떠나 왔지요. 그리고 그런 기술 이민자들이 들어와서 수 년간 고생을 하고 자리가 잡혀지면서, 영주권자 및 시민권자의 직계 가족 초청이 기하 급수적으로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동포사회에서도 이민자들의 생활 패턴이 전문직 종사 위주에서 일반직장 내지는 자영업을 시작하는 다양한 형태로 바꿔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월이 10년 이상 흐르면서 의료계통이나 기타 전문성이 있는 동포들의 생활 패턴은 한인 사회의 기간이 되어갔습니다. 부부중에 한 사람이 간호사, 의사, 약사를 하면, 다른 한편은 연구소, 학계, 및 기타 전문직 내지는 일반 생산공장에 다니고, 좀 여유가 있는 배우자들은 일찍 자영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시카고 같은 대 도시라도 끼리끼리 모여사는 <클락 거리>나 <로렌스 거리>에는 두 어 군데의 한식품과 식당, 여행사, 약국, 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이런 거리는 예전에 주로 <유대인>들이 일궈 논 곳인데, 흑인들이나 히스패닉(중남미) 계통의 이민자들이 서서히 옮겨오는 바람에 <유대인>들은 백인들이 아직 다수로 살고 있는 다른 지역으로 떠나가면서, 한국동포들이 그 자릴 물려 받은 겁니다.
한편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일반 직장을 다니는 가정의 패턴이 어느 의미로 보면 미국생활을 가장 쉽게 적응하였고, 좀 일찍 백인들이 사는 교외로, 몇 만불 깔고 30년 융자를 얻어 비교적 일찍 이사를 나가서 조용한 교외 생활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본인과같이 주경야독을 했던 동포들은 주로 미국인들과 같이 생활을 주로 하다보니, 비교적 일찍 언어소통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고, 직장에서의 연륜이 쌓이면서 큰 돈은 벌지 못해도 애들도 커가서 초등학교에 다니게 될 무렵에는 일년에 2, 3주 휴가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일 주일동안 수 천 마일을 달리는 멀고도 먼 자동차를 이용한 가족 여행을 다니게 되었고, 그때서야 뭐랄까 미국의 풍물을 즐기는데 눈이 떠진 겁니다. 그렇게 되는 기간이 대충 1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게 되더군요.
그런데, 나중에 초청으로 떠나온 동포들이 늘어 나면서, 이민초기부터 잡은 직장을 천직으로 알고 사는 부류를 제외하고는, 전문성이 없는 많은 분들이 너도나도 자영업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한인사회는 이곳저곳에 식품점, 식당, 술집, 여행사, 철물점, 자동차 정비소, 바디숍, 간판제작, 세탁소, 선물가게, 소도매 잡화가게, 구두방, 미용실, 가발가게, 옷가게, 가방가게, 등등 수 많은 가게는 물론 상대적으로 한인교회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기면서, 점점 비대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전문직으로 초기에 온 동포들이나, 일찌감치 흑인들이 밀집한 곳(South Side)에 미용재료, 가발, 잡화, 옷, 가방같은 품목으로가게를 차리고 자리를 잡은 동포들은 재력이 좋아지자 제일 먼저 시카고 근교로 빠져나가 널찍한 개인 집에서 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많은 동포들은 소위 한인타운 근처의 월세 아파트에 살면서 밤낮으로 자영업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태어난 2세대들이나, 어려서 부모들과 같이 떠나 온 1.5세대들은 구역적으로 정해져있는 공립학교에 들어 가게 됩니다. 그런 학교들은 일부 사립학교를 제외하고는 동네에 따라 차이는 약간 있지만, 주로 저 소득층의 다양한 인종분포가 이뤄져 있는 시카고 공립학교를 말합니다.
- 자녀교육
먼저 지난번 이민후에 자녀들에 대한 이름에 대한 투표결과를 본 적이 있었는데, 본인의 경험담을 조금 말씀드리려합니다. 자녀들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고등교육을 받았어도, 잡(Job) 인터뷰 에 가서 아직도 불행하게도 Kim, Lee, Park의 한국적인 성씨만을 보고 '너 영어는 잘하는데, 언제 미국에 들어 왔느냐?’고 어처구니 없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깁니다. 무조건 동양인은 제 3국 이민자 취급하는 것이지요.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 지만, 미국에도 역시 <스테리오 타입>의 인간들이 많아, 초장부터 따돌림을 받을 수 도있습니다. 특히 외모적으로 왜소하고 썩 잘생기 못하면, 열이 확확 날 일이지만, 더욱 차별을 받지요. 그걸 부정할 수는 없는 것같습니다. 예전 한국에서도 유치원에 다니는 철없는 애들까지도 얼굴이 예쁜 여선생을 더 좋아 하는 걸 보면, 그게 인간들의 타고난 사고 방식이 아닌가 라는 생각 마저 듭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이름을 짓는 문제도 잘 생각해야하는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름(First name)은 미국식을 위주로 하고 한국 이름은 가운데 이름(Middle name)으로 쓰는 게 합리적입니다.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만 가지고 풀어 나갈 일이 아니지요. 수 년간 지상사 파견으로 왔던지, 유학으로 온 경우라면 몰라도,‘이민을 왔다’는 얘기는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는 각오로 악착같이 살아서, 후세들에게 잘 살 수있는 길을 열어 주겠다는 의식이 박혀야 하는 게 아닐런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곳의 대세를 따라서 미국식 이름을 갖는게 바람직합니다.
본인도 처음에 두 애들 이름을 한국인이라는 걸 내세워, 한국이름을 붙히고 미국식 이름을 중간에 넣었다가 취학전에 개명을 하였습니다. 일례로 한국이름이 <정철>이라고 하고 Andrew라는 미국이름으로 쓴다면, Jungchol Andrew Kim이라고 쓴다고 합시다. 그러나 Jungchol에 대해서 여러가지 뉴앙스가 틀리는 발음이 되어, <중철>이니 <정촐> 이라고 발음하는 바람에, Seoul의 발음을 본 따서 Jeongchul 이라고 써도 여전히 <종철>이라고 발음합니다. 사실 Seoul의 발음은 <서울>이 아니고 <쏘울>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첨 만나는 사람들이 기억하기도 힘이 들어 한 음절로 끊어서 그냥 강하게‘정’이라고 부르라고 하니, 이름이 완전히 반쪽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그래서 모든 걸 감안해서 , 어떻게 던지 잘 커 나가야할 꿈나무들에게 이름에서부터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Andrew Jongchul Kim 의 순서로 개명을 해줬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Andy J. Kim으로 줄여 사용하고, 졸업장, 운전면허증, 영주권, 시민권 등의 공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름도 줄여쓰고, 중간 이름은 단지 이니셜 J로만 사용되는 게 상례입니다. 물론 집에서 한국말을 할 때는 <정철>을 주로, 영어로 애기할 때는 <Andy>로 부르지만, 부모님들은 거의 한국명을 쓰지만 말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대부분 한인들 부부가 같이 자영업을 위주로 생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부모와 자녀들과의 같이 어울리는 시간이 줄어들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영어권에 쉽게 적응되는 자녀들간에 의사통화의 문제도 생깁니다. 그리고 시간도 없지마는 학교에서 매학기 초에 선생과 학부모간에 있는 자녀들의 평가를 위한 미팅마저도 참석치 못하게 되더군요. 물론 영어가 딸려서 가고 싶어도 못가고, 통역을 해줄 만한 친지가 있으면 그것도 다행이지만 말입니다.
사실, 한인사회가 위치한 동네가 해가 갈 수록 나빠지기 때문에, 연말년시에 강도를 당하는 동포의 비지니스도 많아지고, 자녀들 또한 가정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에, 그런 애들이 여럿이 몰려다니다보면 <폭력 갱단> 에 연루가 되기도하고 마약에도 손을 대는 사례도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물론 마약문제는 어디에 사나 쉽게 노출이 되는 미국적인 문제이기도하지만요.
그러나 처음에 얘길 하였듯이 청소년들이 범죄에 노출이 많은 고등학교를 다닌다고하여, 전부 문제학생이 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달동네에 산다고 다 못 살게 되고, 출세도 못하는 것이 아니듯,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었거나, 개개인들의 노력여하에 따라서, 그런 좋지 않은 환경속에서도 학업과 기타 과외활동에 전념하여 최상위권의 성적으로 졸업을 하여, 상위권 1%의 혜택을 받아서 적어도 자기가 가고픈 대학으로 진학하는 한인학생들을 많이 봤지요. 이런 점으로 봐서 미국 교육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러나 너나 할 것없이 재력이 생기면 학군이 좋은 교외를 찾아 이사를 합니다. 이곳 N타운에서 내논 통계를 보면, 아시아 계열이 전체 타운인구의 2% 미만인 데도, 자녀들이 그곳에 속해있는 공립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많아서 20%를 넘습니다. 그러나 그런 학교에 들여 보냈다고 하여 다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교에 다 갈수는 없는 일이지요. 아예 상위권에 들지 못할 바야, 학군이 그런 대로 괜 찮은 곳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한 편이 좋은 대학을 갈 확률이 더 높으니, 모두들 기를 쓰고 무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흑인도 없고, 있어도 0.1%정도이고 주로 유대인이나 백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산다고 해도 생활패턴을 알고 보면, 그 차이가 너무도 크다는 겁니다.
첫째로, 겉으로 보기에 비슷한 집에 살더라도, 이미 대를 이은 오랜기간 토착을 한 백인 중산층들은 집에대한 융자금액이 끝났거나, 유산으로 물려 받은 경우가 많아서, 혼자 적당히 벌어도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다는 점이지요. 그 에 반하여 동포들은 두 부부가 열심히 벌어서 집을 마련했지만, 매달 몰기지(Mortgage) 넣기도 바쁘고, 집을 구색에 맞게 꾸미기도 힘들 뿐만아니라, 수시로 리모델링도하면서 잘 가꿔야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집은 집대로 폐허를 만들고 또한 소위 잠만 자러 들락거리는 꼴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로, 학군이 좋은 동네에 와서 10년 넘게 살아도, 한인들 상대를 주로하는 자영업을 하는 1세들은 원만한 언어소통이 해결 않되는 것은 여전하며 역시 자녀들과의 진지한 영어를 사용한 대화 단절, 학교와의 통신 단절은 시내에 있는 공립학교에 애들을 보낼 때와 별로 달라지는 게 없지요. 단지 부모들은 이런 환경에 넣어두면, 어떻게든지 따라가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더 많이 발생하게 되지요. 자신들이 시간이 없어서 잘 해주지 못한 걸 금전적으로 나마 보상해주려고, 일찌감치 SUV 같은 걸 사주면서, 생색을 내듯 하는 말이, '우리가 누구 때문에 고생하느냐, 공부나 잘 해라!’라는 상투적인 말 밖에 하질 못하니, 그게 애들한테는 스트레스만을 주는 얘기고, 잘 먹혀 들어 가지 않을 뿐더러 이제는 발이 생겨 밤 낮으로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쏘 다니며 더욱 탈선만 가속이 되는 경우를 많이 봐왔지요.
셋째로, 아직도 많은 동포 가정에서는 부부중에서 한 사람만 일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당연히 자녀들이 일과후의 과외활동으로 밴드, 오케스트라, 수영, 체조, 미식축구 등을 하여도 크게 참석을 못하게 되지요. 겨우 해봤다는 명맥만을 유지할 뿐이고, 일과 후에 다니는 버스를 놓치지 않고 서둘러 타고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 옵니다. 그러나 생활 수준이 높은 교외에 사는 많은 미국인들은 자녀들이 어려서 부터 별도로 수영이다 발레 다, 아이스케이팅, 피아노 혹은 바이얼린 교습을 받으려고, 이곳 저곳을 차로 다녀야하고, 시합이나 발표라도 하려면 다른 타운이나 주에도 가야만 하는데, 두 부부가 일을 하면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말입니다. 단지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지요. 크리스 마스 전 부터 1월 말까지의 한 달이나, 3달동안의 긴 여름방학 기간 동안은 물론, 3월중순에 일 주일 쉬는 봄 방학(Spring Break)동안 급우들은 훌로리다 의 디즈니월드 며, 캘리포니아의 디즈니랜드, 카리비안 쿠르즈등을 다녀와 선탠(Sun tan)을 자랑하면서 이런 저런 경험담을 늘어 놓는데, 우리 동포들의 자녀들은 대부분,그런 델 갈 수가 없으니 얼마나 소외가 되고 슬퍼하겠습니까? 아직은 과정에 사는 우리들이니, 다음세대에는 더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지내지만, 그런 삶의 방식을 후세에게도 물리게 될 것이 우려가 되는 것입니다.
이민1세들은 자녀들이 다 커서 자립을 할 만큼 세월이 흘렀서도 이곳 문화에 적응이 안 되면 말년에 한국에 가서 지내면서 합법적으로 시민권자의 혜택을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편할 대로 살 일이지만, 자녀들이 이곳에 있는 한, 자주 들락거려야 하는 건 물론이고 맘이 꼭 편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이곳 생활에 너무 힘들고 최후의 순간에 돌아 갈 고국이라도 있다는 것이 만에 하나 위안을 줄 수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유럽의 이민자들이 험하디 험한 서부 까지 들어가 개척을 하면서 자리를 잡고, 낮선 나라에와서도 또 외진 곳에 뼈를 묻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전쟁을 통해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잃어가며 이 나라가 유지 된 거지요. 하여튼, 그런 개척 정신이 없이는 몇 세대가 지나도 크게 번창한 Korean American의 입지를 세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기야 한인들은 극히 소수의 유학생이나 공관원을 제외하고는, 뒤 늦게 70년대 이후 이민 와서 정착한 사람들은 피의 댓가를 치르지 않고, 풍요한 혜택만을 받은 셈이지요. 사실, 그런 얘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한국 노인들의 혜택이 가장 대표적인 얘기지요. 이곳에 와서 세금 한번 안 내고 65세가 넘어가서 정부 혜택을 받으니, 자녀들한테는 부담이 없어서 당장은 좋게 느껴지나,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주가가 곤두박질하여 연금이 줄어들고 70살이 넘어서까지도 일을 해야할 입장이 되며는, 막상 열심히 일해 온 우리 세대가 은퇴를 하게될 때쯤이면, 쇼셜 시큐리티의 혜택이 대폭 줄어 들지도 모른다는 얘기지요.
추신:
다음 번에는 '종교문제’, '자영업의 문제’, '전문직이 처하는 문제’와 종합의견으로 ‘그래도 과연 잘 왔는가?'를 보내드리고 끝지우려합니다. 조금이나마 이민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참조가 되었으면 하는 맘 간절합니다.